164. 월드 이벤트
GDC가 열리는 3월까지, 상혁은 언제나 그렇듯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현주가 CEO역할을 가져가면서, 임시로 CEO역을 맡았던 민준이 CTO(Chief Technical Officer)로 내려가고 상혁의 업무 부담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작업하는 대부분의 작업물이 상혁의 최종 컨펌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엄밀히 말하면 ‘모든’작업물을 상혁이 검토할 필요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마스터 클래스의 직원들은, 자신의 판단을 상부 검토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심지어 일반 작업자들도, 본인이 ‘이것이 더 나은 방향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 있게 내 놓은 결과물이라면, 상혁은 그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작업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혁에게 최종 컨펌을 요청하는 대다수의 작업물들은, 사실 ‘이렇게 해도 되는지 확인해 주세요.’ 라는 의미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개쩔게 작업했으니 이것을 보고 칭찬해주세요.’ 라는 의미로 올라오는 작업 물들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하루 종일 그런 작업물들을 검토하고, 작업자가 신경 써서 작업한 부분들을 칭찬하거나, 미처 놓친 부분들을 이야기해주며 게임이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능숙하게 가이드 했다.
“오, 예전보다 엑셀 함수 사용이 능숙해지셨네요. 혹시 휴가 기간 동안 학원이라도 끊으신 거예요?”
“이전보다 색 쓰는 게 엄청 좋아지신 거 같아요.”
“민준 씨가 좋은 코드라고 칭찬하더라고요.”
“이전에 있던 안 좋은 습관이 사라졌네요. 노력하고 성장하시는 게 눈에 너무 잘 보입니다.”
특히 작업자 개개인이 이전에 못하던 것을 노력을 통해서 해냈을 때를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칭찬하곤 했는데, 그 칭찬은 상혁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합쳐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구름 위를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곤 했다.
‘게임을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열정을 심어주는 시간.’
상혁은 거기 쓰이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어프렌티스부터 마스터 직원까지, 게임 제작은 모두의 힘을 합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들을 신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게임의 퀄리티로 돌아오게 되는 법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1명의 천재성이 아니라 100명의 애정이 더 뛰어난 게임을 만드는 동력이라고, 상혁은 믿고 있었다.
“뭐, 분위기는 최고조고, 이번 GDC관련 키노트도 직원들이 기대 중이던데.”
잠깐 짬을 내서 커피를 마시는 상혁에게 민준이 다가와 말하자, 상혁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왜?”
“뭐, 네가 나간다고 한 거니까,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무슨 예능인인줄 아나, 그냥 강연 가는 거라고. 별 얘기 안 할 거야.”
“그럼 직원들이 실망할건데.”
“아니, 거기서 강연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면 진즉에 따로 가르쳤겠지. 애당초 강연 당사자랑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그런 걸 왜 기대하는 거야? 찾아와서 배우면 되잖아?”
“바로 얼마 전에 월드투어 다니면서 직원들 비행기 태워준 CCO가 하는 GDC키노트니까 기대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무리 아냐? 주제는 뭐로 할지 정했어?”
“아니, 안 그래도 운영 측에서 리스트 공시해야하니까 빨리 달라고 하긴 하던데. 강연자는 나랑 너랑 지수, 3명이잖아. 넌 뭐로 할 건데?”
“가정용 콘솔에서 네트워크로 대규모 병렬 연산 장치를 호출하여 기기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기가차다는 표정으로 민준을 보며 말했다.
“와 이 악마자식. 그거 들어도 애당초 렌더링 센터 같은 대규모 연산 센터 없는 회사는 쓰지도 못하는 기술이잖아? 알아도 쓸 수 없는 기술은 뭣하러 설명하려고?”
“아니 기술적으로 흥미 있는 도전이었으니까. 코더들은 좋아할 거야.”
기본적으로 현재의 MYOM에서 유저들이 만지고 있는 원소조작은, 실제로 마력 입자의 운동량을 계산하여 시뮬레이트 되고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일 뿐.
그렇기에 가정용 콘솔의 성능 한계 안에서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것이지 그 안에서 새로운 주문이 발생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건 자체적으로 막혀있으니까.
그러나 고 서클로 가면서, 현재 개발팀에서 미리 구축해 집어넣은 주문의 구현 범위를 넘어가는 조합을 시도하면, 그때는 온라인으로 입력 값을 받아서 렌더링 센터가 시뮬레이팅을 대신 하게 되어 있었다.
Make your own magic.
너만의 마법을 만들어라 라는 제목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 게임에서 유저는, 게임사가 ‘숨겨놓은’ 주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유 주문을 만들 수 있었다.
무려 그것 때문에, 한국에 세운 렌더링 센터보다 더 큰 규모의 설비를 북미와 유럽에 설치하기도 했고.
해당 시설의 설비들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대기상태로 있다가, 어떤 유저가 완전히 새로운 주문의 제작을 시도하면 해당 결과를 시뮬레이트하기 위해 돌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나중에 세운 설비 쪽이 좀 더 최신형 장비를 사용하기에 성능이 더 뛰어나다.
물론 한국에 있는 랜더링 센터를 지을 때 들어간 장비들도 신형으로 교체 작업 중이긴 했지만.
매번 신형 칩셋이 나올 때마다 전부 교체한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것이다.
그렇기에 교체는 섹션별로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장비들은 회사 컴퓨터에 쓰거나 직원들에게 공짜로 주고 있었고, 그러고도 남는 장비는 MS에 보냈다.
현재 MS와 함께 진행 중인, ‘비밀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
“그쪽 작업은 어때?”
“2020년에도 아무도 시도 안한 기술인데 어려운 게 당연하지. 이론적으론 가능한데, 지금 네트워크 속도를 우리가 구현하려는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어려우니까.”
“언제쯤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이미 장비는 다 개발이 끝났고, 그 장비들을 렌더링 센터에 붙이는 과정만 남았으니까. 아마 5개월 안에는 테스트 할 수 있을걸? 그런데, 진짜로 할 거야?”
“할 거니까 그런 미친 계획에 돈을 미친 듯이 쏟아 붓고 있지.”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준비 중인 계획과 관련된 보고서를 열었다.
거기엔 굵은 글씨로, [MYOM Massive Multi-Raid Battle]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
캐나다에 사는 대학생 레너드 고슬링은 PTW의 열성 팬 중의 한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게이머들처럼 그들이 만든 게임에 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게임에 있는 기술에 열광하는 타입이었다.
네트워크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장 핑이 좋게 나오는 클라이언트를 중계 호스트로 잡고, 각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AI로 보정하여 미국에서도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는 ‘배틀 로얄’의 네트워크 처리 기술이라던가, 런칭 타이틀임에도 시작부터 PS3의 한계를 바닥까지 긁어냈다고 평가받는 GOS의 엔진이라던가.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모든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이번에 새로 발표된 MYOM과 부속기기 ‘코넥트’였다.
도대체 어떻게 구현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오파츠 스러운 물건이었기 때문에.
보통 이런 류의 게이머는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좀 독특한 경향을 띄게 된다.
일부러 버그가 날만한 행동을 유발해서 프로그래머와 QA가 놓친 부분을 찾아내며 기뻐한다던가, 아니면 반대로 ‘설마 이런 것까지 다 체크했을 줄이야!’하고 감탄한다던가.
코드와 장비를 뜯어서 안에 있는 부속의 종류를 보고 전체적인 장비 구동 플로우를 파악하거나, 개발자들이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어떤 식으로 회로를 배치하고 냉각 시스템을 적용했는지 본다거나.
캐나다에 있는 그의 기숙사 방에서, 레너드는 방의 조명을 끈 채로 모니터 앞에서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지금 웃돈을 얹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코넥트’가 내부를 훤히 드러낸 채로 여러 가지 코드에 연결된 채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룸메이트가 그 모습을 보았으면 기겁하며 레너드의 등짝을 후렸을 것이다.
그가 분해한 코넥트는, 그의 것이 아니라 룸메이트의 것이었으니까.
그라고 친구의 물건을 분해하고 싶어서 분해한 것은 아니었다.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
물론 그렇다고 허락 안 받고 맘대로 분해한 것은 분명 범죄이지만, 레너드의 마음속에는 이 오파츠같은 기기의 구동원리에 대한 탐구심이 친구에 대한 우정보다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분해한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능이 나오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코넥트의 오파츠 같은 성능은, 하드웨어의 절적한 설계 탓도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의 보조도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소프트웨어는 괴물 프로그래머인 민준이 절대 뚫을 수 없는 보안으로 떡칠해놓은 상태였고.
차례차례, 레너드는 자신이 아는 일반적인 기기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백도어를 테스트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죄다 막혀있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감보다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마치 ‘세상에 이런 종류의 백도어가 존재한다.’라는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보안 작업을 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레너드는 심지어 해커 커뮤니티에서 최근에 발견된 공격방법까지 시도해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무려 그 방법이 코넥트 발매 이후에 나온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프로그램의 안을 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그런 과정은 언제나 그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PTW의 게임이, 여전히 완벽한 상태로 발매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중에도 특별히 레너드를 감동시킨 기능은, 역시나 MYOM의 트레이드마크인 ‘주문 생성 기능’이었다.
***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원자’는 기본적으로 3가지의 구성요소를 가진다.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
양성자와 중성자는 강력이라는 힘으로 뭉쳐져 있으며,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양성자 1개에 전자 1개를 붙이면 수소가 된다.
거기에 양성자와 중성자를 붙이면 헬륨이 되고, 좀 더 더하면 탄소가 된다.
쿼크, 글루온,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물질이 되는 것.
MYOM에서는 그런 현실의 물리법칙이 아닌, 만들어진 가공의 물리법칙이 가상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순전히 재미로, 천재 이론 물리학자인 클라우드 바커 교수가 만든 ‘마나 통일장 이론(unified theory of Mana)’에 의해 만들어진 기초 이론에 의해, 각 속성의 원소들이 합쳐지고 변화하며 서로 영향을 준다.
그는 공식을 만들었고, 민준은 실제로 그 공식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구현했다.
당연히 X-BOX360 수준의 7세대 콘솔에서 돌아갈 수 있는 연산이 아니다.
그래서 민준은 미리 렌더링 센터를 통해 결과 값을 구해놓고, 콘솔버전의 게임에는 정해진 행동을 하면 저장된 결과 값을 호출하게 해 놓았다.
그것이 ‘발견’이다.
그리고 그것이 ‘발견’의 영역이 아닌, ‘창조’의 영역이 될 때, 코넥트는 그 안에 숨겨진 다른 기능을 사용하게 된다.
클라우드 연산 기능.
해당 기능이 호출되면, 즉시 유저의 X-BOX는 입력 데이터를 렌더링 센터에 보내고 자신은 렌더링 센터에서 되돌아온 화면만을 출력하는 ‘중계기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어차피 아무리 유저가 많더라도 동시에 ‘창조 로직’을 사용할 유저의 수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게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저들은, ‘창조’는커녕 ‘발견’을 하는 것도 벅찰 테니까.
상혁이 MYOM의 서클 습득 난이도를 과도하게 올려놓은 것은, 유저의 성취감을 위한 것도 있지만 렌더링 센터의 부하 절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단순히 이것만을 위한 기능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비효율 적이란 말이지···.”
레너드는, 홈페이지에서 공개된 정보와 자신의 독자적인 분석을 통해 그 기능이 어째서 들어간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 자신이 알 수 없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TW에서 구현한 그 기능은,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인 기능이었으니까.
몇 명이 될지도 모르는, 극소수의 유저들이 마법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 수천억짜리 렌더링 센터를 짓는다?
‘PTW라면 그러고도 남는 회사이긴 하지···’
비효율적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뭔가 ‘더’해내는 게 PTW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너드는 거기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에 계속 코드를 파고들었다.
정확히 5분 후에, 방에 들어온 친구가 기겁을 하며 자신의 등짝에 시뻘건 손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서.
***
“미리 말하지만, 레이드 관련 내용은 GDC에서 공개하면 안 돼.”
민준과 마찬가지로 오프닝 키노트 멤버로 선정된 지수를 앞에 두고, 상혁이 말했다.
“솔직히 마나 엔진 자체가 변수가 너무 많은 물건이기도 하니까. 내부 테스트를 통해서 완벽하게 잘 굴러간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예 공개 안하고 묻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거든.”
“최악의 경우엔 어떻게 될 것 같은데요?”
지수의 질문에 상혁이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렌더링 센터에서 불이 나던가, 아니면 전원 과부하로 센터가 통째로 나가던가, 설치된 장비가 탈수도 있고, 아니면 네트워크 중계를 맡은 장비가 터질 수도 있고.”
“히이익!”
“그래도 클라우드로 돌리는 거니까 유저가 가진 X-BOX에서 불이 나거나 기기가 벽돌이 되지는 않을 거야. 그거 보단 낫겠지.”
“그건 진짜 최악이네요.”
지수의 말을 들으며 상혁은 예전에 실제로 그런 사고를 쳤던 게임을 떠올렸다.
구동시킨 콘솔을 벽돌로 만들어버리는, 희대의 병크를 터트린 게임 ‘랜썸’을.
‘어휴 그런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애써 고개를 털며 생각을 날려버린 상혁이 지수에게 말했다.
“어찌됐건 이건 MO형태의 싱글 콘솔 게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 되는 월드 이벤트니까. 나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상혁은 다짐을 하듯 말했다.
“이 모든 이벤트의 핵심은, 마탑 주이자 마법의 어머니인 지수 네가 핵심이란 걸 잊으면 안 돼.”
“그···렇겠죠?”
상혁이 건네준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지수는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 게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추억을 안겨줄 것이라고 되뇌면서.
지수는 조용히 기획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지수가 넘긴 페이지에는,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수없이 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마법으로 마왕을 처치하는 컨셉아트가.
그리고 그 안의 마왕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지수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100대 1의 전투라.’
그림을 보며, 지수가 웃음을 지었다.
상상만 해도 압도되는 기분이었기에.
“오빠, 이건 전설이 되겠네요.”
“그렇지. 전설이 될 거야. 게임도, 그리고 거기 참여한 유저도, 그 유저들을 도운 유저도, 그리고 그 전투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는, 마치 눈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서지수. 전 세계가 잊지 못할 규모의 월드 이벤트에서, 가장 잊지 못할 전설이 되는 게, 바로 네가 되겠지. 마법의 어머니에서 마왕이 되어버린 타락한 마법사로.”
상혁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백 명이 참여한 전투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해서, 게임의 운명을 개발사에서 유저의 손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하게 될 사람. MYOM의 첫 번째 최종 보스가, 바로 지수 네가 될 테니까.”
상혁이 ‘굳이’ 렌더링 센터를 북미와 유럽에 추가로 건설 한 이유.
그리고 극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휴면 상태로 굴려야하는 대규모 장비에 수천억을 투자한 이유.
그것은 바로 ‘클라우드’의 힘을 빌어서, 현재 콘솔로 불가능한 수준의 대규모 전투를 MMO급의 월드 이벤트로 구현하고자 하는, 상혁의 원대한 계획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