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각자의 생각
“와, 이건 거의 트집 수준이네.”
한국의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는, PTW가 해외에서만 인기 있고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종이 호랑이이며, 세계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MMORPG 장르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콘솔 괴작만 만드는 괴짜 개발사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게임을 잘 만든다고 정평이 나있지만 정작 PTW는 다른 회사와 같은 장르로 정면으로 붙은 적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렇기에 기발함만 있고 정교함이 없다는 기자의 평가는, 아마 PTW의 팬들이 봤으면 누가 봐도 ‘이 기자는 PTW의 게임을 해보지 않고 기사를 썼구나.’ 라고 평가할 만한 기사였다.
아니, 평가를 하기 전에 무지막지한 악플을 달았을 것이다.
현재 갑작스레 늘어나고 있는 팬들의 광기는, 진짜로 엄청난 수준이었으니까.
“이 기자는 한국인이라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군. 우리 팬들이 외국에 더 많으니까. 아마 미국 기자가 썼으면 살해협박 당했을 텐데.”
“기레기가 기레기 한 거지.”
민준의 말을 들은 지수가 물었다.
“민준 오빠? 기레기가 뭐에요?”
“쓰레기 같은 기자라는 뜻이야. 기레기.”
유행어였지만 지수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기레기란 단어는 좀 더 이후에 유행하는 단어였으니까.
그러나 그 어감이 혀에 착착 감기는지, 지수가 민준의 말을 따라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기레기! 기레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기레기구나!”
“어. 맞아. 기레기.”
지수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 민준이 상혁에게 물었다.
별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아서 PTW를 공격한 이 괘씸한 기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뭐? 뭘 어째? 걍 놔둬야지.”
“괜찮아?”
“만인에게 다 재미있는 갓겜이란 없는 법이야. 어떤 사람은 게임안의 세계에서 특별한 위치에 올라가는 쾌감을 원하고, 어떤 유저는 단순히 스코어가 올라가는데서 쾌감을 느끼고, 어떤 유저는 이쁜 캐릭터를 수집하는데서 쾌감을 느끼고, 어떤 유저는 우리가 만든 MYOM을 하면서 마법사가 되는 기분을 즐기는 거지. 지금 엄청나게 칭찬받는 우리 게임도 해보고 실망한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걸?
‘뭐야 이런 똥겜은!’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거라고.”
“뭐 그럼 놔두는 걸로.”
“어.”
그렇게 말한 상혁은 갑자기 기사를 띄워놓고는 영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워크패스트를 통해 직원 일부에게 영어로 된 비난 기사를 보냈다.
현재 PTW의 게임이 공식 출시된 국가들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개발자들에게.
[이거 각자 자국 언어로 번역해서 회신 좀 부탁드릴게요]
라는 말과 함께.
그러자 파일을 보낸 지 정확히 1분 후, 상혁의 스피커에서 메시지 도착 알림이 마구 뜨기 시작했다.
[아니, 뭐죠? 이거? 무슨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가!?]
[CCO님. 명령만 내리시죠. 제가 이 기사를 쓴 녀석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인터넷 사용기록을 빼오겠습니다.]
[와! 씨! 이거 번역하고 커뮤니티에 올리게 해주십쇼!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상혁은 직원들 각각에게 답신을 보냈다.
[그럴 용도로 번역 부탁한 겁니다. 회사홈페이지에 있는 국가별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아, 물론 상아탑 사이트에도.]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민준이, 경악한 표정으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너, 너···. 아깐 가만 둔다더니?”
“어? 뭐?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그냥 알려주기만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모니터에 띄워진 기사를 보며 말했다.
“이 녀석! 그럼 나의 ‘PTW팬’들의 맛을 조금만 맛보아라!”
바로 다음 날, 상혁은 해당 기자가 다시 올린 정정 보도를 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올라온, [PTW. 오직 게이머를 위해 험준한 산을 등반하는 위대한 개발사의 이야기] 라는 사죄용 기사와 함께.
그때만 하더라도, 상혁은 이 사건이 갑작스런 성공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샘이나 질투라고 생각했다.
상혁이 생각하는 개발자란 인간들은, 남이 잘나가던 못나가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면서 즐거워 할 수 있는 인간들이니까.
그러나 상혁의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상혁이 모르는 곳에서 PTW의 무리할 정도로 과감한 행보는 게임업계 이곳저곳에서 트러블을 낳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은, 올해가 자신의 해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더티 독의 개발자, 윌 드랙만이었다.
***
“Fu○k the PTW!”
11월 중순만 하더라도, 일제히 올해 최대 GOTY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던 ‘업차티드2’의 개발자 윌 드랙만은, 요즘 매일같이 올라오는 기자들의 기사를 보며 있는 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10월 13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이 공개되자마자, ‘역대 최고의 액션 어드벤쳐.’ ‘PS3를 훔쳐서라도 해라!!!’ ‘완벽하지는 않다. 허나, 근간 발매된 어떤 게임보다도 완벽에 가까운 존재다’라는 극평을 받으며, 메타 스코어 96점이라는 엄청난 평가를 받은 자신의 게임에 대한 주목도가, 딱 한 달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든 언론사가 MYOM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었고, 개발자들은 국가별로 투어까지 다니면서 마치 영화배우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피고 으쓱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상혁 일행이 드랙만의 생각대로 그렇게 거만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드랙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드랙만에게 엄청난 질투를 선사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은 최고의 개발자여야 했으니까.
GOS의 선행발매로 근소한 차이로 앞서있던 PS3진영을 승리자로 끌어올릴 SANY의 구원자.
PS3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당대 최고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
SANY가 가진 최고의 비밀병기.
그랬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러나 PS3는 출시 시점부터 이미 GOS가 기기 성능의 한계를 다 끌어낸 상태로 게임기가 출시되었고, 이후에 나온 모든 게임들은 ‘GOS보다 그래픽이 별로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심지어 거의 한계까지 성능을 끌어다 쓴 자신의 ‘업차티드2’보다도.
대체 프로그래머가 외계인이라도 되는 것인지 한계가 아니라 아예 바닥까지 끌어다 쓴 GOS의 그래픽 수준을, 더티독의 개발진은 도저히 따라갈 수 가 없었다.
처음 발매된 게임이 전체 게임 중 가장 그래픽이 좋은 아이러니한 상황.
원래 ‘세상에 없던 경험’을 전달해야했을 인터렉티브한 액션 플레이도, GOS보단 임펙트가 적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시리즈의 시작부터 계속 그가 게임을 낼 때마다 GOS와 비교되는 상황이었기에, 드랙만은 PTW의 발표행사 직전에 SANY직원으로부터 ‘이번 신작은 X-BOX라고 합니다.’라는 슬픈 목소리를 들었을 때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저 눈에 가시 같은 자식들이 드디어 자신이 있는 판에서 나갔으니까!
기쁨으로 춤을 출 것 같은 드랙만은 너무 기쁜 와중에 업차티드2가 엄청난 반향을 받자 이제 PTW를 용서해줘도 될까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쪽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올해 게임 판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니까.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
MYOM이 발매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그날 드랙만의 사무실에서 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올해 GOTY를 받으면 딸 것이라고 장담한 샴페인 병의 잔해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정작 당사자인 상혁이나 PTW의 개발팀 누구도 더티독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더티독 개발진은 그렇기에 PTW를 거의 증오 수준으로 싫어하고 있었다.
가식덩어리.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는 위선자들.
‘게임’이 아니라 항상 이상한 것만 만들어오는 정신병자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드랙만 혼자였지만, 다른 직원들은 그덕에 드랙만의 엄청난 등쌀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드랙만은, 그 상황에서 자신을 정말 미치게 만드는 전화 한통을 받게 되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개발자들의 축제.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모여 노하우를 공유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최고의 게임을 뽑는, 게임 개발자 회의(Game Developers Conference)의 운영진이 걸어온 전화였다.
-아, 윌 드랙만 씨? GDC의 빌 카슨입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신발로 깨진 샴페인 병을 으깨며, 드랙만은 호흡을 가다듬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자신이 맡은 오프닝 강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원래 2010년 GDC의 키노트를 맡았던 인물인 ‘운명’의 개발자 ‘시든 아이어’는 GDC의 연설 요청을 거절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이 새로운 게임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라는 이유로.
물론 그 게임은 MYOM이었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유명 개발자들에게, MYOM이 준 장르적 충격으로 인해 올해 GDC는 키노트 강연자를 윌 드랙만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거기엔, 할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꼭 하고 싶다는 드랙만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선천적으로 남의 눈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타입이었기에, 그는 이번 GDC를 통해서 업차티드의 핵심 개발자인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걸려온 GDC담당자의 말은, 방금 샴페인 병을 깨트리고 기분이 매우 나빠져 있던 드랙만의 멘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아, 윌 씨? 죄송합니다만 이번에 오프닝 강연은 안 나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엄청난 게스트가 섭외 돼서요! 무려 그 PTW의 개발팀 3분이 동시에 오프닝 강연을 맡아주신다고 하네요!-
“예!? 그건 원래 제가 하기로···.”
-죄송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아무래도 개발자들이 흥미를 가지는 이슈를 중심으로 행사를 구성할 수밖에 없어서···. 대신 2번으로 순서를 조정해드릴 테니 어떻게···.-
“안 해.”
-예?!-
“안 한다고! 이 머더 뻐킹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들아! 올해 GDC엔 더티독 개발자는 한명도 안 보낼 거다! 이번에도! 앞으로도! 영원히이이!!!!”
수화기를 집어던지며, 드랙만은 씩씩거리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붙잡고는 마구 책상에 내려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X바아아알!!”
그리고 그 모습을 사무실의 블라인드 틈새로 바라보던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드랙만 씨 왜 저래?”
“몰라. 원래 좀 미친 분이잖아.”
PTW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그렇게 한 개발자의 안에 숨어있었던 광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PTW의 과감한 행보는 더티독 외의 다른 회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었다.
같은 콘솔계의 경쟁사인 더티독 뿐만 아니라, PC MMO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눈보라사’ 까지도.
***
두 개발자가 엄청나게 화려한 AAA급 타이틀을 보았다고 하자.
‘와! 언젠가 나도 저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드는 개발자는 게임업계의 쓴맛을 덜 본 사람이다.
숙련된 개발자는 그 정도로 화려한 게임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와, 저거 만들 때 스트레스 오지게 받았겠다.’
우스갯소리지만, 그 정도로 게임 개발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어찌 보면 영화판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정면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면서 팬들의 환호를 받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촬영 내내 무거운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뛰어다녀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스텝도 있다.
조명디자인을 계획하기 위해 방송프로듀서(방송연출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등과 협의하고, 세트규모, 인원, 카메라 위치, 분위기 등을 파악하여 조명의 연출방법, 시간, 조합 순서 등을 계획하여 최적의 조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도, 아카데미에서 ‘조명 감독상’ 따위는 주지 않는다.
감독이 그러한데, 스텝은 어떠랴.
원래 그런 것이다.
개발자의 극히 일부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 게임을 만드는데 열정을 다한 수백 명의 직원은 단지 아무도 읽지 않는 스텝 롤에 이름 한 줄만을 남긴 채 언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리에 올라가길 꿈꾼다.
‘언젠가’ 자신도 그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댓가로.
그런 의미에서 PTW에서 이번에 참가한 TV쇼의 내용은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팀장부터 신입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직원들이 어떤 최선을 다해서 게임이 만들어진 것인지 게이머들에게 전달한 것이기에.
그것은 PTW의 직원들의 가슴에 엄청난 자부심과 만족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타사의 게임 개발자들에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2009년 ‘대변혁’의 발표로 엄청난 호응을 받았던 눈보라사의 개발팀도, 최근 ‘그 이슈’로 인해 텐션이 꽤 다운된 상태였다.
이전까지 자신들이 최고의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상에 나오는 PTW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판타지 같은 회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아, 이직하고 싶다!”
열심히 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던 젠슨이 툭 내뱉은 말은, 일반적으로 게임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말은 순식간에 주변 동료들의 고개가 휙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일반적인’ 게임 회사가 아니라, ‘대변혁’확장팩 발표로 최고의 분위기를 구가하고 있던 ‘눈보라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에.
“젠슨. 정신 나갔어? 일 잘하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잘해주면 누가 알아 주냐고. 우리 게이머 중에 누구 한명 내 이름 아는 사람 있어? 다들 토미 칠던 씨 아니면 대표인 마이클 모헤임, 클리튼 맷 씨만 알잖아.”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게임 만드나? 게임 제작이 좋으니까 하는 거지. 여긴 연봉도 최 상위권이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PTW가 여기보다 연봉 더 높다던데?”
젠슨의 말에 동료가 잠시 고민하다 반박했다.
“업무환경도 고려해야지.”
“PTW가 업무 분위기도 더 좋다던데?”
결국 할 말이 없어진 동료는 자신의 동료를 맹렬히 쏘아붙였다.
자신도 의욕 안 나는데 일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젠장, 젠슨. 투덜댈 시간 있으면 손이나 움직여.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하는 거야?”
그리고 그런 직원들의 변화는,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게임 제작사들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 중이었다.
***
“요즘 그쪽 팀 분위기는 어때요?”
“다들 숨기고 있지만 텐션이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느낌입니다. 설마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게임 회사의 ‘팀장 급’ 직원 정도가 되면, 해야 할 업무에 소속 인원들의 의욕관리도 들어간다.
그렇기에 오늘 회의실에 모인 팀장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최근 게임업계에 몰아치고 있는 ‘PTW 폭풍’에 대해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한 행동은, 물론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기발한 행동이긴 했지만,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동종업계를 무시하는 ‘상도덕 없는’행동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우리 직원들이 다른 회사가 부러워서 의욕상실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만큼 파격적이긴 했죠. 그들의 행보가.”
“배틀로얄 출시할 때 우리 쪽에서 유즈맵 용량 제한도 풀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다니···”
“아니, 그쪽에서는 딱히 그럴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냥 그게 직원들 사기를 올리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겠죠.”
“동접 상황은 어때요?”
“많이 떨어졌습니다.”
“다른 이유로 떨어진 건 아니고?”
“8월 21일 눈보라컨 이후로 상향곡선을 찍던 게 11월 15일 이후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PTW의 영향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눈보라사의 CEO, 마이클 모헤임이 인상을 쓰자 옆에서 토미 칠던이 이야기했다.
“너무 신경 쓰실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무슨 짓을 하던 여전히 저희 게임은 세계 최고의 MMORPG일거고,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게임일 테니까요.
게다가 PTW는 콘솔 게임 개발 전문이죠, 저희는 PC게임이 전문이고요.”
“내가 걱정하는 건 돈이 아니야. 토미.”
“그러면···?”
“우리가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직원들 한명 한명이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면, 게임 회사는 끝이야. 개발자의 꿈을 모아 게이머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게임회사의 본질이니까. 꿈을 꿀 수 없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아할 걸세.”
마이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게임사라 불리는 회사를 이끄는 수장으로써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다들 팀원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분위기를 잘 관리하고, 노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사이고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사 여야 합니다. 회사 입구에 새겨진 문구의 의미를, 모든 직원들이 다시 새겨갈 수 있도록 관리자급 직원들이 최선을 다 합시다.그리고 저는, 조만간 PTW의 CCO와 이야기를 나눠 보아야할 것 같군요.”
“이상혁 말입니까? 한국에 가시려고요?”
“아뇨. 어차피 조만간 만나게 될 테니까. 굳이 이유를 만들어서 갈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말하며, 마이클은 회의실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제 2009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달력을.
“어차피 내년 봄엔, 게이머들의 축제가 아닌 개발자들의 축제도 열리니까.”
그는 상혁을 만나볼 생각이었다.
마이클이 언급한 ‘개발자들의 축제’. GDC에서.
그것은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회사 운영방식을 고집하는 그 괴짜의 머릿속에,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