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59화 (160/485)

159. 인생 최고의 기억

지수가 1격에 날려버리기 위해 날린 최강 주문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봉춘의 주문에 접촉하는 순간 무지갯빛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가며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유리 조각의 저편에서, 봉춘의 캐릭터인 멀린이 미소 짓고 있었다.

‘카운터.’

긴장한 표정으로 지수가 다음 주문을 준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론상 마나엔진에서 유일하게 상대가 사용한 주문식에 직접적으로 개입이 가능한 신비 마법은, 상대가 어떤 주문을 시전하려 하는지 알고 있으면 모든 주문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주문이 무효화 되었다는 말은, 첫 번째 주문으로 아포칼립스를 날릴 거라고 봉춘이 예상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과연 자탑주. 신비 계열의 지배자란 칭호는 허명이 아니었군요?”

“과찬이십니다. 단지 자주 붙어보았기에, 이런 큰 자리에서 마탑주님이 어떤 주문을 사용하려 하실지 예측 가능했을 뿐이죠.”

“좋습니다. 방금 그건 인사로 치죠.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도전자로써, 이번엔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멀린의 캐릭터 뒤로, 순식간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는 모습은 ‘압도적’이라는 수식어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모습이었다.

***

“미친, 나는 단순히 서로 배운 주문을 던지면서 싸우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스크린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종류의 폭음을 들으며, 리차드가 중얼거렸다.

1층에서 배운 마법이 아기 걸음마 수준이고, 2층에서 배운 마법이 유치원에서 하는 낙서 같은 그림이라면, 3층에서 지금 지수와 봉춘이 대전하며 쓰는 마법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화려함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을 한번 뻗을 때마다 수십 개의 빛나는 마법진이 허공에 생성되며, 등 뒤에서 불타는 용이 나타나 브레스를 뿜거나, 그렇게 덮쳐오는 브레스를 몇 번의 손짓으로 깃털로 바꿔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마법’의 도달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그 대전을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엄청나게 복잡한 동작을 취하고 있음에도 한 치의 딜레이 없이 시전자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따라하고 있는 화면 속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화려함이 넘쳐나는 거대한 스크린 속 영상.

그리고 그 영상안의 캐릭터의 움직임을 화면 앞의 ‘플레이어’가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게이머를 흥분하게 하는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영화도, 소설도, 만화도.

그 어떤 미디어도 범접하지 못하는 게임이란 장르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는, 가장 인터렉티브한 미디어인 ‘게임’의 본질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무대 연출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관객이 뜨겁게 흥분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열망하고 있는 듯한 눈빛을 하면서.

굳이 묻지 않아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대놓고 ‘지금 당장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Holy!!!!!”

지수가 날린 수십 개의 매직미사일을 봉춘이 소환한 거대 골렘이 몸으로 막자, 객석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마치 보석으로 만든 얼음 기둥을 조각칼로 깎아내는 것처럼, 반투명한 골렘의 몸이 에너지 구체에 맞을 때마다 아름답게 부숴 지며 파편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까지 쏘아지는 모든 공격을 막아낸 골램의 몸이 쏟아지듯 붕괴 하는 순간, 봉춘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Mother!!!!!”

멀린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마치 물에 떨어트린 잉크방울처럼 화려하게 퍼져나가고, 방금 전 부서진 골렘의 수많은 파편이 빛을 내며 공중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리를 핀 멀린의 손에서 가느다란 빛줄기 수백 개가 한 번에 쏟아져 나오며 공중에 떠있는 반사체와 합쳐져 공간을 메우는 거미줄같이 빼곡하게 지수의 캐릭터를 덮쳐나갔다.

“Fu○ker!!!!!”

욕설 같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화려한 대전 속에서, 준비된 자리에 앉아 대전을 지켜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손을 마구 휘저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각자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을 뿐.

그리고 무대와 객석이 한 번에 내려다보이는 준비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상혁은, 뜨겁게 흥분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흐뭇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마법을 다루던 다른 게임들을 ‘시시하게’ 만들 거라는 지수의 목표는 허언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눈으로 지금 확인 중이었기 때문에.

1층과 2층에서 직접 ‘마법’을 손으로 재현하고, 3층에서 저런 전투를 본 게이머라면, 그게 누구든 앞으로 키보드 버튼 하나 눌러서 사용하는 주문에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상혁이 준비한 오늘 행사의 마지막 볼거리는, 그렇게 관객들의 마음속에 ‘피날레’라는 단어의 의미에 어울리는, 강력한 임펙트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대전의 열기가 불타오를수록 마음에서 토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젠장, 인정하자. 내가 이제 x됐다는 사실을.’

점점 흥분되는 객석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리차드는 연신 셔터를 눌러가면서 심각해져가는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떤 기사를 써야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아서.

자신의 부족한 표현력으로, 지금 자신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 같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두 눈을 무대에서 떼지 않은 채로 속으로 고민하던 리차드는, 그제서야 이번 컨벤션에서 상혁이 의도한 노림수를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이 흥분된 객석의 분위기 자체가 의도한 연출이었어!’

물론 그것은 지금 옆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관객들이 상혁이 깔아둔 배우들이란 이야기는 아니었다.

상혁이 깔아둔 안배는, 그런 종류의 인위적인 조작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니까.

1층에서 아예 게임에 흥미가 없는 관객들을 다른 이벤트 존으로 돌려보내고, 2층에서 완전히 게임에 푹 빠진 인원들만 3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지금 3층에 모인 사람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마법 대결을 보고 흥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모션 인식 마법 대전’이라는 게임의 컨셉트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 실제로 플레이 하면서 2층의 졸업 시험을 마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느낀 사람들.

어림잡아 봐도 그 수는 오늘 행사에 참여한 인원의 1/4 가까이인 5천 명에 가까운 숫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상혁이 의도한대로 3층까지 기어 올라온, 이런 게임에 흥분할 수밖에 없는 인간 중의 한명이었고.

***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한 법이다.

리차드가 역대 게임 쇼케이스에서 3손가락 안에 꼽는 ‘GOS’의 공개 행사도, 로봇물을 좋아하지 않는 몇몇 기자들이 ‘극소수의 매니아나 흥분할 법한 공개 행사’라고 혹평했던 것처럼.

애당초 5천명이 보고 5천명이 모두 호평하는 쇼케이스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상혁은 ‘존재할 수 없는’ 쇼케이스를 간단한 방법으로 실현시켜버리고 말았다.

아마 지금 3층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오늘 행사에서 공개된 게임 중 최고의 기대작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게임을 뽑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은, 게임 기자로써 지금부터 5천명이 보고 5천명이 만족한 저 게임이 어째서 대단한지에 대한 기사를 써야하는 입장이었다.

‘GOS때도 개 고생했는데···’

그러나 어찌 써야할지 막막한 기사내용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리차드는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기사의 내용에 대한 부담감과는 대조적으로, 리차드의 마음속에는 이미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PTW의 게임 공개행사 기사는 내가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리차드가 슬슬 정신 줄을 놓고 ‘기사는 대충 쓰고 지금은 즐길까?’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즈음, 무대 위의 대결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을까?’

지수가 사전에 미리 약속한 주문을 시전해서 날리자, 봉춘이 약속한 주문을 날리며 응수했다.

이제 두 사람의 마나와 HP도 한계.

그것과 별개로 10분 동안 주문 시전을 위해 손과 발을 동원해가며 온몸으로 주문식을 만드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시전자 본인의 체력 문제도 있었으니까.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번들거리는 가짜 수염을 가볍게 털며, 봉춘이 주문을 멈추자 지수도 공격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화려한 대결의 중간에, 역으로 집중도가 올라가게 만드는 좋은 공백이었다.

그리고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하던 두 캐릭터의 팔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자주색과 무지개빛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무대에 있는 두 사람이 끼고 있는 장갑과 로브에 달린 장식도, 캐릭터의 몸을 감싸는 빛과 똑같은 빛으로 화려하게 감싸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화려한 마법의 폭발보다도 더 보는 이를 흥분하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친, x발! 진짜로 개 멋지네!”

‘어? 이 목소리는···’

리차드는 순간 옆에서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에는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 환상적이었기에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지금 서로가 쏘려는 마법이 ‘마지막 한방’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x발, x발, x발, x발, 존나 멋져. 존나 멋져. 존나 멋져. 존나 멋져. 존나 멋져.’

속으로 미칠 듯이 중얼거리며 리차드가 카메라의 파노라마 촬영 기능을 켰다.

그러자 단 한 장의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리차드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촤르르륵 하는 셔터소리를 연속으로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직후였다.

두 사람이 준비한 마법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

마치 파괴 신처럼 반투명하게 빛나는 거인의 형상이 지수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악마를 연상하게 하는 흉포한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악의보다 경외심을 자아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거인의 손에 들린 4쌍의 팔에, 시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동작을 요구하던 궁극마법 ‘아포칼립스’가 하나씩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막아낸다면, 멀린 씨가 10서클에 올랐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 지금 10서클인 저도 이 공격은 못 막으니까, 이걸 막아낸다면 멀린 씨가 저를 넘어선 11서클이라는 의미가 되겠죠! 이것이 마지막 대결에 어울리는 제 궁극의 공격이자, 마나 엔진이 지원하는 현존하는 가장 강한 공격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이것이 궁극의 파괴다’라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뒤로 힘차게 손을 뻗자 거인도 지수의 동작을 따라 4쌍의 팔을 뒤로 뻗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내지르는 지수의 손을 따라 일제히 손에 들린 궁극마법을 집어던졌다.

“멸망의 비!!!!(Rain Of Apocalypse)”

그러자 반대쪽에 서 있던 멀린도 자신의 궁극 주문을 시전 했다.

물론 봉춘도 지수의 대사에 멋진 대답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수없이 연습했지만, 지금의 마법은 완전히 자신의 동작에 맞춰진 보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도 인식율이 50%밖에 안 될 정도로 복잡한 구동 술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자신의 장갑에서 흘러나오는 성공 판정 사운드를 들으며, 봉춘은 이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궁극 주문이 시전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과는 모른다.

두 주문의 상성을 한 번도 부딪혀 본적이 없었으니까.

나머지는 전능한 마나엔진이 판단할 문제였다.

누구의 마법이 우위에 있는지.

그리고 최후에 이 무대에서 승자로 남는 사람이 누구인지.

멀린 캐릭터의 머리 뒤로 거대한 포탈이 열리며 6개의 머리를 가진 보라색 용이 상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몸의 반도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입을 벌려 6줄기의 브레스를 일제히 쏘아내었다.

세계를 왜곡(歪曲)하는 6개의 빛.

마나 엔진이 구현한 기본적인 세계에 대한 간섭권한을 다루는 신비 학파의 궁극 마법은 멀린이 다루던 9서클까지의 마법과는 다른 동작 이론으로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9서클까지의 신비 마법이 상대가 시전 하는 주문을 구성하는 ‘마나’에 간섭하는 개념이라면, 10서클의 주문은 그 주문이 구현되는 ‘세계의 코드’를 직접 조작한다.

마치 버그처럼 주변 공간의 그래픽을 깨트려 나가는 보라색 빛줄기가 멀린을 향해 날아가던 8개의 구슬과 충돌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가장 파훼하기 힘든 궁극 주문으로 이루어진 힘의 구슬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엄청난 빛이 폭사하며 서로를 밀어내던 두 주문이 일시에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갔다.

마치 방금 전까지 모든 것을 파괴하려던 일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는 파편의 비를 뿌리면서.

“졌네.”

멀린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당연하게도 8은 6보다 컸다.

멀린은 미처 소멸시키지 못한 2개의 구슬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미 다른 주문을 시전 할 힘도, 손 하나 까딱할 체력도 없었기에.

-콰아아아아아앙!!!!-

풍압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 객석을 덮치자,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뷰파인더가 아닌 자신의 두 눈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 두 사람의 모습을 각막에 새겨 넣었다.

아마 오늘의 이 풍경이,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승자! 10서클 슈프림 위자드. 스타 스트림!]

“우와아아아아아아!!!!!!!”

안내 멘트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오는 뜨거운 함성에, 리차드는 몸속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옆에서 무대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어?!?!?”

흥분한 관객이 무대에 난입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리차드가 손을 뻗어 남자를 말리려 했지만, 남자를 붙잡지는 못했다.

대신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가 리차드의 손에 붙잡혀 바닥으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리차드는, 그제야 자신의 옆에서 소리 지르던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모자를 쓰고 있어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무대로 달려 나가는 그의 얼굴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유명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빌?!!”

관객 사이에 섞여 무대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정체는, 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초 거대기업 ‘MS’의 CEO이자, 매 행사 때마다 흑역사를 만들기로 유명한 ‘쇼케이스 파괴자’이자 ‘흑역사 제조기’.

바로 빌 게이트였다.

***

“안녕하십니까! PTW의 팬 여러분!”

“여기서 왜 MS CEO가?!!?”

모두가 충격을 받은 가운데, 무대 위로 올라온 빌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흥분된 표정으로 관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궁금해 하실 겁니다! 왜 PTW의 CEO가 아니라 제가 올라왔는지!”

그렇게 말하는 빌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인해 잔뜩 떨리고 있었다.

당연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던 관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빌미 미소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PTW와 저 사이에 아주 작은 거래가 있었죠. 다들 아시다시피, 방금 보신 게임은 모션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게임입니다. 그 기술은 PTW에서 개발한 기술이고요. 저희 MS는, PTW와 힘을 합쳐 해당 장비의 양산과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에서 오늘 게임에 사용된 그 장비가 판매 개시를 기다리고 있죠! 물론, 오늘 이 행사장에도 참가 인원 숫자만큼의 충분한 기기와 게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빌의 말에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이 하는 말의 의미는, 이미 이 끝내주는 게임의 출시 준비가 완료되어 있으며, 지금이라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러자 오늘 여기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저녁에 집에 가서 게임을 이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흥분에 뜨거운 분위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빌은 그런 관중을 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쇼 케이스를 못하기로 유명하죠. X-BOX런칭 때도 그렇고, 윈도우 때도 항상 흑역사만 만들었고요. 그래서 PTW측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만약 제가 최고의 공개행사를, 지금까지의 흑역사를 한 번에 날릴만한 쇼케이스를 하게 해준다면, 저희 MS에서 판매할 주변기기의 가격을 크게 할인하겠다고요. 예. 사실 안 될 줄 알았습니다. 저도 제가 발표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내기에서 제가 이기면, 전 할인을 안 해도 되니 돈을 잃지 않을 것이고, 내기에서 진다면 돈을 잃겠지만 제 인생 최고의 기억을 가지게 되겠죠!”

빌이 미소 지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이겼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분위기 였기에.

‘적어도 이번 발표회로 스티븐은 꽤나 열 받아 하겠군.’

그것은 스티븐을 매우 만족스럽게 하는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제가 내기에서 진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한 빌이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돌리며 말했다.

“제 말이 맞나요?”

“Yeeeeeeeeeeeeeeaaaaaah!!!”

“최고였죠?”

“Fuck the Yeeeeeeeeeeeeeeaaaaaah!!!”

“그래서 소개합니다. 오늘부터 전 세계 17개국에서 동시 발매되는 차세대 모션 인식 장치! ‘코넥트’와 ‘핸드 트래커’! 그리고 그 두 장치를 이용한, 전무 후무한 세계 최고의 마법사 시뮬레이터!

Make your own magic을!!!”

순간 승자의 이름을 표시하고 있던 화면이 검게 반전되며 코넥트의 정식 발매판과 ‘마력 조작기’, 그리고 Make your own magic의 패키지 사진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그리고 미국 달러로 표시된 가격도.

코넥트가 150달러. 핸드 시뮬레이터가 150달러. 게임 패키지가 59달러.

합치면 거의 7세대 콘솔 가격에 육박하는 가격이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별 가격을 표시하고 있는 텍스트 밑에,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글자로 다음과 같은 숫자가 적혀있었으니까.

[all package : 250.$]

그것은 흑역사 제조기인 빌에게 인생 최고의 발표를 하게 할 기회를 주는 대가로, 상혁이 빌에게 엄청난 적자를 강요하며 뜯어낸, 최종 할인가였다.

그러나 빌은 이번 발매로 인해 자신이 감수해야할 엄청난 적자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5천명이 넘는 관중들이 미친 듯한 환호와 함께 보내는 박수가, 그가 감수해야할 막대한 적자보다 수백 배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빌의 그런 생각은, 다음날 리차드가 올린 기사를 보면서 확신으로 변했다.

그가 들고 있는 신문의 1면엔, 그가 그토록 원하던 제목이 대문짝 하게 박혀있었다.

“진짜,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어.”

그렇게 말하며 빌은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 신문의 1면엔, 행사장에서 엄청난 관객의 환호를 받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이 적혀 있었다.

[빌 게이트의 모션 인식 센서 ‘코넥트’ 발표. 전설로 불리던 스티븐 잽스의 와이팟 발표를 과거로 날려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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