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54화 (155/485)

154. 이세계 의사

“아빠, 아까 그 언니 괜찮을까?”

딸인 애니의 질문에 허먼이 미소 지었다.

“애니, 그건 그냥 쇼야. 다 짜고 하는 거란다.”

‘진짜같이 잘 하기는 했지만.’

허먼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보는 이가 긴장감을 느낄 정도로 멋진 이벤트였다.

단지 어째서 이벤트 도중에 여기사가 당하는 전개를 잡고, 관객들을 퇴장시키는 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을 뿐.

도대체 무슨 게임을 만들고 있기에 이런 식의 이벤트 시퀀스를 짜는 것일까.

“이쪽입니다!”

행사 요원들은 재촉하듯 인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으로 보이는 관객들을 묶어 앞에서부터 이어져있는 갈림길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치 포도송이가 뻗쳐있는 것처럼, 중앙 대로를 중심으로 갈래갈래 뻗어진 길로 인도받은 관객들이 길에 연결된 방으로 한 무리씩 안내에 따라 입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요원의 안내를 따라 이동한 허먼은 들어가자마자 딸이 자신의 손을 움켜잡으며 뒤로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아빠···. 저기···.”

“응? 뭐야 저건?!”

딸의 얼굴을 보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던 허먼의 얼굴은 정면을 보는 순간 놀람으로 굳어버렸다.

방 안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 안에서, 배에 구멍이 난 채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플로라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진짜는 아니네.’

아까 상황과 연결해서 잠시 당황한 것이지, 자세히 보니 화면속의 그녀는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그것도 실사 풍 그래픽이 아니라, GOS때 하드웨어 포텐셜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 PTW의 카툰렌더링 기술로 만들어진 모델링.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뛰어다니던 미녀가 화면 속에 쓰러져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타깝죠? 큰일이에요. 이대로면 그녀가 죽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그때, 이 방으로 허먼을 안내한 안내요원의 멘트를 들은 애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를 보며 말했다.

“아빠, 저 언니 아픈 거야?”

그러자 진행요원이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애니를 향해 허리를 숙여 말했다.

“오, 귀여운 꼬마아가씨. 아직 희망은 있어요.”

그리고는 허리를 펴서 품 안에서 패드를 꺼내 허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 아빠가 그녀를 치료 할 테니까.”

“예!?!뭐라고요?!”

당연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이었기에, 허먼은 스텝을 향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여전히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진행 요원은 첫 번째 세션의 게임 소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설정이라는 겁니다. 이번 PTW의 신작 게임의 체험은. 유저가 의사가 되어, 이세계의 환자를 치료하는 게임이죠.”

“하지만 저는 딱히 의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진행요원이 애니를 향해 미소 지었다.

“따님이 보고 있잖아요? 정 어려우시면 제가 대신 해드릴 수도 있는데요?”

도발하는 스텝의 말투에 허먼은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패드를 받아들었다.

“어려워요? 패드나 주시죠.”

게이머에게 있어, 세상에 제일 열 받는 도발이 ‘게임 못 한다’라는 말이라던가.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못난 꼴을 보이기 싫다고 남이 게임하는 걸 구경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눈앞의 게임을 보아하니 대충 수술 시뮬레이터 같은 느낌인 것 같았고.

‘대충 [환부를 따라 아날로그 스틱을 움직이세요]같은 거나 나오겠지.’

자신감이 생긴 허먼이 패드의 버튼을 누르자, 진지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허먼은 그 음악을 들으며, 앞에 준비된 시트에 앉아, 당당하게 외쳤다.

한번 해보고 싶은 대사이긴 했지만, 이런 행사가 아니라면 평생 할 일이 없을 ‘그 대사’를.

“자! 와라!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한다!”

***

[메스!]

[포셉!]

[컷!]

[S4 봉합 종료. 다음은 S6봉합에 들어간다.]

[2-0]

[석션]

···

‘미친, 리듬게임일 줄이야! 게다가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허먼의 눈앞에 있는 게임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수술을 실감나게 재현한 게임이었다.

어설프게 수술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딱 분위기를 살리는데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시스템.

그 덕에 단순한 플래시 게임류의 수술 시뮬레이터를 상상하고 패드를 잡은 허먼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하단에 뜨는 노트를 보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봉합 노트를 누르고 떼는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실이 끊어지며 환자의 체력이 크게 깎인다.

그로테스크함을 줄이기 위해 환부가 아닌 수술하는 의사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를 쓰고 있었지만, 수술복에 튀는 피 같은 연출로 인해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음악.

죽어가는 환자의 숨소리.

왠지 모르게 크게 들리는 심박음.

밀폐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주인공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기묘한 리얼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의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젠장!”

허먼의 입에서 탄식이 터짐과 동시에 의사 캐릭터의 옷에 새로운 핏자국이 생겨났다.

“아빠 화이팅!”

그리고 그 뒤에서 그의 딸인 애니가 아빠를 응원하는 모습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게임?

당연히 게임이다.

방금 전 콜로세움에서 있었단 화려한 액션도, 지금도 옆에 서 있는 진행요원의 능숙한 연기도.

자신이 여기서 게임오버 당한다고 여기사가 죽는 것도 아니고, 행사는 애들도 참여하는 행사였으니 모종의 조치가 있을게 뻔했다.

아마도 적당히 위험한 상태가 되면 조작 모드가 오토로 돌아간다던가 하는 류의 배려가 있을 것이다.

유저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게 체험 행사의 목적도 아닐 테고.

그래도 허먼은 클리어를 하지 못한다는 선택지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딱 1판만 할 수 있는, 1회성 참여 스테이지.

실패해도 아무 패널티 없는 부담 없는 자리라는 사실은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겨우 게임이니까 진지하게 하면 안 되는 건가?’

딸이 보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현재의 상황이 허먼의 가슴속에 있는 게이머의 본능을 긁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거대한 세트를 만들면서, 분위기를 연출하고, 굳이 ‘상황극’을 해가면서, PTW가 자신에게 ‘부탁한 것’.

이 게임을 클리어 해 달라.

아까 말한 대로, 자신이 처음 해보는 생소한 장르의 이 게임을 한 번에 클리어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을 것이고, 실패한다고 인생이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클리어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은 언제나처럼 아쉬워하면서 즐겁게 다음 섹션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종족이 바로 게이머라는 종족이었다.

눈앞의 몬스터는 튜토리얼 보스니 잡지 말고 지나가라고 하면, 3시간이 걸리든 4시간이 걸리든 ‘혹시 죽이면 어떻게 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죽어라 몬스터에게 도전하는 족속들.

그리고 허먼은, 그런 게이머 중에서도 손꼽히는 골수 게이머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린다!’

미칠 듯한 집중력으로 화면에 나오는 노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며, 허먼은 게임이 노트를 내보내는 호흡을 파악하려 애 썼다.

[2-0] 같은 봉합을 의미하는 실의 번호 이후엔 주로 [컷]이 온다는 사실을.

그리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간헐적으로 [석션]노트가 나온다던가.

리듬게임처럼 무작위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 상의 노트들은 마치 실제로 수술을 집도할 때의 순서대로 등장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허먼은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최대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잠시 후 그런 그의 노력대로 점점 미스가 줄어들며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출혈이 잡히고 있습니다!]

게임 상에서 수술을 보조하는 NPC의 음성과 함께, 카메라가 환자의 얼굴을 비추자, 조금씩 혈색을 찾아가는 여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 덕에 겨우 게임일지는 몰라도, 허먼은 지금 이 순간 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컷!]

주인공의 마지막 외침.

끝내 허먼의 귀에 모든 수술 과정을 성공적으로 종료했다는 의사 캐릭터의 나레이션이 들려왔다.

[간 손상부위 S1, S4, S6 문합 종료. 추가 출혈 없음.

수술···..성공.]

“수고하셨습니다!!”

“아빠 대단해!!!”

화면속의 NPC들과, 옆에 서 있던 진행요원이 함께 수고했다며 박수를 치는 장면은 허먼으로 하여금 달성감이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어? 이거 은근 기분 째지는데?’

처음 보는 게임을,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PTW의 게임을 한번 만에 클리어 해냈다는 사실보다, 딸 앞에서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허먼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패드를 내려놓고 진행 요원이 건네주는 작은 메달을 하나 받았다.

“이건 1섹션을 클리어하신 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저도! 저도 주세요!”

애니가 귀엽게 폴짝 폴짝 뛰는 모습을 보며, 진행요원은 허먼의 아내 몫까지 3개의 메달을 주었다.

미안해하는 허먼에게 ‘원래 일행 중 1분만 클리어 하셔도 드리는 겁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화면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박수 소리와 함께 감동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허먼은 달성감을 느끼며 박수소리를 뒤로 한 채 기분 좋게 가족을 데리고 다시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자마자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파에 합류하는 리처드를 발견했다.

“리차드 씨, 표정을 보아하니, 못 깨셨나보네요?”

“젠장, 제가 유일하게 못하는 게임이 리듬게임인데, 하필 신작이 그거라니 나오다니···. 그 메달이 클리어 보상인가요?”

“그렇습니다. 근데 못 깨면 어떻게 되던가요? 환자가 죽나요? 전 깨면서도 그게 궁금하던데?”

“그건 아니고 중간에 갑자기 각성 이벤트 같은 게 나오면서 자동으로 진행이 되더라고요.”

“아, 역시···.”

“젠장, 게임이 발매되면 가장 먼저 사서 다시 깨봐야겠습니다. 진짜로 의사가 된 기분이었어요. 물론 세트가 워낙 그럴싸한 이유도 있겠지만, 음악도 그렇고 효과음도 그렇고, 마치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으니까.”

“아마 성공하셨으면 더 끝내주셨을 겁니다. 수술 끝나고 화면 속 환자가 다 미소를 지으면서 주인공 손을 잡는데,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예!? 그런 연출이 있었습니까? 오토로 진행될 때는 안 나오던데?

젠장. 다시 못하나 이거? 언제 발매지?”“뭐 금방 알게 되겠죠. 아, 저기 출구가 보이네요.”

“어?! 아까 그 언니다!”

애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본 허먼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거기엔 놀랍게도 배에 피 묻은 붕대를 감은 여기사 역의 배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모여 있는 일행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위대한 이계의 방문자여, 제 목숨을 구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제가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유치하다면 유치하다고 볼 수 있고, 잘 만들었다면 잘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이벤트.

그러나 허먼은 그 안에 담긴 PTW의 ‘진심’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신작에 대해 알리면서도, 참가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리얼한 기분으로 시연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짜인 이벤트였기에.

아마 다른 게임쇼처럼 단순하게 탁 트인 부스에서 게임기를 늘어놓고 체험하는 형태의 행사였다면, 방금 전처럼 진짜 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체험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습관처럼 게임을 분석하고, 이 메뉴 저 메뉴 눌러가며 어떻게든 정보를 더 얻으려 하려 했을 테니까.

그러나 고도의 계산 아래 치밀하게 준비된 이벤트는 자신의 그런 사고 로직을 잠시나마 마비시켰다.

분석보다 클리어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잘 짜인 연극에 참여하며, 여기 모인 팬들은 PTW의 신작이 어떤 게임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의사인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에서 환자를 구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게임의 수술 파트가 유저로 하여금 잠깐이마나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끝내주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

“미안하지만 이곳은 아직 미숙한 테라 시민의 정신 보호를 위해 어린이의 입장을 허가 하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GW와 관련된 게임이벤트 임을 알 수 있도록, 육중한 파워아머 코스튬을 하고 있는 스텝이 허먼의 앞을 막자, 허먼의 아내가 미소 지으며 애니를 안아들었다.

“즐기고 와요.”

“괜찮겠어?”

“저쪽 옆에 아까 축제 장소로 가는 길이 있는걸요. 애니도 거기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하고 있고.”

“응! 나 아까 거기 가고 싶어!”

“그래. 애니는 나중에 더 크면 아빠랑 꼭 같이 오자. 약속!”

“약속!”

그러자 귀여운 딸을 보낸 허먼을 보던 우주 해병이 경례 자세를 취하며 허먼에게 말했다.

“협조에 감사한다. 15세 이상의 모든 테라 시민은 이후 내부를 관리하는 해병의 통제를 따라 이동하도록.”

“스텝들이 전반적으로 훈련이 잘 되어있네요.”

옆에 있던 리차드가 감탄하며 허먼의 옆에 따라붙자, 허먼도 고개를 끄덕이며 리차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연습 엄청 한 거 같아요. 아니면 처음부터 골수 오타쿠들만 데려다 썼던가.”

“지난 섹션도 재미있었지만, 이번 섹션도 기대되는 군요. 무려 PTW에서 만드는 워함마 게임이라니! 게다가 아까 이벤트를 생각해보면 부스 퀄리티도 엄청날 것 같고요! 대체 어떤 게임일까!?”

아마 중세 판타지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조금 전 판타지 섹션에서 정신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워함마40K의 팬이라면 아마 이번 섹션에서 정신 줄을 놓아버릴 것이고.

걷는 내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는 천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화려한 우주 전쟁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우주 함대전이 한창인 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아마 워함마 세계관에서 전쟁 중인 행성의 주민이 보는 광경이 이런 광경이겠지.’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드랍 포드와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와 폭음.

그리고 비명소리와 알 수 없는 괴물들의 괴성이 테마파크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도착한 관객들은, 제 2 행사장의 중앙에 도착하는 순간, 이 분위기가 대체 어떤 게임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위기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전시 상황실 같은 느낌으로, 천장에 거대한 유리돔이 설치된 느낌의 커다란 공터 한가운데, 각 전장의 화면을 비추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설치된 상황판이 이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에.

“FPS다!! PTW 두 번째 신작은 FPS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허먼이나 리차드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대놓고 ‘드랍 포드’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강철의 캡슐 입구가, ‘푸쉬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을 뿜으며 어린 시절 SF에 미쳐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장할 것 같은 느낌으로 서서히 열리고 있었으니까.

‘오 하나님 맙소사. 제발 제가 저기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해줘요.’

속으로 간절하게 외치는 허먼의 마음속 목소리에 대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서가던 우주 해병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특수 효과가 섞인 듯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여 있는 신병들에게 전달한다! 지금 즉시 전장 참여를 위해 드랍 포드에 탑승하도록!”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허먼과 리차드는, 어째서 이 행사의 이름이 ‘PTWCON’이나 ‘PTWFES’가 아닌, ‘NE(Next Experience)’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모인 2만 명의 관객들에게, PTW가 개발 신작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려 한다는 사실도.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그들에겐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파워 아머를 입은 우주 해병이 드랍 포드에 타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세상에 그것보다 ‘Fuck the hell yeaaaaah’한 상황이 어디 있단 말인가.

“yeeeeeeeeeeeeaaaah!!!”

“Fuuuuck the hell yeaaaah!!!”

“For the emperor!!!!”

환호성을 지르며 드랍포드 입구로 달려가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을 통제하던 우주 해병이 씨익하고 미소 지었다.

그가 웃은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로 어차피 두터운 핼맷 때문에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을 테고,

둘째로 자신도 행사 준비 첫날 저들과 똑같이 드랍포드를 보고 ‘Fuuuuck the hell yeaaaah!!!’를 외치며 달려갔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저들이 워함마의 팬이라면,  모두 저 멋진 드랍포드 안에서 끝내주는 체험을 하고 올 것이다.

그리고 워함마의 팬이 아니더라도, 마음껏 뽕차는 체험을 하고 오게 될 것이고.

‘그리고 시연을 마치자마자 뽕맞은 표정으로 좀비처럼 기어 나오겠지.’

그리고 아마도, 게임이 나올때까지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당장 파워아머를 벗고 저들과 함께 뛰어 들어가 게임을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스텝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은 발매일이 안되었기에 그럴 수 없을 것이고.

축제가 즐겁고 게임이 마음에 들수록 기다림의 고통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X같은 기다림은 나눠야 제 맛이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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