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1분 30초의 예술
‘헬창’이란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체육관 쥐’라는 의미의 Gym rat으로 불리기도 하는 표현으로, 헬스장에 붙어살며 미친 듯이 운동에 집착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이지만, 그들은 운동에 한 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왜 몸의 근육이 지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운동에 빠지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그런 현상을 격렬한 운동으로 인해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에 의한 효과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마법사 대전’을 개발 중인 프로젝트 참여 인원의 대부분도 그것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지수가 클라우드 바커, 에릭 풀먼과 함께 설계하고 민준이 완성시킨 ‘마나 엔진’은, 여러 속성의 마나를 마치 손으로 잡고 움직여 통제하고 조합하는 느낌을 유저에게 전달해 줄 수 있었지만, 반대로 매우 중독성이 강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내 놓을지, 설계자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시뮬레이터를 만지는 것이니까.
그것은 마치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지점토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았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캐릭터의 서클을 구축하며 강해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장난감.
‘주문을 직접 만든다.’라는, 인간이 상상하는 마법의 본질에 한없이 가까운 이 괴상한 물건은, 반대로 인간을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이게 VR이었음 X될 뻔 했네.”
옆에서 구경하다 직접 시뮬레이터를 만져본 민준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였으니까.
민준은 보통 코드상이나 기술적으로 흥미 있게 구현된 게임이 아니면 게임 자체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민준에겐 이 평가는 엄청난 극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게임이 재미있는 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독성이 걱정된다고 게임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어불성설일뿐더러, 다른 게임과 다르게 중독성을 위해서 진입 장벽을 희생한 게임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적당히 매뉴얼과 튜토리얼 따라서 이리저리 마나를 조작하고 만지다보면, 서클이 오르고 쓸 수 있는 주문이 늘어난다.
수동으로 주문을 시전하려면 엄청나게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상혁이 추가한 서클 시스템으로 인해 한번 구축한 서클 관련 주문은 그런 섬세한 과정 없이 간단한 동작으로 호출하고 시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서클을 성장시킨다는 ‘육성’의 개념 때문에 중독성이 좀 더 올라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현재의 게임 시스템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마치 ‘지뢰 크래프트’를 연상하는 재미를 주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투박한 흙집을 짓고 나무를 캐 간단한 집을 만드는 재미가 있지만, 나중엔 레드 스톤을 이용해 비밀 문을 만들고 물속에 집을 짓고 열차 선로로 롤러코스터를 만드는 재미가 있는 게임.
그것은 배우긴 쉬우면서 금방 빠져들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좋은 로직이다.
그리고 한국에 온 크리스가 지금 테스트 플레이를 하고 있는 ‘마법사 대전’의 알파 버전 역시, ‘지뢰 크래프트’의 그것과 비슷한, 아니 더 뛰어난 진입장벽과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설명은 전보다 간단해 진 것 같은데.’
이전과 다른 점은, 허연 수염의 노인(멀린)이 나와서 마법의 역사에 대한 장황한 수업을 하는 파트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대신 굉장히 귀여운 외모의, 왠지 PTW 마스터 직원인 지수를 떠올리게 하는 초록 머리의 마녀가 키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모자를 쓰고 마법에 대해 설명했다.
시작은 가볍게.
초반엔 단순히 특정 속성의 마나의 에너지를 증감시키는 훈련을 시킨다.
물을 얼리거나, 녹이거나, 끓이는 식으로.
그 후엔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각 속성의 조합을 배우게 된다.
전기가 물을 만나 감전 효과를 일으킨다던가, 물이 불을 만나 증발하고, 극한까지 올린 불 속성 마나가 금속을 녹이는 등의 조합을.
물론 식상하고 재미없는 과정일 수 있지만, 그 모든 조합을 실제로 ‘만져 볼 수’있다는 느낌은 본인이 마법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나를 다루는 법’에 대해 익히고 나면, 다음은 ‘서클’에 대해 배우게 된다.
[서클은 원소를 다루는 복잡한 과정을, 반복 숙련을 통해 마법사의 심장에 새기는 과정이에요. 이것은 수련을 통해 더욱 효율적이 되기도, 아니면 다른 주문의 영향을 받아 약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시 지수 씨 목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작업자 태반이 영어 사용자라 성우 더빙도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는 영락없이 지수의 그것이었다.
크리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지수의 귀여운 설명을 들으며, 서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첫 서클을 완성하면서, 방금 전까지 그토록 섬세하게 다루어야 완성되던 얼음 기둥이 간단한 손동작으로 완성되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오! 오오! 된다!”
원리의 이해 - 실습 - 수련 - 습득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학습 과정은 중간 중간 시선을 사로잡는 지수의 모습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오히려 이전에 보았던 대전보다 학습 과정이 더 즐겁게 느껴지는 느낌일 정도로, 개편된 게임 시스템은 ‘마법’ 그 자체의 재미를 사용자가 느끼는데 최적화 된 느낌으로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신없이 게임에 빠져든 크리스는 순식간에 기초 원소 5종의 기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회로를 완성하고, 가장 기초 마법인 방출계 마법의 다음 단계인 ‘변환계’ 마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 벽 구석에 있는 종으로 손을 뻗었다.
“일단 잠깐 쉬시죠.”
그때, 약 3 시간 정도의 기초 튜토리얼을 말 한마디 없이 집중해서 플레이한 크리스가, 상혁의 부름에 흠칫 놀라며 화면에서 눈을 뗐다.
“벌써요?”
“벌써가 아니라 3시간이 넘었어요.”
“예?! 3시간이요? 한 20분쯤 된 줄 알았는데?!”
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크리스는 아쉬운 듯 화면과 상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글러브를 벗고는 상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젠장. 내기는 제가 졌습니다. 100달러 대신 1000달러 드릴 테니, 테스트 빌드 공유 좀···.”
“안됩니다.”
“젠장! 그럴 줄 알았어요. 미친. 이거 발매까지 1년 넘게 남았다고 했죠? 진짜 그때까지 돌아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에 드셨나 봐요?”
상혁의 질문에 크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마음에 들어요? 농담하십니까? 이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급이라고요! 아니, 그런 표현으론 부족하겠네요. 어쩌면 불도저란 표현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르겠어요.”
“불도저요?”
뜬금없는 표현에 상혁이 의아해하자 크리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게임이 나오는 순간, 저희 X-BOX가 나머지 콘솔을 다 뭉개버릴 테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아뇨, 이렇게 좋은 게임을 저희 플랫폼으로 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죠. 어쩌면 코넥트는 발매하자마자 역사상 가장 빨리, 많이 팔린 가전기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저희 게임 아니어도 그 타이틀은 차지하실 수 있을 텐데.’
회귀 전 역사에서 키넥트가 ‘가장 빨리, 많이 팔린 가전기기’로 기네스에 오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작 그 이후의 실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기기 성능에 비해, 할 만한 게임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이다.
적어도 이번엔, ‘마법사 대전’이라는 희대의 게임이 뒤를 받쳐 줄테니.
상혁은 변화된 역사로 인해 이후에 나올 코넥트 게임들에 대해 상상하며, 즐거운 미소로 크리스에게 말했다.
“코넥트 양산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 되고 있나요?”
“차질이 있어도 없게 만들겠습니다. 이전 버전이 괜찮은 게임이었다면, 지금 버전은 숫제 괴물이네요. 어떤 수를 써서든 예정된 일정에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놓을 테니 그 부분은 MS에 맡겨주세요.”
“든든하군요. 그럼 잠시 저와 함께 회의 좀 하시죠.”
“무슨 회의입니까? 저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MS에 코넥트 양산 상황을 다시 체크하고 싶은데요. 아, 물론 ‘마법사 대전’을 조금 더 플레이 하게 해주시면 모를까···.”
“그건 포기하시고요. 지금 할 회의도 코넥트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것이니까 한국에 오신김에 확정을 짓고 싶네요.”
이미 대부분의 업무 관련 사항이 협의된 상태에서, 크리스는 상혁이 무슨 의제로 회의를 하자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상혁이 이야기한 의제는, 크리스가 놓친 부분이 아니었다.
“코넥트도 공개할 때 행사를 하겠죠. 저희는 그 행사를 저희 자체 행사로 발표하고 싶습니다.”
“코넥트를요?”
“예. 거기서 코넥트의 정식 발매와 함께, ‘마법사 대전’외 2종의 게임에 대한 발표가 함께 이루어졌음 합니다.”
“아, 그럼 MS에서 코넥트 발표를 하는 대신, PTW에서 대신 하게 해달라는 부탁이군요? 혹시 이유가 있나요?”
“뭐 이유야 뻔하죠.”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PTW는 ‘이벤트의 PTW’라고도 불리지 않습니까. MS에서 저희보다 멋진 공개행사를 할 자신이 있으면 거기서 하셔도 좋습니다.”
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윈 독스 95’ 발표 때 회사 대표인 빌 게이트가 췄던 댄스라던가, X-BOX 공개 때 나왔던 블루스크린까지.
MS는 절대 공개 이벤트를 잘 하는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네요. 공개 이벤트 하면 PTW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러니까 그걸 지금부터 회의해보자는 이야기죠.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GOS 공개 이벤트보다 임펙트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미소는, 나쁜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장난기가 가득 넘치고 있었다.
***
올림픽. 그리고 월드컵.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이 두 행사 외에, 규모는 밀리지 않으면서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스포츠 행사가 있었다.
슈퍼볼(Super Bowl).
단일 국가에서만 인기 있는 스포츠 이벤트로는 최대 규모의 행사.
매년 무려 1억 명이 넘는 시청자를 모으는 미국 최대의 스포츠 경기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청자를 많이 모으는 이벤트답게, 슈퍼볼은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광고 수단으로도 유명했다.
단 30초 광고를 위해서 60억이 넘는 돈을 써야할 정도로 광고비가 비싼 행사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강력함을 알기에, 수많은 메이저 업체들은 슈퍼볼을 통해 자신을 알리려 힘쓰곤 했었다.
상혁은 그 슈퍼볼을 PTW의 자체 컨벤션을 홍보하는 무대로 삼기로 결정했고,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하며 중간 광고를 구매했다.
그러나 막대한 광고비 지출과는 반대로, 상혁은 정작 방송되는 광고 내용에 대해서는 극도의 단순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잊지 마세요. 이미 전 세계 게이머의 마음속에는 저희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슈퍼볼 광고의 목적은, 게임을 홍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안에 존재하는 기대감에, 아주 작은 불꽃을 심는 것뿐이죠. 그거면 됩니다.”
무려 187억을 지불하고 구매한 1분 30초의 광고 시간.
2007년 말 GOTY수상 이후로 별다른 정보 없이 철저하게 음지로 숨었던 PTW의 광고가 뜬금없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도, 그것이 PTW의 광고라는 것은 광고가 시작된 순간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검은 화면에서 흐르는 장엄한 음악.
그것은 인기리에 방영된 이후에도 블루레이, DVD판매 등으로 끊임없이 수명을 연장하고 있었던 애니메이션 ‘GOS’의 최고 인기 에피소드이자 DP-045의 죽음을 다루는 25화.
‘선택과 희생’의 메인 테마곡이었으니까.
“음악은 강력하지. 십 수 년 전에 보았던 장면이라도 바로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부실에서 광고를 보던 상혁이 중얼거리자, 옆에서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음악 듣자마자 비속에서 싸우던 DP-045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점점 밝아지는 화면 속에서, 광고는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의 화면이 서서히 물러나면서, 화면은 방안에서 리모컨을 잡고 있는 시청자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 시청자는, 화면을 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나도 2년 전쯤에 저랬었지.’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카메라가 DP-045의 죽음을 보고 있던 시청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슬픔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바뀌는 그의 표정을.
순간 웅장한 전투음악과 함께 다시 티비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자, 티비 화면은 GOS의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화면으로 어느새 전환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리모컨을 잡고 있던 시청자는 어느새 패드를 잡고 있는 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그는 화면 속의 로봇을 향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며 미친 듯이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화면속의 적이 쓰러지는 모습과 함께, 패드를 든 채로 양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던 게이머가, 만세를 하고 있는 자세 그대로 복장이 바뀌며 어느새 GOS의 로봇 코스튬을 하고 코믹콘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마치 원테이크로 촬영된 것 같은 연출로 이루어진 광고는 한 게이머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혼나고 자리에 돌아가 ‘포수 회귀’를 하며 메이저 리그 타자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주말에 패드를 들고 있던 모습에서 자연스레 갑옷을 입고 던전 탐험을 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중세시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남자의 키스를 손 키스를 받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 부분은 자연스레 웃음을 자아냈는데, 애당초 그 게이머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털이 북슬북슬한 손으로 여장을 한 채 키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레이션 하나 없이, 다양한 게임들을 하는 유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광고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 강력했다.
-우린 게임을 할 때 다른 존재가 된다.-
PTW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게임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영상을 보면서, 수많은 광고 시청자들은 숨을 죽인 채 홀린 듯이 광고를 지켜보았다.
그 광고 안에 등장한 게이머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성연이 광고를 위해 작곡한 짧지만 매우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던 광고는 짧은 메시지를 던지며 피날레를 맞이했다.
[Have you enjoyed enough?]
[충분히 즐거우셨습니까?]
다른 내용은 없다.
그렇게 질문 하나 만을 던진 채, 광고는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주며 종료 되었다.
PTW의 로고와 MS의 로고, 그리고 GW의 로고 3개가 박혀있는 검은 화면을 마지막으로.
날짜도 없고, 다음 게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광고.
단지 팬들의 마음에, ‘아직 PTW는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만을 남기는 광고.
그리고 그것이, 상혁이 이번 슈퍼볼 광고에서 의도한 모든 것이었다.
***
“넌 그냥 광고회사를 가지 그랬냐?”
미친 듯이 폭주하는 홈페이지 접속량을 보며, 민준이 말했다.
“뭐, 때로는 다 보여주지 않는 게 더 궁금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현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PTW에서 진행하는 자체 컨벤션에 대한 이벤트 페이지로 리다이렉트 되게 되어 있었기에, 누구나 쉽게 행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사의 이름은, ‘Next Experience.’
줄여서 NE라고 부르는 행사로 결정되었다.
미리 말을 맞춰두었기에, X-BOX의 메인 홈페이지도 같은 페이지로 리다이렉트 되게 되어 있었고 GW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영세한 서버를 사용하는 GW홈페이지는 슈퍼볼 광고 첫날 터짐으로써 영국산 감자 서버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광고로 인해서 압도적인 주목도를 끌고 올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신작에 대한 정보를 단 하나도 흘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개발자로 하여금 2년 넘게 잠수를 탔음에도 아직도 게이머들이 자신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증거였기에, 상혁은 마음속으로 벅찬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우리 팬들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니까?”
“저도 동감이에요. 2년이나 지났는데도, 겨우 옛날 게임 이야기만 한번 꺼냈을 뿐인데 이렇게 불타오르다니···.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요. 진심으로.”
지수가 동의하자 상혁이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 공개행사의 핵심은, 뭐라 해도 지수가 개발한 ‘마법사 대전’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곧, 저 수많은 팬들에게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게임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것도 E3같은 B2B행사가 아니라, 진짜로 팬들을 초대해서 벌이는 PTW 자체 콘벤션에서.
PTW가 여는 첫 자체 행사에서 메인 타이틀 자리를 맡아야한다는 것은 아직 어린 지수로써는 큰 부담이었지만, 지수는 이번 행사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었다.
상혁이 이전에 ‘GOS’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처럼, 자신도 상혁처럼 위대한 게임을 만든 개발자로 기억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컨벤션은, 그런 그녀의 각오를 보여줄 수 있는 첫 공개행사가 될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부담감을 잘 알기에, 상혁은 일부러 도발스러운 말투로 지수에게 물었다.
“쫄았냐? 참가자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그러자 지수가 상혁의 도발에 즉각 반응하며 뒤로 쭉 물러나더니 허리춤에 양 손을 대고 코를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쫄아요? 누가요? ‘마법사 대전’의 메인 개발자인 제가? 아니면 ‘마법의 어머니’인 제가?
웃기지 마시죠! 쫄아야하는 건 오빠라고요!”
“오, 자신 만만한데?”
“당연하죠! GOS보다 제 게임이 훨씬 재미있으니까! 게이머들도 다 알게 될 거에요! 이제 이상혁의 시대는 가고, 나 서지수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음하하하하하하하!!!!”
일부러 과장스럽게 자신감을 표하는 그녀를 보며, 상혁은 씨익 웃더니 주먹을 추켜올리며 외쳤다.
“오! 분위기 좋은데?! 좋아! 이상혁을 퇴물로 만들러 가즈아!”
“가즈아!”
“가즈아!”
“가즈아!”
그리고 민준은, 옆에서 그런 두사람을 보면서 고개를 젓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메인 기획자 두 놈이 다 사이코라니 이 회사의 미래는 대체···.”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이 회사는 우리가 점령했으니까!
음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이 게이머에게 평가받을 일만이 남았을 뿐.
그리고 그것은, 2009년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펼쳐질 NE콘벤션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PTW최초의 자체 행사이자, 이후 단일회사 행사 사상 최대 방문객 수를 매년 갱신하는 게임업계 행사계의 전설이 될 그 행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