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두번 가기 싫은 곳
상혁이 런던에서 복귀 하고 두 달여가 지나자, 현주도 미국에서 경영인 수업을 마치고 PTW에 합류했다.
그녀를 마중하러 나간 상혁은 공항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맵시있게 서 있는 현주를 보고는 웃으며 가방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차에 그녀를 태워 회사로 이동했다.
“오랜만이네요.”
“응. 3달 만인가?”
“조금 넘었죠.”
“회사는 어때?”
“어휴 말도 마세요.”
상혁이 미소 지었다.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엉망이에요.”
굳이 일적인 측면을 떠나서, 그녀의 빈자리는 꽤나 크게 느껴졌다.
부실 곳곳에 있는 화분에 아침마다 물을 주던 것도, 때가 되면 상혁이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원두를 주문해서 채워 넣거나 소모된 사무실의 비품들을 알게 모르게 채워놓는 것도 그녀였으니까.
상혁도 천하대에 와서 처음으로 화이트보드를 쓰려는데 마커 잉크가 말라서 안 나오는 상황을 보며 현주가 얼마나 세심하게 자신들을 배려했는지 깨달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네요.”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예.”
운전대를 잡은 상혁이 시원하게 인정하자 놀리려고 말을 꺼냈던 현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도, 너희들이 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해외 명문대에서 재벌 2세들과 경영 수업을 함께 듣는 과정은, 그녀에겐 그렇게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미국 생활은 어땠어요? CEO 수업은 무슨 내용일지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상혁이 묻자 현주가 쓴 웃음을 지었다.
강의 사이사이마다 자신에게 와서 찝쩍대는 남학생들은 둘째 치더라도, 강의 커리큘럼 자체가 PTW와는 너무 맞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도움 된 것도 있는데, 아닌 것도 있는 것 같아. 너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는 좀 특수하니까.”
상혁은 그런 현주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나 그곳에서 들었던 수업내용에 물들어서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을 멋대로 수정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물론 현주라면 그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긴 했지만, 세상에 확실한 건 없으니까.
다행히도 미국에서 받은 3개월간의 교육은 현주에게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로 적용한 것 같아서, 상혁은 웃으며 현주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정식으로 CEO자리를 받으실 테니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물어도 될까요?”
“글쎄, 그건 이후의 즐거움으로 미루는 건 어떨까?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러네요. 곧 알게 되겠죠. 그때까지 즐겁게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래.”
그녀의 말대로, 현주는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민준이 현주의 결정을 받아야한다고 판단해서 밀어놓은 각종 결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큰 결정은 이전 예정인 본사와 관련 된 업무 건이었는데, 현주는 일주일 정도 회사 업무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더니 과감하게 이전 계획을 취소시켜버렸다.
그리고는 천하대 총장을 찾아가 미래관 부지 옆에 더 큰 규모의 본사 건물을 하나 더 지어서 임대 받는 것으로 본사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 업무의 상당 부분이 천하대 교수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고, 학교에 부지도 많이 남아 있으니 아예 학교에서 건물을 빌려서 임대료를 내고 여기 주저앉는 게 좋을 것 같아.”
“흠. 그게 옳다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 돈이 만만찮게 들 텐데요? 장기적으로 보면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건물을 사서 저희 자산으로 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 보면 그게 맞겠지. 하지만 건물보단 사람을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해. 여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도 있고, 매년 졸업하는 인재들도 있어. 당장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등교권에 있는 지역에 집을 구해 놨을 테니 그대로 취업해도 출퇴근 문제는 없을 테니까. 우리가 천하대에 돈을 지불하는 개념이 아니라, 천하대를 우리가 이용하는 개념으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신선한 해석이네요. CEO는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생각되면 그렇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고마워.”
임대료 문제를 떠나서, 이미 천하대 안에서 PTW의 존재가 학교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였기에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총장은 PTW가 빠진 이후 막대하게 받고 있던 미래관 임대 수익을 어떻게 메워야할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거의 학생 전체 1년 등록금을 가볍게 넘어서는 금액을 각종 업무 협력이나 연구비, 임대료 등의 명분으로 지불하고 있었던 PTW가 천하대에 잔류한다는 소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 소식과 동시에, 현주가 학과 부서별로 최신형 연구 기자재를 기증하고, 또한 대학 부지를 빌리는 대가로 장학금 개설도 약속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학교 안에서 PTW의 잔류를 반대하는 학생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보다, 미래를 보자.’
그녀가 미국에 있던 3달 동안 전문 경영인 수업에서 배워 온 것.
그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미래를 보고 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이었다.
***
다음으로 현주가 해결한 문제는, 상혁과 민준이 미뤄놓고 있던 두 사람의 군대 문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경영인 수업 내용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현주는 어디서 도움을 얻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무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장년의 남성이 현주를 반갑게 맞이했다.
마치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어릴 때부터 보아온 시선이지만 이제 30대인 현주가 받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반응이라서, 현주는 살짝 미소 지으며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간 평안하셨어요? 삼촌.”
“오. 평안하다마다. 네가 갑자기 잘 다니던 선생 일을 때려치운다고 했을 땐 궤양이 도져서 약도 먹고 했는데, 지금 보니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한숨이 놓이는구나.”
“그동안 근황 보고는 자주 했었잖아요. 전화도 자주 드렸고.”
“안보면 불안한 게 삼촌 마음이지. 넌 나한테 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녀의 외삼촌. 박흥덕은 따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주가 어릴 때부터 현주를 딸처럼 귀여워하더니 지금은 집안에서도 현주의 가장 든든한 뒷배를 자청하고 있었다.
“허나 아깝구나. 네가 사업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우리 회사로 올 줄 알았는데.”
“사업에 관심이 생겨서 맡은 자리는 아니에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게냐? 또 집안에서 뭐라 난리 피운 건 아니지?”
“그건 아니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래? 네가 다니는 데는 게임인가 뭔가 만드는 회사 아니냐? 내가 도울 일이 있을까?”
“삼촌만 도우실 수 있는 일이라서 찾아온 거예요.”
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외삼촌 박흥덕. 그는 대한민국 국군에 통신 관련 군사 장비를 납품하는, ‘방위 산업체’의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네 제자들이 지금 일을 하면서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달라고?”
“맞아요.”
“흠···. 어렵겠는데.”
기본적으로 병역특례는 회사 임원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그런 제도라면 엄청나게 악용의 소지가 높았을 테니까.
오히려 국가에 방산장비를 납품하는 업체가, 양질의 인재를 병역 의무를 대체하는 조건으로 싸게 쓸 수 있는 지원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본질을 잘 아는 흥덕은 그녀가 말하는 대로 편법으로 군대를 면제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잠깐 일을 내려놓고 우리 회사에 위장 취업하는 건 모를까, 그쪽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게임회사가.”
“저희 쪽에서 육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산 장비를 납품할 수 있다고 하면요?”
“게임회사에서 육군에 도움이 되는 물건이 있어? 뭐 전쟁 게임 같은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현주가 가방에서 에프킬라 캔 크기의 장비를 꺼냈다.
그것은 군용 장비처럼, 외부가 금속으로 된 위장색의 단단한 원통 형태 물체에 카메라 구멍이 여러 개 달린 물건이었다.
“이게 뭐지?”
“코넥트라고 해요. 아, 그건 개발명칭이고 이건 코넥트란 기계의 다른 버전.”
현주가 손바닥을 펴 금속 물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식 명칭은 고성능 무인 휴전선 감시 장비. ‘R2-D3’예요.”
***
“으아아아!! 선생님이 해내 주실 줄 알았어요!!!”
상혁이 자신을 껴안고 미친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주가 뭔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상혁아. 물론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난 선생님으로써 대한민국 남성의 신성한 의무를 면제받는 것에 너무 기뻐하는 제자를 보면서 조금 마음이 씁쓸해지는 걸?”
“흠···. 그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저희가 납품한 장비로 인해서 수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요. 민준이랑 제가 2년 동안 가서 구르는 것 보다 훨씬 더.”
“흠···. 그래. 그걸로 좋아.”
“다시 한 번 감사드릴게요. 어휴 잘못하면 군대 두 번가는 줄···.”
“두 번?”
“아, 아니에요. 말실수. 하하하..”
막연하게 ‘군대를 빠지고 싶다’라는 계산으로 코넥트를 개발하긴 했지만, 방산 납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혁은 개발된 코넥트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가서 바로 군 면제 조건을 따온 것이 현주였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녀가 사용한 무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거의 무적으로 통하는 ‘인맥’이란 무기였다.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길 잘한 것 같기도.’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군 면제 관련 사안은 스무스하게 국방부 협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별도의 예외 규정까지 신설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현주의 인맥인 흥덕의 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코넥트의 압도적인 성능 탓이 컸다.
어떻게든 군대를 면제받아야한다는 상혁의 일념으로, 이미 군납 버전 코넥트는 ‘싸고 편한 장비’가 아닌 ‘미래에서 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PTW에서 개발한 ‘군납용’ 코넥트는, 회귀 전의 단순한 휴전선 감시 장비에서, 완전히 개선된 무인 감시 장비로 환골탈태했다.
초소에 배치만 해두면 알아서 접근하는 물체들을 파악.
대상이 인간일 경우 경고음을 발산하고 상황실에 알린다던가, 경계 근무를 하는 병사에게 진동으로 경고를 하는 기능도 있었고, 차량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차량 번호를 인식하여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하는 기능도 있었다.
해당 기능을 테스트 해본 군 장성이 ‘21세기 감시 혁명’이라 평가한 코넥트의 성능 덕에, 국군에서는 해당 장비를 전방부터 후방까지 전 부대의 초소에 설치하기로 계약까지 맺었다.
물론 그 양산 계약은 현주의 외삼촌인 흥덕이 맡게 되었고, PTW는 기기의 개발 및 업데이트 관리라는, 관리할 필요가 거의 없는 편한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그 대가로 상혁과 민준의 군 면제 건까지 처리하면서.
“어찌됐건 면제 건은 내 덕이라기보다는 코넥트 성능 덕이니까, 개발팀에 감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에 보너스 지급을 추진하려하는데, 어때?”
“좋죠. 알아서 해 주세요.”
“그럼 어차피 연말 보너스도 지급해야하니까 그것도 같이 처리할게.”
“좋네요.”
상혁이 웃으면서 답하자 현주가 물었다.
“개발 상황은 어때?”
아직 회사 자금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X-BOX로 런칭한 ‘GOS’의 판매 수익이 예상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군납용 코넥트’의 설계 라이센스 비도 넉넉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다 합친 것보다 막대한 수익이, 얼마 전 유럽에서 발매한 ‘미들필더가 요정을 숨김’에서 나오고 있었다.
축구를 애인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유럽 축구팬들이, ‘K-NOVEL’이라는 이상한 애칭을 붙여가며 미친 듯이 결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안 그래도 높았던 ‘워크 패스트’의 점유율도 크게 올랐다.
‘영구 무료’에, 온갖 편의 기능이 붙어있는 업무솔루션이 공짜였으니.
그러나 그렇게 늘어나는 수익과 반대로, ‘미드필더가 요정을 숨김’의 리뷰어 평가는 비교적 낮은 편이었는데, 현주는 그것을 신경쓰고 있었다.
“난 엄청나게 평가가 좋을 줄 알았거든. 미국에서 ‘포수 회귀’는 엄청 고평가였잖아. 이번엔 왜 그런 걸까?”
“그거야 ‘미드 요정’은 포수 회귀에서 시스템만 바꿨지 기본은 같은 게임이니까요. 말하자면 저희가 축구팬을 위해 내놓은 팬 서비스 게임 같은 거죠. 리뷰어들도 그래서 ‘PTW답지 않다’라고 하는 거고요.”
“흠···. 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뭐 길래 그러는 걸까?”
“혁신이겠죠. 아마도.”
상혁이 말했다.
“저흰 게임을 낼 때마다 매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했으니까요. 다른 회사처럼 자가 복제를 하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죠. 그런데서 단지 스포츠 장르만 바꾼 같은 게임을 출시하니까 실망한 것일 거고요.”
“상혁이 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유저 스코어는 높잖아요. 게임은 평론가가 평가하는 게 아니에요. 유저가 평가하는 거지.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떠들던 평론가들도, 저희 ‘진정한’ 신작이 발매되면 다 닥치게 될 거고요.”
“오, 멋진 각오! 우리 회사 CCO멋져! 그래서 신작 개발을 총괄하는 우리 CCO님 생각에, 저희 신작은 개발 중인 3개의 게임 중에 뭐가 제일 먼저 발매될 것 같습니까?”
현주의 질문에 상혁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MS에서 코넥트 발매 일자가 와야 확정할 수 있겠지만, 그쪽도 지금 경량화와 가격인하 문제로 고생하고 있으니 ‘마법사 대전’은 아마 2009년 말쯤에나 가능할거에요. 코넥트랑 같이 런칭 해야 할 테니까.”
“지금이 2007년 말이니까 2년 정도 잡으면 되겠구나? 워함마 게임은?”
“인력 수급 현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그것도 2010년은 넘어야···.”
“의사 게임은?”
“그것도 2010년···.”
“엑?! 그럼 앞으로 2년은 신작 발매 없어?”
“아니, 했잖아요. 얼마 전에.”
“‘미드 요정’은 ‘진정한’ 신작이 아니라며?”
“뭐 그렇다고 개발 일정을 당길 수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2년은, 저희 PTW의 침묵기가 되겠죠.”
차라리 민준이 하자고 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콘테스트가 아니라 상시 진행 형태로 아이디어를 받았으면 지금처럼 몰아서 발매하는 형태는 되지 않았을 것이기에, 상혁은 그 부분을 조금 아쉬워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딱히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개발 중인 게임이 모두 AAA스케일의 게임이라 개발 기간이 길다는 것.
그래도 상혁에게 있어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돈을 버는 것.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
안정적으로 회사가 생존할 바탕을 마련하는 것.
세상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들보다, 상혁에겐 누군가의 추억이 될 수 있는 ‘갓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 단계를 향해 전 직원들이 합심해 착착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마법사 대전’의 개발자들은 말려야 개발을 그만둘 정도로 ‘마나 엔진’이 가진 가능성에 중독되어 있었고, ‘워함마’게임을 만드는 개발팀은 덕업일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중이다.
그리고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역시, 역사와 문화, 종족과 식생, 복장과 건축, 무기와 문자 등 이제는 거의 반쯤 ‘지구4’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데이터를 착착 쌓아가는 중이었다.
개발팀에 있는 모두가 자신이 속한 프로젝트의 게임이 갓겜이 될거라고 확신하며 개발하는 회사.
그것이 현재의 PTW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걸리던 문제인 자신과 민준의 군 면제 문제까지 현주가 가볍게 처리해버린 상황에서, 상혁에겐 더 이상 걸릴 만한 문제가 없었다.
지금부터 더욱 스퍼트를 올려, 게임이 갓겜이 될 수 있도록 매진하는 것 뿐.
“선생님 덕분에 유일하게 걸리던 문제가 사라졌으니, 이제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겠어요.”
“흠. 지금 분위기도 좋은데 뭔가 더 해볼 생각이야?”
“해야죠. 이제 본격적인 개발의 2페이즈가 시작될 때니까요.”
지금은 ‘마법사 대전’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트의 선행 기획이 마무리 되는 단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스케일을 확장하는 작업을 해야 할 때였다.
그리고 그 작업엔, 무엇보다 숙련된 스킬을 가진 직원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PTW쪽 인력을 대량으로 확충했으니 이제 스케일 업 쪽도 본격적인 충원이 필요하겠죠.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자들로요.”
“흠···. 그런 인력은 구하기 힘들지 않을까? 바로 구하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그건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웃었다.
“세상엔 능력 있는 개발자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밖으로 내쫒는 병신 같은 게임회사가 넘쳐나니까.”
게임 시장이 커지고, 기업의 탐욕이 선을 넘어서면서 멀쩡한 메이저 스튜디오가 폐쇄되는 일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상혁은 그렇게 프로젝트에서 튕겨 나온 개발자들을 ‘날로’ 주워 먹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