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49화 (150/485)

149. 마나 엔진

상혁이 ‘워함마’IP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런던으로 출발하고 이틀 정도가 지났다.

계약이 마무리 된 탑주들이 법무팀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취업비자 발급 과정을 밟는 사이, 지수는 상혁이 잡아준 로드맵을 보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말로 진짜 같은 마법 시스템을 구축해줬으면 좋겠다.”

상혁은 로드맵을 넘겨주며 그렇게 말했고, 지수가 보기에 상혁이 넘겨준 개편 로드맵은 그 조건을 넘치도록 충족하고 있었다.

단지, 지수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

‘카렌 씨 프로젝트보단 더 잘 만들어야돼는데···.’

미야모토 카렌.

‘그’ 미야모토 히게루의 제자라며 갑툭튀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개발자의 등장에 지수는 묘한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천하대에 조기 입학하여 현재 PTW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취득한 전문 기획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PTW와 천하대의 계약에 의한 특혜로 입학이 인정된 것이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지수가 보기에, 카렌의 능력은 진짜배기였으니까.

그림도, 프로그래밍도, 기획도 잘하는 동갑내기 개발자.

그런 카렌에게 ‘마스터’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선, 지수는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무기를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상혁은 ‘진짜 같은’마법 시스템을 구축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부탁을 받은 지수는 ‘진짜 마법’을 구현할 생각이었다.

***

“앞으로도 완공까지 꽤 남았는데,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지 않아?”

-글쎄. 난 부정적으로 보는데. 애당초 그 정도 규모의 강입자 가속기로는 초 대칭 입자나 여분 차원의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워. 출력을 더 높인다고 해도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아무도 알 수 없지. 애당초 수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세상이 그렇게 구성되어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세계적인 끈 이론(string Theory)전문가가 내놓는 견해로는 충격인데? 이거 잡지사에 보고해도 되나?”

-물론이지. 대신 내 이름은 빼고. 난 연구비가 끊기는 걸 원하지는 않으니까.

익명의 끈 이론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 정도로 하라고.-

“그럼 재미가 없잖아.”

-난 자네가 재미있으라고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초끈이론에 부정적인 사람이 왜 아직도 그 연구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된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지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물론, 지금이라도 정말로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진동하는 끈들로 만들어진 세계가 있다면 난 주저 없이 그 세계로 가는 차원의 문을 통과하겠지. 하지만 그 차원은 아마 4556차원 너머에 있다는 게 슬플 따름이야.-

팻말에 [천하대 화학과 교수. 에릭 풀먼] 이라고 쓰여 있는 교수실 안에서, 두꺼운 수염이 턱을 감싸고 있는 남성이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채로 큐브를 만지작거리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바커가 통화하고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천하대 교수이자 이론 물리학 교수인 클라우드 바커였다.

바커는 지금 공사가 한창인 제네바의 강입자 가속기(LHC)를 보러 스위스에 가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이 두 사람이 그 비싼 국제 전화로 잡담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 천하대는, 연구직에 있는 교수의 지원 면에서는 거의 MIT나 하버드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 수준의 지원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갑자기 튀어나와 신축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게임회사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PTW에서 교수들을 초대해서 뭔가 꾸미고 있는 모양이던데, 들은 거 있나?-

바커가 묻자 풀먼이 큐브를 만지작거리며 질문에 답했다.

“어. 세계사 교수랑 자연사 교수, 지질학과 교수랑 언어학 교수도 불려갔다던데. 지금 대학 절반이 그걸로 시끄러운 상태야.”

-젠장. 전에 컴공과 교수가 모션 인식장치 개발에 협조한 대가로 2천만 원짜리 컴퓨터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던데. 우린 뭐 없나?-

“꿈 깨시지. 거긴 게임회사야. 우리 같은 기초 과학 계열 연구자들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

-젠장, 지질학 교수도 불려갔다며? 지질학은 진짜 과학도 아니라고!(Geology isn't a real science)-

“미안하지만 손님이 온것 같으니 잠깐 기다려. 통화는 끊지 말고.”

바커의 화내는 목소리를 듣던 풀먼이 말하자 인터폰 너머의 목소리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귀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학과 에릭 풀먼 교수님. 혹시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이윽고 문이 열리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검은 머리 소녀가 교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에 여고생이 대학 교수실에 찾아올 일은 없을 테니 아마도 성인이겠지만, 외모를 기준으로 보면 매우 어려보이는 소녀였다.

‘젠장 동양 여성은 얼굴로 나이 가늠하기가 힘들어.’

속으로 투덜대며 풀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저는 PTW에서 일하고 있는 서 지수라고 합니다.”

“P, PTW요?! 거기서 여긴 왜?”

“교수님께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잠시 시간되시나요?”

“그 앞에 앉으세요.”

지수가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자 풀먼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차나 커피같은 취미가 없어서 딱히 대접할게 없군요. 물이라도 한잔 드시죠.”

종이컵에 따른 물을 건네며 풀먼이 말하자 지수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게임회사에서 저를 왜 보자고 하시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저희 프로젝트에 도움을 요청할까 해서 왔습니다.”

“자문입니까?”

“비슷하죠.”

“어떤 종류의 자문을 원하시는 건가요?”

풀먼의 질문에 지수가 자신의 생각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조금 두서없고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애당초 워낙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풀먼은 그 두서없는 이야기 속에서 지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가상의 물질이, 흠···.그 ‘마나’라는 물건이 존재한다고 할 때, 각 성향의 마나가 반응할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옳을지 그에 대한 공식을 잡아달라는 건가요? 예를 들어 불에 물을 부으면 불이 꺼지지만, 기름을 부으면 불이 커지는 것처럼?”

풀먼의 정리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가능할까요?”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잠시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풀먼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옆의 찬장을 열고는 작은 금속판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렸다.

“이건 알루미늄으로 만든 판입니다. 아시다시피 금속이고, 꽤 단단한 물건이죠. 지수 양. 이 판에 구멍을 내 보시겠어요?”

그는 제자들에게 화학에 가르칠 때 쓰는 도구를 꺼내어 지수에게 넘겼다.

지수는 그 중 매우 날카로워 보이는 끌을 집어 들더니 금속판을 열심히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낑낑대다가 끌을 내려놓고는 송곳을 잡아 쾅쾅 내려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녀린 그녀의 근력으로는 구멍을 뚫을 수 없었고, 지수는 숨을 고르며 들고 있는 송곳을 풀먼에게 건네주었다.

“안 뚫리네요.”

“그렇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풀먼이 조그만 병을 꺼내 스포이트로 내용물을 조금 빨아올려 지수가 긁은 알루미늄 표면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굳어있던 알루미늄 판에서 기괴한 모양의 금속 기둥이 빠르게 솟아올랐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와! 뭐에요?! 어떻게 한 거예요?”

지수가 손뼉을 치며 놀라워하자 풀먼이 웃으며 말했다.

“방금 떨어뜨린 용액은 수은입니다. 수은은 철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속을 용해시킬 수 있죠. 알루미늄과 만나면 급격하게 반응하고요. 일단 몸에 안 좋으니 이건 치울게요.”

풀먼은 단단한 금속에서 스펀지처럼 푸석푸석해진 알루미늄 판을 밀폐용기에 넣었다.

그리고는 지수를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원자는 전자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서로 결합하거나 밀어내면서 고유의 성질을 띠게 됩니다. 그건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돌아가는 작은 세계죠. 방금 전 액체인 수은이 단단한 금속을 순식간에 구멍 낸 것처럼.”

“오! 마치 마법 같네요.”

“그렇죠? 옛날부터 화학(chemistry)은 연금술(alchemy)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니까요. 지수 양이 부탁한 것은, 방금 저 두 원소가 결합하여 반응한 것처럼, 가상의 속성을 가진 원소 둘이 반응했을 때의 결과를 짜 달라고 하는 거고요”

“예. 맞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예? 안 될까요?”

토끼처럼 놀란 눈을 하는 지수의 얼굴을 보며 풀먼은 하마터면 심장을 움켜쥘 뻔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지수가 요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혹시 방금 실험 결과를 보기 전에 수은을 알루미늄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지 예상 할 수 있었겠어요?”

“아뇨. 용암을 떨어트리면 구멍이 나겠구나 하는 건 예상 가능했겠지만 수은이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지수 씨가 부탁한 일은 어떤 성질인지 전혀 모르는 가상의 원소를 실험 없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설계하란 이야기랑 같아요. 물론 가상으로 ‘이럴 것이다’라는 건 가정할 수 있겠지만, 그걸 시뮬레이트 하려면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필요할겁니다.”

-잠깐만, 풀먼. 그런 가정은 좀 이르지 않을까?-

그 순간 인터폰에서 뜬금없이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지수가 흠칫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대화 중이잖아.”

-알아. 나도. 듣고 있었으니까 안다고. 근데 지금 말한 건 충분히 가능한 범위에 있지 않은가 해서 하는 말이야.-

“실험 없이 물체의 성질을 가정하라고? 경우의 수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그 모든 예를 다 설정해놓을 수는 없다고.”

-그게 수학적으로 완벽한 공식으로 돌아가는 세계라면 가능하겠지. 예를 들면 정말로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진 세계 말이야. 굳이 하드론 콜라이더같은 괴물을 만들지 않아도, 세계 자체에 초 대칭 입자의 존재가 이미 증명된 별개의 세계 같은 거.-

“그런 세계는 4556차원에나 존재할거라며?”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 ‘찾아 달라’라고 하지 않았잖아? 목소리가 귀여운 아가씨. 저는 천하대 이론물리학 교수 클라우드 바커입니다. 제가 이 대화에 잠시 끼어들어도 될까요?-

갑자기 등장한 아군의 등장에 지수가 ‘괜찮아요.’라고 답하자, 인터폰 건너편에서 바커가 폭풍처럼 설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수는 중간 중간 풀먼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런 바커의 설명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바커의 이야기는 ‘가능하다’라는 내용을 엄청나게 길게 풀어서 설명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세상이 존재하진 않으니 정말 의미 없는 연구, 아니 이론 물리학 개념에서는 연구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 같은 개념으로 봐야할지 모르지만, 모든 입자나 원소의 특성을 지정하는 게 가능하다면 지수양이 말한 세계의 ‘가상적 구현’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풀먼 교수는 살짝 투덜거렸다.

-젠장, 정말로 하나의 이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현실에서 절대 증명하지 못할 대통일 이론을 가상 세계에서 구현하게 될 줄이야. 해봅시다. 목소리가 귀여운 아가씨. 제가 돕겠어요. 이론 물리학에 빠삭하며 하루 종일 화이트보드 앞에 죽치고 앉아서 수학공식만 적는 제 친구들도 동원해드리죠. 아마 다들 흥분할 테니까. 그리고 아마 풀먼도 동의할 거고요.-

“그런가요? 풀먼 교수님?”

지수의 질문에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던 풀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하겠네요. 하지만 방금 말했듯, 각 원소가 가진 고유의 특성을 시뮬레이트 할 수 있는 엄청난 연산 성능이 필요할겁니다. 제가 알기론 지금 어느 대학교에도 그런 슈퍼컴퓨터는 존재하지 않아요.”

“아, 그런 문제라면 괜찮아요.”

지수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상혁이 구축해놓고 놀리고 있는 엄청난 시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흰 이미 가지고 있거든요.”

***

지수의 이야기를 들은 상혁이 지수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지수 네 말은, 완전히 ‘마나’라는 가상의 존재를 가지고 돌아가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아예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가상의 물리 이론을 구축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걸 돌리기 위해서 민준이 렌더링 센터를 이용해서 시뮬레이트 하던 게 방금 그 괴상한 실험이고?”

“맞아요.”

“그걸 한 달 만에 만들었다고?”

“기초 만요. 쉽게 설명하면,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의지는 물질의 반응에 어떠한 개입도 할 수 없지만, 저희가 만든 마나엔진(Mana engine)은 특정 모션을 통해서 각 속성 마나의 반응성이나 물질의 붕괴 속도를 조정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시전자의 의지가 현실에 개입할 수 있게요. 물론 아직 돌아가는 속성은 3 개밖에 없지만···.”

지수가 몸을 돌려 화면 앞에 서자, 화면 밖에 있던 캐릭터가 지수의 움직임을 따라 화면 중앙으로 다시 걸어 들어왔다.

지수는 캐릭터의 팔을 움직여 구석에 있는 병을 집어들고는 안의 내용물을 쏟았다.

그리고 내용물이 바닥에 닿기 전에 손을 복잡하게 교차하자, 쏟아지던 액체가 낙하를 멈추고 공중에 고정되었다.

“이게 물이에요. 상온에서 액체고, 저온에서 고체가 되고, 고온에서 증발하죠.”

지수는 오른팔을 뻗어 공중에 있는 물 구슬에 손바닥을 올린 뒤, 왼손으로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리고 왼손을 천천히 내리자, 지수의 손동작을 따라 공중의 물 구슬이 얼기 시작했다.

“이건 수속성 마나의 집합체인 물 구슬에서 반응성을 낮추는 동작이에요. 반대로 위로 올리면···.”

지수가 내리던 손을 올리자, 단단했던 얼음이 순식간에 녹으며 끓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물건인거죠.”

“그럼 저 끓고 있는 물방울에 있는 입자들은 지금 클라우드로 렌더링 센터에서 시뮬레이트 되는 중이겠네?”

상혁의 말에 민준이 답했다.

“맞아.”

“그리고 실제 출시되는 게임에는 여기서 미리 실험한 결과를 넣어놔서 연산과정을 건너뛰게 하려는 거고?”

“잘 아네.”

“이거 이대로 구현하려면 기존에 모아놨던 주문 모션 데이터 다 버려야하는 건 알지?”

“알아.”

“그래도 꼭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상혁이 질문하자, 이번엔 민준 대신 지수가 답했다.

애당초 이렇게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민준을 끌어들여 테스트 버전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오빠가 주셨던 로드맵대로, 철저하게 ‘마법사스러운’ 게임을 만들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계속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게임이 너무 멋질 것 같으니까. 이게 진짜였으면 좋겠다. ‘진짜로’ 사람들이 마법에 대해 연구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마법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지수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저희가 미리 정해둔 움직임을 단순하게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 움직임에 따라서 실제로 마나가 움직이고 눈앞의 세상이 변하는 걸 손끝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요.

비록 아직 동작하는 속성도 3개 밖에 안 되고 그나마도 주문하나 만드는데 엄청나게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화려한 가짜를 다루는 것보단 솔직한 진짜를 다루는 게 더 즐겁지 않을까요?”

지수의 말을 들으며, 상혁은 지수가 개발자로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기술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위한 길을 뚫을 수 있는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상혁에게 매우 기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이머에게 가장 즐거운 건, 자신이 만든 갓겜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남이 만들어준 갓겜을 플레이하는 것이니까.

“좋아. 그게 지수 네 개발자로써의 판단이라면. 그렇게 해. 나도 최대한 이 게임이 직관성을 가지고 낮은 허들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울 테니까. 어쩌면 시간만 날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들어간 돈에 비해 터무니없이 매니악한 게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뭐, 그건 괜찮아. 아니, 오히려 잘 했다.”

상혁이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자 지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이게 더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혼날까봐 조마조마 했어요.”

“상혁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내가.”

민준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상혁이 지수에게 말했다.

“아냐. 잘했어.”

그리고는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안에 있는, 마법사의 공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같이 만들라고 했더니 진짜를 만들어버렸네.”

뒷말은 입으로 내뱉지 않았다.

단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래서 게임은 뭔가에 미친 인간들이랑 만들어야지 재미있는 걸지도.’

아마도 이쪽 프로젝트는, 상혁의 예상보다 훨씬 느리게 개발될 것이다.

기존에 작업했던 데이터를 전부 재작업 해야 하는 결정이었으니.

그래도 상혁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직 ‘GOS’의 X-BOX 버전 수익도 받아야하고, PS판도 한참 잘 팔리는 중인데다, 조금 있으면 유럽에서 ‘미드필더가 요정을 숨김’도 발매될 예정이니까.

물론 그렇게 벌린 자금의 태반이 죄다 신규 프로젝트에 빨려나갈 것이고, 새로 뽑는 인력에 들어가는 돈도 있으니 신작이 망하면 회사가 받는 타격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애당초 사내 유보금 같은걸 쌓아놓는 회사가 아니니까.

무려 예상 매출이 1조가 넘는 히트작을 내고도 여전히 도박성 개발을 해야 하는 회사 상황을 생각하며, 상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미친 개발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게 맞다.

PTW는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니까.

“좋아. 그럼 나머지는 맡긴다. 난 잠깐 혁찬이 만나러 가야겠어.”

“어? 작업 상황 검토 안 해도 되요?”

“지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그때 물어보러 오던가.”

“네···. 근데 혁찬 오빠는 왜요?”

“텍스트 축구게임 발매 준비 상황 봐야지.”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개발자들이 마음껏 게임 만들게 해주려면, 연매출 1조 가지고는 택도 없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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