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인류에게 아직 이른
상혁의 동의를 받자마자, 맷은 GW에서 PTW와의 협력 작업을 위한 새로운 설정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현재 ‘호루스키의 반란’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앨런 블레이와, 40K의 스토리 총 책임자인 필 칼리가 참여한 회의였다.
“이리의 시간에 대한 권한을, PTW에 넘기자고?”
가장 먼저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것은, 현재 세계관의 1만 년 전 스토리를 담당하고 있는 앨런이었다.
그가 말한 ‘이리의 시간’이란, 워함마 세계관에서 소위 ‘종결 떡밥’이라 불리는 것 중 하나였다.
세계관 최강자인 ‘황제’의 유전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특수한 강자 ‘프라임 마크’.
그 중에서도 ‘우주 늑대’라 불리는 세력을 이끌고 있는 프라임 마크 ‘리암 루스’가, 어느 날 홀연히 ‘이리의 시간에 돌아오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사건.
[최후의 시기에는 내가 함께하리라. 마지막 전투를 위하여. 늑대의 시간을 위하여.]
결국 상혁이 회귀했던 2023년 시점까지 그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워함마’라는 세계관 자체가, 그런 종결떡밥들로 가득 찬 세계관이었으니까.
인류가 잃어버린 기술 문명의 정수 ‘STC 완전판’의 회수라던가, 언젠가 역병의 신인 너굴이 궁극의 역병을 완성할 것이다 라던가.
아니면 황금옥좌에 안치된 황제가 육신을 되 찾는다던가.
설정 상으로는 존재하지만 GW 입장에서 딱히 진행시킬 생각도 없고 진행시켜서도 안 되는 그런 떡밥들.
맷 와드는 PTW에게, 그런 종결 떡밥 중의 하나를 쓸 수 있는 권한을 넘기자고 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 떡밥은 저희 회사 망할 때까지 쓰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정말로 ‘이리의 시간’이 와서 리암 루스가 돌아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워함마 프렌차이즈의 종말일테니. 그럴 바엔 그냥 PTW에서 쓰게 해 줍시다.”
“정사 스토리에서 그 정도로 중요한 설정을 그렇게 쉽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쪽에서 멋대로 진행시킨 스토리 때문에 저희 전체 세계관이 망가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하죠?”
필 칼리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맷이 자신 있게 한부의 서류를 꺼내 보였다.
그가 제안하고, 상혁이 완성시킨 제안서를.
거기엔 완전히 본 설정을 건드리지 않고 PTW에서 ‘정사 스토리 같아 보이는’ 외전을 다룰 수 있는 설정에 대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기존에 있던 워프 차원과 웹웨이 외에, 보이드(Void)라는 차원을 추가합니다. 이 공간은 어떤 정보나 인식, 오염도 들어갈 순 있지만 나올 순 없는 공간이죠. 태초부터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이 암암리에 보이드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안에서 별도의 세계를 구축하고 싸우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보이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요.”
별의 실종.
그리고 그 실종된 별이 가는 제 3의 차원.
기존의 워함마40K가 다루는 거대한 세계관과 동일하면서도 훨씬 규모가 작은 우주를 새로 만들어 PTW에게 그 권한을 준다.
맷의 아이디어는 그런 발상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스터 맷의 주장은 리암 루스가 들어간 공간이 그 보이드 차원이며, 언젠가 그 보이드 차원에서 리암이 돌아오는 시기가 바로 ‘늑대의 시간’이다. 라고 설정하자는 건가요?”
“맞습니다.”
“말하자면 작은 워함마의 세계를 따로 만들어서 제공하겠단 이야기네요?”
“그렇죠. 그 안엔 오래전 기술 암흑기에 사라진 포지월드(행성 전체가 공장으로 된 행성)도 있고, 기술 암흑기 시절 전의 장비도 있을 겁니다. 카오스도, 우주 해병도, 제국 병사들도, 옼스도, 엘타도, 다크 엘타들도 전부 포함된 작은 워함마 세계관인거죠.”
그렇게 말하며, 맷은 제안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그 설정을 허용하는 댓가로, 상혁이 GW측에 제공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계약 성사 시 IP 라이센스로 5천만 달러. 게임 출시 후 서비스 종료까지 총 매출의 5%를 추가로 지불.-
단지 ‘멋대로 하세요.’라는 조건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엔 엄청나게 후한 조건이었기에, CEO인 톰 커빗은 엄청난 관심을 느꼈다.
“그 조건은, GW의 공식 허가가 없이는 그 보이드 차원의 설정이 밖으로는 흘러나오지 않는 조건인가?”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에 하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맞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게임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가치가 더 크다고 봅니다.”
“설명해 보세요.”
CEO의 말에, 맷은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상혁이 그리고 있는 ‘워함마 온라인’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단순히 외전 스토리를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이상적인 ‘변화하는 세계’를 품고 있었다.
잠시 후.
상혁은 근처의 카페에서 맷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계자긴 했지만, 자신은 외부인 이었으니까, 회의가 끝날 때까지 맷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
물론 맷이 무조건 통과시키겠다며 자신을 믿으라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고 회의에 참석하긴 했지만, 상혁은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완벽하게 좋은 제안임에도 통과를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상혁이 아는 GW의 라이센스 정책은 엄청나게 폐쇄적이었기에.
‘최악의 경우는 GW와 결별하고 오리지널 IP로 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딱히 PTW입장에서는 ‘워함마’IP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같은 시스템의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단지 이 게임이 워함마의 IP로 나왔을 때 미칠 듯이 좋아할 팬들을 위해서 막대한 라이센스 비용을 감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혁이 우려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저기 회사 입구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맷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I did it! We did it!(내가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물론 상혁은 맷이 말하는 ‘해냈다’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PTW가, 라이센스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GW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별도의 워해머 세계관에 대한 권리를 받았다는 의미라는 것을.
***
그 이후로 며칠 간 구체적인 설정에 대해 GW측과 협의를 마친 상혁은, 조만간 한국에 한번 와달라는 부탁을 맷에게 남긴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좋은 성과를 얻어낸 만큼,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PTW를 창업한 이후로, 이렇게 오랜 기간 회사를 비운적은 처음이었지만, 상혁은 별다른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믿는 친구가 CEO를 맡고 있었고, 자신에게 로드맵을 받은 지수와 성찬이 알아서 프로젝트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을 것이기에.
물론 아직 경력이 부족한 성찬을 생각하면 해당 프로젝트는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성찬의 부족한 부분은 민준이나 카렌이 알아서 잘 해결해 줄 것이다.
“게다가 딱히 본 개발도 아니고, 선행 기획과정이니까 별 일은 없겠지.”
무려 한 달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상혁은 제공된 안대를 끼고 미소를 지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1시간의 장거리 여행 후에, 서울에 있는 천하대에 도착한 상혁은 기분 좋게 부실에 들어갔다.
자신이 떠나기 전인, 한달 전의 풍경처럼 웃으며 게임을 만들고 있을 팀원들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런 상혁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혁의 시야에 펼쳐진 모습은, 마치 야전병원을 연상하게 하는 팀원들의 모습이었다.
‘왜 죄다 츄리닝이지?’
반쯤 빠진 머리색으로 추정할 때 아마도 전에 보았던 탑주들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이리저리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상혁도 몇 번 연구비 지원건으로 만난 적 있었던 교수들과 조교들이, 그런 탑주들을 막대기로 쿡쿡 찌르며 일어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녹탑주님. 일어나세요. 이제 녹탑주님 차례에요.”
“흐어어. ···싫다. 이 악마놈들. 난 녹탑주가 아니라 마리 샤를로트란 말이다···. 흐흑···.”
“마리 씨든 녹탑주 씨든 이제 차례니까 랩으로 가세요.”
“시···. 싫어어······.”
몸을 돌려 기어서 도망가려던 마리는 입구에 서 있는 상혁을 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처음 만날 때, 마치 인형처럼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차를 들이키던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단지 떡진 머리로 잔뜩 헤진 추리닝을 입은 채 바닥을 기어서 탈출하려는 가련한 건어물 소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상혁을 보자마자 표정을 바꾸더니 마치 아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붙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프랑스어로 마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너 이 자식!! 이 빌어먹을 악마 같은 놈! 사기꾼! 염라대왕 같은 새끼!”
‘흠.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욕하고 있다는 건 알겠군.’
상혁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는 자신이 할 줄 아는 유일한 외국어 2개중 하나인 영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요?”
그때 뒤에 있던 두 사람이 달려와 상혁을 흔들고 있는 마리를 떼어내었다.
그 두 사람은 상혁이 보았던 다른 탑주들이었다.
마리와 마찬가지로 상태가 심각하긴 했지만.
“녹탑주 라네즈 루즈의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런던에서 지금 도착하신건가요?”
“예. 에···. 그러니까···. 시 메이좐 씨랑 카밀라 피셔 씨. 맞죠? 무슨 일이에요?”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입니다. 요즘 일이 좀 힘들어서 그런가 봐요.”
메이좐이 설명하고 있었지만 마리는 여전히 두 사람의 팔 안에서 난동을 부리며 프랑스어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놔! 놓으라고! 이거 안 놔!? 이런 오컬트에 미친 야만인들 같으니! 날 프랑스로 돌려보내달라고!”
“마리 씨. 영어가 아니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놓으라, 고···.”
카밀라가 이야기하는데 마리가 지쳤는지 축 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방금 전 발악이 쓰러지기 직전의 회광반조(回光返照)였던 것처럼.
두 사람이 마리를 질질 끌고 쇼파에 눕히더니 상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 말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장.”
“대장이라. 제 새 별명인가요?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언제 설명해 주실 건가요? 왜 저희 회사에 저렇게 스트레스 받은 직원이 존재하죠? 그리고 민준이랑 지수는 어디 있어요?”
민준과 지수의 이름이 나올 때 두사람의 어깨가 흠칫 떨리는 것을 상혁은 놓치지 않았다.
“다시 묻겠습니다. 민준이랑 지수는 지금 어디에 있죠?”
“여, 연구실에···.”
“감사합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몸을 돌려 부실을 나가는 상혁을, 카멜라가 붙잡으려 했지만 상혁의 발걸음이 너무 빨랐다.
-쾅-
결국 그녀는 닫히는 문을 향해 빈 손을 뻗은 상태로 그대로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어깨를, 방금 그녀를 도와 마리를 옮겼던 메이좐이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뭐, 다들 동의한 거니까. 결과는 받아들이자고요. 대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진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만든 거니.”
“괜찮을까?”
“괜찮을 거예요.”
메이좐이 부실 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어도 제가 들은 대장의 성격이라면, 우리가 손댄 부분을 부정하진 않을 테니까.”
***
딱히 상혁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빠르게 상황파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움직이고 있었을 뿐.
규모가 있는 게임 개발을 하다보면 모든 작업을 일일이 중간에 확인할 수 없는 법이기에, 어느 정도의 작업은 해당 작업자의 능력에 맡기는 판단도 필요하니까.
PTW에서의 ‘마스터’직함은, 그런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맡긴 업무는 믿고 진행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능력을 입증하는 타이틀.
그리고 상혁이 ‘마법사 대전’의 개편 작업을 맡긴 지수 역시, 회사에 있는 몇 안 되는 마스터 중의 한명이었다.
‘그러니까 알아서 잘 해놨겠지.’
의욕이 앞서서 좀 하드하게 직원들을 굴리다보면 저런 일도 생기는 법이다.
연구실로 향하는 상혁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솔직히 자신이 방치해 둔 사이 연구실 인원들이 만들어 둔 오파츠급 모션인식 장치를 보았을 땐 상혁도 놀라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대가 맞지 않는 무언가’를 그들이 개발해 냈기 때문에 놀란 것이지, 자신이 ‘모르던 개념’을 만들어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놀라움도 자주 반복되는 일은 아니고.
회귀 이후의 삶은, 말하자면 군대에서 상병을 단 이후의 삶과 비슷하다.
뭐가 새로 나오던, 뭘 개발하던, 자신이 완전히 새로 짜낸 것이 아니면 항상 보아온 것의 반복이니까.
그러니까 저렇게 탑주들이 피폐한 모습으로 부실에 널브러져 있는 이유도, 아마 자신이 해결 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시련이 그랬던 것처럼.
“헤이헤이헤이! 지수야! 민준아! 내가 돌아왔다고오오오···.”
힘차게 연구실 문을 여는 상혁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문 안의 풍경에서 상혁이 발견한 것은, 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두 명의 캐릭터가 마치 파란색 인공 태양같이 생긴 에너지 구체를 필사적으로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젠장! 이거 진짜로 돌아가는 수식 맞아요? 반응성이 장난 아닌데?”
지수가 투덜대며 왼손에 낀 글러브로 이리저리 손가락을 바꾸자, 화면에 있는 캐릭터의 반대쪽 손에 붉은 색 구슬이 생성되었다.
그것으로 푸른 거대 구체의 안에서 솟아오르는 불꽃 기둥을 억누르며, 지수가 소리쳤다.
“민준 오빠! 475-C 회로 수치 최대로 올렸어요?”
“지금이 최대인데?”
“그럼 뚫고 더 올려요!”
민준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지수의 캐릭터의 몸에서 황금색 휘광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 중앙에 있던 거대 구체가 빛에 눌린 것처럼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오! 된다! 된다!”
지수의 반대편에서, 또 한명의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던 봉춘이 흥분한 목소리로 민준을 향해 소리쳤다.
“보스! 저도 올려주세요!”
“지수 것도 지금 한계치 이상으로 올렸는데? 일단 좀 더 두고보는 게 좋지 않아?”
“둘이서 하면 더 빠르겠죠!”
봉춘의 말에 민준이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자 봉춘의 캐릭터에서도 황금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체가 줄어드는 속도도 두배가 되었다.
“오오···. 좋아···. 이대로요···. 이거 42번 속성 마나 반응도를 낮추던가 서클 셋팅으로 잡을 수 있는 한계치를 더 올려야겠어요···.”
그때였다.
줄어들던 구체가 푸른색이 아니라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시점이.
“어? 어어?! 빨려 들어가는데?”
“젠장! 융합한다! 보스! 제 통제 수치 다시 낮춰주세요!”
민준이 다시 수치를 조정해 캐릭터 몸에서 빛나던 황금빛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노란색으로 물들던 구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안에서 퍼져 나오듯, 노란색의 빛이 안에서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젠장! 폭발한다!”
“꺄아아악!!”
구체가 박동하듯 크게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는 순간, 봉춘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면속의 구체가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빛나며 폭발해버렸다.
-콰아아앙!!!-
이어지는 정적.
그리고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두 사람.
거기에 화룡 점정을 찍은 것은, 뒤쪽에서 달려와 두 사람에게 소리친 민준의 질문이었다.
“두 사람 다 괜찮아?”
“괜찮겠지. 실제로 폭발한 것도 아닌데.”
상혁은, 두 사람의 할리우드 배우 뺨치는 연기를 보다가 어이없어하다가 엎드린 지수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두 사람 지금 뭐해요?”
“엑?! 오빠 언제오셨어요? 방금 그거 다 보셨어요?”
“젠장! 이거 진짜로 돌아가는 수식 맞아요? 반응성이 장난 아닌데?”
상혁이 지수의 말투를 따라하자 지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지수의 반응을 싹 무시 한 채로, 민준을 보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니, 물어야했다.
어째서 이런 해괴한 역할극을 연구실에서 하고 있었는지, 지금 본인에게 가장 잘 설명해줄 사람이 민준이라고 생각했기에.
“민준아. 나는 분명 런던에 가기 전에 지수에게 정확한 로드맵을 지시하고 갔다고 생각하는데?”
“어. 그렇지.”
“그리고 그 로드맵에는 방금 전 같은 괴상한 내용은 없었지?”
“어?! 어···. 그렇···지? ···아마?”
“그럼 설명해봐.”
상혁이 의자를 가져와 거꾸로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팔을 등받이에 걸친 채로, 지수와 민준을 보며 다시 질문했다.
방금 자신이 본게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해 달라는 질문을.
“너희, 대체 나 없는 동안 무슨 사고를 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