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47화 (148/485)

147. New Standard

지수가 보드에 열심히 그려가며 설명한 개념은, 탑주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간단한 개념이었다.

세팅은 깊이 있게, 시전은 간편하게.

처음부터 동작만 알면 자신의 계열이 가진 모든 주문의 시전이 가능한 기본 시스템을, 주문마다 ‘서클’의 기준으로 나눠 단계별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게 개편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 주문들도 단지 서클이 열리면 모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미리 세팅하고 배워둔 주문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니까, 그냥 수많은 주문 중에 본인 캐릭터로 쓸 수 있는 주문을 미리 세팅해야하는 개념인거네요? 세팅할 수 있는 주문은 자기 서클레벨에 따라 다르고?”

“비슷해요.”

녹탑주인 마리가 손을 들어 묻자 지수가 대답했다.

“많은 매체에서, 마법사란 존재는 자신의 신체나 심장에 서클이란 마법회로를 구축하죠. 저희는 게임으로 그 시스템을 구현하려 하고 있어요.”

‘서클’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탑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다들 오컬트 전문가라 수많은 매체에서 어떤 식으로 마법의 구성원리를 설명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저가 어떻게 자신의 서클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같은 주문이라고 효율이나 효과가 달라지고, 시전 속도나 마나 소모량도 달라지겠죠. 잘 구축한 유저의 서클은 유저들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하고, 자신만의 서클 형태를 구축하면서 본인의 마법 빌드를 개척하기도 하고요. 지금처럼 단순히 속성에 따른 계파 구분이 아니라, 확실하게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조합 속에서 본인의 마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구축하려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수가 보드에 목록을 적었다.

-문신-

-포션-

-오브-

-스크롤-

-쥬얼-

-악세서리-

“현재 지원하려고 하는 마법 보조물품의 종류입니다. 문신은 패시브처럼 미리 세팅해두면 동작할 것이고, 영구적이지만 효과가 적고 반드시 패널티가 붙는 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화염 주문의 위력을 보조하는 문신을 캐릭터에 새기면, 반드시 수속성 주문의 위력이나 안전성에 영향을 끼치는 식으로요.”

지수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포션은 캐릭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대신 전투 중 가져갈 수 있는 수량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1회용이라 재료가 소진된다는 단점이 있겠죠. 동작은 특정 제스쳐를 취한 뒤 왼쪽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면 해당 제스쳐에 맞는 슬롯의 포션이 손에 잡히는 설정으로 갑니다. 이후엔 바닥에 던지거나 자신 앞에 뿌리거나 투척하거나 몸에 가져다 대는 식으로 사용하게 되겠죠?”

“그럼 스크롤은 오른쪽 허리를 쓰겠군요?”

“맞아요. 방법은 같습니다만 스크롤은 투척이 아니라 사용하는 순간 허공에 등장해서 알아서 찢어지고 발동됩니다.”

“쥬얼은요?”

“쥬얼은 브레이슬릿에 커스터마이징 하는 개념이라 보시면 됩니다. 문신과 비슷하지만 이건 추후 변경이 자유롭죠. 강력하지만 최대 3개 세팅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악세서리는 반지와 목걸이종류를 말합니다.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도 힘들지만, 정해진 숫자의 주문을 사용 가능하다던가, 공격을 맞고 부서진다던가 하는 다양한 효과를 가지게 할 겁니다.”

“오브 설명을 빼먹으셨는데요?”

“아, 오브.”

지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게임엔 궁극의 목적이 필요하다고 하죠. 서버 1위가 된다던가, 아니면 엔딩을 본다던가. 이 게임에서 오브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개발에 참여하시면서 천천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이쪽은 확정은 아니니까요. 밸런스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니까···. 아마도 상혁오빠가 런던에서 돌아오면 그때 다시 논의 될지도 모르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MMORPG의 마법사 육성 수준의 컨텐츠가 될 것 같은데, 단순 대전에서 그렇게 변경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번에 질문을 던진 것은 녹탑주 마리가 아니라 철탑주인 시 메이좐이었다.

무겁지도 않은지 도복 위에 금속 플레이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채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메이좐을 보며, 지수는 ‘대체 저걸 입고 공항을 어떻게 통과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철탑주, 시 메이좐 씨. 맞죠?”

“예.”

“예. 메이좐 씨. 지적하신대로, 저희가 지금 하려는 개편은 게임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만큼, ‘마법’이란 물건을 리얼하게 구현 할 수도 있겠죠. 생각해보세요. 게임이나 커뮤니티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마법 재료와 마법서를 가지고 자신만의 마법을 구축해가는 모습을. 신중한 고민 끝에 타투를 새기고, 서클의 구조를 변경하고, 그렇게 변경한 서클의 효과를 실험하는 과정을. 그리고 그렇게 구축한 마법으로 상대와 싸우고, 승리를 얻어내는 과정을.”

지수의 말을 들은 메이좐이 미소를 지었다.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어떨 것 같아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꿈같은 게임이겠네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질문을 바꾸죠. 만약 그런 게임이 존재하고, 메이좐 씨가 그 게임을 즐기고 있다면, 이후에 다른 게임에서 마법사가 나오는 게임을 하면서 만족하실 수 있겠어요?”

“아뇨. 시시해서 미쳐버리지 않을까요?”

“바로 그겁니다. 저희가 하려는 게.”

상혁이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지수에게 철저하게 설명한 ‘이 게임의 목적.’

“지금까지의 마법사을 다루는 게임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의 재미. 앞으로 나올 모든 게임에서 ‘마법사’를 다루기 껄끄럽게 만들 정도의 ‘표준 모델.’ 저희가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건, 바로 그 ‘마법’에 대한 새로운 스탠더드를 세우는 작업이에요.”

지수는 조용하지만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WASD와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법이 등장한 이후에, 그것이 FPS 조작의 표준이 된 것처럼. 이 게임 이후로 ‘마법’이 나오는 게임이라면 이 게임보다 더 뛰어난 게임이 나올까 싶은 의문을 들게 하는 게임. 저희가 만들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게임입니다.”

상혁은 말을 할 때 습관적으로 상대의 마음속에 인상 깊은 마무리 멘트를 날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지수는, 상혁의 제자답게 그런 상혁이 할법한 마무리 멘트를 비슷한 말투로 따라하며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자, 여러분. 지금 바로, 다른 게임을 ‘시시하게’ 만들러 가 봅시다!”

그것은 단순한 한 마디였지만, 회사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지금 참여해달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상대가 이해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한마디였다.

***

“할만 해요?”

민준이 와서 묻자 카렌이 키보드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는 말 그대로 ‘자료의 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방대한 자료가 쌓여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플로피 디스크부터 구형 VHS비디오, 먼지 쌓인 CD부터 잡지를 오려붙인 스크랩북까지 온갖 미디어를 수집해 놓은 것 같은 다양한 자료들이.

“주, 죽을 거 같아요···.”

“자료 정리는 적당히 교수님들한테 부탁하지 그랬어요? 그럼 알아서 대학원생들한테 시켰을 텐데.”

“그러려고 했는데 제가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사색이 되더군요. 대학원생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거 같아요. 한없이 가련하고 슬픈 존재라고 해야 할까.”

카렌은 자신이 다니던 칼텍 대학교의 대학원생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거기도 박사 학위를 위한 길은 한없이 가시밭길이었으니까.

진짜 가뭄에 콩 나듯 테뉴어(Tenure : 영년 교수직)자리라도 하나 나면, 박사 학위까지 있는 교수들이 거의 전쟁 수준으로 달려드는 곳이 바로 대학 연구실이었다.

“뭐, 그래도 우리는 보수는 넉넉히 주니까.”

민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정리된 자료로 보이는 프린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료를 눈으로 훑어가며 카렌에게 말했다.

“마법사 대전 쪽이 작업이 제일 방대할거라 생각했는데 이쪽이 더 스케일이 크네요?”

“상혁 씨가 부탁한 게 이정도 깊이 이기도 했고, 교수님들도 지금까지 연구비 받은 값을 한다고 의욕에 넘치셔서요.”

민준이 들고 있는 자료는 특정 지역의 건물 양식에 대한 자료였다.

마치 판타지 설정집을 보는 것처럼, 해당 지역에 설정된 기후에서 나는 나무의 특성과, 그에 따른 건축 방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창문에 커튼 대신 걸치는 가죽이 어떤 몬스터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것인지에 대한 내용 까지도.

잠깐 동안, 민준이 시베리아 지방에 ‘치치푸치 나무’라는 나무가 실제로 있어서 조사한 참고 자료를 보고 있는 것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게 가상의 설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민준이, 생각보다 깊은 게임의 설정에 놀라며 카렌에게 물었다.

“이중에 80%이상은 게임에 등장도 안하게 될 것 같은데?”

민준이 질문하자 카렌이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상혁 씨가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설명 해 주던가요?”

“이번 작업이 단지 이 게임만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카렌의 말에서, 민준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상혁은 ‘마법사 대전’에서 100% 완벽하게 구현된 마법 시스템을, ‘이 세계 의사 시뮬레이터’에는 실제로 있을 법한 판타지 세계관의 완성을 주문했다.

그리고 민준이 아는 상혁은, 적어도 게임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타입이었다.

보여지지도, 쓰이지도 않을 설정을 위해서 엄청난 작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 최적의 경로로 가장 효율적인 전달을 고수하는 타입.

그리고 그런 상혁이 ‘굳이’ 이런 식의 작업을 주문했다면, 그것은 이 게임에서 쓰이는 용도를 넘어 뭔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면···.’

아마도 지금 개발하는 ‘워함마’IP를 활용한 FPS도, 상혁이 그리는 큰 그림에 맞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민준은 생각했다.

그 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 할 수 없었지만, 민준은 굳이 상혁에게 전화로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는 않았다.

나중에 때가 되면 어련히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 여러 게임 합쳐서 엑○디아라도 만들 생각인가보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민준의 상상은 실시간으로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GW의 시나리오 라이터, 맷 와드는 요즘 한국에서 온 요상한 개발자에게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힘들게 잡은 기회인, 다음 ‘우주 해병’의 5판 코덱스를 작성하는 일까지 방치할 정도로.

런던 교외의 오래된 카페.

날씨가 좋던 나쁘던 주인이 습관처럼 펴 놓는 파라솔 아래의 의자에 앉아, 맷은 상혁이 건네준 커피를 즐거운 기분으로 마시고 있었다.

‘재밌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해보면 해볼수록, 매력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 자신이 어릴 적부터 ‘워함마’의 골수팬이 아니었다면,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눈앞의 동양인 청년에게 취업하게 해달라고 졸랐을 정도로.

자신이 뭔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열렬히 호응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를 덧붙여준다.

사실 미래에서 맷 와드가 만든 설정을 그대로 읊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상혁으로써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맷 와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마치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만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맷의 마음속에선 상혁의 존재가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다.

‘수상할 정도로 사람을 잘 띄워주는 협력사 CCO’에서 ‘로망이 뭔지 이해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세상에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단 한사람’으로.

런던에 도착한지 단 2주 만에 맷을 자신의 포로로 만든 상혁은 2주동안 충실하게 맷의 아이디어를 듣고 공감하는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리고 2주가 조금 넘은 어느 날.

맷이 상혁에게 질문했다.

“상혁 씨는 저 먼 지구 반대편에서 워함마 게임을 만들려고 런던까지 오셨죠. 굳이 외부 IP를 빌리지 않아도 ‘GOS’같은 걸출한 오리지널 IP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데도요. 전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체 워함마 IP로, 뭘 만드시려는 생각인거죠?”

그것은 무려 2주동안 맷이 떠드는 설정에 맞장구를 쳐주며 상혁이 계속 기다리던 질문이었기에, 상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양념이 다 쳐졌다.’

공식적으로, 상혁은 업무 협력을 위해 GW로 출장을 온 것이었기에, 맷은 상혁의 타겟이 자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뭔가 시간이 남아 튀는 사람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 정도로만 인식했을 뿐.

“알고 싶으세요?”

그래서 상혁이 뭔가 말하기 껄끄러운 업무적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맷에게 묻자, 맷은 완전히 상혁에게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2주 동안 제가 꿈꾸는 워함마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습니다. 위대한 회색 기사단과 그들의 슈프림 그랜드 마스터, 칼도로 드라이코의 이야기를 나눴죠. 제 아이디어를 그렇게 많이 들려드렸으니, 저도 상혁 씨의 아이디어에 대해, 들을 자격이 되지 않을까요?”

“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맷 와드 씨니까.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에는 비밀로 해주세요.”

“어차피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GW본사와 협의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렇게 비밀로 하실 필요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제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제가 만들고 싶은 워함마 게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그건 절대 GW에서 승인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GW는 절대 승인하지 않을 아이디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해지네요. 말씀하시죠. 절대 누설하지 않을 테니까.”

“맷 와드 씨를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고개를 숙이자, 맷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상혁은, 맷이 지금까지 본 눈빛 중에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맷에게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맷은, 상혁의 말을 들으며 상혁이 어째서 GW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아이디어라고 했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혁이 말한 계획.

그것은 구현도 불가능하지만 구현이 가능하더라도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모든 워함마 게이머들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정리해보죠. 상혁 씨 설명을 종합해보면,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전장에서, 컴퓨터가 끊임없이 미션을 생성하고, 유저들이 수행하는 결과에 따라 그 영향이 세계관에 반영되는 게임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엄청나게 복잡할 텐데.”

“이미 하고 있는 업체들이 있긴 하죠.”

“예?”

“이브 온라인이 있잖아요.”

이미 2003년부터 서비스 중인 게임의 이름이 나오자, 맷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요. 하지만 그건 시스템이 개입해서 미션을 만드는 구조는 아니지 않습니까? 유저들끼리 스토리를 만드는 형태에 가까울 텐데요?”

“중앙에서 개입해서 유저간의 게임 결과를 반영하는 게임도 이미 존재합니다.”

“예?”

“워함마가 그렇잖아요.”

“저희가···. 아!”

맷이 무릎을 쳤다.

“캠페인(campaign) 말씀하시는 건가요?”

GW에서는 정기적으로 유저들을 초청하여 게임의 결과를 정식 스토리에 반영하는 대회를 열곤 했다.

물론 그렇다고 100%반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이기면 안 되는 진영이 압승했을 경우 회사에서 유저에게 딜을 걸고 적절하게 후퇴했다는 식으로 수습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메인 스토리에 유저간의 경기 결과가 반영된다는 것이 원칙이긴 했다.

2006년에 캐나다에서 벌어진 캠페인에서, 인류 진영의 일반 보병이 무려 0.000059537%의 확률을 뚫고 다이스 갓의 가호를 받아 최상위 유닛인 ‘데몬 왕자’를 잡자, 이후에 해당 유닛의 기본 병기인 ‘라스 건’을 설명할 때 ‘이 무기는 잘 쏘면 데몬 프린스도 잡는 무기’라고 설명이 추가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상혁이 하려는 것은 그것을 온라인 상에서 구현하려는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구현된 전장에서, 컴퓨터가 끝없이 전투 미션을 생성하고, 유저의 수행 결과에 따라 세력 균형이 변하는 시스템.

그것은 유저의 경기 결과가 ‘정사 스토리’의 내용을 결정하는 ‘워함마’의 컨셉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기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절대 허락안하겠죠?”

상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맷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본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에.

구현도 어렵겠지만 구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정식 설정을 GW가 아닌 외부에서 벌어진 일로 결정하게 하는 것은 GW측이 정신 나가지 않은 이상에야 절대 허락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맷의 머릿속에 뭔가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기존 룰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정사 설정을 두면서 상혁이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흠.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맷은 상혁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하길 마음속으로 빌면서, 상혁에게 속삭였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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