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41화 (142/485)

141. 위대한 뻘짓

코넥트 개발팀이 ‘중2병 배틀러’를 마개조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애니 캐릭터뿐만이 아니었다.

상체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지상에서 뜬 채 호버링 하며 이동하던 이동 방식조차 사라져 있었다.

대신 이제 발의 움직임도 주문을 발동하는 기수식의 일종이 되면서, 주문을 발동하는 방식 자체가 일종의 무술 동작 같은 느낌이 들게 바뀌어 있었다.

‘저 모션 베이스는 미국 애니메이션 아바타를 참고한 건가?’

2005년부터 방영된 ‘아바타:아앙의 전설’이란 애니메이션에서는, 물, 불, 바람, 흙의 4가지 속성별로 기술을 사용하는 동작에 기반 무술이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땅의 힘을 사용하는 ‘어스 벤딩’의 경우 ‘홍가권’의 모션을 차용하여 이미지를 잡고,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에어 벤딩’의 경우 ‘팔괘장’의 모션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잡는 식으로.

상혁이 보고 있는 봉춘의 ‘신비계열’ 마법 모션은 왠지 모르게 태극권을 연상 시키는 느낌이었고, 화면 저편에서 남길이 쓰는 모션은 팔극권을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간달프의 손끝에서 뇌전이 줄기줄기 쏟아져 나와 멀린을 덮쳤다.

멀린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기수식에서 이어지는 부드러운 모션으로 날아오는 번개를 동작 한번으로 물줄기로 바꿔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 후 멀린이 손을 어지러이 휘두르자, 바닥에 쏟아진 물이 무지갯빛용의 형상을 하며 간달프에게 쏟아져 나갔고, 간달프는 양 주먹을 옆구리에 대고는 발을 세게 굴러 바닥의 바위가 위로 치솟아 오르게 만들어 공격을 막았다.

뇌전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바위에 용이 충돌하자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돌조각이 비산했고, 멀린은 그 모습을 보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손가락의 모양을 바꾸며 주문을 쏘아 날렸다.

그것은 마치 ‘엔○게임’에서 타노시와 닥터 스트레이트의 싸움을 보는 느낌 같았다.

그리고 상혁은, 그 화려한 싸움 가운데 수없이 교환되는 주문들에 일종의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거 엄청나게 복잡한 가위바위보네. 아니면 TCG라고 해도 좋고.’

바위 10의 공격 주문을 막는 데는 보자기 5정도의 방어 주문으로 막을 수 있지만, 가위 10의 방어주문은 그대로 뚫려 방어자에게 데미지를 입힌다.

각 계열별로 정해진 수많은 주문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전 시간을 고려하여 상대의 공격에 알맞은 대응을 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었다.

마치 카드게임을 하는 것처럼.

어느새 땀까지 흘리며 열심히 마법을 시전 하는 봉춘을 보며, 상혁은 자신도 한번 이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2병적인 대사를 해야 데미지가 줄어드는 등의 기존 시스템이 죄다 날아가 있었지만, 지금 버전은 순수하게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어서.

회귀 이후에, 세상에 나오는 모든 게임들이 상혁에겐 스포일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회귀 이후로 ‘처음 보는 게임’의 모습에서 강한 매력을 느꼈다.

단순히 모션 인식율을 올려달라는 자신의 지시가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상혁으로써는, 회귀 전에도 한 번도 본적 없던 게임에 강한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상혁은 이 멋진 마법사 배틀 게임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완전히 마니아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전의 ‘중2병 배틀러’ 자체도 매니악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건 거의 마리아나 해구 수준의 매니악함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거기엔 ‘욕망’이 있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

마법을 써보고 싶다.

실제로 마법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지수가 꿈꾸던 이상이 현실로 나타나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모습으로, 게임이 변해 있었다.

이미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상태로, 순수하게 마법 배틀에만 집중하고 있는 봉춘을 보면서,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난, 이걸 도저히 라이트하게 다시 고치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니악하면 어떻단 말인가.

안 팔리면 어떻고.

세상 누군가는 분명 이 게임에 미쳐서, 매일같이 기수식을 연습하고,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주문을 시전하고, 상대의 마법 패턴을 외워서 파훼법을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그것은 상혁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의 형태였기에, 상혁은 마개조 된 부분을 쳐 내는 게 아니라, 더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게임을 고쳐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장대한 패배로 끝난 남길의 배틀을 보고 온 민준의 감상도 마찬가지였다.

“야, 봤냐?”

시연이 끝난 후, 옆방에서 나와 잔뜩 흥분한 얼굴의 민준에게, 상혁이 말했다.

“봤지.”

“이대로 출시하면 돈 벌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근데 네 표정은 이대로 출시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것만 확인하고.”

“뭐, 우리 회사에서 최종 발매되는 게임의 형태는 CCO인 상혁이 네가 결정하는 거니까. 원하는 대로 해.”

민준이 단호하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좋아···. 그럼 우선···.”

상혁이 코넥트 개발팀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이정도 볼륨은 아무리 2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절대 만들 수 있는 볼륨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세요. 뭔 짓을 한 거죠?”

“그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려는 거니까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이미 결과물은 마음에 쏙 들었다.

심지어 그 결과물을 위해 자신의 기획의도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어도.

하지만 자신의 상식으로 지금 개발팀의 규모를 고려하면, 이 정도 수준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상혁은 우선 ‘자초지종’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상혁의 말을 들은 개발팀 멤버들 중 한 사람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아까 멀린 캐릭터로 간달프 캐릭터를 사투 끝에 이겨낸 10서클 위자드, 봉춘이었다.

“대표님 말이 맞습니다. 사실 이건 저희들끼리만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이정도 규모의 개발팀에서 짤 수 있는 콘텐츠 규모가 아니었으니까. 주문의 숫자만 해도 그렇고, 상성이나 밸런스도, 이건 ‘팀 규모’의 기획작업이 필요한 게임이라 생각됩니다. 추가로, 저는 이제 대표가 아닙니다. CCO죠. 그리고 방금 봉춘 씨가 하신 그 말씀은 내부 개발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었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맞다고 해야하나···. 틀리다고 해야 하나···.”

봉춘이 노트북을 가져와 홈페이지를 하나 띄우며 보여주었다.

“일단 저희가 공개한 건 주문 제작 툴이거든요.”

***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2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오컬트 팬들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들은 주변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일반인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속엔 언제나 신비한 주문과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갈망이 가득 차 있다.

코넥트 개발팀 중 프로그램 개선을 맡은 핵심 개발자인 마크 월버그 역시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다.

사춘기 시절, 자신에게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고, 집 뒤편 야산에서 산의 정기를 받겠답시고 밤이슬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노트에 자신만의 설정을 적기도 하면서.

비록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열정은 사그라지고, 지금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IT업계 종사자였지만, PTW에 와서 지수가 만든 마법 공식을 보면서 그는 자신 안의 오컬트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현재 구현되어 있는 버전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건 미완성이다.’

기수식의 시작점과 팔의 움직임에 다른 마나의 이동, 그에 따른 속성의 변화.

뻗는 동작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마법의 계열 변화.

실제로 마나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지수의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진 마법이론(魔法理論)은, 좋아하는 캐릭터의 흉내를 내는 것보다 강력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마크는, 지수가 남긴 미완의 마법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에 구원 요청을 보냈다.

“이거 진짜에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말투로, 상혁이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물었다.

상아탑(ivory tower).

마크가 만든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오컬트 마니아들이 지수의 마법 이론을 두고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도 계열별로 ‘적탑’ ‘청탑’ ‘자탑’같은 식으로 파까지 나눠가면서.

상혁은 거기 있는 게시물 중 신비 계열 마법을 다루는, 자탑 계열 이용자들의 게시판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논의안건 5885: 신비 계열의 미 지정된 442번 마법에 대한 논의]라는 항목을 클릭했다.

[논의안건 5885: 신비 계열의 미 지정된 442번 마법에 대한 논의]

[작성자 : 10서클 위자드이자 위대한 마법사인 자탑주 멀린]

[제안 내용.]

[441번째 주문 시전에서 이하의 손가락 변형을 통해 시전 되어야 할 신규 마법의 계열에 관한 논의.

자탑주인 본인은 441번 마법[엘리먼트 디코이]를 수련 하던 중 최종 시전 단계에서 다음의 동작을 수행했을 때 주문이 발동되지 않는 것을 발견.

이론상 해당 주문을 발동되는 것이 맞으므로 이를 442번 주문으로 임시 명명하고 해당 주문에 대한 계열을 (속성:환혹 계열:방어 상성: 토/금/화 위력:7 소모:4)의 신비계열 주문으로 신규 지정하고자 함.

현재 해당 이펙트는 첨부파일의 영상 확인 요망.

자탑의 마법사들에게 해당 부분에 대한 문제점 및 이론 검토를 요청]

↳대마법사 아자샤라 : 멀린님은 오늘도 바쁘시네요. 전 괜찮아 보입니다.

↳수련생 초콜렛 위치 : 441번이 구현계인데 거기서 이어지는 동작의 442번이 환혹계열인건 기존 법칙에 어긋나는 듯합니다.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놈: 나도 초콜렛 위치의 의견에 동의하오. 441번의 파생 주문이면 구현계 주문이 맞을 것 같소.

그리고 아자사랴는 피드백 1등 하려고 읽지도 않고 동의했다는데 한 표.

거의 외계어 수준으로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떠드는 게시판 내용을 보던 상혁은 이번엔 [그리모어]라고 불리는 메뉴를 클릭했다.

거기엔 각 게시판 이용자들의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 수많은 주문들에 대한 내용이 위키 형태로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쩐지 아까 그리모어라고 불리던 바인더 양식이 눈에 매우 익더라니···’

애당초 기획은 인터넷에 위키 형태로 존재하고, 아까 보여준 기획서는 그것을 단순히 프린트한 것에 불과했다.

상혁은 그런 작업 방식에도 꽤 흥미를 느꼈다.

하나의 게임을 두고 집단 지성이 참여하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발상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주문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렸다는 이야기네요?”

“그렇습니다.”

“보상도 없이?”

“기본적으로 유효한 투표수를 많이 받은 이용자에게 ‘코넥트’의 시제품을 넘겨주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럼 내부 자료가 새 나간 게 맞군요?”

“예. 죄송합니다.”

봉춘은 솔직하게 허리 숙여 사과했다. 회사의 자산을 임의대로 임대한 것이기 때문에.

“저거 시제품 가격도 꽤 될 건데···.”

민준은 얼마 전에 확인했던 코넥트 개발팀의 어마어마한 지출 요청서의 내역을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개발 과정에서 대부분의 기술은 특허 출원이 되어 있고 기기 내부의 소스코드는 암호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기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대여 형태로 진행된 것이고요.”

봉춘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남길이 뒤쪽에서 한 무더기의 팩스 서류를 가져왔다.

“비밀 유지 서약도 확실히 받았습니다. 홈페이지에도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서 비밀 엄수를 준수하라는 약관 내용이 적혀 있고요.”

“지금 활동인원이 몇 명인가요?”

“일주일 전쯤 확인했을 때 총 452명 정도···.”

“용케 이슈가 안 됐네.”

아무리 제약을 걸어도 그 정도 인력이 참여하면 알게 모르게 정보가 새 나가게 마련인데, 홈페이지를 만든 마크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기적적으로 보안이 지켜지고 있었다.

상혁은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다.

“마크 윌버그라는 분을 불러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 금발의 더벅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상혁의 앞에 섰다.

마크는 상혁이 키가 큰 편이 아닌데도, 상혁보다 훨씬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외국인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크에게,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보안을 지켜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방식으로 운영 했습니다. 모든 인원은 기존 멤버의 추천으로만 가입 가능하고, 자료 유출 시에 본인뿐만 아니라 추천인도 같이 처벌받는다고 명시를 해 두었죠. 나름 가입할 때 필요한 의식도 있고요.”

“의식?”

“상아탑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로 손도장을 찍는 영상을 팩스와 함께 첨부해야하게 했죠.”

“엥?! 그런 짓을 했어요?”

“오컬트 팬들은 그런 거 좋아하니까요. 뭔가 소속감도 생기고···.”

말을 끝낸 마크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처벌이야 각오한 일이다. 회사에서 수십억을 때려 부은 프로젝트의 시제품을 멋대로 대여하고, 엔진을 뜯어고쳤으며, 원래 있던 기능을 삭제했다.

사실, 버려진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혁은 너무 긴 기간 동안 프로젝트를 방치해 두고 있었고 그 공백은 심심한 개발자가 참고 견디기엔 너무 긴 공백이었다.

‘한번 해볼까?’

처음엔 작은 시도로 시작된 일에, 점점 욕망이 더해지며 지금은 무려 10개가 넘는 나라의 4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것도 회사돈을 써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그 결과물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수백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일 기발한 결과물이라면 몰라도, 마크는 자신이 만든 것이 절대 상업적으로 팔릴 거라고는 양심이 찔려서 대답하지 못할 물건임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손가락 모션을 인식하기 위해 만든 브레이슬릿 가격만, 시제품 제작에 기본 200만원 넘게들어간 물건들이었으니.

겨우 마법사 놀이하자고 게임기 5대 가격을 휙 지불할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받아들이자. 잘리더라도. 소송이 라도 걸리면 좀 그렇겠지만···.’

개발하는 과정도, 결과물도 자신의 마음에 충분히 재미있었으니 후회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개발하던 프로젝트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천둥 벼락같은 엄포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짧은 순간이 지나고, 상혁이 의자를 살짝 밀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상혁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연구실 인원들을 돌아보았다.

뭔가 가슴이 잔뜩 벅차올라있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는 민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봐.”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직원들을 보았다.

“이 사람들을 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입가엔, 넘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흘러나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2차 대전 때 쓰던 레이저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게임이 최초의 pc게임이었지. 무려 ‘군사용’ 슈퍼컴퓨터로 돌아가게 만든 물건이었고.이 장대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가, 거기서 시작되었지. 위대함의 시작은 언제나 그런 ‘뻘짓’이었다고. 내가 딱히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심심해서’ 지금 시대에 나와서는 안 될 손가락 모션 인식센서를 만드는 그런 뻘짓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앞으로 걸어 나가 마크 윌버그를 껴안았다.

“이유도 없이.”

그리고는 봉춘을 껴안고.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남길을 껴안았다.

“돌아이 같은 도전을 해낸 거. 자기 커리어까지 걸고서!”

그리고는 중앙으로 돌아와서, 두 팔을 벌리며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x발, 게임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안 그래요. 여러분?”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미소는, 마음을 졸이던 직원들의 불안을 한방에 날릴 만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시도는 위대한 시도고, 그것을 현실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결국 최초의 PC게임도, 도전의 의미만 있었지 제대로 판매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상혁은, 적어도 이 사랑스런 직원들이 힘들게 만들어 낸 물건을 세상 속에 묻히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일부 프로세스의 조정이 필요했고.

엄밀히 말하면 마크가 상아탑의 멤버들에게 건 제약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행위였으니까.

상혁이 손을 내밀더니 손가락을 접었다.

“우선, 코넥트는 지금 수준에서 양산 준비를 할 수 있게 작업 진행을 해주세요.”

“아직 게임기로 쓰기엔 크기나 가격이···.”

“일단은 국방부 납품을 목표로 할 겁니다. 휴전선 감시 장비로 납품할 생각이었는데, 제 기대보다 인식율을 엄청나게 올려놓으셔서 좀 더 쉬워질 것 같네요.”

상혁이 하나의 손가락을 더 접으며 말했다.

“둘째로, 게임 할 때 쓰는 손가락 인식 장치? 그 팔찌같이 생긴 것도 양산 준비를 해 주시고요. 이거는 실제로 나중에 게임이 정식 발매될 때 추가로 팔 물건이니까,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에 외주를 맡겨서 디자인을 좀 제대로 뽑아야 할 거예요.”

상혁이 세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제약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쪽에서 제공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법적인 효력이 발생합니다. 직원들에게도 동종업계 이직 금지를 요구하려면, 추가로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처럼. 그러니 지금 상아탑에 가입한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PTW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지 여부를 묻고, 계속 함께할 사람들에게는 정당하게 페이를 지급하세요. 마침 기여도 별로 서클이 매겨지는 시스템이니, 기여도 별로 페이를 지급하면 되겠네요. 이건 민준이 네가 처리해주면 되겠다.”

“맡겨둬.”

“그리고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코넥트 개발팀을 PTW소속의 개발 3팀으로 명명합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프로젝트 참여인원 전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겠습니다. 다들 엄청난 물건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처벌은···.”

“처벌이요? 개발자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걸 처벌하면 그건 게임회사 자격이 없는 거죠!”

단호한 말투로, 상혁이 말했다.

“그리고 그건 여기 있는 민준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여러분. 여기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저희가 나서서 이 프로젝트를 양지로 끌고 가 세상에 선보이겠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상혁이 직원들에게 던진 약속.

그것은 연봉인상이나 보너스보다, 팀원들에게 가장 값진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오후, 워크패스트의 사내 공지 게시판에는 또 다시 변경된 공지가 올라왔다.

민준이 CEO가 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한 번 올라온 따끈한 인사 변경 관련 공지였다.

-신규 프로젝트 진행 알림-

-기존 ‘코넥트’개발 팀을 개발 3팀으로 명명-

-관련 직원 전원 보너스 지급 및 연봉 인상 결정-

-사유: 회사의 허락 없이 게임을 ‘재미있게’ 뜯어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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