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리스타트(Re:Start)
PTW에는 파트에 상관없이 전 직원이 알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다른 회사의 ‘대표 사무실’역할과, ‘임원 회의실’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특별한 공간.
PTW의 직원들은 누구나 그 공간을 매우 평범한 이름으로 불렀다.
부실.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지만, 소속된 인원이 아닌 직원들에게는 아무래도 방문하기 거북할 수밖에 없는 장소.
PTW의 가장 핵심 멤버들만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그 ‘부실’에, 성찬은 입사 이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다른 작업실하고 다른 부분은 별로 없네.’
크기도, 배치도 특이할 게 없었지만, 다른 작업실과 다른 점은 주로 파트별로 뭉쳐있는 다른 공간과는 달리 마치 ‘소규모 개발팀’을 연상하게 하는 작업공간이라는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PTW의 시작점인 고등학교 게임 동아리 시절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하는 이 공간에서, 성찬과 카렌, 민준이 상혁의 앞에 앉아 있었다.
편한 이야기를 위해 중앙에 배치되어있는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상혁은 언제나처럼 커피를 뽑아 세 사람에게 건네주고는 자신도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 아, 우선 1등 축하드려요. 이성찬 씨.”
“아? 네?!넵! 감사합니다! 다 팀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찬의 말에 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감 넘치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아뇨, 민준이한테 기획 히스토리도 넘겨봤는데, 끝까지 초기 아이디어의 중심을 잃지 않고 잘 끌고 간 좋은 기획이었어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그리고 유저가 어떤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지, 그 뿌리가 단단하게 박혀있는 그런 느낌이더군요.”
“어. 어···. 그래도 여기 두 분이 안계셨으면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초기 기획에 비해서,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개선된 버전이니까요.”
“개선이라···.”
자신은 하린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 ‘개조’를 택했고, 민준은 본인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단순히 ‘개선’만을 가했다.
어쩌면 거기서 승패가 갈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상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 1등도 할 수 있었겠지만, 뭐,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이득 이라고 할 수 있겠네.’
런던에서의 일이 잘 풀렸기에 상혁의 가슴속은 자신감으로 넘쳐있었다.
물론 자신을 누르고 콘테스트 1등을 차지한 이 프로젝트보다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만든 게임이 더 재미있을 거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상혁이 콘테스트 1위를 포기하고 얻어낸 워함마40K라는 IP는, 그정도 힘을 가진 멋진 IP였기 때문에.
“두 분도 수고하셨어요. 카렌 씨라고 했었죠?”
“미야모토 카렌입니다.”
“그리고 민준이 너도.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담부터는 이런 일이 없게 초반부터 신경 좀 써라.”
“그렇게 할게.”
어찌 보면 자신의 판단 미스였다.
‘GOS’의 상업적 성공 이후로, 상혁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스케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좀 더 화려한 연출을.
좀 더 장엄한 스토리를.
AAA게임에 걸맞은, 메이저한 장르와 메이저한 게임성을.
물론 스케일로 유저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원하지 않는 스케일’을 강요하는 것이 PTW의 기존 스타일과는 조금 달랐을 뿐이다.
자신이 조금 더 하린의 기획에 귀를 기울였다면, 처음부터 하린이 보여주고 싶었던 ‘아이디어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다면, 지금 같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수습을 하러 뛰어다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혁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유저들이 실망하면 어쩌지?’
‘2천억이나 부은 렌더링 센터는? 지금 성찬의 기획은 그 정도 설비가 필요 없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터와 모델러를 데리고, 이세계 의사물을 만들어?’
모든 고민이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다 회사 망하면 어쩌지?’
이전의 상혁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평범한 CEO가 고민할 법한 문제를 신경 쓰느라, 자신이 고른 프로젝트가 무엇을 위해 기획된 것인지를 깨끗이 무시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민준은 그런 상혁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과도한 성공이 독이 된 케이스.’
상혁은 지나치게 유저를 사랑하는 개발자인 만큼, 반대로 지나치게 유저에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컸다.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소신마저, 유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버릴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애당초 유저가 사랑하는 건,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뻘짓을 하는 PTW의 게임이지 어느 개발사나 만들 수 있는 잘 만든 AAA급 게임이 아니니까.
비록 이번 일도 결과적으로는 좋게 풀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상혁은 여전히 회사에서 가장 많은 역할과 책임을 맡고 있는, CEO의 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카렌이 입을 열어 상혁에게 말했다.
“저희 스승님은···.”
민준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이었다.
“저의 스승님, 미야모토 히게루는 넌텐도에서 정보개발본부 본부장 직을 맡고 계시죠.”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상혁이 카렌을 쳐다보았다.
“미야모토 히게루의 제자시라고요?”
“예.”
“그런데 왜 PTW에···.”
“그건 이야기하자면 좀 기니까 나중에 내가 따로 이야기해줄게.”
민준이 급하게 그녀를 커버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하세요.”
민준이 알고 있었다면 뭔가의 사연이 있겠구나 싶어서, 상혁은 카렌의 배경에 대해 묻는 대신 자신에게 하려던 말을 재촉했다.
그러자 카렌이 특유의 덤덤한 말투로 상혁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설의 개발자, 넌텐도의 미야모토 히게루가 어떻게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로 게임의 재미만이 1순위 고려 사항이라면, 경영까지 손대는 건 과욕이죠. 매일 빠져 나가는 돈을 생각하면서, 벌어야 할 돈에 대해 생각하면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실제로 돈은 나가고 있는데?”
“그건 전문 경영인이 신경 쓸 영역이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상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회귀 전 정보를 떠올렸다.
자신은 회귀전 정보로 히게루의 최종 직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크리에이티브 펠로우(Creative Fellow)라는 직책이었지? 아마?’
4대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도루의 사망 이후로, 히게루가 맞게 된 직책.
경영이 아닌, 운영 책임과 개발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직책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상혁은 카렌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입사한지 3개월, 아직 수습기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신입이, 회사의 CEO인 자신에게 CEO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예. 그리고 민준 씨와도 이미 이야기한 내용이고요.”
“민준이가?”
자신을 CEO자리에 앉히고, 지분을 100% 몰아주자고 주장한 장본인이 민준이었다.
그런 민준이 지금 와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게, 상혁으로써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이야?”
상혁의 물음에 민준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상혁을 바라보며 답했다.
“맞아.”
“흠···.이번에 좀 흔들린 것 때문에?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냐.
단지,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졌으면 해서 하는 말이지.
난 네가 당분간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개발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흠···. 다들 그렇게 생각해?”
상혁의 질문에 나머지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아는 평소의 상혁이라면, 초반부터 중심을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러자 상혁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민준을 보며 말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자.”
“괜찮아?”
“괜찮을 것도 안 괜찮을 것도 없어. 솔직히 CEO자리는 부담만 되기도 하고. 개발할 시간 쪼개서 회사 업무 처리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상혁이 책상에 쌓인 서류뭉치를 툭툭 두드렸다.
단지 일주일만 런던에 다녀왔을 뿐인데,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결제 업무 서류들이었다.
“개발자는 개발을 해야지. 나도 요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물론 여유가 없어서 실수한 거라는 변명같은건 아니고. 앞으로 더 개발을 잘하기 위해서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리고 그건 민준이 너한테도 마찬가지고.”
“어?”
“CEO를 맡기려면, 다른 사람을 추천하고 싶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상혁이 현주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 어? 어?!”
현주가 자신의 뒤를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하며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예. 제가 개발자니까 개발에 집중해야한다면, 민준이도 개발자고, 개발에 집중해야죠. 전 선생님이 적격이라고 생각해요.”
“난 그냥 고등학교 음악선생 출신인데?”
“저희가 고등학교에서 게임을 만들 때부터, 패키지 게임을 제작하겠다는데 아무 말 없이 척척 제작비를 내주시기도 했죠.”
“나, 나는 전문 경영 수업을 받은 적도 없어서···.”
“저도 없어요. 민준이도 없고.”
상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코믹콘에 전 직원을 참가 시키고 싶다고 전세기를 빌려와달라고 했을 때, 혼자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아내고는 그 어렵다는 코믹콘 기간에 호텔 예약까지 전부 처리한 게 선생님이에요. E3에서 그 많은 기자재가 왔을 때도 도우러 온 스탭들을 통솔하면서 훌륭하게 부스 제작을 지휘한 것도 선생님이고. 매일같이 부실에 와서 화분에 물을 주고, 커피 머신을 예열하고, 쓰레기통을 비우시는 것도 선생님이죠. 저희 회사의 CEO라는 자리가, 개발자가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리라면, 그 자리에 가장 걸맞은 건 현주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혁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특혜가 아니에요. 부탁이지. 회사에서 가장 힘들고 책임감이 무거운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현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혁의 말에서, 정말로 도와달라는 듯한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준이나 상혁이나, 세계적인 개발사의 임원들이라고 해도, 회사 내에서는 ‘요다’니 ‘다스베이더’니 불리는 존재들이라고 해도, 그녀에겐 여전히 귀엽기만한 제자들이었다.
자신의 꿈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제자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싶다는 욕망에 학교도 그만두고 무작정 따라온 그녀였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대표를 맡아달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엥? 아뇨? 노노노노노. 지금 말고요. 당분간은 민준이가 맡을 거에요.”
상혁은 현주에게 갑자기 CEO를 맡긴다면, 아마도 현주 역시 자신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직 자신들에게, 남겨져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일단 난 좀 쉬는 의미로 CEO 자리에서 물러날 테니 민준이가 임시로 맡아주고, 선생님은 그동안 미국에서 경영인 수업을 받아주세요.EDC(Executive Development Course:GE에서 운영하는 최고경영자 양성과정)를 가시던, HBS(Harvard Business School: 하버드 최고경영자 양성과정)을 가시던, 회사 돈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까, CEO로써의 전문 지식을 배우고 오세요. 그 이후엔, 저희 PTW의 CEO를 맡아서 최선을 다해주시고.”
상혁의 말을 들은 현주의 눈이 젖어들자, 상혁은 농담을 던졌다.
“회사 돈으로 유학 보내드리는 거니까 거기 나왔다고 다른 회사 가시면 암살자를 보낼 겁니다.”
“안가, 가라고 해도 안가!”
“그럼 됐어요.”
상혁은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가벼운 표정으로, 팀원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저 이상혁은 오늘부로 PTW의 CEO자리를 CTO인 박민준에게 넘기겠습니다. 이현주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대신 이제부터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즉 CCO(Chief creative officer)역을 맡을까 합니다.”
“넘겼다고 손 떼지는 않을 거지?”
“최선을 다해서 참견할 거야.”
민준이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CCO로서 첫 번째 결정으로, 다음 메인 프로젝트는, 콘테스트 1위를 차지한 성찬 씨의 프로젝트로 하겠습니다.”
“오빠, 저희 프로젝트는요? 하린 씨랑 같이 작업했던 거요.”
“그건 서브. 지난번에도 2위까지는 개발했으니까, 딱히 편애라고 할 수는 없겠지?”
“흠···. 고민하시던 문제는 다 해결 했고요?”
“어. 확신하는데, 이번에도 갓겜이 될 거야.”
“오, 갓겜!”
“아, 잘못 말했네. 우리 게임은 그런 게임이 아니지. 다시 말할게. 이번에도 ‘누군가에겐’ 갓겜이 될거야.” ‘아마 워함마 빠돌이들은 뒤질만큼 사랑할 만한 게임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혁이 민준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은, 차기 CEO인 민준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도록 할까?”
상혁이 옆으로 비켜서자 민준이 중앙에 섰다.
그리고 그날, CEO로써 민준이 내 놓은 첫 번째 결정은, 상혁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으로 회사를 뒤흔드는 커다란 결정이었다.
-콘테스트 폐지.-
-PTW의 기업 분할.-
-R&D전문 모회사인 PTW와, 확장 개발 및 라이브 게임 운영 전문 기업인 ‘스케일 업’으로 회사 분리.-
민준이 세운 변화된 회사 구조, 그것은 언젠가, 상혁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회사의 구조라고 말했던, ‘그 형태’를 띄고 있었다.
자신이 쉬는 동안 민준이 작성해놓은 회사 개편 자료를 보면서, 상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의 성격을 고려할 때, 확실히 이 편이 더 회사의 운영, 아니 게임의 개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오만이었나 봐.”
“너 혼자 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이기심일지도 모르지. 이제부터는 다를 거야. 나도 널 돕고, 너도 날 도울 테니까. 대신 확실하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거기에만 집중하라고. 네 역할과 재능은, 오로지 그걸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민준의 말에 상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지금 당장, 성찬 씨 기획에서 저 뭐 같은 수술 시뮬레이터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내도록.”
“어린이 플래시 게임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수술하는 의사의 기분을 전달하면서, 그로테스크 하지 않은 수술 파트 설계가 필요하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민준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걱정마라. 그게 내 전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