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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35화 (136/485)

135 Go, England

“어, 음···. 이름이···. 카렌 씨였죠?”

“미야모토 카렌입니다.”

어프렌티스인 카렌보다 높은 파다완 클래스 직원으로서 이번 콘테스트에 참가한 오성찬은 갑자기 팀에 넣어달라고 한 카렌이 매우 대하기 어려웠다.

조그맣고 인형 같은 외모 탓도 있었지만, 회사 내에서 상혁이 연봉 3억에 마스터급 지위를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못하는 게 없는 괴물 같은 존재여서였다.

그녀는 코딩도 웬만한 마스터 수준으로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며, 기획도 잘하고, 음악에 조예도 깊어보였다.

이미 상대가 자신보다 낮은 직급이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왜 신입 급 대우로 입사한지 이해가 안가는 이 여성은 상혁이 올린 프로젝트를 보고 성찬이 콘테스트 참가를 포기하기 직전에, 성찬을 찾아왔었다.

그리고는 성찬과 함께 성찬의 기획을 바닥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상혁과 똑같이.

알파 버전은 만들지 않고, 컨셉아트와 게임 제안서, 플레이 시나리오만으로 프로젝트를 구성하면서.

“생각해봤는데.”

“아,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팀장님. 제가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데.”

“어? 응. 그래서 뭘?”

“생각해봤는데, 세계관을 변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현실 배경이 아니라, 판타지 배경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성찬이 올린 프로젝트는, 고전게임 ‘테마 호스피탈’같은 류의 병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의사인 주인공이, 환자를 돌보면서 돈을 모으고 레벨을 올려 더 많은 환자를 구하는 게임.

기존과 다른 점이라면, 단순히 ‘경영’과 ‘진료’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간단한 수술 시뮬레이터를 붙여 진짜로 의사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하자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초반엔 작게 시작하니까, 그리고 의료장비 같은 것도 병원이라면 최소한 갖춰져 있어야하는 장비가 많잖아요? 아예 주인공인 의사가 판타지 세계로 가서 환자를 돌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오, 그거 좋은데요? 엘프나 드워프 같은 존재가 나오는 거죠?”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응. 난 좋다고 생각해.”

“그럼 세계관을 그렇게 바꾸는 거니까, 좀 더 절박한 환자를 구한다는 느낌을 더하는 건 어떨까요?”

“수인이나 엘프같은 이 종족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차별을 겪는다던가?”

“좋네요. 근데 그럼 너무 이종족 계열로 가게 되니까, 차라리 고급 의료는 귀족들만 받을 수 있는 거라고 하죠.”

“오. 뭔가 판타지스러워서 좋다.”

“그럼 대부분의 의약품도 전문 의약품이 아니라 가상의 약초 같은 걸로 때울 수 있어요. 이편이 게이머가 받아들일 때 배우기 더 쉬울 거예요. 약 종류도 좀 간편해질 거고.”

“그럼 그렇게 하자.”

“좋아요. 그럼 팀장님은 일단 외부 자문 비용 청구서 좀 작성해주세요. 그리고 프로젝트에 참가해줄 의사선생님도 좀 알아봐주시고.”

“알았어. 카렌 씨는 어떻게 할 거야?”

“저는 개편된 시나리오 따라서 환자 컨셉을 좀 잡아볼게요.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니까.”

의사가 되어 환자를 구한다는 경험 자체는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다.

목숨을 구해주는 것만큼, 강렬한 이미지의 ‘구원’은 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제까지 있었던 병원 시뮬레이터 게임들이 대부분 그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걸 잘 알기에, 카렌은 이번 프로젝트를 콘테스트 제출용 프로젝트로 골랐다.

‘아마도 이전의 이상혁이라면 이쪽을 골랐을 것 같으니까.’

그녀의 실력으론 이정도 아이디어를 구현하는데 딱히 문제가 없었다.

단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의사가 된 기분’을 살리게 만드는 가장 핵심 아이디어인 ‘수술 시뮬레이터’가 너무 유치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거, 역시 빼면 안 될까요?”

카렌이 기획서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하자, 성찬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게 없으면 ‘의사 시뮬레이터’가 아니라 ‘병원 시뮬레이터’같은 느낌이 될 거 같아서···.”

“하지만 수술이란 게 아무리 잘 표현해도 어렵단 말이죠. 게임으로 표현한다는 게.”

‘물론 의사의 기분이 되고 싶다.’ 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고전 보드게임 ‘Operation’도 있고, 살을 가르고 뼈 조각을 이어 붙인 뒤 봉합을 하는 플래시 게임류도 꽤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성찬이 원하는 게임의 분위기가 매우 묵직한 분위기라는 데 있었다.

피를 흘리는 자식을 안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의사가 사명감을 느끼고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그 느낌.

수술실 문이 열리고 양손을 위로 든 채로 수술실 안으로 비장한 표정을 하며 들어오는 의사의 감정.

어려운 수술을 앞에 두고 필사적으로 해온 공부를 떠올리며 숨을 고르는 의사의 기분.

그리고 힘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스탭들의 박수를 들으며 환자 가족에게 눈물의 감사 인사를 받는 그 달성감까지.

그 모든 것을 ‘생명의 무게’라는 테마 아래 유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성찬의 의도였다.

나쁘지 않다.

저게 가능만 하다면, 역대급으로 감성적인 게임이 완성될 테니.

그러나 그 감정을 전달하는데 가장 핵심인 시스템인 ‘수술 시스템’의 완성된 모습을, 카렌은 설계할 수 없었다.

‘수술 느낌은 전달해야하는데, 수술 모양이면 안 돼. 장르의 딜레마군.’

완전히 리얼한 수술이라면 컨트롤러나 마우스로 조작이 불가능하고, 모션 인식 게임으로 만들면 섬세한 메스 조작에서 미스가 나는 순간 장기가 절단날 것이며, 리얼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조작난이도가 올라감과 동시에 그로테스크함도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앞에서 그렇게 무게를 잡아놓고 수술실 안에서 들어가서 하는 게임이 플래시 퍼즐게임 수준의 수술 시뮬레이터라면, 그건 그거대로 긴장감이 팍 떨어지게 된다.

그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환부를 향해 마우스를 클릭하고 드래그하세요] 같은 메시지를 띄우는 것만큼, 멋대가리 없는 일은 없을 테니까.

‘상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선 자신이 아는 해결법 안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카렌은 자신이 기억하는 PTW의 게임들을 떠올렸다.

익스트림 발리볼 때는 2인용 대전게임에 스테이터스 육성이라는 개념을 넣어 재미를 올렸고, 마리의 눈물 때는 ‘가신 시스템’을 메인으로 여왕이 되기 위한 주인공의 궁중 정치 극을 제대로 구현해 냈었다.

배틀로얄 때는 특이하게 이 능력이 있는 ‘서번트’라는 존재 대신 ‘마스터’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하기 위해 ‘랜덤 소환’이라는 강수를 두기도 했고.

포수 회귀 때는 꼴랑 텍스트 야구 게임을 만들기 위해 전 리그 데이터를 가지고 구동되는 야구 시뮬레이터를 만들기도 했었다.

‘GOS때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플레이 하게 하기 위해서, 무려 58화 분량의 애니메이션 프롤로그를 만드는 미친 짓을 했었다.

카렌은 한숨을 쉬었다.

과거의 게임을 떠올려 봐도 상혁이 자신과 같은 문제에서 어떻게 대처했을 지를 예상할 수 없어서.

그녀가 기억하는 상혁은, 항상 그런 식으로 파격적인 방법을 통해서 게임이 가진 벽을 돌파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제출했다는 게임만 빼면.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녀가 생각하는 특별함이, 완전히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대단한 기획이다. 완성도 높고.

그녀는 단순히 기획만 가지고 게임이란 매체를 그렇게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게임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아니 심지어 제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기획서와 컨셉아트만 보고도 완전히 게임의 플레이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잡혀있는 게임의 기획이, 마치 어디서 이미 존재하는 게임을 그대로 글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라서 그녀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기획법하고는 꽤 많이 달랐으니까.

스승인 미야모토 히게루의 양해를 구하고 임시로 입사한 PTW에서, 그녀는 상혁의 기획이나 서연의 컨셉아트, 지수의 설정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전의 게임들이 ‘아이디어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게임은 ‘완성도의 클래스’를 보여주기 위한 느낌이라고, 카렌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얼마든지 있잖아. 왜 굳이 특별함을 버리는 거지?’

안일한 생각.

적당히 인기 있는 장르를 섞어서, 적당히 왕도적인 스토리를 넣고, 적당히 재밌는 시스템을 넣어서, 명작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대기업이 AAA게임을 만드는 기본 공식이었지만, 그녀가 아는 PTW의 공식은 아니었다.

‘어쩌면···. 오히려 지난번 GOS의 지나친 성공이 독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카렌은 생각했다.

아마도 유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기대를 채워야한다는 압박감에 상혁이 ‘잘못된 길’을 고른 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캐리어에 기획 관련 자료를 쑤셔 넣고 있었다.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민준의 불만스런 표정을 싹 무시하고서.

***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던 놈이, 이제는 콘테스트에서 손 놓고 영국에 간다고?”

“어. 아, 그리고 그건 걱정마라, 결핍이 뭔지는 하린 씨가 찾아줬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주머니에서 하린에게 선물 받은 우주 해병 피규어를 민준에게 던져주었다.

민준은 그것을 받자마자, 상혁이 왜 ‘런던’에 가겠다고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 그렇네. 이거면 먹히겠네. 반쯤 치트나 다름없으니까. 제대로 된 게임도 없었고.”

“그렇지? 지금 시스템에 저 IP면 개 씹사기 게임이 되지 않을까?”

“미친···. 그래서 영국이다?”

“어.”

“적어도 콘테스트는 마무리 하고 가는 게 어떨까?”

민준이 말했지만 상혁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We are spaaaace marine!!!”

“아니 그러니까 먼저 콘테스트를···.” “We are spaaaace marine!!!”

“그러니까···.”

“We are spaaaaace marine!!!”

“그만해 이 새끼야!”

민준이 상혁의 뒤통수에 촙을 날리자 상혁이 민준을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We are space marine?”

“한대 더 맞을래?”

“아니.”

“콘테스트는 어떻게 할 건데?”

“일단 이대로 진행하게. 그쪽 로열티 문제도 확인해야하고, 어디까지 판권을 얻어낼 수 있는지, ‘피의 까마귀’챕터처럼 오리지널 챕터가 아니라 그쪽의 정식 챕터를 쓸 수 있는 권한까지 따올 수 있는지. 여러 가지 확정해야할 것들이 있으니까.”

“질지도 모르는데?”

“뭐 1등 하려고 콘테스트 하나? 전에 부실로 찾아온 직원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콘테스트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수단이지 1등 하려고 진행하는 게 아냐.”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스터 클래스 한명도 안 들어간 다른 프로젝트가 1등을 하는 건 좀···.”

“뭐, 그게 대회의 묘미 아니겠냐.”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기획서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건 뭐야?”

“지금 제일 강력한 우승 후보.”

민준에게 상혁이 넘겨준 것은, 성찬이 진행 중인 이세계 의사 시뮬레이터 게임이었다.

어째서 상혁이 자신에게 이 기획을 건네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민준은, 기획서를 읽어보고는 상혁에게 물었다.

“좋은 기획이네.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그치? 그러니까 네가 가서 좀 도와주라.”

“뭐?”

“민준이 네가 가서 좀 손 좀 봐달라고.”

“내가?”

민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자 여행용 캐리어에 이것저것 자료를 쑤셔 넣고 있던 상혁이, 캐리어를 닫고는 민준을 보며 말했다.

“아까 말한대로, 1등을 하는 게 콘테스트의 목적은 아냐. 그렇지?”

“그렇지.”

“원래 목적은 시니어 직원들이 콘테스트를 통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마스터 직원들이 그것을 도우면서 완성도 높은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

“그것도 맞지.”

“그러니까 네가 가서 완성도 좀 올려줘. 이거, 아이디어는 좋은데 완성도가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 떨어지니까.”

확실히 상혁의 말대로, 성찬의 프로젝트는 치고 올라오는 속도는 꽤 빠른 프로젝트였지만 우승 후보라고 보기엔 많이 부족한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민준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면 이게 1등할지도 모르는데?”

“어. 아마 그럴 거야. 적어도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하린 씨 프로젝트는, 전부터 말하던 결핍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런던에 가서 최대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짓는다고 해도, 그 문제는 콘테스트 기간 내에 절대 수정 못해. 스토리부터 컨셉아트까지 죄다 뜯어 고쳐야 할 테니까.”

“그래서?”

“어차피 1등을 빼앗길 거라면, 적어도 제일 잘 만든 아이디어에 빼앗기는 게 낫지. 네가 가서 이걸 1등으로 만들어주라고. 네 실력정도면, 좋은 아이디어가 완성도 때문에 묻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캐리어를 들고는 현주에게서 비행기 표를 건네받고 부실을 나가버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린과 함께.

민준은 그런 상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아직도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기획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1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기왕 지는거면 자신이 지고 싶은 프로젝트를 대놓고 밀어주라고 부탁하는 상혁의 부탁이 어이없었기 때문에.

“뭐, 그래도 저게 상혁이스러운 행동이긴 하지.”

민준은 웃으며 기획서를 들고 부실을 나섰다.

상혁의 부탁대로, 아직 많이 부족한 성찬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서.

아마도 그 프로젝트가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에 1등을 빼앗긴다면, 상혁이 자신을 엄청나게 타박할게 뻔했으니까.

“그럼, 어디 1등 한번 만들러 가볼까.”

그렇게 말하는 민준의 머릿속은, 나중에 상혁이 돌아오면 상혁을 놀려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팀에 소속되어 붙는 건 처음이니까.

1전 1승도 1승은 1승이다.

나중에 상혁에게 ‘너 기획 개 못하잖아! 응, 다시 안 붙어! 억울하면 이기던가!?’라고 놀려줄 즐거운 상상을 하며, 성찬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민준의 발걸음은 매우 경쾌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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