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원팀(1 TEAM)
-X발 오지게 튀어나오네.-
몬스터로 이루어진 혈로(血路)를 뚫으며, 패스파인더가 투덜거렸다.
매번 멀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게임이 직업별 역할을 잘 배분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당초 싱글플레이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만 해도, 패스파인더라는 간지 나는 이름에 끌려 선택한 자신이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역할은, 팀에서 정말로 중요한 역할이었으니까.
어떤 보스를 잡는데 반드시 편성해야하는 특정 직업을 유저들은 키 클래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번 보스의 키 클래스는, 지금도 자신의 뒤에서 권총을 뿅뿅 쏘아대며 조심스레 따라오고 있는 파일 드라이버였다.
압도적인 보스의 방어막을 뚫고, 약점인 머리에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게임에 몇 안 되는 관통 데미지 중심의 한방 딜러.
잔탄 개념을 사용하는 자신과 다르게, 에너지 개념을 사용하는 파일드라이버는 그런 관통 계열 직업 중에서도 첫타 데미지가 높기로 유명한 직업이었다.
약점에 정확히 맞추면, 보스도 일격사 시킬 수 있다는 말에 수많은 유저들이 도전했지만, 직업 습득을 위한 훈련 수료 난이도 자체가 엄청나게 높은데다, 실제 전투에서 제대로 약점에 출력을 꽂아 넣기 힘들어서 웬만하면 고르지 않는 직업.
게다가 유리 몸이라 공격 가능위치로 이동하는데 반드시 자신 같은 ‘길잡이’클래스가 길을 뚫어줘야 한다.
팔에 달린 파일 벙커로 한번에 몹을 다 쓸어버릴 수 있는 화력이 있는 캐릭터지만, 그 화력은 온전히 보스에게 써야하기 때문에.
-몹 붙으면 절대 주무기 쓰지말고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잡을테니까!-
가끔 초보들이 몹이 붙는데 당황해서 주무기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리미트 스킬인 파일 벙커의 경우는 남은 에너지 잔량대비 데미지가 올라가기 때문에 절대 보스가 아닌 적에게 사용하면 안된다.
물론 전략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때로는 중간보스를 원킬 내고 막보스에게 집중하는 형태로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막보스를 보호하는 가드 유닛을 파괴해서 폭딜 페이즈를 유도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이 게임의 클래스 활용은 보스에 따라서 다양한 전략이 있었기에, 고수 유저들은 항상 전투 흐름의 변화 속에서 전략적 대응을 하는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그런 유저중의 한명이었고.
그러나 이번 플레이는 초반부터 패턴이 꼬여있었다.
원래 지속 딜을 담당해야하는 헤비암즈가 보스와 먼저 조우한 것도 그랬고, 자신의 리미트 스킬 게이지가 충분히 충전되기 전에 2페이즈가 열린 것도 그랬다.
거기에 그렇게 뚫은 길로 보낸 파일 드라이버 유저가 초보라는 변수도, 패스파인더 유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진짜···. X발.-
거기에 몬스터 무리 뒤편으로 보이는 거대한 중간 보스까지.
원래는 전투가 길어지면 리젠 위치에서 부름받아 참전하는 보스였는데, 이번엔 리젠위치까지 최악인 것 같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역겨워 보이는 썩은 살점을 흔들거리며, 중간 보스인 살점을 먹는 자(Flash eater)가 천천히 다가왔다.
“신선한 고기! 먹는다!”
‘어쩌지?’
리미트 스킬 게이지는 이미 차 있었다.
직선 경로로 적을 부수며 무조건 길을 뚫어내는 광범위 파괴 기술.
그리고 그 길 위에 들어간 아군은, 2초간 이동속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적이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해당 리미트 스킬의 거리가, 파괴하는 적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만약 스킬을 썼는데 목표 지점까지 길을 뚫지 못하면, 중간보스에게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길잡이인 자신 뿐만 아니라 보호대상인 파일드라이버 유저까지도.
‘보스한테 쓸까?’
리미트 스킬을 보스에게 써서 최대한 빠르게 중간보스를 잡고, 나머지는 무기 화력으로 천천히 잡으면서 길을 뚫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오랜 전투 경험으로, 그 방법으로는 아마 파티 전멸 때까지 목표지점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파일분! 잘 들어요!-
-네!-
-제가 리밋 스킬로 길을 뚫으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최대한 빨리 달리세요!-
-엥? 거리가 안 될 것 같은데요?-
이번 몬스터만 처음 잡아보는 거지, 직업 특성상 패스파인더와 매칭이 잦은 파일드라이버 유저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리밋 스킬 사거리보다 훨씬 멀리 있었기에.
-부족한 거리는 미리 뚫고 스킬 쓸 거예요! 제가 321외치면 바로 돌진 기 쓰세요!-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패스파인더 유저의 총이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체력 회복량을 희생해서 일정시간 집탄성과 발사 반동을 줄이는 스킬. [탄환의 춤(Bullet dance)]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리스크가 없는가?
당연히 있다.
이 게임은 무조건 마지막 보스가 잡힐 때까지 각 유저가 살아있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투 중간에 누군가 죽는다면, 그 유저는 해당 전투의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방식.
그러니까 지금처럼 뒤가 없는 행동은 전투 보상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파일드라이버 유저가 일격 필살에 실패하면, 자신은 무조건 저기서 걸어오는 중간보스에게 죽을 테니까.
‘그래도 이게 내 직업이지.’
패스파인더(Pathfinder).
길잡이라는 의미답게 공략의 키가 되는 플레이어를 공략위치로 옮길 수 있는 기술에 특화된 직업.
다대 1 전투에 특화되면서 저지력이 강한 탄환으로 적의 발을 묶는 능력이 탁월한 클래스였다.
그리고 그런 직업의 특성은, 애당초 싱글플레이에서 클래스를 선택할 때부터 뼛속까지 새겨진 자신의 개성이라 할 수 있었다.
‘바퀴달린 곰 인형도 지켜냈는데 유저쯤이야.’
싱글플레이에 있는 직업 수련 파트에서, 패스파인더 유저는 몰려오는 더미 로봇을 막으며 바퀴달린 곰 인형을 임무 위치까지 지켜내는 수련을 받는다.
당연히 내구도가 처참하기에 근처에서 몬스터가 휘두른 발톱에 스치기만 해도 곰 인형은 박살난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정말 오지게 느리게 움직이면서 전투에 1도 도움 안되는 그 빌어먹을 곰 인형보다는, 지금처럼 뒤에서 권총으로 지원사격이라도 해주는 플레이어가 압도적으로 고마운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3!-
사용한 스킬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HUD로 확인한 패스파인더 유저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리미트 스킬을 쓰기 위해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최대한 막는 몬스터가 적은 경로에 써야 거리가 길어진다.’
뱅가드의 리미트 스킬과 비교하면, 건물 벽을 부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이 부족한 스킬이지만, 그 길을 이용하는 아군의 이동속도도 늘려주는 것이 패스파인더 리미트 스킬의 장점이었다.
-2!!!!!!!!-
그리고 자신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최적의 각도로 리미트 스킬을 적중시킨, 나름의 고수라 할 수 있었다.
-1!!!!!!!!뛰어요!!!!-
순간 자신의 캐릭터가 리미트 스킬 [패스파인더(Pathfinder)]를 발동시키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속으로 간절히 하늘에 빌었다.
‘제발 닿아라 X발’
캐릭터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마치 광선처럼 뻗어나가며 직선상의 적을 절단했다.
그리고 그렇게 뚫린 동그란 빛의 터널.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게 지킨 캐릭터가 한줄기 벼락처럼 쏘아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패스파인더 유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자신의 곁에 다가온 중간보스가, 손에 든 거대한 칼을 자신에게 희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패스파인더 otata 님이 사망했습니다.]
-으아아아아아!!!!-
평소보다 300%는 빨라진 자신의 캐릭터를 보면서, 파일드라이버 유저가 소리 질렀다.
자기 보상까지 포기한 도박수로 자신을 보스에게 보낸 동료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리고 그런 기대까지 받은 이상, 자신은 반드시 일격을 꽂아 넣는데 성공해야했다.
-뒈져라아아아아아!!-
신기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멀티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인데, 어차피 이번 보스를 잡지 못해도 다시 트라이 하면 되는데도, 게임이 자연스레 각자의 역할을 강요하면서, 마음속에 책임감이 샘솟는다.
보스를 붙잡기 위해서, 적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다친 유저를 살리기 위해서.
각자가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해 공략에 임하는 동안, 이미 자신의 기분은 게이머가 아닌 함께 악마를 토벌하는 멸살대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1명의 희생을 뒤로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단 1초안의 시간에 확실하게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파일 드라이버’라는 직업을 고른 모든 유저가, 이 게임의 멀티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며 가장 토나오는 순간이고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라고 평하는 그 순간이.
-일점 집주우우우웅!!!!-
방금 전까지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던 건물 3층에서 파일드라이버 유저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마치 SF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뱅가드 유저는, 그런 멋진 풍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하게 파일드라이버 유저는 리미트 스킬 쓸 때 스킬명을 외치는 사람이 많더라.’
패스파인더의 직업 수련 과정이 바퀴달린 곰인형을 지키는 방식이라면, 파일드라이버 유저의 수련 방식은 공중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금속 구슬을 파괴하는 것이다.
처음엔 솔방울부터, 그리고 나중 가면 파괴 불가능한 특수 금속으로 불리는 언옵테늄(Unobtainium)으로 만든 강철구를 부숴야한다.
그것도 진자운동이 아니라 공중에 날아다니는 녀석을.
스킬을 쓰는 순간 적의 약점이 화면에 출력되는데, 조준 포커스를 오래 유지할수록 소모되는 에너지와 데미지가 증가한다.
당연히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는 타겟에 조준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트루 데미지를 컨셉으로 하는 몇몇 직업 중에서도 수련 통과 난이도가 최상위라 불리는 직업.
그러나 맞추기 힘든 만큼, 성공했을 때의 그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딜!”
순간 공중에 있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악마의 손에서 아름드리 나무만한 굵기의 가시가 세차게 뻗어나왔다.
공중에 뜬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그러나 동요하지 않는다.
스킬이 발동 되는 순간부터, 파일 드라이버 유저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은 스킬의 에너지 장에 의해 소멸되니까.
조준점만 유지하면 되는 직업.
그러나 그 조준점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직업.
제대로 엄호도 불가능하고 자신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한 쓰레기 직업을 고른 유저에게 PTW가 선물한 것은, 그 갑갑함을 뚫어버릴 정도의 압도적인 데미지였다.
그렇게 가시를 뚫으며 돌진하던 자신의 거대 송곳이 보스의 이마와 충돌하는 순간, 두터운 바리어가 송곳의 침입을 저지했다.
[최종 출력. 86.5%]
-으아아아아아!!!-
순간 송곳 뒤쪽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분출되면서, 파일 드라이버 유저의 캐릭터가 보스의 머리를 말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닥에 거대한 크리에이터를 남기며.
[위험 요소 제거 성공. 최종 생존 인원 4/5. 임무 달성을 축하합니다.]
-잡았다아아아아!!!-
-85퍼 출력 미쳤냐구! 초보시라더니 완전 잘하시잖아요! 보스가 한방이네!?-
-아 피 4퍼 남았는데 직전에 잡았네! 파일드라이버님 잘하셨어요!-
-빨리 다음판 가죠! 이번엔 패스파인더님도 보상 받을 수 있게!-
-그러게요. 저도 이제 공략 알았으니 다음번엔 더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다들 수고요!-
-수고하셨습니다아아!-
“하아아아아.”
하린이 한숨을 쉬었다.
유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지, 각 페이즈에서 어떤 재미를 받으며 게임이 유저에게 어떤 판단이나 스킬을 요구하는지, 싱글플레이에서 유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이, 단지 글을 보는 것인데도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하는 느낌처럼 잘 살려져 있는 플레이 시나리오였다.
읽는 동안 정말로 자신이 유저가 된 느낌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느낌에, 하린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CEO가 가진 스킬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장르를 남한테 표현하는 것인데도, 이렇게 이해가 되기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획력은 자신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작 이 말도 안 되게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 플레이를 기획한 장본인은, 언제나처럼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때요?”
상혁이 물었다.
“좋네요.”
“리액션이 약한데?”
“그래요?”
하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우우우우우우”
그리고는 허리를 굽혔다 펴며 만세를 불렀다.
“우우우우울트라 짜아아앙 좋아아아요오오오!!”
“오! 리액션 맘에 든다.”
상혁이 웃으며 말했지만 하린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상혁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아니, 진짜 미친 거 같은데요? 나오면 진짜 세상 뒤집어질 거 같은데? 아니 머릿속에 뭐가 있으면 이런 걸 상상하는 거예요? 대표님 머리 좀 쪼개 봐도 돼요?”
‘미래에 나올 게임 17년분의 지식?’
상혁은 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조용한 하린이 이정도로 적극적으로 기뻐하는 건, 기획자로써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단 좀 진정하시죠.”
“이걸 보고 진정할 FPS팬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 당장 해보고 싶어서 미칠 거 같은데? 상혁 씨. 지금 당장 게임을 만들죠! 아니다, 저 빨리 사람 모으러 갈게요! 이 플레이 시나리오만 있으면 사람 모으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아요!”
하린이 좀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아 상혁은 손날을 세워 하린의 머리에 가볍게 촙을 날렸다.
때리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제스쳐 같은 느낌으로.
“진정해요. 팀장님.”
“아, 네? 네. 아,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요. FPS팬으로써 너무 미칠 것 같아서.”
“그럼 좋은 거죠. 하지만 아직 넘어야할 장벽이 많아요. 우선 지금 있는 부분은 멀티플레이에 대한 플레이 시나리오고, 싱글플레이 쪽은 좀 더 기획과정을 거쳐야하니까.”
“수련 파트같은 느낌이 아니었어요?”
“저는 이 게임의 수련 파트가 단순히 직업 스킬을 수련하는 느낌의 튜토리얼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럼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신데요?”
“하린 씨는 어땠으면 좋겠어요? 이런 종류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 싱글플레이에서 어떤 재미를 주는 게 적절할까요?”
상혁의 질문에 하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좀 어려운데···.”
“이 아이디어의 기초는 하린 씨의 욕망에서 시작된 거예요. 저는 그 욕망이 그리는 이상향을 게임으로 기획한 것뿐이고요. 하린 씨는 애초에 뭘 원해서 뭘 만들고 싶어 한 거죠?”
하린은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이 악마와 싸우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생각한 걸까.
자신은 거기서 어떤 느낌을 전달하길 원했던 걸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상혁은 그런 하린을 재촉하지 않은 채, 하린이 구워온 쿠키를 집어먹으며 조용히 결론이 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혁이 쿠키를 다 먹어갈 때쯤, 하린이 고개를 들어 상혁을 보며 말했다.
“여···.영웅의 이야기요?”
악마와 싸우며 세상을 구하는,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
그것은 게임 업계에 헬게이트를 열었던 ‘지옥문:런던’도 똑같이 그려내려고 했던 이야기였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같은 테마에, 개 망작으로 불리는 셈플의 존재에 대해 뻔히 아는 상혁.
그러나 상혁은 개발자인 빌 로퍼가 그리려고 했던 그 로망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단지 전달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뿐.
그리고 지금 하린이 그리려고 하는 그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상혁이 할 일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원 역사에서 완전히 망해버린 컨셉의 게임을, 회귀한 세계선에서 제대로 유저에게 전달하는 것.
“좋네요. 영웅의 이야기.”
“그래요?”
“유저는 모두 자신이 영웅이 되기를 원하니까요. 제대로만 전달할 수 있다면, 끝내주는 싱글플레이를 만들 수 있겠죠.”
그 ‘방법’에 대한 계획은, 이제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혁은 그것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영웅’에 대해서라면, 세상 누구보다 제대로 된 스토리 라인을 잡아줄 수 있는 인재가 있었으니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싱글플레이에 대한 기획을 시작해볼까?”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남아있는 마지막 쿠키를 어디론가 집어던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옆에서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지수가, 상혁이 던진 쿠키를 잡아 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기다리느라 지칠 뻔 했어요. 상혁오빠. 이제 그럼 제 차례인거죠?”
‘플레이’의 전문가인 상혁이 ‘스토리’를 맡기려고 하는 전문가.
그것은 20살의 어린 나이로 올해 세계를 발칵 뒤집은 GOS의 메인설정을 홀로 모두 도맡은 PTW의 설정분야 마스터 직원.
‘The 중2병 마스터’ 이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