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사냥의 시간
두텁게 깔린 먹구름인지, 아니면 불타는 도시에서 올라온 구름인지 모를 짙은 안개 사이를, 거대한 군용 수송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곧이어 비춰진 실내 내부에서, 몇 명의 군인들이 홀로그램을 중앙에 두고 서 있다.
눈에 익숙한 형태의 수송기와는 다르게, 군인들의 복장은 어딘가 현대 군인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군 군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거기 달린 보호대는 SF게임에서나 볼법한 형광색 라인이 빛나는 금속 물체같이 생긴 느낌으로.
마치 현대 군인에게 미래의 장비를 가져다 붙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단단해 보이는 장비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병사가 입을 열었다.
-오늘 파티 구성 좋네요. 요즘 슬로터러(Slaughterer : 도살자)가 너무 늘어나서 슬로터팟 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인게임 무전을 사용하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목소리에 통신 노이즈 필터가 적용된다.
그래도 편리하기도 하고, 분위기도 그럭저럭 잘살려주고 있기에 유저 대부분은 인 게임 보이스 채팅 기능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나온 지 꽤 된 보스니까, 다들 깨본 적 있으시죠? 브리핑은 따로 하지 않을게요?-
탱커 역할을 맡은 유저가 그렇게 말하자, 한 유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한데 저는 처음이요.-
-예? 직업이···. 아, 파일 드라이버(Piledriver)네? 키 클래스라 초보는 힘들 텐데?-
그러자 팀 멤버를 모은 다른 유저가 말했다.
-그냥 가죠? 어차피 키 클래스 유저 중에 파일 드라이버 유저 많지도 않은데. 직업빨로 밀면 되지 않을까요?-
-패스파인더(pathfinder)님. 커버 가능하시겠어요? 파일드라이버가 보스 딜이 압도적이라 그렇지 유리몸에 경로 뚫는 것도 권총밖에 없어서 힘들 건데?-
-제가 잘하면 되죠. 파일님은 2페이즈 되면 제 뒤만 잘 따라오세요. 길은 제가 책임지고 뚫을 테니까.-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는 보스 때릴 때 하시고 그전엔 사리세요.-
-옙.-
-공략은 아세요?-
-홈페이지에서 파일드라이버로 공략하는 영상 보고 왔어요.-
-Banshee님꺼 영상이면 그건 참고하기 힘들 건데. 워낙 넘사인 분이라···.-
-연습 많이 하고 왔습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럼 일단 한번 헤딩 해보죠. 컨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번 보스 직업 상성은 파일드라이버가 제일 좋으니까.
클린히트 부탁드릴게요.-
-넵!-
-처음인 분 있으니 간단히 공략 전달 드립니다.
우선 낙하 직후에 가드 분들이 유틸 분들 한분씩 맡아서 집결지까지 데려오세요.
이후에 파일님 빼고 나머지는 전부 전투 개시후에 딜 들어가고 피빼다가 2페이즈 되면 패스파인더님이 열린 경로로 길 뚫고 가시면 됩니다. 파일드라이버님은 패스파인더님만 따라가면서 권총질만 하시고, 절대 리밋기(Limit skill) 쓰지 마세요. 중간 보스 있어도 패스파인더님이 뚫을 테니 절대 응전하지 마시고요.-
-네.-
-경로 따라 보스한테 리밋 스킬 먹이는 방식이 다른데 그건 경로 열리는 거 보고 패스님이 설명해주실거예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일님이 리밋기 정확히 못 때리면 파티 전멸이에요. 진짜 운 좋으면 두 번째 경로 열릴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한방에 죽여주세요.-
-옙!-
-기본은 다 아시죠? 독 뿜는 거 잘 피하고, 촉수 나오면 촉수부터 잡고, 배리어 쓰기 시작하면 딜 멈추고 졸부터 잡고요.-
-옙.-
-준비되시면 레디 박아주세요.-
HUD로 표현된 대원 리스트의 이름 옆에 표기된 [READY] 버튼에 불이 들어오자, 파티장인 뱅가드(Vanguard)유저가 미션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노란색의 빛을 띄던 비행기 실내 조명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과 경보음을 울리며 적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임무 지점 도착까지 앞으로 30초. 모든 멸절대(Exterminaters)는 드랍을 준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든 멸절대 대원은 드랍을 준비···.]
벌써 수백 번은 들었을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수송기 후방의 리어게이트로 이동한 유저들은 기계음과 함께 게이트가 천천히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펄럭이는 바람소리가 고막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페이즈부터는 음성 대화에 바람소리가 섞이기 때문에, 바닥에 도착할 때까지는 소리를 지르며 무전을 해야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뱅가드 플레이어는 이 순간을 좋아했다. 진짜로 작전을 위해 낙하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드랍 순서는 메딕! 헤비암즈! 저! 파일 드라이버! 패스파인더! 순으로 낙하합니다! 나중에 떨어지는 분들은 유틸분들 죽지 않게 위쪽에서 접근하는 적을 잡으면서 낙하 해주세요!-
-예!-
[드랍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무운을.]
-가즈아아아아!!-
-화이티이이잉!!-
각자가 소리를 지르는 사이, 메딕이라 불린 여성 유저가 뛰어내리고 줄줄이 소세지처럼 파티원들이 수송기에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들을 향해 새까맣게 달려드는 날개달린 괴물들의 무리였다.
-와, 매번 보는 거지만 겁나 많네!-
공중에서 주무기인 산탄총을 갈기며, 뱅가드 유저가 말하자 무전으로 엄청난 총소리와 함께 헤비암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도 안 붙게 할 테니까 태커님은 자기한테 붙은 것만 처리하세요.-
기본적으로 이 게임에서는, 정확히 원하는 드랍 포인트에 유저가 착지할 수 없도록 날아다니는 악마들과 지상에서 쏘아지는 포격이 유저들을 흩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유저들은 체력이 약한 유저를 먼저 낙하시키고 위쪽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식으로 파티원을 지키며 낙하를 시도하곤 했다.
-대공 포격! 피해요!-
바닥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마그마의 줄기가 솓아 오르자, 대원들은 옆구리에 달려있는 부스트를 사용하여 급하게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렇게 공격을 피하며 바닥에 닿기 직전, 낙하 충격을 막아주는 부양장비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불꽃을 아래로 쏘아 내렸다.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위쪽으로 날아오르며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3인칭 시점으로 공중에서 몸을 돌려 히어로 랜딩을 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준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캐릭터 후방으로 이동하면서, 미션이 시작되었다.
-아, 착지 지점 개같네 진짜.-
시작하자마자 몰려드는 거대 야수같이 생긴 몬스터들에게 샷건을 갈겨대면서, 뱅가드 유저가 투덜거렸다.
전파 방해 때문에 미션 지역에 도착하면 근거리 통신 외에는 원거리로는 통신이 불가능 해 진다.
뱅가드 유저는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하면서, 아까 위에서 보았던 메딕이 드랍된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가드역을 맡은 유저들이 유틸리티 유저들을 빠르게 보호해야 보스전에 돌입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는 자신의 예상대로 빈약한 무장을 가지고 힘들게 뒷걸음질을 치며 몬스터를 공격하는 메딕 유저가 보였다.
-갑니다!-
등 뒤의 부스트로 돌진하며 공격당하는 아군을 공격하는 적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스킬 [아웃 버스트(outburst)]를 사용하며 뱅가드유저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잔챙이 몬스터들이 산산조각 나며 체액을 흩뿌리는 모습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힐 쓰지 말고 제 뒤에 따라오세요. 바로 헤비 유저 구하러 갈게요.-
태세를 방어태세로 전환하자 온몸의 방탄 플레이트가 펼쳐지며 육중한 중갑옷을 입은 형태가 된 뱅가드 유저가, 접이식 방탄 방패를 피며 앞서나갔다.
-왼쪽이요.-
사방에 무너진 골목이라 일직선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기에, 뱅가드 유저는 이리저리 길을 타며 헤비암즈 유저를 찾아다녔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의 공격헬기가 전탄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가면, 그곳이 헤비암즈 유저가 있는 곳이니까.
그러나 총소리에 가까워질수록, 뱅가드 유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자꾸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자주 파티를 했었던 유저라 알아들을 수 있는 특유의 소리.
그것은 전체 캐릭 중 지속화력 2위인 헤비암즈 캐릭터가 리미트 스킬, [집중사격(Massed Fire)]을 사용할 때 나는 소리였다.
‘설마 벌써 보스 만났나?’
운이 안 좋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파티원이 모이기 전에 보스를 만나게 되면, 그 순간 보스가 공격을 시작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뱅가드가 메딕에게 외쳤다.
-힐러님 앞에 한번에 뚫을게요! 뛰어서 따라오세요!-
빌딩 오브젝트를 부수면서 길을 뚫는 기술.
뱅가드의 리미트 스킬 [교차돌진(Crossroads)]을 사용하기 위해서.
순간 뱅가드의 방패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정면에 달린 기어가 불꽃을 내며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굴을 뚫을 때 쓰는 거대한 회전 드릴처럼.
그리고 방패 뒤쪽에 달린 6개의 로켓 부스터가 불을 뿜으며 뱅가드의 몸이 폭발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 기술 자체가 몸으로 방패를 미는 스킬이 아니라, 방패를 날리고 몸이 따라가는 스킬이기에, 이 스킬이 시전 되면 일정 거리에 도달할 때까지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지금 가진 수단중에서는 헤비암즈가 죽기전에 가장 빠르게 전투지역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므로, 뱅가드는 메딕 유저의 호위를 포기하고 게임당 1번밖에 쓸 수 없는 자신의 장비 리미트 스킬을 사용했다.
-아 x발 진짜 왜 여기 보스가 있는데에에!!-
헤비암즈 유저의 어깨에 달린 미니건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총알을 뿜고 있었다.
보스를 잡기 위해서? 아니다.
보스는 아까부터 수없이 쌓인 시체의 산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스가 소환한 촉수. 그것 하나를 잡는데도 압도적인 화력을 소모해야했다.
애당초 5명이 같이 잡게 설계되어있는 분량의 소환물이니까.
아무리 자신이 화력이 좋은 캐릭이라 하더라도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와 x발 겨우 잡았네. 역시 개사기캐.-
이속도 느리고, 방어력도 약하지만 그 압도적인 화력만 가지고 인기순위 상위권을 랭크 하는 캐릭터답게, 헤비암즈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었다.
보스를 1:1로 잡을수는 없더라도, 리미트 스킬을 동원하면 어떻게든 5인분의 촉수까지 다 잡을 수 있을만큼 강력한 캐릭터였으니까.
그러나 저 뒤편에서 달을 배경으로 서서히 일어나는 악마를 보며, 헤비 암즈는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건 진짜 탱커가 아니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니까.
“인간 주제에” “인간 주제에”
마치 두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헤드폰을 울렸다.
개발자가 불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만든 것 같은 목소리 연출로, 자리에서 일어난 악마가 유저를 바라보았다.
“버러지 같은 열등 생물 같으니. 감히 내 사랑하는 자식들을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악마의 왼팔에서 거대한 가시들이 튀어나와 자신을 겨누는 모습을 보며, 헤비암즈 유저는 죽음을 직감했다.
-···져라···-
그때, 지지직거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비행기에서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악마가 서 있던 언덕 옆에 있는 건물이 화려하게 폭발하며 중 갑옷을 입은 뱅가드가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튀어나왔다.
-뒈져라 이색기야아아아아!!!-
공중에 떠오른 뱅가드가 악마에게 방패를 집어던지자, 악마와 충돌한 방패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도착한 뱅가드는, 등에 달린 작은 방패를 꺼내 펼치며 재빨리 헤비암즈의 앞을 막아섰다.
-오! 뱅가드님 방금 좀 영화 주인공 같았음!-
-그쵸? 이 맛에 뱅가드합니다!
메딕님은 조금 버티면 오실 거예요. 일단 둘이서 시간벌기 들어갑니다.-
-메인장비 쓰셨는데 괜찮아요?-
-그러니까 너무 많이 붙지 않게 빠른 쫄 처리요!-
어그로를 끄는 스킬 [전투의 외침(Taunt)]를 쓰며 뱅가드가 돌진하자, 헤비암즈 유저가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뱅가드 유저는, 원래 있어야할 촉수가 안나오는 것을 보며 헤비암즈 유저에게 물었다.
-촉수 안 나오는데?-
-아, 제가 다 잡았어요.-
-엑?! 그게 되요?-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아, 젠장, 그럼 바로 2페이즈인데! 패스님 왜 안 오지?-
-저 왔어요! 오자마자 같이 쏘고 있잖아요!-
-아 헤비암즈님 공격 땜에 못 봤어요. 파일님은?-
-저도 뒤에 있습니다. 권총밖에 안 썼어요 아직.-
-그럼 2페이즈..-
“귀찮은 잔챙이들 같으니!”
뱅가드 유저가 말을 이어나가려고 하는 순간, 뱅가드 유저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던 악마가 뒤로 점프했다.
그리고는 반투명한 배리어를 펼쳐 유저들의 탄환을 전부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내 아이들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느냐? 진정한 지옥을 보여주마!”
순간 시체의 산에 오른쪽에 있는 건물의 3층 유리창이 깨져나가며, 마치 파도처럼 짐승형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방쪽에 있는 길에서도, 마찬가지로 날개 달린 작은 악마들이 송곳니를 번득이며 파티에 달려들었다.
-아, 그 패턴이네! 패스님! 바로 가요!-
-괜찮겠어요?-
-안 괜찮으면 어차피 전멸이에요! 뚫고 가!-
뱅가드 유저의 말이 끝나자마자 패스파인더 유저가 양손에 든 기관 단총으로 후방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파일님! 따라와요! 권총만 쓰시는 거 잊지 마시고!-
-네!-
길을 뚫으며 전진하는 패스 파인더의 뒤를 파일드라이버 유저가 따라가자, 뱅가드 유저가 외쳤다.
-힐줘요! 힐! 여기서 폭힐!-
이제 남은 건, 파일 드라이버 유저가 저 악마의 대가리에 방어력 무시로 들어가는 리미트 스킬의 트루 데미지를 먹여주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때까지 최대한, 자신이 적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때였다.
“흠···. 상혁 씨?”
그때, 상혁이 작성한 플레이 시나리오를 여기까지 읽은 하린이, 손을 들며 상혁에게 물었다.
“예. 팀장님.”
“이거, FPS 맞아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가 아니라?”
“맞는데. 총 쏘잖아요 총.”
“아니, 총 쏜다고 다 FPS는 아니지 않나? 플레이 시나리오 내용을 보면, 무슨 와우 레이드 같은 느낌인데요? 직업별로 능력 있고, 공략법 있고, 페이즈마다 역할 정해져있고.”
“뭐. 그렇죠. 이번 게임 플레이의 메인은, 플레이어의 ‘자긍심’이니까요.”
“자긍심?”
“각 파트에서 자신이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기분을 느낄 때, 유저는 자신의 직업에 애착을 가지게 되니까요. 전 그걸 FPS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와우 인던에서 느끼는 포지션 별 역할극을 FPS PVE로 구현하신다는 건가요?”
“예.”
“일반적인 FPS는 그냥 딜센 캐릭 모여서 싸우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요. 그렇지만···.”
상혁이 말했다.
“저희는 평범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상혁의 말을 들으며, 하린은 얼마 전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만든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들이, 진심으로 개발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던 광경을.
“그렇네요. 저희가 평범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죠.”
“뭐, 그렇다고 특이한 걸 너무 추구하다가 재미를 잃어버리면 그건 주객전도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어디까지나 기획팀장으로써 팀장님께 이런 플레이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제안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최종 결정은, 팀장님이 하시는 거고요.”
“저는 조금 더 평범한 형태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흠. 그럼 이건 별로라는 건가요?”
상혁이 묻자, 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로라뇨? 이게 어떻게 별로겠어요? 100명이 보면 98명은 재미있다고 할 것 같은 게임인데요?”
“2명은 뭐에요?”
“게임 고자랑 사기꾼.”
그 이야기를 들은 상혁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하린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상혁이 확실하게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더 흥미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 했던, 플레이 시나리오의 후반부 파트를 마저 읽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