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27화 (128/485)

127. 샌디에이고 코믹콘

번 아웃(Burnout).

어떤 일에 온 힘을 다해 매진하던 사람이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꺼진 것처럼 무력감에 휩싸이는 현상.

스트레스 관련 질환이 대부분 그렇듯 사람마다 원인도 다양하고 증상도 천차만별인 병이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현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글로벌 히트작 연속 출시에 성공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게임제작사로 발돋움 하고 있는 PTW에서 정의하는 번 아웃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번 아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무기력함이나 스트레스성 증상뿐만 아니라, 기분 좋은 달성감 이후에 찾아오는 붕 뜬 기분까지 번 아웃 증후군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며칠 쉬다 잡으려고 하면 손에 안 잡히는 법이다.

상혁은 GOS의 성공적인 발매 이후에 회사에서 풍겨지는 특유의 붕 뜬 분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휴가나 보너스를 안 줄 수도 없고.

목표 달성 이후의 보상에 대한 실망으로 발생하는 번 아웃은, 달성 이후의 보상으로 발생하는 번 아웃보다 심각하니까.

단지 종류가 좀 다를 뿐, 둘 다 게임개발에 독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긴 나만 해도 그런 느낌이 없는 건 아니니까.’

정신없이 달려온 여정의 끝에서, 기분 좋게 승리의 기쁨을 맞이하고, 들어오는 돈을 보고 있는 감각은 사람의 절박함을 박살내버린다.

아직도 미친 듯이 팔리고 있는 GOS의 매출을 감안하면 적어도 웬만한 AAA급 게임 3개 정도는 말아먹어도 될 만한 금액이었으니까.

심지어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고 있는 PTW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절박함을 가져야한다.

‘조금 더 잘 만들고 싶어.’

‘조금 더 사랑받고 싶어.’

‘조금 더 인정받고 싶어.’

승진, 보너스, 연봉 상승, 명예, 권력, 자기만족.

사람마다 일하는 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지만,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 ‘다음 단계’를 노려야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몸은 편하게. 마음은 절박하게.’

상혁이 모니터 속 바탕화면에 적어둔 글자가 그것을 대변한다.

현상 유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상혁이 두 번째 콘테스트를 진행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미 정점에 서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직원들이 잃어버린 ‘절박함’을 빌리기 위해서.

상혁은 무기력이 전염되는 것처럼, 열정도 전염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각 팀에서 ‘기회’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시니어급 직원들이 이번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기 위해 휴일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 하고 있었고, 그 열의에 감화 받은 마스터급 직원들도 함께 휴일을 반납하며 제출용 작업물을 함께 만들고 있었으니까.

물론 휴일을 반납하고 직원들이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돈은 무지막지하게 깨지고 있었지만 상혁은 지금의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렌더링 센터를 만든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느낌인데···.”

2000대 규모로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3000대정도의 초 고 사양 컴퓨터를 병렬시켜놓은 PTW의 렌더링 센터는, 헐리우드 특수효과에 근접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을 수 있는 시설로 유명했다.

자연스레 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었고.

다음 프로젝트가 무엇이든간에 적어도 그래픽 수준에서는 유저들이 엄청나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부담감을 알고 있는지, 대부분의 프로젝트 구인에서 공개하고 있는 인물들이, 렌더링 센터 관련 직원들이었다.

“어? 기왕 만든 거 활용하는 게 좋은 거 아니니?”

현주가 묻자 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저건 도구지 목적이 아니에요. 애당초 로봇 장르의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포텐셜의 극한을 뽑기 위해서 저게 필요했던 거지, 저걸 활용하기 위해서 용자 로봇 게임을 개발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 프로젝트는 반대다?”

“뭔가 동영상 퀄리티로 때우려는 기획들이 많네요. 게임 제작은 내가 망상한 걸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닌데.”

“그럼 목적이 뭐여야 해?”

“유저죠.”

상혁이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유저가 즐거워할 만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거예요. 저는 적어도 저희 회사 게임은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유저가 플레이하면서, ‘아, 이 게임은 진짜로 개발자가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이구나!’ 라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만한 게임이요.”

“PTW팀원들은 다들 그런 분위기 아냐?”

현주의 질문에 상혁이 쓴 웃음을 지었다.

“전부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당연히 PTW도 기업이기에, 직원마다 일을 하는 목적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과 초기부터 함께한 직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준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일했던 서연도, 지금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상혁과 일하는 게 목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콘테스트 참가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하린 역시, 일반적인 제작자처럼 자신의 이상을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두 사람 다 의도는 달라도 의욕 자체는 높기 때문에 결과물은 매우 괜찮게 나오는 편이었지만, 상혁은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개발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사람의 목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니까.’

가이드 역할인 자신이 균형을 잡으면서 개발을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상혁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PTW의 직원들이, 유저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사랑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개발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임을 만들면 정말로 게이머들이 좋아하겠지.’ 라는 마음.

상혁이 회귀전이나 회귀후나 게임 개발을 하는 동안 언제나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마음.

초심.

흥행성적, 돈이나 커리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유저에게 실망감을 주는 광경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던 상혁이기에, 그것은 상혁이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 할 수 있었다.

‘모바일 시장이 잘 나간다고 기존 팬들에게 폰없찐 시전 하는 그런 회사는 절대 되지 않게 해야지.’

그래도 자꾸만 그런 마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유저는 멀리 있고, 상사와 돈은 가까이 있으니까.

“어?”

고민하던 상혁은 자신에게 온 메일을 보고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Dear Mr. Sanghyeok Lee]

메일의 정체는 매년 7월 말에 열리는 샌디에이고 코믹콘의 스페셜 게스트 초청메일이었다.

PTW의 멤버 중 GOS의 핵심 개발진을 2007 코믹콘의 스페셜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다는 메일.

메일을 본 상혁의 머릿속에 뭔가의 아이디어가 번득였다.

그리고는 코믹콘 운영진에게 답신을 적고는 회신을 확인한 후 현주를 불렀다.

“선생님. 비행기표좀 구해주실래요?”

“어? 출장?”

“예. 출장요.”

“응. 어디로 갈 건데? 몇 장이나 준비할까?”

“332장 준비해주세요.”

“응, 뭐?!”

“7월 열리는 샌디에이고 코믹콘. 그곳에 저희 PTW의 전 직원을 데려가겠습니다.”

***

300명이 넘는 인원을 한 번에 옮기려면, 아예 전세기를 대여하는 게 빠르다.

당연히 돈이 깡패라고, 해당 항공기를 빌려오는데 필요한 추가 비용까지 지불하겠다고 하자 대한항공 측에서 400명 이상 탑승 가능한 보잉-777을 해외 항공사에서 임시로 하나 빌려다주었다.

거기에 그 많은 인원이 코믹콘이 열리는 지역에 호텔을 예약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기에, 현주는 행사 전까지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그래도 기어이 여러 호텔에 걸쳐 예약을 해낸 점이 그녀의 대단한 점이긴 했지만.

가끔 보면 이렇게 회사 외적인 일에서 해괴한 업무능력을 보이는 현주를 보며, 상혁이 사실 현주가 대기업에서 비서실장 같은걸 했어야하는 인물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물론 상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원래 재벌 집안에서 자랐던 현주가 아버지 쪽 인맥을 동원해서 해결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려 회사에서 전용기까지 대여해서 코믹콘 행사에 참여한다는 이야기에 직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흥분하고 있었다.

특히 공평하게 ‘320명 사다리 타기’로 결정된 1등석 내기에 뽑힌 이범배는 거의 꿈꾸는 표정으로 공항에 내림으로써 자기가 내기하자고 해놓고 이코노미 좌석에 걸린 상혁을 살짝 허탈하게 만들었다.

12석의 1등석 중 성연/민준/현주/서연/지수의 5자리를 제외하고 본인까지 6자리 해서 6자리가 남아있었는데, 원래 시니어 이하 직원들 중 6명중 추첨하기로 한 걸 재미있겠다고 본인 자리를 걸고 내기를 걸었다가 이코노미를 타고 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상혁은 비행기 안에서 초창기 PTW썰 등을 풀며 12시간에 가까운 긴 비행시간동안 직원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샌디에이고.

최신 게임의 공개가 목적인 E3같은 게임쇼와는 다르게, 이번엔 게스트로 유저들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기에 상혁은 편한 마음으로 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적어도 행사장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뭐냐 이거. 코믹콘 맞지? 우리 회사 행사 아닌 거 맞지?”

확실히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GOS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엄청난 인기를 얻긴 했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작품의 팬들이 모이는 코믹콘에서 이 정도로 ‘GOS’의 파일럿 코스튬을 한 팬들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양덕 특유의 집념으로 ‘저걸 입고 어떻게 돌아다니는 거지?’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DP-045 코스튬을 입은 팬도 있었고.

상혁은 모여 있는 직원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직원들에게 자유롭게 행사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본인도, 돌아다니면서 부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헉, 설마 이상혁 씨? 본인 맞으시죠?”

“어? 절 아세요?”

“팬입니다! 다큐멘터리 봐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요! 이야, 옆엔 서연씨? 티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

일본어는 꽤 하는 편이었지만, 아직 영어는 서투른 서연이 상혁에게 물었다.

“오빠,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너 예쁘대.”

“헙! 땡큐! 땡큐! 욜 웰컴! 아임 파인! 알러뷰!”

“하지마라. 쪽팔린다.”

상혁이 서연의 옷깃을 잡고는 질질 끌었다.

그리고는 인파를 뚫고 가판대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를 사더니 서연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얼굴이 많이 팔렸나봐. 구경하기 편하게 쓰고 있어.”

“오, 뭔가 연예인이 된 기분.”

“그러게.”

이전에 귀찮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던 민준은 다큐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맨얼굴로 신나게 부스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큐에 나왔던 직원들과 팀원들만 얼굴을 가린 채 부스를 돌아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 저기를 구경하던 직원들은, PTW의 인기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긴 뭐하는 부스에요?”

“나이츠 어셈블의 팬 부스입니다. 저희가 멀티 플레이하는 걸 보여주고, 나중에 멤버로 함께 하고 싶은 관객이 있으면 X-BOX 라이브 아이디를 공유하는 거죠.”

“나이츠 어셈블 유저신가 보죠?”

“발매 첫날에 구매하고부터 계속 플레이 했죠. 현존하는 D&D 멀티플레이 툴 중에 최강이니까요. 차세대기 버전도 기대하고 있는데, 나왔으면 좋겠네요.”

상혁은 다른 부스로 이동했다.

왠지 메르헨틱한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마리의 눈물’플레이어라는 것을 잘 알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부스로.

“여긴 마리의 눈물 팬부스인가요?”

“오, 맞아요!”

“오래된 게임인데 아직도 좋아하세요?”

“좋아하죠. 제 인생 게임이에요. 지금도 자주 하면서 속편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답례로 굿즈 몇 개를 구매한 상혁이 시계를 보며 서연에게 말했다.

“넌 시간 많은데 왜 구경 안가냐?”

“구경하고 있잖아요. 오빠랑.”

“그니까 왜 굳이 나랑 다니냐고.”

이미 지수는 해산하라고 하자마자 ‘꺄울! 저기 배트맨이 있다!’ 하면서 달려 나가 버렸다.

민준은 구형 컴퓨터를 수집해놓은 부스에 가버렸고, 현주는 상혁의 옆에 딱 달라붙는 서연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지금 상혁의 곁에 있는 건, 팀원 중 서연 한명밖에 없었다.

“흠. 통역사?”

“그래. 그건 인정.”

“아니 오빠, 꼭 무슨 불만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요? 나랑 다니는 게 싫어요?”

“아니. 그냥 네가 편하게 구경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러지.”

상혁은 주로 PTW관련 부스나 코스플레이어를 위주로 행사장을 돌고 있었기에, 서연을 배려하려 한 것이었지만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난 지금도 즐거워요.”

상혁은 불편함을 느꼈다.

여동생 같은 존재인 서연이 자신에게 달라붙는 게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세상 어느 남자가 서연같은 미인이 자신을 좋다고 쫒아 다니는데 싫어할 수 있을까.

단지, 상혁이 걱정하는 건 지난번 GOS개발 때 AD 교체 사건 이후로 서연의 자신에 대한 의존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였다.

처음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중학생 때부터 무수한 그림을 그리던 서연이, 지금은 마치 자신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게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상혁은 자신이 서연의 벽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연아.”

“네?”

“넌 게임 왜 만드니?”

상혁이 묻자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만들고 싶어서 만들잖아요.”

“그럼 게임만 만들 수 있으면 뭘 만들던 상관없어?”

“없지는 않아요. 저는···.”

서연이 머뭇거리며 상혁을 보았다.

“오빠랑 같이 게임을 만드는 게 좋아요. 평생 이렇게 개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뭐냐, 고백이냐? ‘매일 나에게 된장국을 끓여줘.’같은 거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서연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자, 상혁이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서연아.”

“네?”

“저기 마리의 눈물 코스튬한 사람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어? 흠, 음···.”

아마 고교 시절의 서연이었다면, 상혁이 굳이 묻지 않아도 기뻐하면서 뛰어가 코스프레이어에게 이것저것 되도 않는 영어로 열심히 말을 걸었을 것이다.

상혁은 그런 서연의 변화가 안타까웠다.

“흠, 저기···.”

상혁이 말을 걸려 할 때, 상혁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슬슬 행사장으로 이동할 시간.

상혁은 잠시 고민을 보류하고는 서연의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서연은, 그런 상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전 상혁이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넌 게임 왜 만드니?’

상혁이 자신에게,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를 생각하면서.

서연은 자신의 가슴속에 뭔가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옛날에 자신이 좋아하던 즐거움과, 지금의 즐거움 사이에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이었다.

***

“와우, 이건 정말···.”

“장관이네요.”

범배가 꺼낸 말을 하린이 받았다.

물론 패널로 참가한건 아니라서 일반 관객 틈에 끼어있었지만, 객석에서도 느껴지는 화끈한 열기는 올해 GOS가 업계에서 가지는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 게임을 개발한 회사의 개발자다!’ 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뜨거운 불꽃을 느끼게 하는 광경.

상혁이 인사 및 회계와 법무를 포함한 PTW의 전 직원을 전세기까지 써가면서 샌디에이고로 데려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너희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유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몸으로 체험하라고.

얼마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느껴보라고.

상혁의 의도대로, 300명이 넘는 직원 모두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행사 시작을 알리는 사운드가 들려왔다.

아마도 올해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었을 게 분명한, ‘GOS’의 오프닝 곡, ‘Earth Defense Force’와 함께, 상혁과 민준, 서연과 혁진, 지수와 혁찬, 마셜과 릭이 준비된 테이블로 걸어갔다.

마치 게이머를 수호하기 위해, 지구에 강림한 특수부대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그렇게 모든 멤버가 테이블에 착석하자, 마이크를 든 남자가 단상에 올라와 말했다.

“안녕하세요! PTW 팬 여러분! 그리고 이번행사에 스페셜 게스트로 한국에서 날아와 참석해주신 PTW의 직원 여러분! 저는 이번 행사를 기획한 에드워드 허먼입니다!”

함성과 박수 소리에 고막이 멀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허먼은 청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 행사를 준비한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PTW의 게임을 처음 접한 건, ‘익스트림 발리볼’이란 게임을 통해서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대학생 친구가 보내준 게임이었는데, 당시의 저에겐 매우 충격적인 게임이었죠. 겨우 디스켓 한 장안에 들어있는 게임에 몇 천 시간을 쓰리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예. 저는 찐 골수팬 맞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게임 이야기를 시작한 허먼은, 마리의 눈물을 거쳐 나이츠 어셈블을 하면서 PTW의 찐 팬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GOS를 플레이하면서, 아마도 자신이 게임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세상에 58화 짜리 프롤로그라니, 미쳤어요. 예. 여러분. 여기 있는 개발자들은 미친 게 분명합니다.”

“Yeeeeeeeeeesss!!!!”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유저들이 단체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전 제 판단을 확신하게 되었죠. 이 개발자들이, 정말로 우리 게이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여러분도 그렇죠?”

“Yeeeeeeeeeeeeeeesss!!!!”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뭔가 해주고 싶다고. 우리가 이 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허먼이 상혁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희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허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 한쪽에 있는 대형 모니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까 상혁 일행이 등장할 때 나왔던 음악과 같은, GOS의 오프닝 테마가.

그리고 PTW에서 만드는 시네마틱 영상과 비교하면 비할 데 없이 조잡한 퀄리티로, 그러나 만드는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타이틀 연출이 화면을 채워나갔다.

-Guardian of Steel-

-Play film-

상혁은 깨달았다.

이 행사의 목적이, 패널들을 초대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는 일반적인 행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상혁이 보여준 진심에 대해, 유저들이 직접 모여 만든 답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한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Making film’이 아니라, 상혁도 본적이 없던 ‘Play film’이라는 개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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