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24화 (125/485)

124. 사회가 무너질 때 우리는 일어선다

봄을 맞이하는 5월답게,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상혁은 새삼스레 회귀 직전에 심심하면 날아오던 미세먼지를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올라 깊게 심호흡을 했다.

마치 맑은 공기를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상혁을 본 하린이, 조금은 황당하다는 듯 상혁을 보며 물었다.

“대표님은 도시 공기를 시골공기 맛보듯이 심호흡을 하시네요? 건강에도 안 좋은데.”

“나중엔 더 안 좋아져요. 차라리 지금이 천국 같지.”

“예?”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너무 자세히는 묻지 말고. 그리고 대표님이 아니라 상혁 씨.”

“네···.”

“아직도 불편해요?”

“조금요···.”

“팀장인데, 익숙해져야죠. 앞으로 게임 만들다 보면 나보다 경력 높은 사람들하고도 자주 일해야 하는데.”

“앞으로요?”

“예. 이번만 만들고 말거에요? 이번에 배우면서 계속 해야죠.”

“저, 운영출신···.”

“저희 회사에 그런 건 없어요. 프로그래머 되고 싶으면 아무나 프로그래머 어프렌티스 한명 잡아서 가르쳐달라고 하세요. 이범배 씨도 괜찮겠네요. 기획이면 이번에 저한테 직접 배우셔도 되고. 기술은 배우면 되는 거니까요. 말했죠? 게임은.”

“만들고 싶은 사람이 제일 잘 만든다. 명심하겠습니다.”

하린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녀 입장에서는, CEO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게 퍽 기쁜 느낌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하린에게 내밀었다..

“이건 하린 씨가 잡은 초안을 제가 수정한 버전이에요. 보시고 어떤 부분이 다른가, 바뀐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본인 생각하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피드백 해 주세요.”

하린은 상혁이 넘긴 노트북 상의 내용을 신중하게 훑어나갔다.

그리고 상혁은, 그동안 또 하나의 노트북을 꺼내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노트북을 두 개를 가지고 다니세요?”

“필요하면요. 처리할 업무도 많고.”

“CEO는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주말이라도 회사에 자진 출근하는 인원들이 많으니까 그쪽에서 올린 결제도 확인해야하고, 본사 건물 작업해 줄 건축 디자이너도 알아보는 중이고, GOS 블루레이 버전에 넣을 특전도 검토해야하고,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 업데이트도 잡아야하고···.”

말을 하면서도 상혁의 손가락은 계속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린은 그런 상혁을 보며 상혁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 질문했다.

“대표님.”

“상혁 씨.”

“사, 상혁씨···.”

“예. 말씀하세요.”

“본사 건물 작업이라뇨? 저희 이사해요?”

“언제까지 대학교 건물을 빌려서 쓸 수는 없잖아요.”

하린은 게임회사 출신은 아니었지만, 이전에도 IT관련 회사에서 고객지원 업무를 맡았었기 때문에 그 전형적인 형태는 잘 알고 있었다.

넓은 공간에 기둥 몇 개. 그리고 그 안을 빼곡히 채운 파티션들.

물론 몇몇 게임회사는 파티션 없이 좀 더 오픈된 공간에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PTW같이 아예 그룹 단위로 방을 쪼개서 분할해놓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높은 사람들이란, 자신의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모습을 선호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하린은, 지금의 PTW가 가진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대, 아니, 상혁 씨?”

“예. 팀장님.”

“혹시 새 본사 건물은 다른 회사 같은 형태로 구하실 건가요?”

“아뇨. 지금하고 같은 형태일겁니다. 그래서 방을 최대한 많이 잡으려고 고민 중이에요. 마음에 드는 건물이 없어서 새로 지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경영자 입장에서는 지금 구조가 불편하지 않아요? 다른 파트 가려면 굳이 방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애당초 기획서나 지시서를 빠진 거 없이 잘 쓰면, 굳이 찾아가서 말로 소통할 필요가 없죠. 보고서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녀는 PTW에서 오고가는 문서들이 왜 그렇게 방대한 양인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상혁이 건네준 노트북을 보며 상혁이 개편한 기획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게 내공인가···?’

올해로 갓 25이 된 상혁은 현재 휴학계를 낸 상태였기에 아직 대학생이라 할 수 있었다.

군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민준도 마찬가지로 휴학계를 제출한 상태였고.

그러나 상혁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할 나이의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다.

‘대화할 때는 그냥 어린 남동생 같은 느낌인데···.’

그녀가 상혁과 일을 함께 하게 되며 알게 된 사실은, 공적인 부분에서는 무지막지하게 전문적인 상혁이, 사적인 면에서는 엄청나게 여리여리한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외모나 태도와는 다르게, 상혁이 그녀에게 보여준 기획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하린은 마치 지킬&하이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자고로 천재는 대부분 싸이코 적인 면이 있다고 하니까.

단지 지금은, 상혁이 그 천재적인 능력으로 자신을 서포트 하고 있다는 게 너무 꿈같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게임제작에 대해 공부도 하지 않았던 그녀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임회사로 성장한 PTW의 CEO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괜찮아요?”

상혁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녀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거 같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흠. 원래 기획은 RPG경향이 좀 더 강했던 거 같은데, 이건 FPS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네요.”

“그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괜찮겠어요?”

“네. 이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상혁은 원래 ‘지옥문:런던’에 가까웠던 기획에서 메인 포커스를 ‘밀리터리’쪽으로 맞췄다.

어차피 대부분의 FPS유저는 가상의 총 보다는 실총을 게임 안에서 쓰는 것을 선호하니까.

거기에 온라인 중심의 MMO느낌이 나는 시스템을 싱글 플레이 기반의 MO느낌 게임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바뀐 상혁의 제안서가 잡고 있는 구체적인 게임의 형태는, 마치 ‘배○필드3’에 나오는 현대 군인이 ‘몬○터 헌터 월드’에 나오는 거대 괴수를 잡는 듯한 게임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렇게 잡으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처음 보는 게임 스타일인 것 같은데.”

하린의 질문에 상혁이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당초 미래 지식에 의거해서 잡은 기획이라, 그 부분을 피하면서 설명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그럭저럭 설명 가능한 견적을 잡고는 그녀에게 기획 수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게임 기획에 대한 접근 방식은, 애당초 기획 자체를 잘 모르는 그녀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사고방식처럼 보였다.

“우선 지금까지의 밀리터리 FPS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게임들이죠.”

“아, ‘콜옵’ 시리즈나 ‘명예 훈장’ 시리즈처럼요?”

“맞아요. 사실 1차 세계대전은 거의 딱총전쟁 같은 느낌이라 제대로 살리기가 어렵고, 2차 대전이 적당히 로망 있는 느낌이라 많이들 쓰죠.”

지금은 안 그래도 3달 쯤 후에 ‘명예 훈장: 에어본’이 나오는데다, FPS계의 명작 시리즈 2개가 모두 2차 세계 대전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 현대전에 대한 수요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콜 오브 듀티’시리즈도 애당초 DA하청으로 ‘영장 나왔다 :얼라이드’를 만들던 개발진 중에 2차 대전 지지자들이 나와서 만든 인피니티 게임즈에서 만든 게임이었으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2차 대전 게임을 만들겠다고 2014.Inc를 퇴사한 인피니티 개발진들이 정작 최대 히트는 현대전을 다룬 ‘콜 오브 듀티: 모던 워○어’에서 이뤄낸다는 점이었지만.

그리고 그 역사적인 현대전 FPS의 포문을 연 작품이, 2007년 올해 11월 5일에 발매된다.

그 이후로 한동안 현대전 FPS가 시대의 주류가 되는 것을, 상혁은 회귀 전 지식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 게임 개발이 끝나서 출시 될 때쯤에는, 실질적인 경쟁 작은 모던 워○어2가 되겠지.’

FPS계에서는 전설 급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상혁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올해 가장 강력한 GOTY후보가 GOS이기도 했고, 상혁이 만들려는 현대전 FPS는 기존의 FPS와는 노선이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린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현대전을 다루는 FPS인데 협동 플레이가 메인인 게임이라니. 괜찮은 것 같아요. 사람하고 싸우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을 것 같고.”

애당초 현대 무기를 든 군인들이 대형 괴물들을 잡는 게임이라 에임의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대신 무기 자체의 능력치가 중요하게 만들어 RPG 요소의 비중을 높인다.

기본 베이스는 비슷한 장르인 ‘보들랜드’와 비슷한 느낌으로 잡았지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배경이 미래의 우주가 아닌 현대라는 점이었다.

“근데 총기 라이센스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것 같은데, 그건 괜찮을까요?”

하린이 묻자 상혁이 웃었다.

“우린 그런데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주의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말아요.”

상혁은 즐거운 분위기에서 하린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적부터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라던가, FPS장르를 좋아하는 이유라던가, RPG를 거기에 더하려고 생각한 이유라던가.

생각보다 의외였던 점은, 하린이 FPS를 좋아하면서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에임빨이 좀 심하긴 하죠. 그 장르가.”

권총탄이라도 잘못 맞으면 훅 가는 살벌한 전장에서, 수십 명이 싸우는 난장판을 뚫고 전공을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제한 시간 안에 부활을 지속적으로 시켜주는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있었지만, 부활하자마자 총도 제대로 못 쏴보고 바로 죽는 건 아무리 배려가 있더라도 스트레스 받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전보다는 협동 플레이가 하고 싶었던 거군요?”

상혁이 묻자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군과 함께 AI가 조종하는 적을 물리치는 게임에서라면, 총을 쏘면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확실히 나쁜 발상은 아니지.’

정통 FPS가 마치 격투 게임처럼 유저 실력의 성장을 요구한다면, RPG게임은 운과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게 열심히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고.

‘어디보자···. FPS까지 포함하면 꽤 종류가 되지. 데스티니 가디언즈도 있고, 엔썸도 있고, 지옥문:런던 도 있고···. 보들랜드도 있고···생각해보니 다 SF네.’

그렇게 생각하던 상혁의 머릿속에 한 게임이 떠올랐다.

FPS와 RPG의 혼합장르이면서, 현대 무기를 사용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컨셉인 게임이.

‘디○전···.’

‘감자서버’라는 오명을 타고 태어나 꾸준한 애프터케어로 그럭저럭 할 만한 게임이 되었다가, 2편에서 무려 유저 평점 0.5라는 기록을 세우며 장렬히 침몰했던 온라인 기반 콘솔 FPS게임.

그러나 그런 평가와는 반대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컨셉만큼은 굉장히 밀덕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게임이었다.

좋은 컨셉의 게임이 개판으로 나온 것에 너무 분노하여 유저가 평점을 0.5점으로 낮췄을 만큼.

‘어차피 좋은 컨셉을 가지고 망겜으로 출시되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내가 가져다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한 상혁은 하린에게 ‘디○전’의 기초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린 씨. 혹시  ‘다크 윈터’알아요?”

“다크 윈터요?”

“미국에서 2001년에 했던 시뮬레이션 훈련인데, 생화학 무기로 인해서 사회가 붕괴했을 때 판데믹 상황에서 세계 경제 붕괴가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가를 실험한 훈련이에요.”

“오,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5일 만에, 세계 경제와 기반 시설 붕괴.”

“오오! 엄청 아포칼립스틱한 결과네요?!”

상혁은 디○전의 다른 설정인 ‘대통령 훈령 51호(Directive 51)’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실제로 2007년에 발표되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정부 존속에 관한 훈령이라는 내용만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비공개인 훈령이었기에.

유비소프트에서는 이 비공개 훈령이 정부 존속을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민간인들을 사회에 뿌린다는 설정을 잡아 디○전이라는 게임을 만들었었다.

When society falls We rise.

사회가 무너질 때 우리는 일어선다.

라는, 간지가 넘쳐흐르는 문구와 주황색 원모양의 심볼은, 비교적 평이했던 게임 플레이와는 대조적으로 게이머의 뇌리에 매우 깊은 각인을 새겨준 요소였다.

상혁은 그 디○전의 컨셉에서, 원래 사회를 무너트리는 원흉인 ‘전염병’을 ‘거대 괴수’로.

그리고 사회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디비전(Division) 요원을 전략국토부(Strategic Homeland Division)소속의 특수 요원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정부 붕괴’로 시작된 이야기가 ‘가정’을 전제한 토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SHD에서 언제 ‘게이트’가 열리는지 알 수 있었다면, 그에 대한 대비로 군인들을 준비했겠죠?”

상혁이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각 직업의 클래스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RPG스럽게, 탱커, 딜러, 힐러 등의 역할이 있는 슈퍼 솔져들이,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을 상대하는 거죠.”

“괴물 크기가 있는데 탱커가 의미가 있을까요? 밟히면 죽을 거 같은데···.”

“탱커 클래스는 외부에서 근력을 보조하는 외골격 장비를 달면 되죠. 너무 SF틱하진 않게.”

“오, 외골격! 멋지겠다!”

“그리고 스위치 누르면 챠챠착! 펴지는 진압 방패 같은 걸 들고 공격을 막는 거죠.”

“일반 군인들이 총으로 못 막는 이유는 뭐로 하죠??”

“흠···. 아, 특수 탄환을 써야 공격이 먹히기 때문에, 전군에 보급을 못하니까 소수 정예로 운용한다는 설정은?”

“오, 좋네요! 그럼 작전 지역 투입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와, 정말 좋은 아이디어에요! 굿 아이디어!”

그러나 이번 대답은 하린이 아닌 다른 사람의 대답이었다.

듣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상혁에게는 아주 친숙한 목소리.

노트북에 아이디어를 정리하던 상혁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조심스레 노트북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서연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연아?”

“안녕하세요. 오빠. 주.말.인.데. 열심이시네요.”

서연이 상혁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는 반대쪽에 있는 하린을 향해, 활짝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거 같은데. 반갑습니다. PTW 마스터급 원화가. 이서연이라고 해요.”

뭔가 압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상혁은 심약한 성격의 하린이 서연에게 겁먹을까봐 서연을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상혁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던 하린은, 서연을 대하는 태도는 상혁이 알고 있던 하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언제 한번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절 아시나요?”

“PTW직원중에 서연 씨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요? 그런데 서연 씨?”

“예.”

“지금은 제가 상혁 씨랑 선약이 있으니 자리를 비켜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지금은 저희 ‘팀원’끼리 회의 중이라서요.”

무려 ‘임원급’ 직원인 서연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하린을 보며, 서연은 작게 미소를 짓더니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리고는 하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저도 이야기에 참가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왜죠?”

“왜긴요.”

서연이 말했다.

“저도 이제 그쪽 팀원으로 가입할 테니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혁은, 아마 이게 만화라면 두 사람의 사이에 찌지직하고 스파크가 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약간 뒤에서, 죄 없이 서연에게 끌려와 이 난장판에 끌려 들어온 지수가, 상혁의 뒤에 숨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오빠, 지금 분위기 좀 무서운데.”

웬만큼 큰일이 터지더라도, 상혁은 그럴 때 항상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수를 안심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지수는 이번에도 그렇게, 상혁이 이 무겁고 기묘한 분위기를 풀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혁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지수의 그런 기대를 산산이 무너트리는 말이었다.

“지수야.”

“네?”

“나도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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