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기계의 찬가
‘도시라고 불렸던 것’ 이라는 묘사가 가장 어울릴 풍경 속에서, 무너진 폐 빌딩 사이로 거대한 로봇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화려한 심볼도, 반짝이는 외장도 없이 오직 전투만을 위해서 태어난 디자인을 하고 있는 느낌의 그 로봇의 옆에는, 마치 병기고를 털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형상의 무기들이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었다.
DP-045.
AI인 그가 의식이란 것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을 때, 군의 연구원들은 그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다.
애정이라고는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단순히 ‘Defense Prototype AI’의 45번째 시제품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같은 본부에 소속된 다른 로봇들과는 다르게, DP-045의 AI에는 일반적인 규칙과 다른 규칙이 주입되었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AI컴퓨터의 반란으로 멸종의 위기를 겪게 된 인류가, 기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로봇이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주입한 3원칙.
그러나 DP-045에게 주입된 기본 전체는, 그런 종류의 정보가 아니었다.
-군의 명령에 충성하라.-
-군의 적을 말살하라.-
-군의 존재를 보호하라.-
철저하게 군인으로써 제작된 AI는, 자신의 전투 방식으로 인해 민간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태어난 존재였기 때문에.
사자가 사슴을 죽이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듯이, DP-045는 자신이 전투하는 방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애당초 그런 코드 자체가 없었으니까.
기계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단지 논리만이 있을 뿐.
그리고 DP-045는, 자신 외에 다른 로봇들은 논리회로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팀의 리더, 가디언(Guardian)은 그렇게 말했다.
-퉤. 넌 꼴 보기 싫은 놈이지만, 네가 죽는 건 네 꼴을 보는 것보다 싫다. 살아라. 버티면 반드시 구하러 간다.-
침 뱉을 주둥이도 없으면서 인간을 따라서 자주 ‘퉷’소리를 하던 플레임 디스트로이어(Flame Destroyer)는 그렇게 말했다.
-수복율···35%···전투 참가···불가능···이동 기능 최우선 복구 중··· 즉시 참전 요청···-
AI 기능이 아직 성장 중인, 팀 내에서 가장 터프한 로봇으로 핵미사일을 맞아도 끄떡없다던 데버스테이터(Devastator)는 허벅지 아래로 사라진 다리를 계속 움직이려 하며 그렇게 말했다.
-분석 불가. 해당 유닛들의 논리 회로 파손 점검 필요.-
산산 조각난 동료들을 보며, DP-045의 논리회로가 떠올린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로봇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으니까.
아마도 작전 수행에 너무 크게 방해가 되는 상황에서, 임무 수행이 ‘불가능’ 수준으로 어려워졌기에 논리 회로가 과부하로 달궈졌을 뿐이라고, DP-045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폐허를 향해 구름떼처럼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을 보며, DP-045는 다시 전투 시뮬레이션을 가동시켰다.
“예상 전투 시뮬레이션 개시.”
-연산 중···작전 성공 확률 0%. 프로토콜에 따른 퇴각 권장-
“성공 조건을 ‘적 코어 파괴’로 변경. 시뮬레이션 재 연산 개시”
-연산 중···작전 성공 확률 0%. 프로토콜에 따른 퇴각 권장-
“성공 조건을 ‘적 진입 저지’로 변경. 시뮬레이션 재 연산 개시”
-연산 중···작전 성공 확률 0%. 프로토콜에 따른 퇴각 권장-
“성공 조건을 ‘1시간 진입 저지’로 변경. 시뮬레이션 재 연산 개시”
-연산 중···작전 성공 확률 0%. 프로토콜에 따른 퇴각 권장-
회로가 달아오를 정도로 반복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DP-045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놓여있던 거대한 다련장 미사일 파츠가 날아와 DP-045의 등 뒤에 장착되었다.
“맞다. 이건 분노가 아니다. 단지 작전 수행 불가에 따른 연산회로의 과부하일 뿐.”
달아오른 금속 외장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증발한다.
“우리 팀 소속 다른 AI라면 이걸 ‘짜증난다.’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로봇은 짜증이란 감정을 모르니까.”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카메라가 DP-045의 눈을 비췄다.
분명 유리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게 분명할 그의 눈에는, 어딘지 인간의 표정과 닮아 보이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접근하는 거대 기계 군체를 향해 DP-045의 기계음 섞인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접근하는 비인가 기계 비행체에게 알린다. 지금 접근 중인 지역은 접근 금지 구역이니 지금 즉시 진입을 정지하라. 다시 말한다. 지금 즉시 진입을 정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묵직한 기동음과 함께, DP-045의 몸에 달린 수많은 무장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폐허를 뒤로 하고 홀로 거대한 적 앞에 서 있는 그 모습은, 실로 애처로우면서 장엄한 모습이었다.
“지역채로 소거하겠다.”
그 말과 동시에, DP-045의 등에 달린 다연장 발사대에서 수많은 미사일이 빗속을 뚫고 날아올랐다.
동시에 어깨의 장갑이 열리며 내장 된 소형 미사일이 함께 발사되며, 양손에 들린 거대 기관포도 일제히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적의 수만큼이나 화면을 가득 메우며 날아가는 미사일의 모습은, 엄청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멋져···.”
그 순간,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던 릭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렌더링 센터를 지었던 극 초기에 상혁이 와서 그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릭 씨?”
“예. ‘쏴장뉨’. 무슨 일이세요?”
“25화 전투 씬 말인데요.”
“예. 중간 하이라이트 장면 말씀하시는 거죠?”
“이거 비 내리는 배경으로 싸우면 안돼요?”
“예?! 비요?!”
수많은 미사일과 탄환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내뿜는 연기와 불꽃들만 해도 아득하게 지금 장비의 연산 능력을 초과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한 번에 많은 폭발이 일어나면 랙이 걸리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닌 것처럼, 물리 엔진으로 연산해야하는 그래픽 처리는 장비의 엄청난 부하를 감당해야했다.
근데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미사일이 대량의 빗속을 뚫고 가는 전투씬을 만들고 싶다는 상혁의 말에, 릭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솨장님 미쳤어요? 지금 25화 전투 시퀀스만 해도 한 프레임 렌더링 하는데 몇 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저희 지금 설비로는 무리입니다!”
“압니다.”
상혁이 웃었다.
“저희가 ‘지금’가진 설비로는 무리라는 걸요.”
“Crazy ‘쏴좡님’.”
어색한 한국어로 릭이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배틀로얄’과 ‘포수가 회귀를 숨김’에서 나온 매출의 대부분을 렌더링 센터에 투입했는데, 상혁은 거기에 ‘GOS’애니메이션의 방영권 판매로 인한 수익까지 모두 몰아주었다.
딱히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질만한 전투 시퀀스를 가지고 있는, GOS의 25화에 ‘비’를 추가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혁의 고집으로 이루어진 그 결과물은, 정말이지 보는 사람이 눈물날정도로 아름다웠다.
수천대의 최고급 그래픽카드를 혹사시켜 만든 화면에서, 거대한 미사일들이 비를 뚫고 나갔다.
일부는 불꽃에 닿아 증발하고, 일부는 갈라지는 바람에 찢겨나가고, 일부는 단단한 철덩이에 맞아 튕겨 나가면서.
마치 물속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빗줄기를 튕겨 보내며, 수많은 폭발과 불꽃이 번쩍이는 강철의 기계 군체를 박살냈다.
그것은 공중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물속에서 싸우는 느낌의, 마치 ‘수중전’ 같은 임펙트를 안겨주고 있었다.
공기로 이루어진 수조 안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DP-045와 거대한 기계 군체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콜 - 확장 파츠 MRL-23T, 교체 파츠 LAM-TYPE2”
- MRL-23T 파손. 2차대기 유닛 호출. 2차 대기 유닛 파손. 3차 대기 유닛 호출 - 장착 완료. LAM-TYPE2 파손. 교체 유닛 잔량 없음. 동 파츠 타 모델로 호출 명령 변경 요망-
설정 상 DP-045의 ‘본체’는 가슴에 있는 코어 파츠 뿐이다. 나머지 모든 파츠는 파손이나 필요에 따라 교체 가능한 다양한 부속으로 되어있었다.
필요하면 탱크도, 자주포도, 미사일 발사대도, 기관포도 될 수 있도록.
그렇기에 DP-045는 전장의 곳곳에 자신의 교체 파츠를 모두 박아놓고 전투를 시작했다.
왼팔이 날아가면 왼팔을 교체한다.
탄환이 떨어지면 새 총을 집어 든다.
필요하다면, 바닥의 미사일을 발로 차서 적에게 집어던진다.
물론 20개의 파츠를 소환하면 19개가 자신에게 도달하기 전에 기계 군체에게 잡혀 박살나고 있었지만, DP-045는 끝없이 교체 부속을 호출하고 집어 들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사방에서 터져나가는 부속들과 난무하는 미사일, 달아오르다 못해 금속성 비명을 지르는 약실에서 쿡 오프 현상으로 탄이 터져나가는 모습은 이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이후 1화부터 25화인 지금까지 들어간 제작비를 모두 한 번에 쏟은 듯한 느낌의 화려함과 서글픔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사랑 받던 로봇이, 가장 멋진 전투 장면으로, 가장 멋지게 죽어가는 모습 속에서,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조금씩 자신을 지키고 있던 코어의 장갑이 깎여나가면서, 힘겹게 호출한 교체 파츠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부서진 관절밖에 없는 것을 알고는 애달프게 주변을 날아다니다 터지는 장면을.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논리적이었던 로봇이 행하는 가장 비논리적인 전투의 모습이었다.
쏟아지는 비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슬픈 분위기의 음악이, 화려한 폭발 속에서 한 군인의 처연한 죽음을 표현한다.
이윽고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자연스럽게 상황실의 모니터로 전환되는 연출이 재생되었다.
“가디언(Guardian). 이동 기능 긴급 수복 완료. 지휘관. 출동 명령을.”
“플레임 디스트로이어(Flame Destroyer). 이동 모듈 긴급 수복 완료. 지휘관. 출동 명령을.”
“데버스테이터(Devastator). 이동 모듈 긴급 수복 완료. 지휘관. 출동 명령을.”
한눈에 보기에도 너덜너덜해 보이는 로봇들이, 기계음에 감정을 섞어 출동 명령을 요청하는 모습에 비장함이 섞여 나왔다.
그리고 주인공인 지휘관은, 그런 로봇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가면 다 죽는다. 기다려.”
“명령 수령 거부. 지휘관. 출동 명령을.”
세 로봇이 동시에 다시 명령을 요청했다.
“너희는 아직 전투 가능한 상태가 아니야. 가면 무조건 패배한다.”
“명령 수령 거부. 지휘관. 출동 명령을.”
“너희의 임무는!”
주인공이 책상을 내리쳤다.
연기하는 목소리에서 조차 분함이 처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인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인공의 말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더인 가디언은 담담하게 재 명령을 요구했다.
“명령 수령 거부. 지휘관. 전투 작전 시뮬레이션 재검토 요망.”
“그러니까!”
다시 소리 지르려던 주인공이 멈췄다.
분명히 방금, 가디언은 ‘전투 작전’을 재검도 해달라고 요청했다.
적어도 지금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다시 확인해 달라는 것.
“메인 프레임. 전투 작전 계획 긴급 검토 개시.”
‘가디언 본부’의 상황실에는 각 작전에 따른 성공률을 계산하는 카운터가 있다.
그리고 메인 프레임이라 불리는 슈퍼 컴퓨터가 예상한 현재 작전에서의 성공률은 0%였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가능한 작전에 대한 성공률을 종합한 것으로, 25화까지 작중에서 단 한 번도 수치가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0.00%에 고정되어 있던 숫자가 천천히 변하며 0.07%로 바뀌자, 주인공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작전 성공률이 0%라는 것은, 성공할 수 있는 작정의 종류가 아예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아군 로봇의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 메인 프레임은 오히려 지금이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어째서?”
멀쩡하게 싸워도 이길 수 없는 적을 걸레짝이 된 상태로 이길 수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주인공이 당황하자, 가디언이 조용히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아직도 절반밖에 남지 않은 몸뚱이를 가지고 처절하게 전투를 하고 있는 DP-045의 모습이 보였다.
***
상혁은 ‘GOS’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어디까지나 게임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죽어도 별 상관없는, RTS게임에 나오는 그런 ‘유닛’이 아니라 ‘부하’처럼 느껴지기를.
아니, 좀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게임에 등장하는 로봇을 ‘동료’라고 생각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상혁은 GOS의 메인 테마를 ‘AI와 인간의 유대감’으로 잡았고, 이 58편의 장대한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런 감정을 최대한 느끼게 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을 가질 수 있게 작업되었다.
원래부터 스토리 쓰는데 재능이 있었던 혁찬과, 설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지수의 협력을 통해서, 두 사람이 내 놓은 결과물은 상혁을 매우 만족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반격의 거인’에서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갈 때, 주인공이 느끼던 감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느낌으로.
그렇기에 25화를 기점으로 인류가 기계 괴수의 공격을 막기 힘들어지는 시점에서, 그때까지 영웅적으로 적을 막던 로봇들은 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 첫 죽음이 DP-045의 죽음이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적 앞에서, DP-045가 선택한 방법은 적을 막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실낱같은 승리의 길을 조금이라도 여는 것.
애당초 그런 각오로 시작한 전투였기에 DP-045는 자신의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한 번도 동료라고 부른 적이 없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전우’였던 동료들이 자신이 연 바늘구멍 같은 승리의 길을 반드시 뚫을 것이라 믿으면서.
애당초 무차별 폭격같이 보이는 모든 공격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었다.
단 하나의 총탄도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수천수만 발의 총탄의 궤적을 일일이 연산하여 적 군체 중 핵심 모듈만 파괴한다.
파괴가 불가능하다면 흠집이라도 좋다.
쏟아 내리는 비로 인해, 내부에 물이 들어가면 그것만으로도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정도 연산은 AI회로에 본부에 있는 메인프레임의 회로가 탈 정도의 극심한 부하를 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저런 식으로 10분 가까이 전투를 하고 있는 DP-045의 AI 모듈은 거의 반쯤 타 망가진 상태.
전투의 후반부에서, DP-045의 독백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노이즈로 가득 차 있었다.
“dePloY···DD괴멸.메모리 파손 메인. 파손 추가 남은 군체 불명.”
아예 의미 불명의 소리를 계속 내면서도 전투를 지속하는 로봇의 모습은 보는 이의 주먹을 꽉 쥐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도착한 동료들은 기습을 통해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위용을 보였던 기계 괴수를 패퇴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DP-045의 모든 파츠가 부서진 상태로, 한쪽이 크게 뚫린 코어 파츠만이 바닥에 처참하게 쳐 박혀 있었다.
-···남은 AI모듈이 있으면 회수하라.-
무전으로 들리는 지휘관의 음성을 들은 가디언이 DP-045의 코어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아마도 AI 모듈이었을 거라 추정되는 쟂빛 물체를 조심스레 손 위에 올려놓았다.
“AI 모듈 회수 완료. 보존 및 복원 가능성···.”
그리고 그런 가디언의 말이 울려 펴지는 순간, 떨어지는 빗물에 젖은 AI모듈이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복원 불가.”
“으아아아아악!!!!”
비속에서 절규하는 플레임 디스트로이어(Flame Destroyer)의 기계적인 비명을 배경으로 가디언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잔해를 꾹 쥐며, 마치 영원처럼 이어질 것 같던 GOS의 25화가 끝났다.
보는 이에게 엄청난 찝찝함과 우울함을 안겨주고서.
그것은 방영 국가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그 화려함으로 극찬을 받았던 GOS의 스토리 라인이, 단순히 로봇의 활약을 그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실에서 팀원들과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던 상혁이 DP-045의 말투를 따라하며 말했다.
“이 몸, 퀄리티. 대 만족.”
“게시판은 터질 거 같은데요?”
서연이 말하자 상혁이 웃었다.
“터지라지.”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차피 마지막엔 다 죽는데 뭐.”
상혁이 제작중인 GOS의 애니메이션. 그 끝은 마지막 적과 함께 주인공 유닛인 ‘가디언’이 자폭하는 ‘동반 자살’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