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15화 (116/485)

115. GOS 방영

콘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혁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돈은 다른 방법으로도 벌 수 있으니까.

오히려 상혁은,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

가장 시청자가 잘 나올 수 있는 황금 시간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모두가 힘들여 만든 결과물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전달 받을 수 있도록.

그렇기에 방송사 관계자들과의 협의는, 경매라기보다는 방송 스케줄 회의 같은 느낌으로 진행 되게 되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큰 위험 부담이 있는 결정이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절대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지 않으니까.

직장인이 퇴근한 이후인 저녁 8~11시 사이를 황금시간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시각에 주로 뉴스가 편성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위주로 편성하는 업체가 많았다.

물론 ‘황금 시간대’라는 이름처럼, 아무 애니메이션이나 편성이 되는건 아니다.

적어도 ‘마○코는 아홉 살’ 이나 ‘포케몬스터’정도는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시간대.

그러나 여기 모인 관계자들 모두, 어느 한명 ‘GOS’의 애니메이션 판이 그 정도 값어치가 없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었다.

‘잡기만 하면 최소 시청율 20%후반은 확정이다. 잘하면 30%중 후반도 노릴 만하고.’

게다가 비용 경쟁이라면 부담이 크지만 상혁이 요구한 것은 ‘좋은 시간대’였기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야하는 제안이나 다름없었다.

예상되는 광고 수익만으로도 방영권에 지불되는 비용 이상의 수익이 가볍게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때, 한 남성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후자 텔레비전의 타카다입니다. 혹시 정말로, 이 자리에서 경쟁 입찰을 진행하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관례에 어긋납니다. 방송사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경매 판처럼 진행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아, 그래요? 제가 이쪽 업계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가실래요?”

“예?!”

“이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가시면 됩니다. 나머지 회사와 계약을 진행하면 되니까요.”

타카다는 입을 다물었다.

예절이나 관행을 운운하다 최대 기대작중 하나의 계약을 포기했다고 회사에 보고하면, 상사에게 어떤 막말을 들을지 몰랐기에.

그러자 상혁은 웃으며 관계자들에게 사과했다.

“일반적인 계약 진행방식이랑 조금 많이 차이가 있는 건 알지만, 저희 쪽이 여러 번 의견을 교환하며 계약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신 막대하게 들어간 제작비만큼 단가를 올리지는 않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 관대하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단가를 올리지 않는다는 말씀은···?”

“일반적인 58화 애니메이션의 단가와 같은 방영료를 받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순간 방 안의 담당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유일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가격’이 타 애니메이션과 동일하다면, 무조건 방영권을 따내는 쪽이 이득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 중 가장 좋은 시간대를 제시하자, 타 방송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걸기 시작하며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방금 전, 관례를 운운하며 상혁에게 쫓겨날 뻔한 ‘후자 텔레비전’의 타카다가 무려 수,목요일 8:00대의 로얄 시간대를 제시하며 승기를 잡으려 달려들었다.

상혁도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한 남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정회를 요청했다.

“잠깐 사장님과 통화 좀 하고 와도 될까요?”

그렇게 회의 중단을 요청한 직원은 복도로 나간 지 한참 지난 후에 돌아왔다.

그것도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리고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하고 내려치며 크게 소리 질렀다.

“수,목요일 8시에 본방! 그리고 토 ,일요일 8시에 재방하겠습니다!”

무려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재방송’까지 하겠다는 희대의 조건에 결국 다른 방송사들이 손을 들자,  ‘GOS’의 방영권은 수,목 요일 8:00 및 주말 8:00이라는 황금 시간대 두 타임을 각각 생방과 재방으로 제시한 TVS에서 가져가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방영권 교섭을 마친 상혁은 그대로 미국으로 방향을 틀어 미국 방송사와도 협의를 마쳤다.

조건은 같은 조건으로.

‘최대한 좋은 시간대.’

상혁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제작비 회수? 되면 물론 좋다.

하지만 방영 시간대만 좋다면 딱히 제작비 회수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게 상혁의 입장이었다.

PTW는 어디까지나 게임회사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아니니까.

자신은 단지 최선을 만든 게임을 유저들이 즐겁게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

[신작 애니메이션 ‘The Guardian Of Steel’ 3개국 동시 방영. 압도적 퀄리티로 압도적 흥행 기록]

[12화 방영 만에 역대 TV애니메이션 시청기록 갱신. 애니 대국 일본을 경악시킨 기적의 퀄리티]

[일본 애니메이션 협회 성명 발표. ‘무분별한 거대 투자가 애니메이션 업계의 상생을 무너트린다.’]

[역대 사상 최고 부품수로 발매된 번다이의 ‘GOS Ultimate Edition’ 사전 예약 완판. 주가 폭등.]

[어른도 아이도 열광하는 GOS 열풍. 그 디테일의 끝은?]

GOS의 방영은 시작하자마자 큰 화재를 몰고 왔다.

그전까지 그 누구도 애니메이션에 그 정도 투자를 감행해서 TV시리즈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상혁이 투자한 비용은 거의 천문학적이었다.

특히 상혁은 디테일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작중 등장하는 모든 군인의 대사를 실제 미군 장교와 조종사, 특수 부대원들의 자문을 받아 제작한다거나, 들어간 캐릭터의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조차도 전부 구현하라고 지시하는 등.

누가 보면 거의 편집증이라고 할 정도의 세세한 지시를 하며 퀄리티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고 상혁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모든 것을 통제한 것은 아니었다.

각색이나 연기, 카메라 구도나 전투씬의 모션 등 본인이 전문가가 아닌 분야에서 상혁은 철저하게 해당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존중했다.

단지 ‘2분 30초에 상처 입은 캐릭터의 상처에 있는 피가 왜 15분 28초에 등장할 때 그대로 있나요? 경과 시간을 계산해서 굳어있는 상처의 모습과 피 색깔을 그대로 구현해주세요.’ 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을 뿐.

그러나 우포테이블의 애니메이터 중 누구 한명도 상혁의 그런 지적에 불쾌함을 표시하거나 하진 않았다.

사실 상혁이 하려는 것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한풀이’에 가까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박봉을 감수하고 애니메이터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현실과 타협해야했다.

헐리우드의 제작 방식이 ‘돈으로 가능한 수준’의 퀄리티를 최대한 만드는 방식’이라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정해진 예산 내’에서 가능한 퀄리티를 최대한 뽑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래서 싫어도 뱅크씬을 쓰고, 프레임을 줄이며, 작화가 어느 정도 붕괴되어도 강제로 일정을 맞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TV광고 수익이 방영수익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TV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애당초 벌 수 있는 돈의 상한이 정해진 상태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DVD나 블루레이 등의 영상 매체를 팔아서 수익을 보전한다고 해도, 쓸 수 있는 제작비엔 언제나 리미트가 걸려있다.

그러나 상혁은, 애당초 애니메이션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그 상한을 두지 않았다.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처럼, 돈이 얼마가 들든, 재현 가능한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을 것.

그런 방침 아래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포텐셜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건, 애니메이터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더 멋질 수도 있었던 작품’을 ‘가장 멋진 퀄리티’로 만드는 것만큼, 창작자를 즐겁게 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GOS 애니메이션의 이러한 흥행은,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PTW개발 1팀의 의욕에도 불을 붙였다.

딱히 크런치 모드 따위의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주말 출근을 자청할 정도로.

그리고 PTW의 직원이 아닌 팀원들도, 주말인 일요일에 한명도 빠짐없이 부실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팀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한다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이 너무 퀄리티가 높게 나와서, 왠지 게임을 못 만들면 유저들에게 욕먹을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좋은 시너지네. 애니메이션 때문에 게임 퀄리티를 올려야겠다는 압박을 받다니.”

그 모습을 보며 민준이 말하자 상혁이 미소 지었다.

“나름 다들 지금까지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평가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거지.”

“넌 별로 긴장 안 되냐? 애당초 기본 시스템 설계는 네가 한 거잖아. 애니메이션에서 개쩔게 표현된 지휘 장면이 게임에서 재미없으면 욕은 상혁이 네가 다 먹을 건데?”

“괜찮아. 실제로 조작하는 게 눈으로 보는 것보다 2백배는 멋지니까.”

상혁의 말에 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아닌 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 자체는 민준이 보기에도 정말 재미가 있었다.

그 퀄리티 높은 애니메이션의 마이너 버전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이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압도할 정도로.

그리고 그것은, ‘정사 루트’에서의 스토리 전개를 상혁이 적절히 통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다음주에 25화 방영이지?”

“그렇지.”

“그대로 가기로 했어?”

“어.”

“욕 안 먹을까?”

“먹겠지?”

25화.

전체 유닛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로봇인 ‘DP-045’가 장렬하게 죽는 화였다.

물론 이번 주에 24화까지 본 시청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겠지만.

‘DP-045’는 혁진이 디자인한 로봇으로, 변신 기믹도 합체 기믹도 없지만 ‘가디언즈’ 소속 로봇 중 유일하게 군 출신 로봇으로 설정되어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혼자서 용자 로봇 스타일의 디자인이 아닌, 마치 군용 병기 같은 스타일의 디자인을 하고 있어 튀는 부분도 그렇고, 군인 특유의 차가운 말투를 하는 점이나, 온몸에 덕지덕지 달린 무기로 다대일전투에 특화되어있다는 점도 인기를 끌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가거라. 민간 소속 로봇. 여기서부터는 군이 처리한다.-

라는 결정 대사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고.

서연이 그것 때문에 자신이 디자인한 주인공 로봇이 인기가 더 떨어진다는 이유로 질투심을 불태울 정도였다.

당연히 가장 멋진 배역의 로봇 디자인을 자신이 담당했다는 사실에 혁진의 입꼬리는 첫 등장 화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휴, 인기투표 2등 디자이너 서연 씨 오늘도 안녕하셨어요?”

라고 서연을 놀리기도 할 정도로.

그리고 내일, 혁진이 디자인한 그 밀리터리 스타일의 로봇이 죽는다.

그것도 아군 유닛이 전부 패배한 상황에서.

군의 퇴각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자신의 통제 회로를 스스로 뜯고, 본부를 지키기 위해 통신을 끊은 채 개떼처럼 몰려오는 적 앞에 홀로 서서 적을 막는 중간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다.

물론 제작 관계자인 PTW팀원을 포함하여 해당 유닛의 디자이너인 혁진은 이미 그 화의 완성본을 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시연회에서 혁진은, 자신이 디자인한 로봇의 최후를 보며 눈물을 폭포처럼 쏟다가 마지막에 기립박수를 쳤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디자인한, 자기 자식 같은 유닛이 저 작품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의 전개이고, 게임에서는 그렇게 죽어야하는 ‘DP-045’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그것도 애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더 감동적인 방식으로.

상혁이 게임의 완성도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게임은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니까.

유저의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그것이 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이나 드라마등 다른 어떤 장르도 가지지 못한 게임이란 미디어만의 고유적인 재미라고, 상혁은 생각하고 있었다.

“뭐, 게임에서는 살릴 수 있는 유닛이니까 매우 기쁘겠지만, 일단 내일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좀 폭발하겠네.”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둘 다.”

상혁이 미소 지었다.

전반적으로 위대한 승리나 영웅적 등장이 메인이 되는 초반부와 다르게, 내일의 25화를 기점으로 스토리가 ‘선택과 희생’을 다루게 되는 시점이었기에.

분명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화제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상혁의 예상대로, 25화가 방영된 다음날.

GOS를 방영하기 위해 마련된 홍보 페이지에 있는 게시판이, 말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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