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게임 회사의 각오
기본적으로 대학교의 건물을 빌려서 사용하는 PTW의 구조는 다른 게임 회사들과는 그 구조부터 전혀 달랐다.
복도에 주르륵 달린 문에 각각 ‘금손들 모임’ ‘코딩 중독자들’ ‘수력이랑 원자력은 소리가 달라 소리가’ 같은 이상한 문장들이 달려있는 간판이 있고, 그 안에서 간간이 직원들이 이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스티브가 본 어떤 게임회사와도 다른 특이한 게임 회사 구조였다.
“작은 스튜디오가 여러 개 있는 건가요?”
스티브는 자신을 안내하러 온 아름다운 여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자신을 현주라고 소개한 여성이, 미소 지으며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아뇨, 이 층에는 개발1팀이 주로 있고 저 방은 그래픽 팀이나 프로그래밍 팀 단위로 쪼개져서 쓰는 방입니다.”
“그럼 불편하지 않아요? 프로듀서가 프로젝트 관리하기 힘들 것 같은데?”
스티브의 질문에 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프로젝트는 PD가 없어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현주를 따라간 스티브는, 잠시 후 응접실처럼 보이는 곳에서 상혁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몇 달간 게임업계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화려한 사고를 친 인물 치고는, 엄청나게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진 청년이었다.
“이상혁입니다. PTW의 CEO를 맡고 있습니다.”
“스티브 도저입니다. DA 스포츠의 COO를 맡고 있습니다.”
상혁의 미소를 보는 순간, 스티브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오늘 준비한 어떤 카드도, 눈앞의 청년에게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한다.’
포기하기엔, PTW가 가진 가치는 너무나 컸다.
단지 지금 그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의 BM을 약간만 손보더라도, 인수비용 이상의 이득을 원 없이 뽑을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스티브는 용기를 내어 상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은 가벼운 잽을 날리며 탐색전을 펼쳐야한다.
상대와의 대화 속에서 상대가 곤란해 하는 점이나 상대가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인수 제안의 핵심 스텝이니까.
“세계 게임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임 회사의 구조 치고는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물론 다른 회사도 작업 단위별로 팀원들을 모아놓긴 하지만, 아예 여기처럼 방단위로 나눠서 작업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익숙해지면 이편이 더 좋습니다. 사실 빌려 쓰고 있는 대학 건물이 큰 공간보다 작은 공간 여러 개가 많은 형태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작업하게 된 건데, 익숙해지니 이쪽이 더 효율이 좋더군요.”
“그래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각 팀의 독립성이 보장되죠.”
“독립성이요?”
상혁이 설명했다.
“PTW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업의 속도도, 퀄리티도 아닌 ‘즐거움’입니다. 즐겁게 작업할 수 있으면 퀄리티도 나오고 속도도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그 즐거움은, 감시받는 상황에서 절대 나올 수 없죠.”
기둥 몇 개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에서,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업무만 하고 있고, 극히 일부의 인원만 웃으며 떠드는 풍경.
자신의 게임이 얼마나 대단하고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해서 주변에 다 들리게 이야기하는 기획자들.
혹시라도 일 안하고 ‘잡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매의 눈으로 사무실을 돌아보는 임원들.
그런 풍경에서 즐거움이란 나올 수 없다.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극히 일부의 인원들만 즐겁지, 나머지는 단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품 같은 느낌으로 작업하니까.
그래서 상혁은, 소통이 어렵다는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과감하게 작업 팀 단위로 인력을 쪼개서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좀 더 편안하게 서로 소통하고, 뒷담화도 좀 하고, 웃으며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분위기는 미리 상혁의 철저한 교육을 받고 각 부실마다 끼어들어가 있는 PTW팀원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직적인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잘 컨트롤만 할 수 있으면, 다들 능동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죠. 중요한건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돕는 겁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야 말만 좋은 거지 잘못하면 한없이 개발 일정이 늘어날 텐데요.”
스티브의 지적은 합당했다.
실제로 상혁이 기억하고 있는 회사 중에, 수평적 조직문화로 유명한 게임 회사 ‘스튐’ 역시 각 게임의 개발 텀이 길기로 악명 높은 회사였으니까.
아마 그곳이 세계 탑 클래스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튐’을 가지고 있는 플랫폼 홀더가 아니었다면, 몇 개 안되는 게임으로 번 돈을 개발자 월급으로 다 날리고 파산했을 것이다.
패키지 게임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대부분의 수익이 초반에 집중되는 만큼, 하나의 게임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 내는 순간, 다음 히트작의 제작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
그 연속적인 릴레이에서 한발이라도 삐끗하면, 회사의 존폐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스티브가 파고들려고 하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E3행사는 저도 관전 했었습니다. 아마 100% 히트에 성공할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화면에서 본 그래픽의 수준만 봐도 그것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투자가 필요했을지 느껴지더군요.”
“예.”
“물론 지금까지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상혁 씨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표현 외엔 다른 표현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미래는 어찌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흠. 구체적으로 어떤 제안이 하고 싶어서 오신 거죠?”
“저는 저희 DA가 여러분의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것입니다.”
“힘이라···.”
“아시다시피, 저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퍼블리셔 중 한 곳이죠. 저희의 힘이 더해진다면, PTW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처럼 하나의 프로젝트에 회사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든든한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좀 더 쉽게 이루게 되는 것이죠.”
“그 말씀은 인수제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금액은 원하는 대로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개발’ 외의 다른 이슈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순수하게 원하는 게임을 만드시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저희 DA에서 제공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중간에 실패를 하시더라도, 어느 정도의 리스크 커버는 저희 DA에서 해드릴 수 있을 거고요.”
개발자 출신 CEO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회사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잘 아는 스티브가 일부러 그 부분을 강조하며 말하자, 상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스티브에게 답했다.
“먼 길 오셨는데 죄송하지만, 인수 제안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일단 금액이라도 논의를 해 보시는 게···.”
“아뇨, 확실히 거절하겠습니다. 물론 말씀하시는 대로 경영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고, 버는 돈과 거의 맞먹는 금액을 신작에 투입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기본적으로 귀사와 저희는 사상이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사상이 맞지 않는 다뇨?”
“애당초 실패를 왜 생각합니까? 게임 회사의 돈은 유저들이 지불한 돈입니다. 당연히 가용 가능한 온 힘을 다해서 만드는 게임에 최선의 퀄리티를 뽑는 게 게임회사의 의무죠. 그걸 실패의 리스크를 감수하겠다고 간보듯이 투자를 하고, 인력 고용에 인색하게 굴고, 개발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게임을 개발하는 게 아니죠. 게임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거지. 저는 개발자지 장사꾼이 아닙니다.”
이후로도 스티브는 몇 가지 제안을 던졌지만, 상혁에게 모두 거절당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런 일련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인수하려던 회사의 CEO가 마치 폭탄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미친놈 아니면 천재로군.’
실패가 두렵다면 실패를 안 하면 된다.
말은 쉽지만 진짜로 그렇게 믿고 밀어붙이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CEO로써, 그런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 외에 수백 명의 직원들의 생계와 직업이, 그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게 옳다는 듯이 말하는 상혁의 말은 스티브의 가슴에 흉터처럼 깊은 자국을 남겼다.
“게임회사는 유저를 위해서 회사의 운명을 걸고 최선을 다 할 수 있어야합니다. DA에 그런 각오가 있습니까?”
당연히 없다.
그건 미친 짓이니까.
경영자로써 그런 생각은 미친 짓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의 말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스티브 역시 경영자이기 이전에 게임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한개 쯤은 저런 회사가 게임업계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12시간을 넘게 날아와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스티브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제 욕심을 버리고 편하게 유저의 입장에서, 즐겁게 PTW의 신작이 발매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게임업계의 최대 공룡 중 하나인 DA와 PTW의 미팅은, 스티브의 가슴에 잔잔한 흔적을 남긴 채,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조용히 종료 되었다.
“이젠 DA에서도 침을 흘리네.”
응접실에서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상혁이 중얼거렸다.
사실 인수 제안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SANY 제안도 거절했잖아. MS의 제안도 거절했고. 그리고 이번엔 DA까지.”
어느새 옆에 다가온 현주가 조용히 물었다.
“상혁아. 힘들지 않아?”
솔직히 상혁이 방금 미팅을 통해 느낀 감정은, 탈력감 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어딜 DA가 침을 흘려?’ 같은.
애당초 게이머치고 DA에 뒤통수 안 맞은 게이머가 어디 있겠는가.
멀쩡하게 잘나가는 스튜디오 인수해서 게임 말아먹게 만들고 폐쇄한 것만 몇 번인지.
‘이스트우드 말아먹고, 맥시스 망가트리고, 바이옴웨어 작살내고, 우주전쟁 배틀프론트에 갓챠질하고···. ‘랜덤박스는 도박이 아니라 깜짝 상자입니다.’라는 희대의 개소리도 남기고.’
같은 게임에 선수엔트리만 바꿔서 3년 연속 출시한다던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었기에, 상혁은 게이머로써 DA라면 치를 떨고 있었다.
단지 올해가 2006년이었기에 뭐라고 하지 못한 것뿐이지, 아마 2020년도에 DA담당자가 찾아왔으면 아주 그냥 영혼까지 탈탈 탈곡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상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현주의 말에 동의했다.
“힘들죠. 솔직히 다 넘기고 그냥 개발에만 집중하고 싶죠.”
“그럼 조금은 남한테 넘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굳이 회사를 다른데 넘기지 않아도 방법은 많잖아. 전문 CEO를 고용한다던가.”
“흠···. 맞는 말이에요. 나중에 좀 찾아보죠. 저희 회사에 맞을만한 미친 경영 전문가가 어디 있을지. 일단 지금은 GOS개발에 집중하고요.”
일단 회사에서 최초로 내놓는 AAA급 타이틀이기에, 상혁은 GOS가 최고의 퀄리티로 나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포수 회귀’로 쏟아지는 수익의 대부분을 거기에 투입하고 있었고.
본사 건물을 구하려는 용도로 모아두었던 여유자금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그런 와중에서도 지출을 계속 늘려나가는 위태위태한 경영이, 상혁이 회사를 굴리는 방식이었다.
지난번 서연이 물었던 예상 판매량에 대한 상혁의 ‘2천만 장’ 발언은, 단순히 예상 판매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2천만 장을 팔 수 있을 것이란 의미 외에, 2천만 장을 팔아야한다는 의미.
그것이 상혁이 말했던 예상 판매량의 진정한 의미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완성된 부분보다 나머지 부분의 완성도가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유저는 게임의 컨셉과 도입부를 보고 게임을 사지만, 스토리와 엔딩을 보고 명작 여부를 결정하니까.
아무리 잘 만든 대작이라도 엔딩이 구리면 졸작 취급을 받는 다는 사실을, 상혁의 회귀전의 여러 게임을 보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GOS의 현재 결정되어있는 엔딩은, 상혁이 보기에 충분히 감동적인 엔딩이라 할 수 있었기에.
‘실패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현재 상혁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리고 아직, 상혁에게는 다음 스텝을 위한 카드도 한 장 남아 있었고.
“선생님. 비행기 예약 부탁드릴게요.”
“응? 응. 이번엔 어디로 가려고?”
“일본 경유해서 미국으로 갈 겁니다.”
상혁이 말했다.
“이제 슬슬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야 하니까요.”
***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주일은 7일이다.
그렇기에 주 2회 방영을 전제로 할 때, 58화의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위해서는 총 29주의 방영기간이 필요하다.
완전히 엔딩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배틀로얄’을 공개했던 이전 상황과는 다르게, 상혁은 이번 애니메이션 방영 기간을 일부러 작품 출시일과 겹치도록 잡았다.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이 먼저 작품의 엔딩을 접할 수 있도록.
물론 그렇게 하면 게임에서 엔딩을 본 유저들이 애니메이션을 볼 때 스포일러를 당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상혁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애당초 PS3에서 전달할 수 있는 그래픽의 수준을 아득하게 상회하는 수준의 퀄리티를, 애니메이션이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게임으로 보았던 명장면을 더 높은 퀄리티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메리트로 느낄 것이라고 상혁이 설명하자, 애니메이션의 방영권 입찰을 위해 모인 방송국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단 한곳의 방송사만 제작위원회에 참가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
무려 일본에 존재하는 5대 민영 방송사 전체가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담당자를 보낸 상황에서, 콘노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애니메이션도 이렇게 되어야하는데.’
기존의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은 우선 제작비를 투자할 제작위원회를 모아 제작비를 마련하고 제작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사전에 애니메이션의 각 권리를 돈을 주고 사는 개념이기에, 원 IP의 가치가 높지 않은 이상은 절대로 제값을 받기 힘든 구조다.
좋은 원작이라는 가정 하에서야 그럭저럭 주머니를 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만 존재하는 오리지널 IP에 거금을 선뜻 투자하는 투자자는 없으니까.
그와는 반대로 상혁은 아예 전 제작비를 빵빵하게 지원한 상태에서 최고의 퀄리티로 제작한 ‘결과물’을 판매하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미 IP의 평가 가치는 E3에서 공개된 영상을 통해 압도적이라고 평가받는 상황.
게임이 출시되기 전에 미리 그 높은 퀄리티를 방송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각 방송사들은 회사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반드시 방영권을 따오겠다고 눈에서 불을 뿜어대고 있었다.
‘하긴 에반게리봉 신극장판 퀄리티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티비로 방영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이정도 반응은 당연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상혁이 모여 있는 관계자들을 향해 작게 기침을 했다.
“흠흠. 그럼.”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작해볼까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업계 최초로 최정상급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준 헐리우드급 3D 영상 제작 기술을 갖춘 두 회사가 협업하여 만든, 2006년 당시의 기술력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1화가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PTW가 E3에서 진행한 행사가 어째서 전 게임업계를 뒤집어 놨는지를 충분히 납득하게 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아, 눈물날 것 같다.’
육중한 로봇들 사이로 자신의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그려낸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콘노는 눈에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로 처음에 저 괴물같은 배틀 시퀀스를 가져와서 자신에게 캐릭터를 그려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조금만 캐릭터의 퀄리티가 떨어져도 배경 디테일에 밀려 작붕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콘노가 할 수 있는 것은 프레임 하나하나의 퀄리티를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저것.
오히려 캐릭터작업과 후보정만 맡았는데도 이전에 전체를 작업했던 ‘페○트’애니메이션보다 토 나오는 작업량을 필요로 했던 괴물 같은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과 같이 저 영상을 보는 방송사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것도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콘노는 확신했다.
단 한명도 빠짐없이 ‘저···. 저게 가능해?’ 라는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린 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1화의 방송이 끝나자, 방의 불을 켠 상혁이 화면 앞의 의자에 앉았다.
거대한 로봇이 정면을 바라보는, 위압감을 주는 배경을 뒤로 하고서.
“자. 그럼 불러보시죠.”
남은 건 하나였다.
저 말도 안 되는 IP를 누가 선점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확실하게, 협상의 카드는 PTW에 있다는 사실을, 상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방영하실래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상혁을 보며, 콘노는 왠지 상혁의 뒤에 있는 티비에 비춰진 거대한 로봇의 눈이, 회의실 안의 사람들에게 ‘돈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