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합체(Transform)
아무리 멋진 오프닝이더라도, 실제 게임이 재미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것은 리처드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게임 시장이 창고에서 컴퓨터 한 대 가져다 놓고 도트 찍던 시대에서, 수백 명이 모여 수십 수백억의 자금을 투입하여 소위 말하는 ‘블록 버스터’급 게임을 만드는 시장으로 변화하면서, 의외로 들인 돈에 비해 실망감을 주는 게임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을 팔아먹으려고 만든 건지 게임을 팔아먹으려고 만든 건지 헷갈릴 정도로 영상 퀄리티에만 엄청나게 신경을 쓴 게임이라던가, 아니면 제작자가 무슨 영화병에 걸려 인트로씬만 30분 넘게 진행되는 게임이라던가.
그러나 적어도 지금 리차드가 본 영상은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임팩트만을 안겨준 채 부드럽게 게임화면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언제 게임화면으로 전환 된 건지 화면이 움직이고 나서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사실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일종의 트릭이었는데, 영상에서 일부러 화면 전환 시에 퀄리티를 게임화면 수준으로 떨어트리면서 게임 화면으로 연결시킨 것이었다.
마치 눈으로 보면 눈앞의 영상이 위성 카메라 시점으로 옮겨지면서 화질이 저하되는 듯한 느낌의 연출을 쓰고 있었지만, 그 연출 자체가 영상과 게임화면의 퀄리티 차이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어쨌든 그런 연출에 힘입어 영상에서 게임화면으로의 전환은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민솔이 초안을 잡고 상혁이 다듬어 지수가 완성시킨, 로봇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100% 게이머에게 전달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용자 전설’의 게임 시스템의 플레이가 시작했다.
“로봇을 유닛으로 쓰는 실시간 x-pom같은 느낌이네.”
영상을 보며, 리차드가 중얼거렸다.
기본적으로 로봇이 각종 건물을 엄폐물로 삼아 도시를 방어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외계인과 싸우는 SRPG게임인 x-pom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쪽 게임이 아득하게 퀄리티가 높았고, 특이하게 직접 조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주인공 로봇에게 특정 지점에서 적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대답하면서 그 자리로 이동하지만, 건물이 부서지는 순간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취하며 다른 엄폐물을 찾아 뛰어다니는 식이었다.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하는 것은 ‘작전 지시’까지.
전투 자체는 현장의 유닛이 직접 하는 느낌에 충실한 시스템이었다.
마치 AI로 움직이는 자율 유닛에게 명령을 내리는 느낌의 생소한 장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트롤은 매우 직관적이었다.
―L1버튼을 누르면 유닛 메뉴를, R1버튼을 누르면 지형 메뉴를 호출 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님. 적이 접근 중이니 지형 메뉴를 호출하여 A300부터 C550 구역의 능동 방어 배리어에 기동 명령 하달을 부탁드립니다―
긴장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를 따라 차근차근 배워갈 수 있도록 설된 튜토리얼이 직접 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옆에서 보는 기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계 되어, 보고 있던 리차드가 시연자의 컨트롤러를 뺏어 직접 게임을 플레이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근데, 이거 디펜스 장르 맞지?”
주어지거나 생산 시스템을 통해 만든 유닛으로 일정 경로로 쳐들어오는 적을 막는 것을 디펜스 장르로 정의한다면, 리차드 옆의 기자가 물어본 것처럼 저것은 디펜스 장르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 도시 곳곳의 건물이 방어용 시설로 되어있어 지형 명령을 통해 해당 건물의 방어 시설을 동작한다거나, 지하에 숨은 방어벽을 위로 올려 엄폐물을 만들기도 하고, 군의 협조를 받아 미사일 등으로 탄막을 뿌려 적의 시야를 가리고 주인공 유닛을 도망시키는 등의 다양한 기믹으로 적을 저지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리차드는 저 게임을 일반적인 디펜스 장르라고 설명하기엔 조금 이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스템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겠는데, 주어지는 느낌으로 보면 ‘게임’보다는 무슨 ‘시뮬레이터’같은 느낌 아닌가?”
‘용자 전설’에는 원활한 동작을 위해, 유저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게임을 정지시키고 특정 유닛의 행동지시를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예를 들어 1스테이지의 보스가 사용하는 원형 브레스를 막기 위해서, 게임을 정지 시킨 뒤 도주 경로에 차단 벽을 여러 개 올려놓고, 주인공 로봇에 이동 지시를 내리면 정지 후에 어떤 식으로 이동하는 지를 마치 홀로그램 같은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정지를 풀면 홀로그램이 사라지며 미리 지시한 행동에 따라 로봇이 움직이며 마치 시간 정지가 해제된 것처럼 복잡한 연출을 보여준다.
그런 화면의 연출이, 일종의 게임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느낌보다는 일종의 군용 전투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느낌을 주고 있었기다.
“어찌됐건 진짜로 작전 지휘를 하는 느낌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한 느낌이네.”
주인공 역을 맡은 성우도 역할에 몰입했는지, 게임 상에서 명령을 내릴 때마다 계속 육성으로 해당 동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240C부터 750D까지 진입 차단벽 작동! 74C의 공격 유닛은 탄막을 쳐 적의 시야를 차단하라! 다음 공중 지원까지 남은 시간 보고!”
-ETA(Estimated Time of Arrival) 2 minute.-
“가디언은 즉시 240C 뒤로 이동. 변신 상태로 750D로 이동하여 지원 유닛 도착 시까지 대기.”
-명령 수신 완료.-
“지원 유닛! 도착시간 보고.”
-락 크러셔 ETA 3 minute.-
-에어리어 스위퍼 ETA 2 minute.-
-라인 블로커 700D지역 도달까지 1분 18초. 경로 문제로 근처에서 대기 예정.-
화면에 일제히 3개의 창이 뜨며 기계적인 목소리로 지휘관의 명령에 응답하는 통신 연출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예상 도착 지점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기갑 병기들의 홀로그램들.
그리고 딱 봐도 ‘아, 저놈 합체 잘하게 생겼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유닛 디자인.
정지된 화면에서 이리저리 작전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진행자를 보며, 관객들은 정지가 풀리는 순간 ‘어떻게 유닛이 움직이겠구나.’ 하는 상상을 화면위의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었다.
그때였다.
“작전 개시.”
주인공 역을 맡은 성우가 소리를 내며 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이 흐려지며 화면상의 유닛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세대기의 기기 성능을 100%활용하여 연출된 그 모습은, 2020년대를 살아본 적이 있었던 상혁이나 민준의 눈에는 꽤나 부족해보일지 몰라도, 이제 처음으로 ‘게임’에서 그런 그래픽을 처음 보는 기자들의 눈에는 실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변신을 반복하며 다이나믹하게 뛰어가는 로봇, 그리고 그런 로봇을 공격하는 거대 괴수의 공격을 막기 위해 수없이 발사되는 미사일들.
“사운드 죽이네.”
리차드의 옆에 있던 기자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로, 진짜로 건물이 움직이면 저런 소리가 나겠구나 싶은 느낌의 육중한 효과음이 부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로봇이 변신할 때 나는, 각종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유압 실린더가 움직이는 소리, 과열된 부속에서 스팀이 빠져나오는 소리.
조금 빡빡한 부속에서 금속이 긁혀나가는 소리들이 PS3의 그래픽 프로세서 성능으로는 전달 할 수 없는 사실감을 보조한다.
거기에 스피커 유닛 하나에 3천만 원 이상 들어간 고급 사운드 시스템에서 들리는 효과음이 압도적인 현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픽은 애니메이션처럼, 사운드는 진짜처럼.’
상혁이 잡은 컨셉에 맞게 카툰 렌더링으로 그려진 다양한 건물과 유닛들이 대형 모니터 상에서 각종 폭발 이펙트와 함께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절대 난잡해보이지는 않는 느낌으로.
이미 미리 지시할 때 나왔던 홀로그램으로 대략적인 움직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번에 여러 유닛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각 유닛이 지시한 위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분주함 속에서도 확실하게 정지 상태에서 플레이어가 지시한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재미있어 보였기에,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진짜로 상황실 모니터로 로봇들을 지휘하는 느낌의 게임 시스템.
게다가 위기의 순간마다 상황 보고를 통해 현장감을 살려주고 있는 오퍼레이터의 실감나는 연기.
‘처음엔 로봇이 나오길래 슈퍼로봇 대전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장르 자체가 다르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RCS(Robot command simulation)?’
벌써부터 기사로 이 게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고민하던 리차드의 눈에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미사일을 맞고 비틀거리는 기계 괴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어리어 스위퍼, 지금 현장에 도착. 전장 매뉴얼에 따라 즉시 교전에 들어갑니다.-
기본적으로 B-2 스텔스 폭격기의 외형을 기반으로 디자인 되었지만, 스텔스 성능을 위해 둥그렇게 만들어진 원본과 다르게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장갑으로 떡칠된 거대한 전투기가 기계 괴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에어리어 스위퍼(Area Sweeper: 지역 청소기)’ 라는 이름에 걸맞은 느낌의 압도적인 폭격으로.
그리고 그렇게 전투기가 시간을 버는 동안, 속속들이 도착한 지원 유닛들이 사령관의 명령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에어리어 스위퍼, 적 위험종 1차 저지 성공. 보유한 공격 수단의 80% 소모. 현재 남은 유효한 공격 수단 없음. 지휘관. 합체 명령 대기 중.-
-락 크러셔 작전 지역 도착. 지휘관. 합체 명령 대기 중.-
-라인 블로커 작전지역 도착. 지휘관. 합체 명령 대기 중.-
-지원 유닛 집결 완료. 가디언으로부터 지휘관에게. 합체 명령 승인을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기체가 ‘그것.’을 요구하자 관객들의 시선이 시연자에게 쏠렸다.
다들 하나의 마음으로, 마땅히 다음 순서로 나와야 할 ‘그것’을 보여 달라는 눈으로.
“여기서 오늘 시연은 여기까지 한다고 하면 나 살해당하겠지?”
그 모습을 보던 상혁이 농담을 던지자, 옆에 서 있던 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럼 해야지.”
상혁이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시연을 맡았던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힘찬 목소리로, 패드의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All unit! Transform command approved!(전 유닛, 합체 명령 승인) 전 방어 설비 최대 가동!”
-Transform command received!(합체 명령 확인)-
순간 아직 부숴지지 않고 있던 건물들이 일제히 변형하며 온갖 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했고, 4대의 로봇이 일제히 변신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동영상이 아닌, 게임 화면 위에서.
그리고 잠시 후 변신이 가능한 위치와 간격을 잡았는지 게임 화면상에서 그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부스가 날아갈 듯한 환성과 함께, 4개의 유닛이 합체를 시작하자 위성 카메라 시점처럼 보였던 게임 화면이 줌업되면서 어느새 초 고퀄리티의 동영상으로 부드럽게 연결 되었다.
그리고 아까 보여준 오프닝 시퀀스를 압도하는 퀄리티로, 전투기, 기차, 트럭, 자동차가 하나의 거대 로봇으로 합체하기 시작했다.
카툰 렌더링을 씌웠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보다는 실제로 저런 색의 로봇이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모습이었다.
‘로봇이 합체하고 있다.’
그것이 리차드가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그 한마디로는 담을 수 없는 웅장함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강철이 부딪히며, 꺾이고, 접혀나간다. 거대한 유압 실린더가 굉음을 내며 강철덩어리를 밀어내면, 미사일에 직격당해도 흠집 하나 안날 것 같은 두꺼운 철판에서 서로 맞물린 불꽃이 넘실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영화가 리얼함을 추구한다면, 애니메이션은 환상을 추구한다.
그리고 상혁이 만든 합체 영상은, 정확하게 그 정 중앙을 관통하는 감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육중함과 정교함.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합쳐진 기묘한 형태로.
그리고 음악.
음악을 듣고 있는지조차 인식 못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으로, 완벽하게 효과음과 싱크로를 맞추며 울려 퍼지는 음악이 마치 척추를 관통하는 것처럼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것들’이 합체하는 순간에, 회장 안에 모인 수백 명의 관객들이 같은 시각,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도록.
정확하게 계산된 사운드가 고막을 거쳐 심장 박동 수마저 조정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넘쳐흐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리처드는 회장이 떠나갈 정도의 커다란 소리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오! 젠장! 저건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야!”
어릴 적부터 트랜○포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던 리차드가 소리를 질렀다.
꿈이 현실로 재생되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 모인 기자들 대부분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저 미친 개발사에서 번 돈을 동전 한 닢까지 저거 만드는데 썼다고 해도 난 저들을 비난하지 않겠어. 저건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잠시 후 직경 3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의 거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대지위에 발을 내딛었다.
-쿠-궁-
박수. 그리고 환호.
관객 중에 더 이상 앉아서 영상을 보는 사람은 한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 소리 속에서, 거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겪었던 수모를 갚아주기라도 하겠다는 얼굴로,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는 거대한 기계 괴수를 바라보는 합체 로봇의 기계 눈.
-합체 시퀀스 종료. 지휘관. 명령 대기 중.-
“합체 이후 기체 상태에 따른 작전 제안을 보고하라.”
-현재 기체 컨디션 89%. 전 전투 기능 정상 동작 가능. 즉시 교전 명령 하달을 요청한다.-
“허락한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로봇이 거대한 기계 몸을 움직여 힘차게 땅을 박찼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저 거대한 기계 괴수에게 주먹을 날리기 위해.
마치 ‘로키2’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거대한 인간형 기계들이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사정없이 박살내며 서로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었다.
‘육중하다.’
회귀한 상혁이 알고 있는 로봇물 중에, ‘변신’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 트랜○포머 라면 ‘무게감’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퍼○픽 림’이었다.
‘강철의 거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게 만들어진 작품.
상혁은 카툰 렌더링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로봇도 그런 육중한 강철의 느낌을 내기를 원했다.
“거대한 관절이 내는 소리하나, 바닥에 콘크리트가 으깨지는 모습 하나가 무게감을 만듭니다.”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렌더링 센터의 직원들을 강제로 해외로 파견 보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압 굴삭기인 TEREX RH400을 눈으로 보라고 광산에 출장시키거나, 거대한 함선 엔진이 움직이는 모습을 다 같이 모여서 보기도 하고.
드릴, 크레인, 기중기, 피스톤, 유압실린더, 발전기 터빈, 함선 엔진, 타워크레인, 선박 프로펠러.
인간이 만든 온갖 거대한 강철 구조물을 수없이 참고하여 만들어낸 ‘무게감’이, 주인공 기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로, 존재하지 않지만 저렇게 거대한 로봇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분명 저렇게 움직일 것이라는 강렬한 확신을 보는 이들에게 심어주며, 강철의 거인은 공기를 짓누르는 속도로 적을 향해 도시를 가로질렀다.
정확히 제작자의 의도대로.
수천 톤짜리 ‘강철 덩어리’가 공간을 가르는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그리고 그 가운데, 지휘관과 합체 로봇의 대화가 통신음으로 울려 퍼졌다.
“더 이상의 적 진입은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 현재까지의 전투 정보로 가능한 저지 상황을 보고하라.”
-사전 전투로 입수한 기계 위험종의 방어 성능 계산 완료.
예상 전투 결과 계산 중···계산 완료.-
“가디언. 예상 전투 결과를 보고하라.”
순간 로봇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거대한 강철 거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화면이 바뀌며 사이드 뷰로 옮겨간 카메라가 거대한 기계 괴수를 향해 강철 주먹을 날리는 로봇의 옆모습을 비추었다.
-예상 전투 결과.-
그리고 로봇의 주먹이 거대 괴수의 면상에 펀치를 맞추기 직전, 전투 예상 결과를 묻는 사령관의 질문에 대해 주인공 로봇인 ‘가디언’이 답하는 단어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Exterminate!(멸절!)-
효과음일까, 아니면 강철 거인의 주먹이 기계 괴수를 관통한 것일까.
회장 전체를 울리는 -쾅- 소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되었다.
동시에 부스를 환하게 밝히고 있던 조명까지 전부 꺼졌다.
그리고 그런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정면의 대형 모니터로 방금 전 슬로우 모션으로 보았던 거대 로봇의 루비처럼 붉은 두 눈이 서서히 밝아졌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상혁이 최종 결정한 게임 타이틀을 띄우며.
‘The Guardian Of Steel’
-강철의 수호자들-
“Yeeeeeeaaaaaaaaaaaah!!!!!”
부스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 속에서, 리차드는 속으로 확신했다.
지금 부스에서 울리고 있는 함성이, 자신이 십 수 년 넘게 수많은 게임 런칭 행사를 보면서 들었던 환호성 중에 가장 큰 목소리라고.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X됐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상혁이 보여준 압도적인 쇼케이스의 감동을, 자신은 오직 사진과 글로만 전달해야만하기 때문에.
그것은 십년 넘게 게임 기자를 하고 있는 리처드로써도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작업임에 틀림이 없었다.
“Hell the fucking Yeah!!!”
그래도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기사를 쓸 때 머리털을 다 뽑아야한다 하더라도, 지금 본 광경은 ‘Perfectly awesome’한 장면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