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세컨드 임팩트
20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
여기 모인 기자들 중 상당수가 흥분된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2001년 E3에서 PTW가 선보였던 행사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지. 게임 이벤트의 판을 깨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 이후로 5년 넘게 침묵하던 회사에서 드디어 이번 E3참가를 밝혔어. 무슨 짓을 할지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는군.”
“2001년 E3면 ‘나이츠 어셈블’ 발표 했을 때 말하시는 건가요?”
“맞아. 그때 이벤트로 배포한 D&D룰북이 지금 얼만지 알아?”
“얼만데요?”
“상태 좋은 게 자그마치 7천불.”
“헉···.”
“그러니까 이번엔 뭘 뿌리더라도 주워가려고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있는 거야. 아직 무슨 게임을 공개할지 전혀 예상도 안가고.”
“글쎄요. 얼마 전에 이미 게임 하나는 발표 했잖아요?”
게임 기자인 리차드를 바라보며 신입 기자인 고든이 말했다.
“그리고 그 게임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하시더니 2주 넘게 게임만 하시다가 국장님한테 혼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요.”
“젠장. 진짜로 엊그제니까 생각나게 하지 말라고.”
“그거 재미있어요? 무슨 글자밖에 안 나오는 1970년대에나 할 법한 그런 게임을 하루 종일하고 계셔요?”
“자네 야구 좋아해?”
“어린 시절부터 필리스의 빅 팬이죠.”
“오, 맙소사. 그럼 당장 자네 컴퓨터에 있는 워크 패스트를 지워. 안 그러면 자네 인생의 일부가 순식간에 삭제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그 정도로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존재한 어떤 야구 게임도 주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고. 난 솔직히 게임을 하는 내내 속으로 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어. 그거 개발한 놈은 진짜 미친놈이야.”
“나이츠 어셈블도 평이 좋았죠.”
“맞아. 그렇지.”
리차드가 5년 전을 회상하며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ORPG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주말마다 수많은 유저들을 쇼파 앞에 붙잡는 게임이 ‘나이츠 어셈블’이었다.
아마 후속작이 나오기 전 까지는, 친구들과 ORPG를 하기 위해서라도 X-BOX를 팔지 못할 것이다.
그게 신기종이 나온 지 몇 년이 되더라도.
말 그대로 ‘대체제가 없는 게임’ 그것이 나이츠 어셈블에 대한 평가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전작도 그랬지. 마리의 눈물이었나. 그것도 일본 스타일 게임 이미지가 나한테 안 맞아서 조금밖에 안 해봤지만, 출시 된지 7년이 넘은 지금도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 넘쳐난다던데.”
“이번에 나온 야구 소설 게임은요?”
“그거?”
리차드가 웃으며 말했다.
“난 매일 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20년 후에도 가끔 하긴 할 거 같다.”
게임북 스타일 게임의 가장 큰 단점인, ‘몇 번 하면 질린다.’ 라는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게 ‘포수가 회귀를 숨김’ 이었다.
매 경기마다 새롭고 매 시즌마다 놀라움을 보여주는 게임이었기에.
단순한 텍스트 뒤에서 돌아가는 게임구조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는 몰라도, 플레이 하는 내내 ‘이런 이야기도 다룬다고?!’하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게임이었다.
‘미쳤다고 그런 게임을 만들면서 다른 게임을 동시 제작 하지는 않을 테니까, 오늘 나올 건 분명히 ’포수 회귀‘의 추가 업데이트 정보일거야.
리차드 말고도 많은 기자들이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선수 엔트리 에디터.
다들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게임에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기능이 오늘 발표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부스에서 분주하게 오픈 준비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던 상혁은, 혀를 차며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역시 실물 크기 로봇을 만들었어야···.”
상혁은 회귀 전 일본 오다이바에서 보았던 실물크기 간담처럼 거대한 로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임팩트를 줘야 한다며 상혁이 실물 크기의 주인공 기체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 했을 때, 상혁은 오랜만에 팀원 전체의 필사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절대 3개월 안에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아, 좀 일찍 떠올렸으면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두 개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소형화 및 양산화가 진행 중인 코넥트 프로젝트와, 게임 개발과 거의 별개로 굴러가는 워크 패스트의 개발을 포함해서 총 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용하는 것은 상혁에게도 꽤나 부하가 걸리는 문제였다.
그래서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미리 하지 못했던 상혁은 결국 로봇 제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상혁은, 이번 E3에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팀원들은 오히려 이쪽이 더 임펙트가 있다며 자꾸만 로봇에 미련을 두는 상혁의 마음을 달랬다.
“이번 이벤트도 괜찮아요. 오빠. 그러니까 이번엔 이걸로 만족하죠.”
“맞아. 이것도 돈 진짜 많이 들었잖아···.”
“난 이쪽이 좀 더 마음에 드는데? 뭔가 진짜로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후···. 아니 지금 것도 나쁘지 않긴 한데 역시 로봇이···.”
“그건 안 돼요!”
“그건 좀···.”
“그건 안 돼!”
서연과 지수, 현주가 동시에 소리 지르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뭐, 욕심이었으니까. 포기해야죠. 기간도, 예산도 오버니까요.”
그러자 현주가 웃으며 상혁을 달랬다.
“맞아. 지금 이벤트도 엄청 좋다니까? 참가자들 전부 좋아할 거야.”
현주의 말대로, 이번 E3에도 상혁이 곳곳에 숨겨놓은 이벤트 상품을 찾아낸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PTW의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거 맞죠?”
“맞을 걸? 이런 물건을 준비할 만한 회사가 거기 말고 더 있을까?”
“지난번에 뿌린 건 지금 7천불 가까이 한다면서요? 이건 더 비쌀 거 같은데요?”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부터 화분까지 회장을 샅샅이 뒤져 이벤트 상품을 찾아낸 리차드가, 손 위에 들린 물건을 보며 말했다.
“이거, 대체 뭐지?”
아마 로봇 애니메이션을 좀 본 사람들이라면, 왠지 애니에 나오는 통신 기기같이 보인다고 말할 만한 물건이, 리차드의 손 위에 들려 있었다.
회장 곳곳에 숨겨져 있었던, 작은 액정과 스피커, 몇몇 버튼으로 이루어진 손바닥만 한 ‘무언가’.
그러나 그것을 쉽사리 장난감으로 정의하기에는, 재질이나 마감이 지나치게 고급스러웠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통신 장비 같은 느낌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전원 버튼처럼 보이는 스위치를 ON 위치로 해 놓아도 화면에는 [Waiting for command] 라는 텍스트만이 검은 화면 위에 덜렁 떠 있을 뿐이었다.
리차드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조작을 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계는 깔끔한 음색의 비프음 만 내 보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진짜 장난감인가?”
“시간이 되면 동작하는 형태 아닐까?”
“어찌됐건 비싸 보이긴 하는군.”
리차드는 카메라를 꺼내 자신이 입수한 통신기의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마케팅의 PTW’라는 괴상한 이명까지 붙어있는 한국의 게임회사에서, 이 신기한 장치를 통해 어떤 이벤트를 선보일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이 미리 지정해 놓았던 시간이 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통신기의 화면이 일제히 켜졌다.
-긴급. 긴급. 현 시간부로 LA 앞 C-37구역에 대피령을 발동합니다. 통신기를 가진 사관후보생들께서는 긴급히 상황실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어? 뭔가 나오는데?”
아름다운 여성의 다급해 보이는 통신음이 끝나자,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마치 원거리에서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고 있는 듯한 화면이 출력 되었다.
그리고 거기엔, 장난감같이 생긴 액정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기 힘든 높은 해상도로, LA앞바다에 출몰한 거대한 기계 괴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현재 시간 00:15분을 기해, 해당 위험종의 명칭을 ‘코드네임: 엔타두라스’로 변경합니다.
위험 등급은 3등급입니다.
현재 미 공군이 요격을 위해 F-22를 출격해 교전 준비 중.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통신기를 가진 모든 사관후보생들께서는 긴급히 상황실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울렸지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화면에 보이는 기계 괴수의 모습이, 연출된 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짜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오, 진짜 같다. 이거.”
부스에서 기자들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통신기를 들고 있던 지수가 감탄사를 흘렸다.
영상 안에서 재생되는 화면은, 상혁이 일부러 카툰 렌더링 대신 실사풍 CG를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진짜로 누군가가 현장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는 듯한 영상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나오게 하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가보죠. 아마도 PTW부스일 것 같은데.”
묘하게 행사장 내에서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형태의 부스가 있던 것을 떠올린 기자가 입을 열었다.
보통은 멀리서 보아도 무슨 게임을 준비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E3의 상식인데, PTW는 엄청나게 높은 벽을 쳐서 내부 노출을 완전히 막아놓은 부스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벤트가 시작되었단 소리는, 이제 그 부스의 입구가 오픈되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미 공군 소속 F-22도착. 지금부터 3등급 위험종 엔테라 두스와 교전에 들어갑니다.-
화면에서는 계속 진짜처럼 보이는 전투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통신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 미이라에서 세뇌된 시민들이 이동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입에서 ‘임-호-텝’만 말했으면 정말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부스 근처에 다가온 기자들의 귀에, 부스 안쪽에서 먼저 진입한 다른 사람들이 지르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영상에서 눈을 떼고는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상에서 나온 소리와 같은 소리가, 손 방향이 아니라 정면의 부스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
그리고 잠시 후, 안으로 진입한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기자들과 같이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평생 돌아다닌 게임 쇼 이벤트 중에서도, 말 그대로 압도적인 느낌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와아아아아아아!!!”
방금 전까지 작은 화면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던 전투 영상이, 눈앞에 초 거대 모니터를 통해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대의 모니터를 통해서, 다양한 각도로 거대 기계에 의해 파괴 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모습으로.
그리고 ‘전투 상황실’ 이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부스 내 설비 속에서, 제복을 입고 다급한 표정으로 어딘가와 통신을 하고 있는 스탭들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그때, 부스에 들어온 리차드를 향해 스탭들과 같은 제복을 한 어여쁜 미녀가 말을 걸었다.
“혹시 사관 후보생이 맞으신가요?”
“아, 예?”
“통신기를 보여주시겠어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리차드가 통신기를 내밀었다.
여전히 화면에는 F-22가 기계 괴수와 싸우다 터져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초거대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자 스탭으로 보이는 여성이 웃으며 리차드의 팔을 잡아끌어 준비된 좌석으로 안내했다.
“사관 후보생께서는 여기서 대기 부탁드립니다.”
리차드는 자리에 앉아서야 자신이 영상에 눈이 팔려 촬영을 깜빡하고 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촬영 가능한가요?”
“전투 후 보고서 작성을 위한 개인 촬영은 허가되어있습니다. 사관후보생님.”
“감사합니다.”
리차드는 목에 건 카메라를 꺼내 영상과 부스의 이곳저곳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신이 영상을 촬영하는 방송기자가 아니라, 잡지 기사를 주로 촬영하는 게임 기자인지를 속으로 욕하면서.
‘아, 이건 영상으로 남겨야하는데.’
기본적으로 재생되고 있는 영상의 내용은, 게임의 오프닝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단지 상혁은 그 안에서 목소리로 전달되는 부분을 체험 형 콘텐츠로 기획하고, 부스 전체를 상황실 같은 이미지로 꾸며 이벤트를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상혁이 만든 상황실의 모습은, 마치 로봇 애니메이션 ‘에반 게리봉’의 지휘 본부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대체 무슨 게임이지?’
일단 기계 괴수가 나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등장한 미군은 형편없이 쓸려나가고 있었고,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무지막지하게 높은 퀄리티의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리차드는 저 영상이 대체 어떤 게임을 선보이기 위해 재생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가 없었다.
갑자기 오른쪽에 있는 영상이 변하며, 처음 보는 형태의 멋진 기갑차량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 까지는.
‘자동차?’
아무리 봐도 위에 대포 하나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자동차를 보여주는 것일까.
그리고 메인 모니터가 비추고 있는, 괴물에 밟히기 직전인 소녀는 왜 아무도 구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른쪽모니터에서 달려가고 있는 차량의 배경에 점점 부서진 파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 괴수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메인 모니터에서 소녀가 괴물에게 밟히기 직전, 우측 모니터에서 정 중앙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하던 차량이 공중으로 점프했다.
“What the-!!!"
리차드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동안, 우측 모니터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른 기갑차량이 공중에서 화려한 변신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모니터 경계를 넘어 중앙 모니터에 있는 기계 괴수의 몸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어, 언제?!”
방금 전까지 실사풍의 영상이었던 화면이, 로봇이 변신하는 동안 자연스레 카툰렌더링의 색감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중앙에서 자세를 바로 잡고 있는 거대한 기계 괴수를 배경으로, 괴수의 앞에 홀로 당당히 선 거대한 로봇의 등이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위풍당당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자들이 들고 있던 통신기와 정면의 대형 스피커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음으로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의 멋진 목소리가.
-본부. 지정된 로케이션에 도착했습니다.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미리 성우가 더빙한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카메라가 점점 위에서 아래를 비치는 화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알았다. 시민의 피해를 최대한 막으며, 나머지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도록.-
-적의 완전 배제가 가능하다면 파괴해도 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무리는 하지 말도록. 너의 임무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곧 합체 유닛이 도착할 것이니 절대 데미지를 입지 말 것.
다시 말한다. 합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데미지는 절대 입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방금 전 로봇의 돌격씬을 연출하며 분할 모니터처럼 한 개의 화면을 송출하던 모니터가, 이제 각각의 화면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쿼터뷰로 비춰진 게임화면과 함께, 왼쪽 모니터로 기계 괴수의 확대된 옆모습을, 오른쪽 모니터로 방금 기계 괴수를 들이받은 멋진 로봇을 볼 수 있도록.
같은 영상이라도 편집을 어떻게 하고,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을 주는 법이다.
상혁은 주어진 리소스를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나누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대한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도록 영상 소스를 편집했다.
그리고 상혁의 의도대로, 이 이벤트의 ‘한 장면’이 되어버린 리차드는 눈앞에서 시연되는 게임 화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번 PTW가 E3에 출전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적금을 깨서라도 가장 비싼 비디오 카메라를 가져오겠다고.
PTW의 두 번째 E3이벤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상상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그런 그림으로.
보는 이의 기억에 80세가 넘어도 남을 만한 강렬한 체험을 남겨주면서.
그리고 이제, 3개의 모니터를 통해 본격적인 게임 시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민준이 호언장담한, 아직 발매도 안 된 PS3의 성능 포텐셜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 만든 현존하는 가장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 시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