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오버 퀄리티
“상혁아, 이게 무슨 이야기야? 어제 삼정 본사 간다더니, 지분 거래하고 온 거야?”
“오빠, 그럼 우리 이제 삼정전자 자회사 되는 거예요?”
“얼마나 넘겼어? 얼마나 받았는데?”
상혁이 출근하자마자, 부실에 모여 있던 팀원들이 마구 질문을 던졌고, 상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넘기긴 넘겼죠. 주당 만원에.”
상혁이 말하자마자, 팀원들이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빠! 미쳤어요!?”
“야, 연매출 천억 기업 주식을 무슨 주당 만원에 넘겨?! 얼마나?! 얼마나 넘겼는데?!”
“상혁아, 난 네 판단을 무조건 믿지만 이번엔 좀 실수한 것 같아. 거기가 어디야? 초 거대그룹 삼정이라고? 거기 밑에 들어가면 우리 회사의 아이덴티티는 무너지고 말거야.”
팀원들의 비난을 들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상혁이, 약간의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팀원들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민준이 서 있었다.
“너, 알면서 설명 안 해줬어?”
“이편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숨을 쉬며, 상혁이 사정에 대해 설명하자, 팀원들의 표정이 다이내믹하게 변화했다.
그리고는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실 가운데의 쇼파에 걸터앉았다.
“뭐야, 그러니까 결국은, 의결권도 없는 1주를 넘긴 거란 말이지?”
“엄밀히 말하면 그쪽에서 받는 걸 거절했으니 1주도 넘겼다고 보기는 힘들죠. 어차피 우리 회사 주식은 투자를 받을 것이 아닌 이상에야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신문엔 이렇게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떴는데?”
성연이 조간신문을 가져와 상혁에게 넘기자 상혁이 내용을 훑어보았다.
거기엔 이주용 삼정전자 부회장이 ‘워크 패스트’를 삼정전자의 공식적인 사내 업무 솔루션으로 채택했다는 내용과 함께, PTW의 지분 ‘일부’를 매매했다는 내용이 함께 적혀 있었다.
“선물 한번 화끈하네요.”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이 만든 소프트를 도용하거나 베껴 만드는 경우는 이 바닥에서 흔하게 있는 일이죠. 이주용 부회장님은 정확한 %는 밝히지 않고 ‘일부’라고 언급함으로써 저희 뒷배에 삼정전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신 거예요. 그럼 웬만한 곳에서는 워크 패스트를 베껴 만들 만한 용기를 내기가 힘들겠죠. 잘못하면 삼정이랑 싸워야할지도 모르니까요.”
“실제로 그런 건 아니잖아. 삼정에서 대신 싸워줄 것도 아니고.”
“그런 이미지만 주는 거죠.”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이걸로 타사에서 저희 프로그램하고 비슷한 기능을 출시하는 건 어느 정도 자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경련 측에서 요구하는 게임 차단 기능도 이주용 부회장님께서 어느 정도 커버 쳐주시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마지막 용자 전설’의 개발에 집중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럼 ‘포수 회귀’ 개발팀은 어쩔 거야?”
“흠, 일단 공식적으로 그쪽의 차기작은 축구 소설 게임이에요. 그래도 서로 포인트가 다른 부분이 많아서 전체 스크립트부터 알고리즘까지 거의 새로 손봐야 하는 수준이겠지만.”
“근데 왜 축구야? 농구나 아니면 판타지로 내도 재밌을 것 같은데.”
“우선 지금의 야구 게임으로도 일본이랑 미국 시장은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유럽 시장도 먹으려면 축구가 필요해서요.”
상혁의 말을 들은 현주가 말했다.
“글로벌 하구나.”
“글로벌 해야죠.”
상혁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솔직히 저희 게임들은, 1인당 매출 기댓값이 그리 높지 않으니까요. 최대한 유저수를 늘리는 게 수익을 극대화 하는 방법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달력 앞으로 갔다.
“이번 2006년 5월. 그러니까 3개월 남았죠. 10일부터 12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2006 E3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거기서 ‘마지막 용자 전설’의 첫 공개 시연이 이루어질 겁니다. 당장 다음달부터 ‘워크 패스트’의 일어 버전과 영문 버전이 발매 예정이고요.”
“번역 문제는 괜찮아?”
현주가 묻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처음 개발할 때부터 여러 언어로 동시 개발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어요. 물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독일어 버전은 별도로 개발해야하지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번역인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긴 했어요. 선생님께서 번역 인력 섭외 좀 해주세요.”
“전에 나이츠 어셈블 번역한 인력으로는 안 돼?”
“워크 패스트 만 번역하는 거면 괜찮은데 앞으로 축구 텍스트 게임 만들 것도 감안하면 아예 정규 인력으로 고용하는 게 좋겠죠.”
“알았어. 그럼 이번엔 외주 말고 정직원으로 뽑는 걸로 진행할게.”
상혁은 회의를 진행하며 인력 재배치를 단행했다.
우선 축구 소설을 기반으로 한 텍스트 게임을 만들 스크립터의 신규 고용 규모를 결정하고, 기존의 2팀 프로그래머 중 필요한 최소 인력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1팀으로 인사 이동시킨 상혁은, 다음으로 휴가 일정과 관련된 안건을 진행시켰다.
“우선 저는 어차피 안갈 거지만 2팀 인원은 일단 게임을 출시했으니 두 달간의 유급휴가를 지원할 거예요. 그리고 상여금은 2팀 인력에게 월급의 400%, 전 직원 대상으로 200% 지급할까 하는데 어때요?”
“전 좋아요.”
서연이 말하자 나머지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1팀 인력도 받아?”
성연이 묻자 상혁이 말했다.
“1팀 게임이 출시될 때도 2팀 직원들이 받을 거예요. 딱히 편가르기를 하고 싶지는 않으니 전원 지급으로 하죠.”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1팀 게임이 실패하면?”
“이건 성공 보상이 아니라 완수 보상입니다. 회사에 여유가 있는 한은 일단 프로젝트 하나가 엎어지던 실패하던 성공하던 무조건 보상은 지급하고 싶어요.”
“뭐, 돈 더 준다는데 싫어하는 직원은 없겠지. 사운드 팀도 좋아하겠네. 그래도 우리 본사 건물도 확보해야하는데 너무 자금을 펑펑 쓰는 게 아닌가 걱정되긴 한다. 우리보다 잘 버는 회사들도 우리만큼 지급하지는 않던데. 연봉도 지금 업계 평균보다 거의 1.5배 높잖아.”
성연의 우려는 딱히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회사의 존속이 가능한가.’에 대한 우려였기 때문에, 상혁은 웃으며 성연의 불안을 달랬다.
“괜찮아요. 지금 회사의 주 수입원인 게임 둘 다 유저수도 매출도 성장라인을 이제 막 타기 시작했고, ‘회귀 포수’가 미국과 일본에 진출하면 그것도 엄청나게 높은 매출이 나올 테니까요.”
그렇게 성연을 안심시킨 뒤, 상혁은 개발관련 이슈로 회의의 주제를 옮겼다.
이제 하나의 게임이 출시된 상황에서, 나머지 하나의 게임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수야, 개발 상황 공유 좀 부탁할게.”
상혁의 말을 들은 지수가 부실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앞에 섰다.
그리고는 화면에 개발 현황을 띄우며 현재 상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전에 상혁오빠랑 플레이 시나리오 작성 작업 이후 전체 작업 결과물 중에 상당수를 갈아엎어야했지만, 개발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어요. 다들 의욕적으로 만들고 있어서 지금 작업 진행률은 전체 공정의 60%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들 좋아해?”
“엄청요. 확실히 개발 중인 게임의 완성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플레이 시나리오를 짠게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다들 어떤 재미를 만들어야하는지 확실하게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려갈 수 있으니까요.”
“예전처럼 개발 방향하고 다른 방향의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고?”
“아주 가끔 나오긴 하는데 그건 제가 설득해서 고치고 있어요.”
그렇게 말한 지수가 갑자기 쪼르르 상혁의 앞에 다가와 머리를 숙이자, 상혁이 잠시 머뭇거리다 지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다. 고생했네.”
“헤헤···.”
“그럼 지금 남은 과제는 뭐야?”
다시 자리로 돌아간 지수가 화면을 넘기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반적인 개발 이슈인데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다들 문제가 있을 거 같으면 알아서 해결하고 계셔서···. 아, 그리고 그 플레이 시나리오대로 만들어진 오프닝을 다들 보고 싶어 해요. 그쪽은 상혁오빠가 맡아서 하고 계셨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지수의 질문에 다른 팀원들도 입을 열었다.
“아, 맞아. 오빠, 그거 때문에 렌더링 센터도 짓는다고 했잖아요? 그거 언제 완성돼요?”
“나도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힘줘서 만들 길래 설비까지 새로 맞추면서 만들려고 하는 건지.”
그러자 상혁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보고 싶어요?”
“설마 이미 완성 됐어요?!!?”
“실은 어제 새벽에 받았지.”
상혁은 어제 새벽에 받은 메일을 떠올렸다.
릭이 보낸, 분명 떨리는 손으로 작성했을 것이 분명한 메일을.
그 메일의 내용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완성되었습니다. 아마도 역사가 바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기본적으로 릭이 거의 회사 기둥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예산을 들여세운 렌더링 센터는, 헐리우드의 특수효과 전문 업체인 ILM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단지 초 고화질의 실사풍 렌더링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카툰 렌더링에 필요한 수준으로 스펙을 낮춘 버전이었을 뿐.
컴퓨터의 그래픽 카드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20년대에야 가정용 컴퓨터로도 레이트레이싱이나 네이티브 4K출력 같은 초 고성능을 요구하는 그래픽의 출력이 가능하지만, 2006년의 경우는 보급형 가정용 컴퓨터가 1080P의 3D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의 연산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GPU 클럭만 비교 해도 2006년에 고사양 취급받던 지포스 7950T의 GPU클럭이 550 MHz 정도이고, 2020년대 최상위 그래픽 카드인 3090이 1860 MHz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시대를 넘어가며 향상된 공정이나 회로 설계 등으로 올라가는 성능을 포함하면 당시 그래픽 성능과 2020년의 그래픽 성능은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2006년에 트랜○포머같은 초 고퀄리티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진행 하고 있었는데, 그 비결이 바로 렌더링 센터라고 할 수 있었다.
-컴퓨터 성능이 딸리면 필요한 성능이 나올 때까지 무식하게 병렬연결하면 된다!-
말 그대로 수천대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필요한 만큼의 성능을 뽑아서 쓴다는 개념.
당연하게도 설비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방법이지만, 현재로서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을 한없이 넘어가는 퀄리티를 뽑아내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효율은 정말 개떡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애당초 매년 그래픽 카드의 성능 향상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기적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 설비 교체를 감행했어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릭의 요구에 주저 없이 예산을 할당했고, 릭은 그런 상혁의 믿음에 힘입어 헐리우드의 특수 효과 전문 기업인 ILM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툰 렌더링만큼은 2020년대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상의 퀄리티를 뽑을 수 있는 거대한 렌더링 센터를 완성해내었다.
그것도 2005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치 진짜 로봇이 변신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트랜○포머’가 개봉한 날보다 약 1년 8개월이나 앞선 시점이었다.
그리고 렌더링 센터가 완성 된지 약 2개월이 흐른 지금, 그 첫 결과물이 상혁에 손에 들려져 있었다.
“빨리 보여주세요!”
“저도 보고 싶어요!”
“상혁아, 딴것보다 그거부터 보고 이야기하자. 나도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팀 멤버들이 입을 모아 상혁을 압박하자, 상혁은 웃으면서 모니터와 연결된 컴퓨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릭에게 받은, 그 시대에 존재할 수 없는 퀄리티로 완성되어 상혁에게 전달된 그 영상을, 회의실에 있는 대형 모니터로 재생시켰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글로 표현된 이야기와 실제로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옛말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으니까.’
“···어때요?”
영상의 시연을 끝낸 상혁이 팀원들에게 말했지만, 팀원들은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를 직접 짰던 지수가 받은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이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이 방금 본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저, 저거···.”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엄청나다’ 혹은 ‘좋다’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압도적인 무언가를 영상으로 본 직후라, 단어를 고르는 게 힘이 들었다.
결국 지수는, 영상에 대한 감상대신 영상 중간에 문득 떠올랐던 질문을 상혁에게 던졌다.
“···저거, 얼마나 들었어요?”
가끔, 너무 압도적인 무언가를 보았을 때 드는 ‘저거 대체 얼마짜리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지수가 던지자, 상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묻지 마라. 엄청 비싸다 저거.”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말할 수 있겠네요.”
“뭐?”
“그게 얼마나 큰 금액이든, 진짜 1원도 안 아까운 퀼리티라고요.”
지수의 목소리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
같은 시각,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우포테이블의 회의실에서도, 상혁이 재생한 영상과 같은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애니메이터들은, 정확히 PTW의 팀원들이 영상을 보고 보여준 반응과 같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린 채, ‘이게 진짜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하는 표정.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우포테이블의 사장 콘노 히가루는 입을 다물고 영상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협의할 때, 우포테이블 측에서 캐릭터와 후 보정을, PTW측에서 로봇 애니메이션 및 전투 이펙트를 작업하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에 캐릭터를 그려 넣고 후 보정 작업을 하라고?’
사람이 손으로 한 프레임 한 프레임씩 그려도 저 퀼리티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준의 퀄리티를 가진 영상에, 캐릭터를 ‘그려서’ 삽입해야한다는 것이, 지금 우포테이블 앞에 놓인 숙제라 할 수 있었다.
‘캐릭터 퀄리티 떨어지면 무지막지하게 티 날 텐데.’
콘노는 상혁이 어째서 로봇 애니메이션에 가장 중요한 로봇 씬을 PTW에서 작업하면서도 우포테이블측에 일반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의 전체 제작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전부 지급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결국 상혁의 의도는, ‘이번에도 넉넉하게 챙겨 드렸으니 퀄리티는 우리 수준에 맞춰주세요.’ 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때, 콘노의 옆에 있던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거 계약 취소 되요? 저거 퀄리티 맞추려면 캐릭터만 작업해도 직원들 죽어나갈 것 같은데.”
“안될걸?”
“돈을 더 달라고 하면···.”
“그럼 더 줄 사람이야. 그 사람은.”
“그럼 결국···.”
“우리가 해야지. 해 내야지.”
이전에 작업했던 페○트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도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전설적인 퀄리티로 유명했다.
그러나 상혁이 이번에 맡긴 작업은, 아마도 이전에 그들이 만든 전설을 그냥 이야깃거리 수준으로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었다.
콘노는 마치 상혁이 영상을 통해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우린 여기까지 해냈으니, 여러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세요.’
콘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상혁이 보내준 이 영상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도발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좋아. 해보자는 거죠?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이상혁 씨.’
콘노가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여기 맞추려면 우리 인력만 가지고 어림도 없다. 아는 사람 중에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는 다 불러! 돈은 부르는 대로 준다고 하고!”
‘전투씬은 좋은데 캐릭터는 영···.’
콘노는 절대 그런 평가를 받는 애니메이션의 제작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이 아는 인맥을 총 동원하여 상혁의 도발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최소 작화가 극장판 퀄리티가 나와야한다고 생각하고 작업합시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자고요.”
그렇게 말하는 콘노의 불타는 눈빛을 보며, 직원들 역시 의지를 불태웠다.
반드시 저 영상을 보낸 상혁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