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07화 (108/485)

107.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금융 관련 인프라를 구축중인 국내의 한 중소기업. 직원들이 모두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사장이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사장 김모 씨(55)]

-미치겠어요. 제가 고개만 돌리면 게임을 한다니까요? 그냥 보면 일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대체?-

-얼마 전 발매된 업무용 프로그램 ‘워크 패스트(WORK FAST)’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희 방송국에서도 쓰고 있을 만큼 업무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평범한 메모장에 오른쪽 클릭을 하니 게임 시작이라는 버튼이 보입니다.

눌러보면 소설 같은 느낌의 문장이 쓰여 있는 메모지 창이 나타납니다.

놀랍게도 소설 같지만, 이것은 게임입니다.

2만자를 볼 때마다 100원씩 결제도 요구합니다.

이미 수많은 직장인이 게임의 이용자가 되었습니다.-

[직장인 박모 씨(32)]

-회사 나와서 하고,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으면서 하고, 집에 가서도 하죠. 휴대폰으로 안 되니까 버스에선 못하는데, 요즘은 노트북도 하나 사야하나 고민 중입니다.

너무 재밌어서 일에 집중을 못합니다.

이달에만 벌써 5만원 넘게 썼어요.-

-무료 업무용 프로그램이라 소개하고 안에 게임 기능을 업데이트한 개발사 PTW에 대해, 재계에서는 강력한 항의의 표시를 전했습니다.

VBS 뉴스. 정혜원입니다-

“오빠, 진짜로 재계 항의인가 뭔가 받았어요?”

“어? 걍 전화 한통 받았지.”

“뭐라고 하던가요?”

“회사에서 원하면 해당 기능만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달라던데.”

“그래서 뭐라고 답했어요?”

“어휴, 저희는 기술력이 딸려서 그런 거 못 만드는뎁쇼? 일단 개발팀에 전달은 해 드리겠습니다만 크게 기대는 하지 말아주십쇼. 라고 했지.”

그렇게 말한 상혁이 TV를 껐다.

상혁이 재생한 것은 어제 저녁 9시 뉴스를 녹화한 영상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게임이 퍼지면 당연히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상혁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추세는 지나치게 빠른 감이 있었다.

“내가 몇 가지를 놓쳤어. 생각보다 게임이 너무 빨리 퍼진다.”

상혁의 말에 민준이 질문했다.

“뭘 놓쳤는데?”

“우선, 지금 시대의 직장인이 생각보다 회사에서 할 만한 딴 짓이 없다는 거.”

2020년의 직장인이야 유튜브를 보던 스마트 폰으로 자동사냥 게임을 돌리던 이것저것 놀 거리가 많았지만, 2006년엔 그런 종류의 오토 기반 게임도 없었고,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것도 불편했기에 ‘포수가 회귀를 숨김’은 상혁의 예상보다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로 직장인 특성상 그룹 멤버 중에 한명만 게임을 해도 금방 공유가 된다는 것.”

당연히 친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한명만 게임을 해 보아도 그게 재미있다면 순식간에 메신저 기능으로 그룹안의 멤버들에게 공유가 된다.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처럼, 전체 회사 안에 한명만 게임을 플레이 했어도 전 직원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야구팬이 아니어도 그냥 소설 읽는 기분으로 할 게 없어서 읽다가 우리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사람을 방에 가두고 윈도우만 깔려있는 PC를 주고 15년쯤 군만두만 먹이면, 아마 갇혀있는 사람은 지뢰 찾기와 솔리테어의 달인이 될 것이다.

업무만 해야 하는 직장에서, 업무하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으로 몰래 할 수 있는 게임의 파급력은, 상혁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뉴스에 나오는데 4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랐어.”

상혁의 말에 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전자 결제 기능이 있으니 플레이어 중에 회사 임원이나 관리자급도 꽤 있을 거고, 본인들도 해봤으면 금방 이게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겠지. 어쩔 거야? 지금이라면 아마 회사에서 게임 기능을 차단하는 권한을 회사용 라이센스로 팔아도 돈으로 탑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안 해. 우리가 출시한건 어디까지나 ‘게임용 플랫폼’이지 오피스 솔루션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프로그램 이름을 워크 패스트로 지었냐?”

“위장이지. 위장. 그리고 업무 효율 올라가는 건 사실이잖아. 지금 우리 회사에서도 쓰고 있으니까.”

결국 상혁이 원하던 수준으로 AI가 업무를 보조하는 형태의 프로그램 개발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2020년 기준으로 사용되던 다양한 업무용 프로그램의 기능을 몽땅 때려박은 워크 패스트는 매우 편리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었다.

신입이 들어와 인수인계 할 때도 단순하게 워크 그룹에 추가만 하면 알아서 주소록부터 폴더 접근 권한까지 미리 준비된 셋팅으로 즉각 동기화가 되었으니까.

거기에 어떤 문서든 여는 순간 안의 주요 내용의 키워드를 분해해 숨김 태그로 저장하는 기능이 있어, 태그 검색 기능으로 대부분의 문서 내용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이것도 호평 받는 기능중의 하나였는데, 예를 들어 게임 회사의 경우 대규모 업데이트에 딸려 들어간 기능에 대한 기획 내용을 찾을 때, 원래 대로면 파일 제목에 표시가 안 되어 있을 경우, 해당 기획이 들어가 있는 문서를 찾으려면 일일이 문서를 다 확인해야 했었다.

하지만 문서 내용 검색이 가능한 워크 패스트를 사용하면 순식간에 해당 키워드가 들어간 문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온갖 편의성으로 무장된 워크 패스트에 숨겨져 있는 악의는, 겉으로 보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애당초 모든 개별 양식이 ‘.WFS’라는 이름의 확장자 파일로 공유되기 때문에 같은 워크 패스트 사용자끼리는 엄청나게 편하게 관련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이걸 안 쓰고 해당 정보를 공유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였던 것.

민준은 상혁이 고의적으로 짠 이 기획을 보고 ‘이놈이 대한민국 기업에 뱀독을 풀려고 하는구나.’ 라고 평가했고 상혁은 그런 민준에게 ‘미국이랑 일본이랑 유럽에도 풀 거다.’ 라고 답변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워크 패스트를 사용 중인 기업에서 그를 배제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건 이전보다 두 배 이상의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은 새 기능에 익숙해지긴 쉬워도, 무언가 편리하게 쓰던 걸 쓰지 않고 작업하는 건 엄청나게 불편하게 느끼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게임 서비스를 시작한지 단 두 달 만에 공중파 9시 뉴스에 워크 패스트의 신기능이 언급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기업 측에서는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이렇게 뉴스까지 떴으니 조만간에 뭔가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퇴출이야 지들 편하게 쓰고 있는 거라 힘들 거라고 해도, ‘왜 업무용 프로그램에 게임 기능을 넣었냐.’ 같은 비난 같은 건 좀 각오해야 할 것 같은데.”

민준이 걱정하며 말하자 상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딱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그 논리로 따지면 윈도우에도 지뢰 찾기랑 솔리테어 빼야지. 애당초 무료 프로그램이고 그걸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우리 자유인데, 지들이 뭘 어쩌겠어?”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종이 한 장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지난 달 ‘포수가 회귀를 숨김’으로 들어온 매출에 대한 통계 데이터였다.

“국내 서비스만 했는데 게임 오픈한지 두 달 만에 등록 사용자수가 37만, 결제 유저수가 25만이야. 이 정도면 기적의 결제 비율이라고 할 수 있지.”

애당초 ‘포수가 회귀를 숨김’은 굳이 결제를 하지 않아도 하루 2만자 분량은 공짜로 플레이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37만의 등록 유저 중에 25만명은, 하루 2만자의 플레이 분량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추가로 결제를 한 유저라는 뜻이었다.

“그걸로 지난달 매출만 45억이었어.”

상혁의 말에 팀원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2만자에 100원 받는데 월 매출이 24억이 떴다고요?”

“평균 결제 금액이 9700원 정도 되더라고. 그리고 숫자는 계속 성장 중이고. 아마 다음 달에 미국이랑 일본에 출시가 완료되면 가볍게 월 매출 200억은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이미 배틀로얄로 찍고 있는 매출이 월 100억에 가까웠기에 그 정도면 월 300억의 매출이 확보된다는 이야기였다.

아직도 팔리고 있는 ‘마리의 눈물’이나 ‘나이츠 어셈블’의 매출을 제외 하고도.

지금까지 망한 출시작이 하나도 없었고, 매번 게임을 낼 때마다 매출의 스케일이 성장하고 있었기에, 회사로서의 PTW의 미래는 한없이 장밋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조만간 구해야할 본사 건물의 구매 비용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예상외의 성적에 놀라긴 했지만, 상혁은 그 덕에 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회귀 전에 단지 직원으로서 게임을 개발할 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 회사라는 개념이 정말로 돈을 무지막지하게 퍼 먹는 괴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연말 보너스, 설 연휴 보너스, 성과급, 연봉 인상, 각종 복지와 세금, 점심 식대, 야식비, 렌더링 센터 설비 사는데 들어간 돈, 애니메이션 제작비, 각종 사무용품 구매 비, 프린트 토너 값이랑 종이 값, 무지막지하게 내야하는 전기세, 퇴직 급여, 대학교 건물을 빌려 쓰는 대신 대학교 측에 내고 있는 임대료···.’

목록으로 뽑으면 엄청나게 길어질 듯한 각종 지출들이 거의 월단위로 빠져나간다.

직원이 100명을 넘은 시점에서, 처음에 마리의 눈물로 벌었던 총 매출 따위는 거의 병아리 눈물로 느껴질 정도의 막대한 금액이 지출되고 있었다.

‘배틀로얄 아니었음 x될 뻔···.’

이제 이걸로 PTW에 매달 현금을 꽂아주는 캐시카우가 2개가 되었다.

점점 늘어나는 지출 속에서 회사 운영을 걱정하던 현주도 이걸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진짜로 갓겜이 되었네.’

가끔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볼 때마다, 현주는 흐믓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거 단장 바뀌는 이벤트도 나오네요? 성적 계속 꼬라박으니 구단주가 빡쳐서 단장 딴 놈으로 바꿈. 지금은 팀 리빌딩 스토리로 들어감.-

-헐. 저는 필리스 팬 아니라서 계속 다른 팀 옮길 거 생각 중이었는데 퀄리파잉 오퍼 포기하니까 원하던 팀 나와서 지금 다저스에서 뛰는 중.-

-이 게임은 과연 소설인가 아니면 야구 시뮬레이터인가. 생각보다 연봉 협상도 그렇고 이것저것 이벤트가 많아서 웬만한 콘솔 야구 게임 커리어모드보다 즐길게 많네요.-

-3년차인데 질리지가 않음. 시즌 경기 다 뛰어도 지루하지가 않음. 이것 땜에 작업속도 늦다고 맨날 선임한테 까여도 속으로는 좀 있다 자리로 돌아가서 다음 타자 어떻게 도발할지 고민하게 만듬.-

-이거 2만자에 100원이라 그렇지 5천자 100원이었으면 매달 20만원은 꼬라박았을 듯.-

-레알. PTW게임은 배틀로얄 때부터 했었지만 진짜 넘 돈 욕심 없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수준에서 과금 요구하는 듯. 한국 게임사는 좀 보고 배웠으면.-

커뮤니티에 올라온 유저들의 글을 떠올리며 미소 짓던 현주가 문득 뭔가가 기억난 듯 상혁을 불렀다.

“아, 상혁아.”

“네?”

“혹시 이거 휴대폰으로 낼 생각은 있니? 어제 커뮤니티에 누가 자기 휴대폰 야구 게임 개발 중인데 ‘포수 회귀’가 휴대폰으로 나오면 그냥 개발 포기해야할 것 같다고 울면서 절규하던데.”

“아뇨. 안 낼 거예요.”

“들고 다니면서 하면 나름 즐거울 거 같은데 왜?”

“지금 휴대폰 게임 시장은 조금 비정상이라 서요. 통신사 이윤 비율이 너무 높아요. 우리야 웹브라우저로도 할 수 있으니까 크게 문제는 없지만, 우리 게임 은근 용량이 너무 커서 일반 폰에 넣으려면 받다가 통신비 폭탄 맞을 걸요?”

“흐응···. 그렇구나.”

“한 3년 후면 모를까 지금은 힘들죠.”

아이폰 3GS의 발매가 3년 후인 2009년임을 떠올린 상혁이 말하자, 현주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3년 후야?”

“뭐, 그때쯤엔 휴대폰 시장도 바뀌어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그런 거죠. 아, 그리고 다음 회의 안건은 새로운 본사 위치 관련해서···.”

대충 얼버무린 상혁이 다음 안건의 이야기를 꺼내자, 현주는 머릿속에서 생긴 의문을 바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상혁이 바라는 회사의 입지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부실에 설치된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이 시간에?”

고객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 PTW에서, 부실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는 것은 회사 내 다른 용무가 생겼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선, 대부분의 업무가 팀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윗선으로 당장 보고해야할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선 조치 후 보고가 기본적인 회사 기조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웬만해서는 부실에 설치된 전화가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준는 의구심을 품으며 차분하게 전화기 방향으로 이동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 인사부장님?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그, 대표님을 찾는 전화가 와서요. 급한 안건이라고, 지금 당장 연락이 곤란하면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하는데 어쩔까요?-

“예주 씨, 원래 그럴 때는 상대측의 연락처를 받아두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안내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에요.”

-앗, 죄송합니다. 그런데 연락해온 쪽이···.-

그때, 어느새 현주 곁으로 다가온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아마 데스크 예주 씨도 그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아마도 본인이 판단하기에 그런 정상적인 대응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서 연락한 거겠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수화기를 건네받고는 안내 데스크 직원인 예주에게 말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앗! 사장님!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당황한 예주의 목소리가 들리자 상혁이 달래듯 말을 건넸다.

“무조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본인 판단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입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급한 일일 테니 뭐라 하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죠?”

-누가 대표님을 찾으셔서요. 급하게 만나고 싶다고 하시는데, 연락한 쪽이 좀···-

상혁은 딱히 데스크에서 당황할 정도의 인물이 연락할 만한 일이 있었나 하고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누가 만나고 하자던가요?”

상혁이 묻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귀엽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생각보다는, 연락해온 사람이 매우 큰 거물인 듯 했다.

-이주용. 삼정전자 부회장 이주용 비서실에서 연락해왔습니다.-

상혁을 급하게 만나고 싶다고 한 사람.

심지어 상혁조차도 굉장히 뜬금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예상외의 인물인 그는,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계의 거물.

삼정전자를 이끄는 재벌 그룹의 부회장, 이주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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