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06화 (107/485)

106. 중독

배틀로얄의 발매 이후 순식간에 국내 PC방 이용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PTW에서 신작을 발표한다는 정보가 나오자, 게임업계는 크게 들썩였다.

이전에 상혁이 공개 시연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도 퍼포먼스였지만, 매번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내 놓고 온라인 게임뿐만 아니라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기업의 차기작이기 때문이었다.

힌트야 차고 넘쳤다.

업계 인맥을 조금만 건너가도 어느 회사 누가 무슨 조건으로 PTW에 갔더라 하는 이야기는 쉽게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인 정보를 통해 게임업계 기자들은, 아마도 PTW에서 발표하는 차기작이 로봇과 관련된 게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외에는 모션인식 관련 게임일 것이란 소문도 좀 있었고, 특이하게 야구 관련 게임일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상혁이 언론 자료를 통해 신작에 대해 공개하자, 게임 기자들은 PTW의 신작에 대한 기사를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어? 이거 게임이 아닌데?’

게임회사에서, 그것도 매번 만드는 게임마다 남들 안 만드는 특이한 게임만 발표하던 회사에서, 이제 게임이 아니라 오피스 업무 솔루션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배포하자 기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배포가 진행된 홈페이지에서, 실제 베타 버전을 받아보고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게임회사에서 개발한 것 치고는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상혁이 제공한 오피스 솔루션은, 굳이 말하면 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여러 유틸을 하나로 합쳐놓은 일종의 유틸리티 모음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채팅창의 클립보드 기능이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는데, MS오피스에서 작성하던 작업물의 일부를 복사해서 채팅창에 넣으면, 확인은 이미지처럼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 원하면 해당 내용을 바로 붙여넣기 해도 원본 서식을 유지하는 형태의 클립보드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폴더내의 파일이나 이미지에 태그를 붙여 검색 관리하는 기능이라던가, 서로 다른 파일의 날짜나 용량, 내용물을 비교하는 컴페어툴, 아웃룩보다 훨씬 관리하기 편한 인터페이스의 메일 관리 툴, 그리고 프로그램이 기동되어있는 시간을 자동으로 체크하여 사용자의 실제 출퇴근 기록을 보기 편하게 뽑아주는 출결 관리 시스템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래픽 작업자들에게는 이미지 관리 기능이 매우 호평이었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다양하게 모아놓은 참고 이미지들에 태그를 붙여 빠르게 원하는 것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향상된 보안 옵션을 사용하면, PTW에서 제공하는 서버가 아니라 회사 내 특정 컴퓨터를 서버로 사용하여 외부 서버를 경유하지 않고도 내부 망에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물론 그 보안 옵션도 무료.

거기에 공동 작업의 버전 관리를 위해 쓰이는 SVN(Subversion) 툴까지 포함되어있어 실제로 이 프로그램 하나만 깔아도 웬만한 유료 유틸리티의 기능은 다 씹어먹을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상혁이 'WORK FAST' 라고 이름 붙인 이 업무용 솔루션은, 완벽하게 팀 작업을 편하게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한 지극히 실무적인 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프로그램의 일부에 접근하기 위한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였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프로그램 애드온 형태로 회사에서 필요한 추가 기능들을 개발해 붙일 수 있었으니 거의 업무 솔루션 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공개와 동시에 홈페이지에서 각 기능의 상세한 사용 튜토리얼까지 동영상으로 제공하자 입소문은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도 그럴게 회사 입장에서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데 사용해야하는 막대한 라이센스 비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실제 실무자들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기능들이 워낙 다양하고 강력해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발매 이후 단 두 달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것을 보며, 상혁은 웃음을 흘렸다.

“기능을 새로 배우는 것도 귀찮지만, 있던 기능을 못 쓰는 건 더 괴롭지. 아마 이거 쓰고 있는 회사들은 제거 하고 싶어도 함부로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릴 거야.”

상혁이 부실에서 웃으며 말하자, 서연이 동의했다.

“맞아요. 그 이미지 색인 기능 정말 좋더라고요. 검색만 하면 하드 전체에서 내가 붙인 태그의 이미지만 찾아서 볼 수 있으니까, 참고 자료 찾을 때 너무 편해요.”

“나머지 기능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미소 지었다.

애당초 2020년대까지 쭉 발전된 각종 업무 솔루션에서 가장 편한 부분을 골라 정수만 모아서 만든 프로그램이었으니까.

당시의 한참 발전중인 프로그램들 보다 쓰기 편한 것이 당연했다.

그때, 서연이 부실을 둘러보며 상혁에게 물었다.

“근데 민준 오빠는요?”

“걔는 아직 게임 엔진 개조 중.”

“지금도 충분히 사람이 쓰는 거랑 비슷한 거 같은데 더 고칠게 있나?”

“알잖아. 걔 완벽주의인거.”

“그럼 게임 기능은 민준 오빠가 수정 완료하면 낼 거예요?”

“그렇게 되겠지. 그때까지 이건, 게임 플랫폼이 아니라 그냥 업무 솔루션인거고. 나중에 안 쓰려고 해도 이미 적응 되어버려서 뺄 수가 없는 그런 물건이 되어 버리는 거지.”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민솔이 한마디를 던졌다.

“와···. 우회 기능 빼자고 할 때만 해도 나는 팀장 오빠가 뭔가의 양심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정 버전이 더 사악한 것 같아···.”

“아니, 난 단지 게임만을 위해서 이걸 깐 게 아니라는 양심의 도피처를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을 뿐이야.”

상혁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선이 명확한 편이었다.

“그리고 어떤 게임이든 오래 하면 질려.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포수가 회귀를 숨김’도 초반에야 엄청 빠지겠지만 결국 몇 시즌 넘어서 S급 스킬 다 먹고 시즌 씹어 먹다가 엔트리 수정해서 좀 가지고 노는 거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질릴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게임에 몇 십만 원 쓰고요?”

“10만원만 쳐도 텍스트 분량만 2천만 자 분량인데 그 정도면 만족하지 않을까?”

“그렇겠죠?”

“결국 이 게임은 좋은 추억으로 남고 가끔 생각날 때 돌리면서 즐기는 게임이 되겠지. 그 외에는 업무 솔루션으로의 역할을 할 거고. 결국엔 균형이 잡힐 거니까 괜찮아.”

“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게 축구 버전도 내고 배구 버전도 낼 거지만···.”

“아, 역시 악마다.”

애당초 이 좋은 플랫폼을 1회성으로 내버릴 이유가 없는 상혁이었다.

민준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아마 민준이니까 잘 해낼 것이다.

그리고 민준의 작업이 완료되면, 게임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고.

“아, 게임 출시했을 때 유저 반응이 너무 궁금해 미치겠다. 진짜 좋아할 거 같은데.”

상혁이 몸을 배배꼬며 말하자, 팀원들이 미소 지으며 상혁을 보았다.

언제나 돈보다 유저가 얻을 즐거움을 기대하는 상혁의 모습이, 옛날부터 전혀 변하지 않는 한결 같은 모습이어서.

그리고 그 시각, 민준은 프로그래밍 팀 작업실에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이 짠 코드를 바라보았다.

“휴, 겨우 해는 넘기기 전에 끝냈네.”

상혁조차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확신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이었지만, 민준이 기어이 해낸 것이었다.

‘이걸로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적정 패턴을 AI가 학습할 수 있겠지.’

기본적으로 ‘포수가 회귀를 숨김’의 모든 텍스트는 클라이언트가 암호화하여 가지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 어떤 텍스트를 출력할지에 대한 것은 서버가 결정하게 된다.

민준이 수정한 알고리즘은 유저가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와 결제 비율에 맞춰 해당 패턴 전개의 점수를 매기고, 그것으로 좀 더 나온 조합의 문장 구조가 더 자주 나오도록 만든 것이었다.

문장연결이 어색하거나 읽기 어렵다면 자연스레 스크롤 속도가 늦어질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빨라질 것이기에.

말 그대로 수많은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서버에서 좀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문장을 구성할 수 있도록 노출되는 문장의 패턴을 학습하는 알고리즘.

그것은 완전히 사람이 쓰는 것보다 자연스러움은 떨어질지 몰라도, 어찌됐건 랜덤 함수에 의존하는 컴퓨터가 일으킬 수 있는 실수를 최소화 하면서 점점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결국 컴퓨터가 알아서 드라마를 짜게 하는 건 실패했지만 뭐, 일단은 이정도로 만족해야지.”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게임 부실로 향했다.

지금이라도 오매불망 자신의 작업 완료를 기다리고 있을 상혁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게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 게임 시장에서, 휴대폰용 야구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박병건은 오늘도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시작프로그램에 등록해놓은 워크 패스트가 기동하며 병건의 듀얼 모니터 한쪽에 오늘 작업해야할 리스트를 메모장 위로 주르륵 띄우기 시작했다.

“캬, 이거 진짜 편하긴 하단 말이야.”

이정도로 기능이 편리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슨 의도로 공짜로 뿌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다못해 여기 광고만 붙여도 엄청나게 수익이 창출될 텐데, 마치 돈 주고 산 프로그램처럼 깔끔하게 기능만을 제공하는 워크 패스트는 병건에게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병건은 워크 패스트의 알림창을 눌러 작업 현황을 파악했다.

거기엔 회사 그룹에 소속된 각 작업자들이 병건에게 메일로 보낸 각종 업무 자료들이 리스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리스트를 클릭해서 파일을 바로 확인하고, 해당 파일을 컨펌 체크하면 상대측에서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만약 피드백이 있으면 메일 창을 열지 않아도 별도의 피드백 항목으로 바로 의견을 보낼 수 있고, 그 경우 알람창에 다른 색으로 표시가 되어 상대도 어떤 작업이 확인되었으며 어떤 작업이 수정 요청을 받았는지 바로 체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원한다면 매우 깔끔하게 정리된 일정 체크 현황표로 프린트하거나 오피스 포맷으로 뽑아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능도 워크 패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는 이게 없으면 작업이 불편할거라고 생각하던 병건은, 알람 리스트에 있는 목록을 하나 둘씩 지워가다가 처음 보는 색의 알람을 발견했다.

아마도 워크 패스트의 개발사 측에서 띄운 알람인 것 같은 그 알람을 눌러본 병건은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W.F 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합니다. 이번 업데이트부터 메모장 기능을 활용하여 간단한 텍스트 야구 게임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여 메이저리그를 정복하려는 괴물 포수의 MLB정복기를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가볍게 즐겨보세요!

게임을 즐기시려면 메모장 오른쪽 클릭 메뉴의 -포수가 회귀를 숨김 시작-을 눌러주세요!]

이게 광고인지 아니면 그냥 기능 업데이트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단순한 텍스트를 본 병건은 자신도 모르게 메모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른쪽 클릭을 하니 과연 여러 메뉴 중에 [포수가 회귀를 숨김 시작] 이란 버튼이 보였다.

‘PTW에서 만들던게 야구 게임이었어?’

물론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게임과는 다른, 메모장으로 하는 텍스트 게임이란 소개를 보았기에 병건은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려 했다.

애당초 스포츠 게임이란 게 아무나 도전할 만한 물건도 아닐뿐더러, 메모장으로 할 만한 게임이라고 해봐야 공책으로 끼적이던 연필 야구 수준의 게임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메뉴를 닫으려던 순간, 병건의 머릿속에 작년 TV다큐 프로를 통해 보았던 상혁의 게임 공개 시연 행사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보는 이를 흥분하게 만드는 그런 쇼.

그리고 거기서 나온 신작이, 오피스 솔루션에 달린 미니게임이란 것이 병건을 묘하게 신경 쓰이게 하고 있었다.

“그래. 참고만 잠깐 해보자. 만약 내가 생각하는 연필야구 같은 거면 욕이나 한바가지 해주지 뭐.”

그렇게 생각한 병건은 메뉴를 눌러 업데이트된 미니게임을 클릭했다.

그러자 공지에서 말했던 그대로, 진짜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무식하게 ‘텍스트로만’ 구성된 야구 게임이 병건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소설이잖아? 아니, 오프닝만 이런 건가?”

병건은 텍스트를 계속 읽어나갔다.

아마 금방이라도 자신이 예상했던 숫자3개를 바꿔가면서 상대가 만든 숫자를 맞추는 ‘연필 야구 게임’이, 화려한 문장으로 포장된 오프닝 뒤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몰입감은 좋네.”

KBL을 씹어먹던 포수가 고교시절로 회귀해 메이저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병건의 흥미를 강하게 끄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게임 개발팀에 들어간 거니까.

그러나 자신이 만드는 야구 게임은 피쳐폰 용으로 개발 중인 게임이었기에 PC나 콘솔용으로 개발된 야구 게임보다는 훨씬 깊이가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병건은 자신이 만드는 어설픈 야구 게임보다 텍스트 밖에 없는 이 게임이 오히려 더 야구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실제로 게임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이 나올때까지 계속 텍스트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더블A리그의 시범경기에서, 선발 포수로 출전하게 된 주인공이 상대 타자를 상대하는 씬이 나오자, 병건은 놀라움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오, 선택지방식 게임이었네?”

텍스트로 주인공이 타자를 잔뜩 도발해놓았다는 문장이 나왔기에, 병건은 아래로 흘리는 볼을 주문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힘차게 헛스윙을 하는 타자.

“아니, 진짜로 정 중앙으로 줄줄 알았어? 너 바보냐?”

주인공의 대사를 보던 병건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리자, 옆자리에 있던 직원이 병건을 돌아보며 말했다.

“과장님? 뭐 웃긴 거 보셨어요?”

“어?!어? 아냐. 아무것도. 일해. 일”

이후로도 병건은 시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텍스트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소설 읽는 기분으로 보는 게임이라고 하면 나쁘지 않네. 대신 대놓고 힌트가 눈에 보이는 게 좀 아쉽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은 그리 만들기 어렵지 않다.

어찌됐건 잘 짜인 메인 스토리에 실패 시에 넣을만한 곁다리 텍스트만 짜면 되는 거니까.

말하자면, 게임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솔직히 제작 난이도로 치면 초등학생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단순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PTW에서 낸 신작이 이런 거라니 조금 실망이네. 엄청난 걸 기대했는데. 물론 스토리는 엄청 재미있게 잘 짠 거 같지만···.’

병건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첫 타자를 3진으로 잡자마자, 다음과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현재 아이템 확인은 ctrl+i로 확인 가능합니다.>

‘아이템이 있어?’

병건이 단축키를 누르자, 새로운 메모장이 뜨며 주인공 황빈의 현재 능력치가 텍스트로 표시되었다.

<황 빈의 인벤토리>

[회복제(1)] [사용] [버리기]

물론 게임북에도 몇몇 시스템은 아이템을 사용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아이템의 사용 시기는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이 정석이었다.

예를 들면 살인마를 만났을 때 칼을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는 스토리 분기로 이동한다는 식으로.

그러나 분명 지금 받은 아이템은 언제나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 말은 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뒤쪽 이야기 진행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고, 그건 이 게임이 단순한 텍스트 분기를 이용한 게임이 아니라, 어쩌면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하하···. 그건 아니지···.”

‘소설 같은 느낌의 텍스트 게임’이란 건 개념 자체는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절대 만드는 게 쉽지 않은 법이다.

특히 방금 읽은 문장의 자연스러움을 생각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리 없어···. 설마···.’

병건은 계속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게임을 플레이 해 나갔다.

그리고 무료 체험의 제공 분량인 20만자 분량의 플레이를 다 마치고서, 더 플레이를 하려면 회원 가입 및 결제가 필요하다는 창을 띄워놓고 조용히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씁···. 진짜 시뮬레이션 야구 게임이네. 그것도 텍스트로만 진행되는···.”

그때, 옆에서 병건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건 씨, 오늘 주기로 한 기획안 언제 올릴 거야? 벌써 퇴근 시간 다 되가는데, 오늘 점심도 걸렀다더니 아직도 시간 부족해?”

멍하니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5시였다.

아침부터 연속으로 점심까지 거르면서 8시간을 꼬박 플레이 했던 것이다.

팀장은 자신의 말에도 병건이 멍한 눈을 하고 있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병건 씨! 어디 아파? 아프면 조퇴를 하던가, 아니면 오늘 못주면 오늘 못준다고 이야기를 했어야지 멍하니 있으면 어떡해?! 일정이란 게 있잖아! 일정이란 게!”

그러나 팀장이 화를 내건 말건 그것은 병건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팀이 피쳐폰 사양에 맞춰 조잡한 야구 게임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 ‘그’  PTW에서, 괴물 같은 신작을 야구게임 장르로 출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구팬인 자신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픽 하나 없이 메모장에 텍스트가 전부인 이 게임이, 지금 현존하는 웬만한 콘솔 야구 게임을 다 압살해 버릴만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까의 흐리멍덩한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진지함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서 병건이 팀장을 보며 말했다.

“팀장님.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어? 무슨 얘기?”

“오늘 워크 패스트에 업데이트된 PTW의 신작 게임에 대해서요.”

“그런 게 있었어? 근데 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오피스 솔루션에 붙어있는 미니게임 같은 거일 건데.”

“그 미니게임이 위험하다고요. 젠장. 일단 잠깐 회의실로 가죠.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PTW에서 어떻게 저 게임을 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텍스트만 있는 게임이니 충분히 피쳐폰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현존하는 휴대폰용 야구 게임은 전부 전멸할거라고, 병건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게임과, 앞으로 출시된 게임을 포함해서.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망할 게임 리스트’엔 자신들이 지금 개발 중인 ‘파워풀 포켓 프로야구’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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