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03화 (104/485)

103. 플레이 시나리오

민준이 게임의 완성도를 올리겠다며 칩거에 들어가자, 상혁은 본격적으로 ‘마지막 용자 전설’의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넉넉하긴 해도 마감이 정해져 있는 업무기 때문에, 이쪽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리드 기획은 지수가 맡고 있었으므로, 상혁은 자신이 ‘포수가 회귀를 숨김’을 만드는 동안 지수가 리드 기획으로써 했던 작업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될 나이에 대학교에 조기입학을 한 지수에게 리드 기획은 많이 부담 가는 자리이긴 했다.

그래도 상혁은 일본에서 지수가 본인이 배웠던 것도 있고, 자신이 가르쳐준 지식도 있기에 지수가 힘들어도 배틀로얄 개발  작업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당초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면 무리가 되었더라도 자신이 양쪽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았을 테니까.

‘그래도 열심히 한 흔적이 보이네.’

기획자의 역량이 약간 어설프더라도, 나머지 멤버의 역량으로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다면 그럭저럭 프로젝트는 굴러간다.

심지어 기획자 없이 굴러가는 프로젝트도 있긴 하니까.

거기에 아직 한창 어린 나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에, 지수는 1팀에서 일종의 마스코트 같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가 도와주고 싶어 하고, 모두가 귀여워하는 그런 존재.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지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팀원들이 다 같이 어린 지수를 돕는 형태가 되버려, 상혁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원활한 개발’과는 좀 다른 느낌의 ‘원활한 개발’의 느낌으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젠장, 좀 부럽다.’

뭔가 아이디어 하나 꺼낼 때마다 ‘이번엔 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나’라는 눈빛을 받는 게 일상이었던 상혁은, 지수가 받는 팀 내 취급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함께 기획 관련 서류를 검토해나갔다.

“새틀라이트 캐논?”

“아, 그거 작업자 중에 한분이 가져온 아이디어인데 저는 괜찮을 것 같아서 넣으려고 하는데···. 안 될까요?”

“흠, 넣으려는 이유는?”

“그냥 넣으면 멋질 거 같아서요.”

“아이디어 자체는 멋진데 일단 밸런스 문제가 좀 걸린다. 지금 우리 게임에 있는 기계 괴수 중에 우주에 있는 위성을 공격할 유닛이 있나?”

상혁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러네요. 저걸 넣으면 밸런스가 좀 위험하겠네요.”

“무려 우주에서 발사하는 거대 빔인데 공격력이 시원찮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고, 그렇다고 너무 강하면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은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무작정 더하다보면 게임의 본질이 쉽게 망가질 수 있는 법이다.

리드 기획이란 그런 부분에서의 판단이 명확해야한다.

수많은 작업자들이 내는 아이디어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게임의 방향성을 강화하고 어떤 아이디어가 방향성을 해치는지 판단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드 기획자의 머릿속에 완성된 게임의 그림이 완벽하게 있어야했다.

상혁이 생각하는 지수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그런 면이었다.

작업자가 가져오는 아이디어가 게임에 긍정적인 면을 더하는 요소인지, 아니면 기존 시스템을 위협하는 요소인지 판단하는 능력.

“이 게임의 본질을 생각해봐. 이게 방어 장비로 도배해서 괴수 잡는 게임인지, 아니면 용자로봇을 개발해서 적을 막는 게임인지.”

“흠···. 그럼 빼야하나?”

“빼라는 소리는 아냐. 위성 빔 병기 자체는 멋지잖아. 단지 기계 괴수가 공격할 수단이 너무 한정되니까, 예를 들어 꼭 넣어야겠다면 빔을 반사판으로 반사해서 공격하는 지상 방어시설 같은 걸로 구현하면 되지.”

“아, 그 시설이 무너지면 빔 공격을 못하게 되겠네요.”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혁의 아이디어를 기획서 구석에 적었다.

그런 식으로 상혁은 자신이 부재중이던 시기에 지수가 컨펌 했던 기획들을 전체적으로 재점검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리드 기획자 역할을 수행해낸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의 말을 건넸다.

“좋아. 잘했어. 몇몇 문제들을 제외하면, 괜찮게 잘 하고 있구나.”

“히히, 고마워요. 오빠.”

“그래도 조금은 게임 전체에 대한 윤곽을 명확하게 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윤곽이요?”

“아이디어를 받았을 때, 기존에 만들고 있던 게임보다 아이디어에 대한 부분만 판단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소리야. 적어도 리드 기획자는 만들고 있는 게임의 완성된 버전이 머릿속에 있어야지. 그리고 아이디어의 방향성을 그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고.”

“아···.”

지수가 뭔가 알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이 말했다.

“좋아, 그럼 일단 지금 지수 네가 생각하는 게임의 완성된 모습을 플레이 시나리오로 작성해보자. 초기 기획에서 많은 부분이 변경되었으니까, 중간 체크를 겸해서 지금 네 머릿속에 있는 게임이 어떤 모양인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때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다시 정리해 보는 거야.”

“오, 재미있겠다!”

상혁이 노트북을 가져다주자, 지수는 바로 머릿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완성 버전의 게임을 떠올려 플레이 시나리오를 적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게임의 전체 그림이 들어가 있다면, 플레이 시나리오는 그렇게 거창하거나 어려운 개념의 기획이 아니다.

마치 자신이 유저가 된 기분으로, 머릿속으로 완성된 게임을 플레이할 때의 느낌을 그대로 적어나간다.

단지 그것이면 된다.

기획자에 따라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획자도, 아니면 아예 플레이 시나리오 자체를 적지 않는 기획자도 있었지만, 상혁은 플레이 시나리오가 기획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유저가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낄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 기획자도 그 감정을 유저에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게임에 넣어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상혁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지수 역시 상혁의 가르침대로 완성된 게임을 머리에 담고 있었다.

단지 실시간으로 익숙하게 머릿속의 게임을 시뮬레이트 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상혁에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수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기획을 배울 날이 얼마든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

지수는 상혁이 알려준 대로, 머릿속에 자신이 개발한 게임의 완성된 버전을 떠올렸다.

집에 돌아가, 소파에 앉아서, 게임기를 키고, 편한 자세로 패드를 잡는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게임 타이틀을 감상한다.

아니, 그것은 좋지 않다. 상혁 오빠가 말한 대로 지수는 첫 플레이때 아예 인트로 시퀀스가 나오는 형태의 게임연출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여기서는 첫 구동이라 생각하고 타이틀 대신 어둠속에서 페이드인 하며 보여 지는 오프닝을 떠올려보자.

귀엽게 생긴 작은 소녀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어릴 적 밤하늘을 보면서, 저 수많은 별들 중의 어딘가에, 무서운 외계인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매일 밤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 괴물들의 상상을 하며, 나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 정도로, 충분히 어리석은 존재였으니까.-

화면의 텍스트가 사라지며 카메라가 밤하늘에 다가가자, 밤하늘처럼 보였던 무언가가 다른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을 가득 가릴 정도로 검고 반짝이는 그것의 정체는, 밤하늘의 별이 아니라 검은 강철에 박힌 수많은 카메라 렌즈들이었다.

“꺄아아아악!!!”

소녀의 곁을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보이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영상이 거대 로봇이 도시를 습격하는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소녀는 밤하늘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엄마를 잃어버린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빌딩만한 기계 괴수가 자신을 밟아버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때, 화면이 전환되며 마치 NASA의 상황실을 연상하게 하는 공간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인물들이 다급하게 하는 대화를 통해, 인류가 지금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가에 대한 간접적 정보가 흘러나왔다.

“F-22는 도착했나?”

“이미 전멸했습니다.”

“미사일은? 탱크는? 대체 방위군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사령관님. 이제 슬슬 현실을 인정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저것.’은 인류가 가지고 있던 병기로 막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요.”

“그럼, 그들이라면 저것들을 막을 수 있다는 건가? 세계 최강의 군대도 막을 수 없던 저 괴물을?”

군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돌려 묻자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미소 지었다.

“오직 그들만이 저것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며 거센 자동차 엔진 소리와 함께 서연이 디자인한 멋진 기갑형 차량이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기계 괴수를 피해 다른 차량이 도망치는 것과 완전히 반대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기갑차량을 배경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막을 수 있어서 막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듯이 기갑차량이 도로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막아야하니까 막으려는 거죠.”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변신하며 점점 로봇의 형태가 되어가던 기갑차량이, 잠시 후 완전한 로봇이 되어 기계 괴수를 몸으로 들이받았다.

방금 전까지 괴수의 발에 밟히기 직전이었던 소녀를 몸으로 감싸 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변신한 인간형 로봇이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선 거대 로봇을 향해 커다란 손가락을 내밀며 힘차게 외쳤다.

-본부. 지정된 로케이션에 도착했습니다.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시민의 피해를 최대한 막으며, 나머지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도록.-

무전기를 통과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멋지다는 표현 외에는 다른 표현이 불가능하게 생긴 로봇이 입을 열었다.

-적의 완전 배제가 가능하다면 파괴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로봇에게 답했다.

-가능하다면. 무리는 하지 말도록. 너의 임무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곧 합체 유닛이 도착할 것이니 절대 데미지를 입지 말 것.

다시 말한다. 합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데미지는 절대 입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화면이 어느새 멀어지며 영상이었던 화면은 쿼터뷰 시점의 게임 화면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눈앞에 보이는 한눈에도 거대하고 무서워 보이는 기계 괴수의 앞에, 플레이어의 유닛이 당당히 서 있었다.

“크으으으으으!!!”

여기까지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지수가 타이핑을 멈추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멋진 거 같아서.

“오빠,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그러나 지수의 질문에 상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지수의 플레이 시나리오를 보던 상혁도 게임화면을 상상하며 가슴속에 차오르는 뽕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다···.”

“고칠 데가 없을까요?”

지수가 말하자 상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뭔가가 떠오른 듯 지수에게 말했다.

“지금 시나리오에서 무전기로 지시하는 게 플레이어지?”

“그렇죠.”

“그럼 음성으로 넣어야 할 텐데, 내 생각엔 플레이어가 남/여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

“오! 그럼 어떻게 수정하죠?”

“그러니까 로봇이 지시를 요청했을 때, 바로 플레이어가 답하는 게 아니라, 아직 지휘관이 도착하지 않아서 명령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하는 거지. 지금 오는 중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 대화 도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주인공의 어깨나 신발을 비추는 거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는 거지. 거기서 거울을 클로즈업 하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화면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오! 멋질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커스터마이징한 캐릭터가 하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슝! 내려오면서, ‘늦었군. 지금부터는 내가 맡겠다!’ 라고 하는 거죠!”

“크···. 너를 팀원으로 받고나서 너의 중2병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야···. 할 말이 없다! 너무 원더풀하네.”

상혁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하자 지수가 신난 표정으로 빠르게 플레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제관계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취합하면서, ‘마지막 용자 전설’의 플레이 시나리오는, 점점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용자 로봇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수많은 욕망의 결정체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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