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97화 (98/485)

097. 실전과 로망

상혁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신규 유닛인 ‘기어 크로스’가 완성되기 직전. 이번 스테이지에서 출격 가능한 상태에서 적이 어떠한 기계 괴수를 내보낼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에 주인공 유닛만을 메인 딜러로 사용하는데 한계가 느껴져 메인 딜러 급 유닛을 하나 추가했는데, 자신이 기초를 설계한 이 게임은 유저의 업그레이드 상태를 기반으로 적의 난이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항상 유저로 하여금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도 정찰 등에 투자하여 다음 스테이지의 등장 적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으니, 이것은 나름 정보전이 중요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이 파악한 적의 정보는, 메인 유닛 급 기계 괴수가 2마리 동시 출연 예정이라는 것.

스테이지를 시작한 상혁은 유닛을 쪼개 저지 팀과 공격 팀으로 나누고, 먼저 저지팀을 출동시켜 상대 유닛의 체력을 깎으려 했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두 마리 모두 체력 재생속도가 장난 아니라 화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양쪽을 다 잡는 게 불가능한 상황.

다행인 것은 출현지역이 도시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뿐이었다.

‘그럼 우선 한 마리를 잡고 나머지를 잡자.’

상혁은 주인공 유닛을 출격시켜 필살기로 한 마리를 먼저 제거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에너지가 찰 동안, 두 번째 유닛을 요격하러 유닛을 이동시키려 했다.

“뭐야 이거!”

분명 파괴했어야할 유닛이 다시 풀 체력으로 복구되는 것을 보며, 상혁이 기겁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지수가 킥킥대며 상혁에게 말했다.

“저거 두 마리를 동시에 처치하지 않으면 계속 재생하는 보스에요. 어때요? 쫄깃하죠?”

“아 씁. 어쩐지 멀리서 나오더라.”

당연히 각 스테이지의 보스 기믹은 유저가 깰 수 없는 난이도로 나오지 않는다.

상혁은 재빨리 모든 아군 로봇을 퇴각시키며, 도시의 방어시설을 최대로 가동해 상대의 걸음을 멈추는데 힘썼다.

‘필살기 재충전까지 3분 30초.’

아마 아슬아슬하게 보스가 도시의 경계에 도착할 때쯤 충전이 완료될 것 같았기에, 상혁은 개발 기지의 신 유닛의 출격 시간을 체크해보았다.

‘얘도 3분.’

대놓고 신 유닛이랑 주인공 둘이 합심해서 요격하라고 만든 미션 구성이었기에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승리를 확신했다.

‘이겼네.’

그러자 그런 상혁의 미소를 보며, 지수가 사악한 미소를 흘렸다.

“어 시발 뭐야!”

갑자기 빔 공격을 하며 상혁의 도시 방어 유닛들을 말 그대로 박살내기 시작한 보스들.

단순히 이동만 하던 보스들이 공세로 전환하자 상혁은 이를 악물고 서브 로봇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길 지나가려면 내 시체를 밟으···악!]

[본부! 지원이 필요하다! 더 이상은 막을 수 없다!]

[증원이 올 때까지 버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선을 지켜야한다!]

별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던 용자 로봇들이 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혁은 수리비 생각에 속이 쓰려지는 것을 느꼈다.

[사령관! 수리 및 재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출격 명령을!]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유닛의 재충전 시그널이 나오자 상혁은 주저 없이 신 유닛과 함께 주인공 유닛을 출격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기체 파손율···88.5%···자체 귀환 불가···수납을 요청···]

[빌어먹을···.]

도시 외곽에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 상혁이 애지중지 업그레이드한 주인공 기체와 신형 유닛이 코어만 남아있는 상태로 흙속에 파 묻혀 있었다.

의외로 단순한 패배의 원인.

그것은 신규 유닛이 상혁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적에게 등장하자마자 필살기를 날리는 바람에, 제때 공격 타이밍을 잡지 못한 주인공 기체도 요격에 실패했고, 결국 막대한 수리비와 평판 하락을 감수해야하는 비장의 수단인 'M3 폭탄‘을 상혁이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와, 씨. 신뢰도를 생각 못했네.”

‘마지막 용자 전설’의 유닛은 파일럿이 탑승하는 ‘탑승형’로봇과 AI가 통제하는 ‘AI형’로봇, 두 종류의 로봇이 등장한다.

그 중 탑승형 유닛은 초기 출격 시에 전투 숙련도가 낮아 전투력이 잘 나오지 않고, AI유닛은 숙련도는 최대치로 설정되어있지만 사령관과의 신뢰도가 높지 않으면 가끔 통제 불능에 빠지는 단점이 있었다.

상혁은 그점을 간과했기에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물론 막판에 핵폭탄으로 잡긴 잡았으니 패배는 아니었지만, 일단 저 상황까지 가면 세이브를 부르는 게 더 좋을 만큼 패널티가 큰 행동이었다.

“어때요?”

긴장된 표정으로 지수가 묻자, 상혁이 지수를 보며 말했다.

“좋네. 양쪽을 동시에 파괴하지 않으면 재생하는 보스라니···. 에반게리봉?”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좋은데 이런 식 구성이면 맵 멀리서 시작하게 하지 말고 미니 스테이지 형식으로 아예 별도 맵에서 플레이어가 한번 패배하게 하고, 대응책을 구상해서 메인 스테이지에서 싸우게 하는 게 좀 더 좋을 거야. 굳이 한 보스를 한 스테이지에서 잡아야한다는 제약 같은 건 없으니까, 전체적으로 넓게 보고 스테이지 디자인을 잡아봐.”

“넵!”

지수가 귀엽게 경례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며, 바로 미소를 풀었다.

“요청하신 디자인 가져왔습니다.”

혁진이 내민 아트를 받아든 상혁은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며 컨셉안을 검수했다.

그리고 다시 페이지를 닫고는 혁진을 향해 말했다.

“혁진 씨.”

“네. 팀장님.”

상혁은 개발 회의 중에는 항상 자신을 ‘사장님’이란 호칭 대신 ‘팀장’이란 호칭으로 부르게 했기 때문에, 혁진은 상혁을 팀장님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전거랑 뭐가 바뀐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넵? 엄청 바뀌었는데? 여기 데칼도 빠지고 여기 미사일도 빠지고 여기 탄창도 빠지고 엄청 깎아냈는데요?”

혁진의 말을 들은 상혁이 한숨을 쉬며 책상 옆의 서류더미에서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자, 왼쪽이 기존 유닛인 알파 로메오. 오른쪽이 방금 혁진 씨가 가져온 베타 가디언.”

상혁은 두 종이를 가운데로 가져가 이어 붙였다.

“이게 합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못할 거야 없을 텐데요. 일단 파츠 별로 다 떼서 재조립하면···.”

“아니, 혁진 씨는 큐브하다 막히면 그거 다 분해해서 새로 맞춰요? 그게 무슨 합체에요? 재조립이지.”

“두 로봇이 분해돼서 하나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찌됐건 지금 디자인이 멋지니까 저는 이대로 갔으면 싶은데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거 같으신데, 저희가 만드는 건 건담이 아니라 용자로봇 게임이라고요! 이건 어딜 봐도 군용 로봇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용자로봇 디자인이 심플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사로잡혀 있는 발상 아닐까요? 일단 멋진 디자인이면 그 디자인이 슈퍼계든 리얼계든 유저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상혁과 혁진이 티키타카 하는 모습을 보며, 현주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혁진 씨가 고집이 세네.”

“자기 결과물을 보면 절대 나쁜 편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고.

상혁이 단순하게 ‘그쪽에 로망이 있으니까!’같은 이유로 설득하려 하니 말이 안 통하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민준이 현주에게 말했다.

“상혁이는 혁진 씨가 제출하는 결과물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게임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거절하는 거고, 혁진 씨는 상혁이가 조정하는 부분이 게임에 맞는다고는 생각하지만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의견차라, 쉽게 좁혀지지는 않을 거예요. 저거.”

민준의 말대로, 상혁과 혁진은 이제 서로 조정한 결과물을 가지고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애당초 알파 로메오도 팀장님이 조정만 안했으면 훨씬 멋졌을 거고! 둘이 합체했으면 엄청나게 웅장했을 겁니다! 양쪽 로봇의 무기가 합쳐져 무기만 수십 개 달려서 압도적인 느낌이었을 거라고요!”

“아니 무슨 지금 덴○로비움 만드세요? 그건 웅장한 게 아니라 덕지덕지 라고 하는 겁니다!”

“덴○로비움이 어때서요! 제일 멋진 간담인데!”

“제일 멋진 간담은 뉴간담이지!”

어느새 취향의 간담 이야기까지 주제가 넘어가자, 민준이 한숨을 쉬며 상혁에게 말했다.

“거기까지 하고, 혁진 씨. 상혁이도 혁진 씨가 디자인한 게 멋진 건 알아요. 그래도 지금 저희가 출시하려는 플랫폼이 PS2인데, 지금 디자인으로는 폴리곤 확보가 어렵다는 건 아시죠?”

“뭐, 그런 이유라면···.”

상혁이 뭐라 하려 했지만 민준은 상혁에게 눈짓을 보내 상혁의 항의를 묵살하고는 혁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알파 로메오랑 비슷한 수준으로 폴리곤을 줄여서 맞춰오세요. 정 넣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면 가급적 데칼이나 텍스쳐로 처리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혁진이 인사하고 부실을 나서자, 상혁이 민준에게 따졌다.

“폴리곤이 아니라 게임 컨셉에 안 맞는다고!”

“폴리곤이 많은 것도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넌 뭔가 방향성을 정할 때 너무 느낌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어. 서연이야 그런 거 캐치하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으니까 괜찮았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아니니까 그 부분은 좀 조심해야지.”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자리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능력은 진짜 좋은 분인데 컨트롤이 너무 힘드네.”

“혁진 씨가 사장이라고 넵넵 하고 굽히는 성격이었으면 AD 안 시켰을 거잖아.”

“그건 그렇지···.”

“서연이는 어때?”

상혁이 서연을 일본에 데려 다준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 와중에 상혁이 몇 번이고 서연에게 중간 결과물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서연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뽑을 능력이 될 때까지는 상혁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상혁의 제안을 거절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상혁은 자신이 주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설 급의 두 멘토에게 교육받고 있는 서연의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다만 막연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서연의 재능을 토대로 ‘잘 하겠지’ 정도로 예측 하고 있었을 뿐.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변경한 타임라인에 관련된 부분은 때가 닥쳐야만 알 수 있기에, 상혁 본인도 자신이 호언장담한 두 달 안에 서연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솔직히 매번 의견차가 있긴 하지만 서연이 와도 혁진 씨를 이길 수 있을지 지금은 확신이 안 간다.”

상혁이 말했다.

“저 사람의 메카닉에 대한 애정은 ‘찐’이야. 아마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 용자 로봇 계열이 아니라 ‘아○드 코어’같은 게임이었으면, 난 서연이 실망하더라도 주저 없이 혁진 씨를 AD로 골랐을 지도 몰라.”

“하긴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긴 하지. 서연이 같은 글로벌리스트랑 다르게,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 리스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곧 있으면 두 달인데. 서연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상혁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민솔이 고개를 들었다.

“서연이는 잘할 거에요.”

마치 서연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로.

“걔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절대 실망시킬 아이가 아니니까.”

***

일본의 프라모델 메이커 번다이의 한 회의실에서, 메카 디자인계의 거장이라 부를 만한 두 사람이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진짜 두 달 만에 배워서 가능한 디자인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난 평소에 가토키 씨가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는 걸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적절한 디테일이 좋은 느낌으로 배합된 느낌이군요.”

“저도 오오가와라 씨의 용자로봇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그건 너무 허구의 존재 같은 느낌이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보니 각 로봇을 구성하는 어처구니없는 심볼들이 괜찮은 느낌으로 구성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도 같네요.”

메카 디자인계의 거장 두사람이 보고 있는 그림은, 서연이 두사람의 교육을 받아 3일에 걸쳐 디자인한 러프스케치였다.

비록 채색도 되어있지 않은 단순 컨셉 디자인이었지만, 서연이 그린 로봇은 확실하게 상혁이 요구하던 ‘리얼함’과 ‘상징성’의 두 라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르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두 거장에게서 장점만 빼와서 조립한 것처럼.

“원래부터 재능은 있었던 아이니까요. 처음부터 인체비례나 캐릭터 디자인, 선을 쓰는 게 웬만한 업계 상위 클래스였으니 요령을 알면 이정도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군요. 전화로 상혁 씨가 말했던 압도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지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토키의 말을 들은 오오가와라가 말했다.

“그럼 지금 저랑 같은 생각이세요?”

“아마 그럴 겁니다. 아직 두 달이 되려면 조금 남았지만···.”

“상혁 씨도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겁니다. 저와 가토키 씨, 두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메카디자이너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이제 슬슬 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혁진 씨라는 리얼파 디자이너가 지는 건 같은 리얼파로써 내키지 않지만, 상혁 씨가 만들려는 건 딱 지금 상태의 디자인 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가토키는 전화기를 들어 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서연 씨? 저 가토키입니다. 예. 보내주신 결과물 잘 받았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예? 아직 부족한데 지면 어떻게 하냐고요?”

수화기 너머로 불안해하는 서연의 목소리를 들은 가토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가 서연 씨 메카 디자인이 구리다고 말하면 저를 부르세요. 그때는 제가 그놈이 왜 틀렸는지 개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두 달 동안 서연이 했던 피나는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토키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금의 서연은, 리얼계 전문가인 자신에게 메카의 디테일을 배우고,  용자 로봇 전문가인 오오가와라에게 기본형을 배운, 말 그대로 완벽한 밸런스 형 메카 디자이너로 다시 태어났기에.

“이제 때가 됐습니다.”

가토키가 말했다.

“가서 AD 자리를 다시 찾아오세요. 원래 서연 씨의 것이었고, 앞으로도 서연 씨 것이어야 할 그 자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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