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96화 (97/485)

096. 멘토링

“그래서, 상혁 오빠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쳤는데!”

“오오오!!”

“네 재능이 압도적이니까아아!”

“오오오오오!! 부럽다!”

평소처럼 부실로 들어가려던 상혁은 부실 안에서 들려오는 여성 멤버들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은채 발을 멈췄다.

왠지 안에서 자신이 아침에 했던 이야기로 멤버들이 한창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상혁은 평소엔 하지 않던 노크를 일부러 하여 안이 잠잠해지길 기다린 뒤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다소곳이 앉아있는 서연과, 서연의 근처에서 갑자기 뭔가를 하는 시늉을 열심히 하고 있는 현주와 지수가 있었다.

“나머지 멤버는?”

“아, 아직 안 왔어요! 오빠! 일찍 오셨네요!?”

“서연아. 소리 안 질러도 잘 들리니까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돼.”

“네, 네넵!”

“그리고 선생님. 죄송한데 오늘저녁에 출발하는 도쿄행 비행기표 좀 구해주실래요?”

“어···. 어? 응. 얼마나?”

“두 장요. 한 장은 편도, 한 장은 왕복. 돌아오는 날은 내일 저녁으로 잡아주시면 돼요.”

“알았어.”

상혁이 자리에 앉자, 잠시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꺄아거리던 멤버들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지수가 현재 메인 기획을 맡아 작업 중인 ‘마지막 용자 전설’의 시스템 기획 일부를 상혁에게 가져왔다.

“상혁 오빠, 여기 있어요. 아, 메일로도 따로 보냈으니까 확인 부탁드려요.”

“어.”

물론 메일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상혁은 인쇄된 프린트를 넘기는 것을 선호했기에 대부분의 작업은 문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날로그 취향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급할 때 컴퓨터 안에서 파일을 찾는 것보다 모니터 옆에 문서를 펼쳐놓고 대조하는 게 좀 더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던 상혁은 지수가 자신의 옆에서 몸을 비비꼬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뭐 할 말 있어?”

“어···. 음···. 기획안 어때요?”

“괜찮네. 좀 손볼 데는 있긴 하지만.”

“음, 그냥 괜찮은 정도?”

“그럼 뭘 더 바라는데.”

“뭐···. ‘압도적’으로 좋다던가···. ‘재능’이 느껴진다던가···.”

지수의 말을 들은 상혁이 서연이 있는 자리를 휙 노려보자, 서연이 급하게 머리를 숙여 모니터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지수에게 말했다.

“뭔 대답을 바라는지는 알겠는데 넌 시스템 기획에서는 한없이 애송이니까 자만하거나 건방떨지 말도록.”

“아···. 너무해···.”

“억울하면 노력해. 내가 인정해줄 만할 때가 오면 그때는 니가 싫어해도 세상에서 제일 오글거리는 멘트로 인정해 줄 테니까.”

상혁의 말을 들은 지수는 분한 듯 몸을 휙 돌렸다.

“두고 봐요! 내가 ‘두 달’안에 상혁 오빠가 날 인정하게 만들 테니까.”

“아오 씨, 너 이리와! 거기 안서?”

결국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수는 비명을 지르며 부실 밖으로 도망쳤고, 그 뒤를 상혁이 소리 지르며 따라갔다.

그것은 선문고 게임부실에서 장소와 나이가 바뀌었어도, 언제 나처럼 즐거운 게임 제작부의 모습 그 자체였다.

***

‘배틀로얄’이 일본에서도 인기리에 서비스 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거대 IP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인 상혁의 이름은 일본의 게임업계에서도 꽤나 떠오르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나츠가 가토키에게 연락을 넣었을 때, 가토키는 상혁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상혁이 자신을 만나려는 이유가, 번다이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을 스카우트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나츠에게 그 말을 전달받은 상혁은, 나츠를 통해 카토에게 서연이 그린 메카닉 디자인을 전달했고, 거기에 흥미를 느낀 가토키가 연락을 해 오면서 상혁은 서연과 함께 일본으로 가 가토키를 만날 수 있었다.

번다이의 담당자도 함께한 미팅에서, 상혁이 신작 게임의 알파버전을 가토키에게 보여주자 가토키는 바로 문제점이 뭔지 알아보고 상혁에게 말했다.

“이건 저 아가씨가 그렸다는 디자인 스타일하고는 좀 다르군요. 다른 분이 디자인 한건가요?”

“예.”

“메카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이지만, 이 게임에는 안 어울리네요.”

가토키의 말대로, 혁진이 디자인한 메카는 굳이 따지면 밀리터리 계열의 디자인 스타일을 하고 있었기에 용자 로봇이라기보다는 ‘아머○ 코어’의 메카 디자인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고, 그 덕에 각 기체별로 개성이 크게 부각되는 대신 부수적으로 딸린 장비들의 리얼함이 강조되는 디자인이었다.

가토키의 그런 태도와는 다르게, 번다이에서 외부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는 굉장한 흥분을 드러냈다.

“우와아아! 이거 뭡니까? 진짜로 이런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요?”

“마음에 드세요?”

“농담이시죠? 아마 슈퍼 로봇 팬 중에 이런 스타일 게임을 싫어할 유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실시간으로 쳐들어오는 괴수를 로봇을 출동시켜 막는 게임이라니 굉장하네요!”

담당자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만약 이 게임에 나오는 메카를 번다이에서 디자인할 수 있다면? 장난감 매출은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희 쪽에 협력요청을 하신건가요? 저희 쪽 에이스인 가토키 씨의 솜씨를 빌리기 위해서요?”

“그건 아닙니다. 전 단지, 가토키 씨가 저희 AD에게 가르침을 좀 주셨으면 해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AD라면 옆에 서 있는 아가씨를 말하는 건가?”

가토키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PTW의 AD, 김서연입니다.”

“김서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연이 다소곳이 인사하자, 가토키가 미소 지었다.

“그림을 보고 좀 더 나이든 원화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불편해 하지 말고 편하게 앉으시죠.”

서연이 상혁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상혁이 내건 조건은 프로젝트 동안 가토키가 서연의 멘토링을 하는 조건으로 인 게임에 등장하는 메카닉의 프라모델 발매 권한을 번다이에 넘기는 것이었고, 반다이에서 나온 담당자는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지분 투자는 안 됩니다. 저흰 유한 회사에요.”

“그럼 애니메이션 제작 권한이라도 주시죠.”

“그쪽에서 풀 디자인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 멘토링에 요구가 조금 과하시네요.”

“영업사원의 철칙이죠. ‘이쪽에서 카드를 쥐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내라.’ 지금 아쉬운 건 그쪽이니까요.”

“그쪽에서 애니메이션에 돈 짜게 쓰는 걸 생각하면 저희 IP의 애니 제작권한을 드리고 싶지 않은데요.”

로봇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2쿨을 넘어 50화 이상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정과 예산의 문제 때문에 뱅크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이 있었다.

물론 뱅크씬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간담’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작붕으로 유명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애니 제작 권한을 번다이에 넘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하긴 우포테이블 측에 일감을 던져줄 필요도 있긴 하지.’

상혁의 도움으로 시대를 앞선 희대의 하이퀄리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우포테이블은, 역설적으로 그 이후에 높은 제작 단가를 받는 다는 이미지가 생겨 영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물론 상혁이 워낙 제작비를 넉넉하게 챙겨 준데다, 영상 매체 발매 권한도 넘겨주어 DVD판매 수익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곧 한계가 올 것이기 때문에 상혁은 우포테이블을 위해 일감을 하나 더 던져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메카닉 애니메이션도 잘 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상대에게 뭔가를 더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상혁은 번다이 담당자가 요구하는 추가 요구 사항을 모두 거절했다.

이미 인게임 메카의 프라모델 발매 권한도 충분히 높은 대가였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가토키도 옆에서 신나게 떠드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과욕이 화를 부르는 법인데···.’

그리고 가토키의 예상대로, 결국 상혁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번다이 담당자를 향해 말했다.

“더 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예?!?”

“물론 저야 가토키 씨의 팬이니 가토키 씨와 함께 일하고 싶지만 너무 과한 조건을 거시네요. 일본에 실력있는 메카닉 디자이너가 가토키씨 한분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아···. 저, 그게···.”

결국 번다이 담당자는 상혁의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했다.

들리는 풍문에 당시 동인 팀이었던 타이프-문과 신생 제작사인 우포테이블에 엄청나게 좋은 조건을 걸었다기에 일부러 과한 조건을 걸어본 것인데, 상대가 강하게 나오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원래 조건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 제가 싫습니다.”

“예?”

“이쪽에서 먼저 호의를 베풀어서 좋은 조건을 걸었는데 그쪽에서는 저희를 이용하시려고 한 거 아닙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듭니다.”

“그···. 그건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를···.”

“매사 사과로 모든 일이 끝날 거면 전쟁이 왜 있겠어요?”

“그,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이쪽 업계에서 제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지만 제 비즈니스 원칙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팃-포-탯(Tit-for-Tat).

협력 관계에서 시작하되, 상대가 배신하면 저도 배신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저도 협력합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저희였으니 그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 이상 더 좋은 조건을 걸어주시지 않으면 이번 건은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게임이 너무 욕심나서 제가 과욕을 부렸습니다!”

“상혁 씨. 저도 같이 사과 할 테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 부탁드립니다.”

가토키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자, 상혁은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다.

여기서는 가토키의 체면을 세워주는 편이 앞으로 서연이 배움을 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좋습니다. 가토키 씨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감정적인 부분은 제쳐두겠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저희가 받는 것에 비해 제공해드리는 것이 큰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건 동의 하시는지요?”

“저희 쪽은 그쪽 직원에게 제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기에 그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만, 우선 저희 쪽에서 결례를 범한 것도 있으니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추가로 한명의 멘토를 더 지정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누굽니까?”

가토키의 눈가가 조금 올라갔다.

업계 원탑인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메카 디자이너를 추가로 멘토로 지정하고 싶다는 상혁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나 가토키는 상혁이 댄 두 번째 멘토의 이름을 듣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댄 두 번째 멘토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업계 톱클래스의 인물이었기에.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두 번째 멘토는 ‘간담’과 ‘용자 로봇 시리즈’의 디자인을 담당하신 메카 디자이너. 오오가와라 구니오 씨입니다.”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오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서연도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동인개발자, 코즈에 무카이였다.

“오, 코즈에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뇨.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요. 이야, 그나저나 놀랍네요. 몇 년 전에 같이 코믹월드에서 게임 팔던 동지들이,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 번다이랑 업무 미팅을 한다니···.”

“미팅이 아니라 이제 협력입니다.”

“아, 일이 잘 풀리셨나 봐요?”

상혁은 근처의 카페에서 코즈에에게 그동안의 대략적인 경과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자 코즈에는 때로는 꿈을 꾸는 것 같은, 때로는 놀라는 것 같은 변화무쌍한 표정을 짓다가, 서연을 보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

“진짜 재미있게 사시네요.”

“코즈에 씨도 최근에 동인 게임 하나 출시했다면서요.”

“아. 알고 계셨어요?”

“아는 사람이 출시하는 게임이니 알아둬야죠.”

“기억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 뭘. 갑자기 연락이 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이제는 ‘아, 옛날에 저런 대단한 개발자들이랑 같이 집에서 게임 이야기도 했었는데.’같은 추억 수준의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몇 년 사이에 코믹 마켓에서 부스내고 게임 팔던 동료가 이제는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게임의 개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코즈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더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혁과 서연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과거와 전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서연이 일본에서 체류할 동안 코즈에 씨가 서연을 돌봐주셨으면 합니다.”

“저야 정말 좋지만 서연 씨도 성인이니 알아서 잘 하실 텐데···”

“아뇨, 서연이가 어차피 일본에서 체류할거면 이번엔 코즈에 씨랑 같이 지내고 싶다고 이야기해서요.”

“그런 거면 좋아요. 저도 서연 씨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같이 지낼게 벌써 기대되네요.”

인사를 마친 뒤, 상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한창 바쁠 때였고, 상혁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연을 위해 하루를 비운 것도 부담될 정도로, 상혁은 일정에 쫒기고 있었다.

보통 그 자리에서 협의가 결정되지 않는 비즈니스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부분의 조건에 대한 합의를 서두른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고.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혁의 옷자락을 서연이 붙잡았다.

“오빠.”

“어?”

“뭐 하나 물어도 돼요?”

서연이 말했다.

“아까는 왜 굳이 그쪽에 두 명이나 멘토를 요구하신 거예요? 오늘 미팅에 나온 가토키 씨만 해도 업계 원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근데 왜···.”

“내가 오늘 지명한 두 사람 전부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메카디자이너들이지만, 둘 다 서로 성향이 조금 달라.”

가토키 씨가 디테일의 제왕이라고 한다면 오오가와라 씨는 심플하면서도 깔끔하지. 악명 높은 습식 데칼로 유명한 가토키는 기본적으로 매우 밀리터리틱한 디자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디테일을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주로 성인이 수십 시간을 들여 조립하는 프라모델 디자인 쪽에 강점이 있는 메카 디자이너였다.

반면에 오오가와라의 경우 장난감이나 애니메이션에서 구현하기 쉬운 심플한 디자인을 주로 구사했지만, 리얼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상혁은 서연이 두 사람의 강점을 배워 정확히 그 중간의 접점을 찾아내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오빠는 용자 로봇 인데 좀 더 리얼한 기믹이 들어간 디자인을 원하는 거네요? 그렇다고 너무 군용 무기 같은 리얼함까지는 아닌···.”

“맞아. 그래서 멘토로 그 두 사람을 부탁한 거야.”

“근데 오늘 회의는 그쪽에서 무리하게 부탁해서 조건이 갖춰진 거잖아요? 처음부터 제대로 받아줬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런 일은 안 생겨.”

상혁이 웃었다.

“모 회사인 번다이가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욕심이 많아서. 그리고 지금 내 업계 평판을 고려하면 분명 추가 요구를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

“모든 건 인과 관계를 유추하면 예측할 수 있어. 내가 이전에 호구처럼 굴면, 남들도 호구 짓을 기대하고 접근하는 거고, 이제 한번 물었으니 다음번엔 좀 달라지겠지.”

그렇게 말한 상혁은, 서연을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바람대로 서연이 훌륭하게 두 레전드의 강점을 이어받은 메카 디자인 능력을 익히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상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재 프로젝트의 AD를 맡아 한참 기세가 등등한 혁진의 컨셉아트들이었다.

메카닉 디자인만 보면 훌륭하지만, 용자 로봇이라기보다는 군용 병기에 가까운 그 특유의 디자인들이.

상혁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아트들을 잡아들고는 혁진에게 말했다.

어차피 서연이 돌아오기 전 까지는 혁진과 계속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혁진 씨. 제가 계속 말하지만 저희 게임은 ‘아○드 코어’가 아니에요.”

바로 상혁의 설득에 들어가는 혁진.

혁진 역시 적어도 자신의 메카닉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상혁의 의견에 쉽게 굽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획자와 AD의 불꽃 튀는 말싸움 속에서, PTW의 신작 개발은 본격적으로 2페이즈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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