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86화 (87/485)

086. It's show time

2004년 6월.

한일 양국에서 동시 방영된 ‘페○트’의 애니메이션이 성공리에 대망의 엔딩을 마친지 1달여가 지난 시점에, 작년 2월 공개행사를 맡았던 호텔에서 넥젠과 PTW의 게임 발표 행사가 이루어졌다.

최초 공개행사로부터 무려 1년 2개월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지만 오히려 취재 열기는 지난번보다 뜨거웠는데, 그것은 대부분 상혁보다는 원준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진짜 언플 오지게 해대던데.’

상혁이 떠올린 것처럼, 원준은 상혁이 대결을 미루자고 하자마자 대대적으로 행사를 홍보하기 시작하며 언론플레이를 이어나갔고, 그 덕에 지금은 게임업계전반에 걸쳐 두 회사의 대결이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주로 상혁의 인맥을 통한 외신 기자들이 많았던 지난번 행사와는 다르게, 이번 행사는 국내 기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확실히 저쪽 초청자는 일반인이 많네요.”

원준의 말대로 상혁은 이번에 지난번에 초대했던 외신 기자들 외의 참가 인원들을 대부분 ‘배틀로얄 유즈맵’의 유저들로 채워놓았다.

정식 버전을 공개한다는 공지와 함께 유저들 가운데 참가 인원을 모집했는데, 100명을 모으는 행사에 경쟁률이 거의 300:1에 육박할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아 그 또한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상혁의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원준의 눈에 자신감 부족으로 보이고 있었다.

‘유즈맵 팬들을 불러 모아서 행사장 분위기를 잡겠다는 거 같은데, 결과적으로 외부에 나가는 평가는 기자들이 하는 거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동원한 인원은 이쪽이 더 많으니까.’

그때, 원준의 곁으로 다가온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오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예. 김은지 기자님. 이거 확실히 저녁 뉴스에 나가는 거죠?”

“확실히요. 요즘 게임업계가 핫한 이슈니까요. 게임 개발사가 정면으로 게임가지고 대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 기자들도 많이 보이네요.”

“아, 그건 상대팀에서 이전에 발매한 게임이 북미에서 히트해서 그럴 겁니다. 그쪽 기자들하고 인맥이 좀 있나 보더라고요.”

“어? 제가 말한 건 일본쪽 기자들인데요?”

그렇게 말하며 은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일본의 방송사 카메라가 여럿 와 있는 것이 보였다.

“흠, 아마 국내 시장 패키지 판매로는 답이 없을 거 같아서 일본 동시 발매라도 발표하려는 것 같네요. 이해합니다. 사실 국내에서 10만장 정도만 팔아도 엄청 많이 판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일본 동시발매라니, 저쪽도 보통은 아니네요.”

그렇게 원준이 방송국 기자와 웃으며 대화중일 때, 건너편의 상혁은 민준과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지금 조금은 쫄리지 않냐?”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민준이 상혁에게 물었다.

“안 쫄린다고 하면 미친놈이지. 다 생각해놓고 서버 비용을 잊고 있었다니···.”

안 그래도 투입된 자금이 막대한 상태에서, 게임 서버 구축비용을 대야하는 상황이 되자 상혁은 회사의 남은 여력을 모두 서버 설비 구축에 쏟아 부었다.

그 덕에 지금은 ‘마리의 눈물’에서 번 돈과 ‘나이츠 어셈블’에서 나온 수익 대부분이 이번 프로젝트로 소진된 상황이었다.

“아직 ‘나이츠 어셈블’ PC판 수익도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 월급 못줄만한 수준은 아냐. 그래도 좀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진짜로 3개 회사가 사활을 걸었네.”

“우리 빼면 두 회사는 이거 망한다고 망하지는 않지.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 보면 애니쪽이랑 원작쪽은 원래 타임라인보다 훨씬 대박난 상태고.”

“그럼 사활이 걸린 쪽은 우리뿐이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준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민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로 진짜 이번에 망하면 완전 파산이네. ‘re:제로에서 시작하는 게임 개발’찍게 될지도?”

“아, ‘아○타’촬영할 때 20세기 팍스 사장 기분이 어땠는지 알거 같다.”

촬영 비용을 대느라 영화사가 거의 파산직전까지 갈 뻔했다는 전설적인 영화의 이름을 대며, 상혁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무대 위를 바라보며 민준에게 말했다.

“시작되려나보다.”

지난번에 상혁이 선순위를 맡아 행사 내내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원준은 이번엔 자신이 선순위를 선택함으로써 상혁을 골려 주리라 결심했다.

그때의 그 압도당하는 기분을 똑같이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상혁은, 일부러 거북한 듯한 연기를 함으로써 원준을 더욱 기쁘게 만들었고, 그 덕에 원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태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다렸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정기적으로 중간 공개를 하기로 했었지만, PTW의 요청으로 양사가 동시 오픈을 하기로 했을 때, 저는 지난 번 공개 행사 이후 양사에서 공개한 사항이 거의 없어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서 이 대결이 잊혀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PTW와는 다르게, 중간에서 열심히 저희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며 계속 이 대결이 끝나지 않았음을 홍보했죠. 그리고 그것은, 저희 게임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 최종 결과물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차세대 게임 문화를 선도하는, 넥젠의 신작 게임! ’웨이브 스토리’를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검은 화면에 흰 택스트로 출력된 글자를 보고, 상혁은 익숙한 느낌에 이마에 손가락을 짚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젠장 또 저거냐.”

그러나 상혁의 목소리는,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 펴지는 음악에 묻혀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퀄은 좋네.”

옆에서 들리는 민준의 말처럼, 공개된 영상은 힘을 얼마나 줬는지, 지난번 행사 때 당한 것을 갚아주겠다는 원준의 한이 서려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한 것이 분명한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주는 임펙트가 강렬했다.

“단풍이야기의 쿼터 뷰 버전 같은 느낌이네.”

원준이 지금 공개하는 게임은, 적어도 상혁이 기억하는 타임라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시연중인 저 게임이 상혁의 회귀 이후로 생긴 모종의 나비효과로 인해 탄생한 게임이란 의미였다.

‘사실 원준이란 이름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니까.’

상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게임 소개로 들어간 원준은 화려한 시연 영상과 함께 열심히 게임 시스템을 어필하고 있었다.

-넉넉한 컨텐츠. 250lv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모험!-

-2차 전직 시스템! 자신의 선택에 따라 더 강해지는 캐릭터를 체험하라!-

-강렬한 보스 전! 박진감 넘치는 PK!-

이전 행사때 공개한 프로토타입이 ‘양품’의 가능성을 지닌 물건이었다면 원준이 완성한 버전은 확실하게 ‘시장성’을 갖추고 나온 잘 만든 MMORPG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던 상혁과 민준은 원준이 소개하는 게임 시스템을 보며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힘 빡줬네. 투자 많이 받았나본데?”

“그러게. 만약에 회귀 전이었으면 나도 한번쯤은 해 봤을 것 같다. 지금 트랜드에 필요한건 다 우겨넣었네.”

상혁의 종합적인 평가는 AA. AAA급은 안되더라도 신생 개발사의 역량을 오버해서 만든 괜찮은 게임이라는 게 상혁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상혁이 게임에 대한 감상을 마쳤을 때, 단상에서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오픈하는 저희 게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마치 승리자라도 된 것처럼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원준을 보던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

“확실히 확인한 것 맞아?”

일본의 TV방송국에서 파견된 기자 토모야가 옆의 기자에게 물었다.

분명 오늘, 현재 일본에서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일으킨 애니메이션 페○트의 신작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왔는데, 정작 전혀 다른 게임만 소개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게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바로 일본에 발매될 게임은 아니었기에 토모야는 그 게임에 큰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오늘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오직 하나, 페○트의 신작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으니까.

“좀 기다려봐. 아, 저기 한명 더 올라오는군. 게임 개발로 배틀 이라니, 재미있는데?”

“나도 흥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발매되는 게임의 기사를 뉴스에 실을 수는 없잖아.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관심도 없을 거라고.”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혹시 알아? 두 번째 공개되는 게임이 페○트의 신작일지도.”

“애니 방영 이후에 컨택 했던 대기업들이 죄다 거절당했다는데 미쳤다고 원작자가 한국 게임사에 라이센스를 주겠어?”

“쉿, 시작한다.”

토모야는 좀 더 투덜댈 생각이었지만, 동료의 말에 입을 다물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오늘 페○트 관련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 자리를 소개한 녀석의 엉덩이를 발로 차주겠다’라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 위로 박수소리와 함께 걸어온 주인공을 발견한 토모야는, 동료가 지적을 주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어려 보이는데?”

옷차림을 보니 고등학생은 아니겠지만 높게 잡아도 대학생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앳된 외모의 청년이 무대에 오르자, 상혁을 처음 보는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시선을 싹 무시하고는, 조용히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 입을 열었다.

“이야, 정말 멋진 게임을 완성하셨네요. 스타트업이 그 정도까지 완성도와 스케일을 올리기 어려우셨을 텐데, 보면서 저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라이벌인 원준에 대한 띄우기로 시작된 상혁의 이야기는, 곧이어 원준이 예상하고 있었던 유즈맵을 기반으로 한 개발 방식의 한계로 넘어갔다.

“그에 반해 저희 게임은 이미 첫 번째 공개때 대부분의 핵심 플레이가 완성된 상태였죠. 물론 지금도 수많은 유저들이 즐겁게 플레이 하고 있는 게임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식 발매인데 기존 유즈맵과 게임플레이가 똑같다면 그건 문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상혁의 이야기를 듣던 원준이 미소를 지었다. 상혁이 말하는 내용은, 정확히 원준이 예상하던 것과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생각했죠. 이미 완성된 게임에 뭘 더해야 유저들이 ‘이게 아니면 안 돼!’ ‘난 반드시 저 게임을 해야겠어!’ 하고 원래 플레이 하던 유즈맵을 버릴 것인가를 말이죠.”

그렇게 상혁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토모야는 완전히 검은색이었던 배경 화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철걱대는 소리와 함께 화면 저편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그것은, 철로 된 신발을 신고 있는 누군가의 발이었다.

‘저거 뭔가 익숙한데?’

토모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상혁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게임을 아는 유저면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유저에게 ‘이 게임은 재미있어!’라고 어필하는 건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애당초 보스전의 재미가 뭔지 모르는 유저한테 보스전을 어필해봐야 의미가 없거든요. 그럼 뭘 어필해야 모두가 좋아할까요? 어떤걸 보여줘야 유저들이 열광하면서 ‘저 게임을 꼭 하고 싶다’라는 욕망에 빠지게 되는 걸까요?”

순간, 저편에서 걸어오던 캐릭터의 발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상혁이 말을 마친 타이밍에 맞춰 천천히 카메라가 올라가며, 캐릭터의 전신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것에 대해 제가 드리는 해답입니다.”

“세○버다!!!”

“진짜다! 저거 세○버다!”

철로된 신발을 신고, 갑주로 덮인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화면에서 줌 업되는 순간, 누군가가 크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원준은 상혁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오픈 행사를 6월, 그것도 페○트의 애니메이션이 한일 동시 상영을 끝낸 지 한 달이 되는 시점에 잡은 것인지도, 그리고 이미 완성되어 더 붙일 것이 마땅치 않은 게임에 상혁이 무엇을 가져다 붙인 것인지도.

“미친 새끼···.”

원준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순간, 화면에 서있던 소녀가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검을 높게 들고는 힘차게 내리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에에에엑스으으으 카아알리버어어!!!”

순간 화면이 검에서 나온 빛과 함께 반으로 갈라지며 공개된 게임 타이틀.

거기엔 멀리서 봐도 확연히 보이는 임펙트 있는 글씨로 [배틀로얄: 성배의 추적자들] 라는 게임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