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85화 (86/485)

085. 모든 것은 오직 유저를 위해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거대한 라이센스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애니메이션을 방영할 권리, 방영 이후에 DVD나 블루레이 등의 영상 매체를 제작하여 팔 수 있는 권리, 해당 IP를 활용한 장난감이나 피규어를 만들 수 있는 권리, OST를 발매할 수 있는 권리, 해당 IP를 활용한 게임이나 빠찡코 머신을 만들 수 있는 권리···.

단순히 방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영 이후에도 수많은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 애니메이션이기에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봉’의 대 히트 이후 애니 제작업계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제작위원회’라는 방식의 자금 조달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각각의 권리를 원하는 회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보태고, 그 댓가로 라이센스를 받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애니메이션이 히트하면? 그것은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비의 일부를 댄 것만으로 비싼 로열티를 대신해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니까.

대신 망했을 때의 리스크도 나눠서 지게 되는 것. 그것이 제작위원회가 가지는 강점이었다.

물론 이 구조 하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초반에 받은 제작비를 제외하면 추가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

원래는 이후에 받아야할 라이센스에 대한 로열티를 제작비로 당겨 받은 형태가 되기 때문에.

그렇기에 대부분의 애니 제작사는 자신도 제작 위원회에 참여하여 ‘영상 매체 제작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곤 했다.

그 이후에 DVD등을 팔아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러나 상혁이 모은 제작위원회는, 일반적으로 콘노가 아는 제작위원회랑은 많이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

‘수가 적어···.’

성공 여부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IP의 경우 단가가 비싸도 참여하려는 업체가 꽤 있는 편이지만, 지금 상혁이 만들려는 ‘페○트’의 경우는 체험판만 나온 동인 게임이라 그 인지도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IP의 라이센스를 따자고 수억을 태우는 것은 웬만한 업체로써는 덤벼들기 힘든 도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긴, 만드는 우리도 왜 그 돈으로 저 IP를 만드는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당연하게도 제작비가 올라가면 각 권리를 얻어내는데 필요한 금액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사실 제작비가 너무 커서 신생 제작사인 우포테이블 측에서는 영상화 권리를 따내기 위해 받은 제작비에서 상당액을 내놓아야할 처지였다.

그러나 콘노의 이야기를 들은 상혁은 ‘영상화 라이센스는 그냥 드릴 테니 제작비는 온전히 퀄리티 올리는데 만 쓰세요.’라고 말함으로써 콘노를 거의 울기 직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원작자인 타이프-문은 단지 원작의 라이센스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0원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상 일부를 원작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결국 80억이 넘게 들어간 이 거대한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에서, 현재 제작비를 지불하고 있는 주체는 100% PTW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방송사와의 회의가 있는 날에, 상혁이 ‘그렇다. 우리가 당신의 제작위원회다.(そうだ。私たちは、あなたの製作委員会だ。)’ 라고 이름 붙인 제작위원회의 멤버인 3인이 미팅 장소에서 TBS의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TBS의 마지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로는 몇 번 연락 드렸지만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상혁입니다. 이쪽은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은 우포테이블의 사장님, 콘노 이카루 씨고 원작 제작을 하고 계신 타이프-문의 타케우지 씨 입니다.”

“최근에 업계에서 젊은 한국인이 돈을 트럭으로 쏟고 다닌다고 하던데 그분이 상혁 씨였군요.”

그렇게 말한 마지마가 회의장소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작위원회는 이 멤버가 전원인가요?”

“지금으로서는 그러네요. TBS가 참여하면 4명이 되겠지만요.”

“꼭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마지마가 준비해온 서류를 꺼냈다.

“말씀하신 조건대로, 방송권 비용을 저희 측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할까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애니메이션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니, 부족한 금액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 추가로 부담하는 걸로 하고···.”

“그건 괜찮으니 그렇게 맞춰 주실 거면 방송 시간대를 좀 더 좋은 시간대로 옮겨주세요.”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제작비를 충당하는 게···.”

“어차피 이 프로젝트가 흥해야 저희가 6월에 런칭 할 게임이 힘을 받습니다. 8억엔의 제작비용 정도는 거기서 충분히 회수 가능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생각하는 게 일반적으로···.”

“그건 저희 쪽에서 책임 질 겁니다.”

상혁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능 있는 제작자들이 혼신의 힘으로 만든 결과물입니다.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이건.”

솔직히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나이츠 어셈블의 X-BOX판매 수익도 모자라서, PC판 판매수익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만약 상혁이 회귀자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앞으로 이 IP가 가질 값어치를 알지 못했다면, 상혁은 절대로 이정도의 투자를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회귀자였고 지금 자신이 투자한 IP가 앞으로 몇 조 이상의 가치를 가진 거대 IP가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상혁의 결심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시면 저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되실 겁니다.”

상혁이 고개를 돌려 콘노를 보자 콘노가 방의 불을 끄고 프로젝터를 가동했다.

그렇게 시작된 애니메이션의 작화와 연출은, 상혁이 보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상혁과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

“상혁 씨,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상혁을 타케우지가 붙잡았다.

“뭔가요?”

“사실 지금 거의 PTW단독으로 제작비를 대고 있는 상황이라, ‘제작위원회가 굳이 필요한가?’ 해서요.”

사실 제작위원회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구성인원이 적었고 지분도 대부분 PTW에서 가지고 있었기에 타케우지는 왜 상혁이 제작위원회라는 그룹을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뭐, 일단은 저희 측 크레딧을 숨기기 위한 가장입니다.”

“숨겨요?”

“애당초 이번 일의 발단이 된 내기는 알고 계시죠?”

타케우지도 상혁에게 이야기를 들었기에, 넥젠과 PTW의 게임 개발 대결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저희는 오픈 날 저희가 페○트의 IP를 사용할거라고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방영된 스폰서 목록에 PTW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상대가 눈치 챌 가능성이 있겠죠.”

상혁의 설명을 들은 타케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질문을 더 꺼냈다.

“하나만 더 묻고 싶습니다.”

“하세요.”

“왜 저희죠?”

“그건 전에 설명했잖아요. 제가 그쪽의 팬이라고요.”

“아뇨, 그거로만 설명하기엔 지금 상혁 씨가 안고 있는 리스크는 너무 거대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 비용이면, 충분히 검증된 다른 IP에 투자하셔도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었을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저희와 함께 하려고 하시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옆에서 자리를 뜨려던 콘노도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타케우지가 한 질문은 자신도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기에.

“저도 묻고 싶네요. 왜 저희입니까? 저희는 인지도도 낮은 신생 제작사인데요.”

상혁은 고민에 빠졌다.

애당초 배틀로얄 아이디어 자체가 회귀 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원작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회귀를 빼놓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른 대답을 내 놓았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요.”

“그냥? 겨우 그런 이유로 8억엔이 넘는 돈을 태웁니까?”

“본인 선택에 확신이 있으면 태울 수도 있는 거고 묻을 수도 있는 거죠. 검증된 IP에 왜 투자 안했냐고요? 걔네는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장르에 딱 맞는 스토리를 쓰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왜 신생회사에 일을 맡겼냐고요? 대형 회사에 맡겼으면 회사의 사활을 걸고 전 직원이 열심히 결과물을 내려고 했겠어요?”

상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전 단순히 팬 심에서 양사를 지원하는데 저희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저희 게임을 하게 될 유저들뿐이에요. 정말 멋진 스토리에 정말 멋진 캐릭터, 그리고 화려하고 퀄리티 높은 애니메이션. 그 모든 게 다 저희 게임 유저를 위한 밑 작업에 불과한 거죠.”

상혁이 말하는 내용은 격앙되어있었지만, 목소리나 말투는 한없이 담담했다.

지금 말하고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심이었기에.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서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제 걱정 말고 두분 다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일에 몰두하시면 됩니다. 결국 원작이 히트하면 최종적인 이윤은 저희 쪽에서 가장 많이 챙겨가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페○오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겠지.’

***

-일본은 지금 ‘페○트 홀릭’ 신작 애니메이션&게임의 흥행돌풍-

-신생 제작사 우포테이블의 과감한 도전. 일본 애니 시장을 뒤집어엎다.-

-인기 애니메이션 페○트의 원작 게임. 비쥬얼 노블 장르 최초로 2달 만에 30만장 완판.-

-한국 방영 애니의 인기에 힘입어 외산 게임 페○트가 패키지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5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외산 애니메이션의 습격. 이대로 괜찮은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설 자리는?-

“이거 예상이상인데?”

3회사가 사운을 걸고 있는 힘 없는 힘 끌어 모아 만든 페○트는 상혁의 의도 이상으로 엄청난 흥행 돌풍을 가져왔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다른 애니메이션을 가볍게 압살하는 퀄리티로 방영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이정도로 흥행할지는 상혁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방영 반응이 예상 외였는데, 민준과 밥 먹으러 가는 길에 길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에에엑스 카아알리버어어!’ 하고 외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민준이 배를 잡고 웃는 일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것은 확실히 상혁에게 자신이 타임라인에 개입해서 바뀐 현실이 어떤 것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옳은 선택이었을까?’

방영 이후에 한차례 만남을 가졌던 타케우지의 말에 의하면, 애니매이션이 방영되자마자 메이저 게임 제작사에서 IP 사용권 협의를 위해 미친 듯이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제안들은 나슈가 모두 거절했다고.

‘원작에 맞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맡기겠다.’

라고 대답했다는데 이것 때문에 나중에 다른 페이트 게임들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페○트 그랜드 오더는 하고 싶으니까 나중에 때 되면 넌지시 밀어봐야겠다.’

사실 회귀자인 상혁이 편하게 자신이 기억하는 인기작들을 베껴서 만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다.

굳이 자신이 만들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은 때가 되면 나올 것이니까.

상혁은 회귀 이후에 살게 된 지금의 타임라인에서, 최대한 남들이 만들지 않는 게임을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공개되는 배틀로얄이 그 본격적인 시작이 되겠지.’

어찌되었거나 지금의 상황은 PTW에게 호재중의 호재라 할 수 있었기에 상혁의 마음은 얼마 후 있을 공개행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 상혁과 마찬가지로 원준도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페○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연락처 못 구했어?”

형민이 묻자 원준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애니 제작사 쪽이랑은 연락했는데, 자기네는 영상매체 발매에 관련된 라이센스만 가지고 있다고, 나머지는 제작 위원회에 말해야한다는데요.”

“그럼 연락처라도 물어보지.”

“비공개래요. 한명이 제작비를 거의 다 댔다는데, 라이센스 협의 하려면 그쪽이랑 해야 한다고.”

“그럼 원작자는? 게임이 원작으로 표기 되어있으니 원작자 쪽으로 라이센스 협의하면 되지 않아?”

“그쪽도 거절당했어요. 당분간은 콜라보든 라이센스 계약이든 할 생각 없다던데요.”

“아깝다···. 딱 게임 캐릭터로 쓰기 좋은 IP라 가져오기만 하면 효과 장난 아닐 텐데.”

“그렇죠. 지금 제일 핫한 IP니까. 근데 대체 그 제작위원회는 뭐하는 놈들일까요? 방송국에서도 방영권만 가지고 있다고 하고···. 보니까 광고 수익도 방송사가 챙기는 조건이라던데, 그럼 그 정도 애니를 제작해놓고 로얄티 수익은 하나도 안내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수상쩍게 돈이 많은 미친놈 아냐?”

“뭐, 콜라보가 가능했으면 진짜 좋았겠지만, 일단 다른 게임회사도 전부 거절중인 것 같으니 아쉽지만 포기해야겠어요.”

“그래. 안 되는 거 붙잡지 말고 우리 일에나 힘쓰자고.”

원준은 라이센스가 아쉽긴 했지만 입을 다시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개일 까지 앞으로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기에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원준은 가슴 한 켠에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애니메이션을 보면 자꾸 상혁이 만든 유즈맵이 떠오른단 말이지···.’

컨셉이 비슷하기에 만약 상혁이 저 괴물같은 IP를 가져간다면, 승부에서 치명적인 패착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면 패키지 게임으로 발매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보장 받을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러나 천만 다행인 점은, 원작자가 현재 모든 게임과의 콜라보 계약을 거절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상혁도 제안했다 거절당했겠지. 머리 좋은 놈이니까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구나. 원작자가 허가를 해주지 않는 이상 저 IP를 네가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

승리의 트로피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남은 것은 2개월 후, 공개행사에서 상혁을 뭉개버리고 화려하게 데뷔 하는 것 뿐.

그렇게 생각한 원준은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다음 공개 행사에 자신에게 가능한 한도 안에서 최대한의 업계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두 개발자의 자존심을 건 승부까지는 이제 정말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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