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78화 (79/485)

078. 공개 개발 대결

상혁과 원준이 내기를 했던 천하대 강연이 2002년 10월 중순에 있었기에, 언론에 게임을 공개하는 행사는 대략 3개월 후인 2003년 2월에 초에 진행되었다.

행사장 위치는 서울에 위치한 대형 호텔의 컨벤션 홀.

상혁이 동원 가능한 언론사 인맥이 주로 해외 쪽에 포진해 있어서 기자들의 체류도 해결할 겸 정해진 장소였다.

사실 공개 행사라고 해서 거창하게 수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때까지 만든 게임을 공개하는 자리는 아니다.

애당초 두 회사 모두 그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PTW의 경우 ‘마리의 눈물’

로 인해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기는 했지만, 후속작인 ‘나이츠 어셈블’이 지나치게 서양 니즈에 맞춰져 출시 된데다, 출시 플랫폼인 X-BOX가 한국에서 2002년 12월 말에나 출시되는 바람에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특이한 게임을 만들던 게임 회사’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원준이 만든 스타트업 ‘넥젠’은 그 정도의 인지도도 갖추지 못한 상황.

그래서 상혁과 원준은 서로의 합의 하에 공개 행사를 언론사만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물론 리처드를 포함한 외국 기자들과 친분이 꽤 있었던 상혁의 인맥으로, 꽤 많은 외신 기자들이 몰려왔기에 행사는 생각보다 북적이는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 무대를 준비 석에서 바라보던 민준은 그런 행사장 광경을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형민 씨,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어. 생각보다 상혁이란 녀석 수완이 꽤 좋은 거 같네. 이정도로 기자를 불러 모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역시 돈 버는 회사는 다르네.”

“뭐, 저희도 그 덕에 이득을 보니까요? 행사장 비용도 저쪽에서 다 냈으니 우린 완전 거저먹는 거나 다름없어요.”

“근데 저쪽도 생각이 있을 텐데 이정도로 기자를 모은 거면 분명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

“그건 걱정 마세요.”

원준이 웃으며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저쪽에서 우리보다 완성도 높은 프로토타입을 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

한편, 반대쪽 준비 석에서도 상혁과 민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원준과 형민이 이야기 하던 것과 비슷한 주제로.

“예상대로야?”

“어. 저쪽에서 시연 컴퓨터 사양서를 그제 보내줬거든. 스펙을 보니까 프로토타입 수준은 아닐 것 같아.”

“그렇겠지.”

“공개는 어느 쪽이 먼저 해?”

“우리가.”

상혁의 대답에 민준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난 너라면 무조건 나중에 발표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너에게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상혁이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새내기 대학생이 평소 마음에 들던 동아리에 가입을 했어.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 날짜가 되자, 같이 가입한 동기들과 술자리에 가게 된 거지. 거기서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시켰는데, 다들 부끄러워서 아무도 안 나서는 거야. 근데 그중에 한명이 손을 들고 당당하게 말한 거지. ‘내가 나가겠다.’ 라고.”

“그래서?”

“술집의 룸을 두 개로 갈라서 한쪽은 신입생들이, 한쪽은 선배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첫 번째 주자가 당당하게 선배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거야.”

“노래를 불렀나보네.”

“동기들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갑자기 미친 듯한 박수소리와 함께 선배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신입생은 생각했지.”

‘대체 저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아까 선발주자로 나간다고 했던 애가 팬티만 입고 옷을 품에 안은 채 동기들이 있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어.”

상혁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본인 이야기 같은데.’

그러나 상혁은 민준의 의심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서 질문. 반나체로 뛰어 들어오는 첫 번째 주자를 보면서, 동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x됐다. 저거보다 못하면 욕먹겠는데?···같은 거?”

“정답.”

“그래서 먼저 하겠다는 건가. 설명을 들으니 이제야 너답다.”

“이제 우리가 시연하는 시간 내내 원준이란 놈은 똥줄이 바짝 타는 느낌을 느끼게 될 것이야.”

“뭐, 워낙 퀄리티가 압도적이니까.”

애당초 베이스가 되는 플랫폼이 수많은 게임 장르를 탄생시킨 ‘전쟁크래프트3’의 유즈맵이다.

게다가 시기가 아직 ‘카오스’라던가 ‘DOTA' 같은 초 히트작 유즈맵이 나오기도 전.

맵 용량 제한까지 풀어주어서 퀄리티까지 압도적인 마당에, 상대가 9개월이 아니라 1년을 개발한 게임을 가져오더라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상혁이었다.

“그나저나 눈보라사에서 맵 용량 제한 풀어준 건 좀 놀랍네.”

“아, 그건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그 직원이 ‘나이츠 어셈블’팬이라더라.”

“어? 진짜?”

“그도 그럴게 외국 개발자 중에는 D&D팬이 많잖아. 주말마다 X-BOX로 모여서 ORPG 플레이 한다던데?”

“그건 또 일이 신기하게 풀렸네.”

“그러게. 나도 이건 예상 못했거든.”

말하자면, ‘마리의 눈물’이후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서양권에서 선호하는 게임을 발매한 것이 역으로 좋은 결과를 불러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긴, 게임이 좀 아재 취향이긴 했지, 어린 소년이 기연을 얻어서 세계를 구하는 클래식한 스토리였으니까.”

상혁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민준이 말했다.

“난 이것도 니가 미리 계산한 거라고 했으면 니 뇌를 까보려고 했는데.”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그 정도로 미래를 읽는 능력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원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물론 저 새끼는 그렇게 생각 못하겠지만. 아마도 지금 쯤 뒷 발표 먹었으니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잔뜩 신나있을걸?”

상혁의 말대로, 반대편에 있는 원준은 선뜻 주목받기 더 좋은 뒷 순서를 넘겨준 상혁을 호구라고 놀리며 형민에게 신나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저쪽에서 발표하는 걸 여유롭게 구경하다 밟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시연회가 끝나는 순간,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저희 게임밖에 남지 않겠죠.”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정장차림의 여성이 말했다.

“믿어도 되겠죠? 저희 VC에서는 이번 투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어요. 망치면 절대 안 되는 거, 잘 아시리라고 믿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 발표 리허설 보셨잖아요. 절대 3개월 안에 급조한 게임 따위에 질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니라는 건 경미 씨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모두 원준 씨의 시나리오대로 굴러갔으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기자들이 많네요. 대결 상대라는 PTW라는 곳이 외국엔 인지도가 꽤 있나본데요?”

“X-BOX런칭 타이틀 자리를 꿰찰 정도니까, 인지도는 있다고 봐야죠. 저희가 대결 구도를 무리하게 잡은것도, 그런 상대의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해서이니까요.”

“저쪽은 돈만 잔뜩 쓰고, 떡고물은 저희 쪽이 먹는다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하하하하하!”

자신만만한 원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경미는 작은 미소로 원준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원준의 자신만만한 미소가 절망으로 변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경미는 원준의 말에 허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게 되었다.

***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행사장을 찾아주신 기자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힘차게 인사를 하자 행사장이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진행자는 잠시 뜸을 들인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행사에 대한 소개를 진행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게임업계에서 두 업체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죠. 물론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유저들은 항상 비슷한 두 게임을 비교하곤 했습니다. 위저드리와 마이트앤 매직, 우주 크래프트와 레드얼랏처럼 말이죠. 그러나 지금 이 행사처럼 두 개발사가 공식적으로 대결을 선포하고 자신들의 게임을 공개하는 행사는 게임 업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 대결의 역사는, 작년 천하대에서 있던 강연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결의 배경을 설명하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먼저 PTW의 게임을 소개하는 순서가 되자, 상혁이 미리 준비한 공연 시퀀스에 맞춰 회장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는 뒤쪽에 준비된 거대한 스크린에서, 외주비를 거의 퍼붓다 시피 해서 제작한 트레일러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마자, 원준의 표정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왜 게임화면이 나와?’

게임 트레일러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시네마틱 영상으로 게임의 스토리나 컨셉을 강조하는 영상, 게임 플레이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며 재미를 보여주려 하는 영상, 혹은 두가지가 다 섞여있는 영상.

상혁이 선택한 것은, 힙합 스타일의 음악에 맞춰 빠른 템포로 화면이 전환되며 고퀄리티 모델링으로 이루어진 영웅들이 교대로 스킬을 사용하는 영상이었다.

상혁은 이것을 ‘스타일리쉬 트레일러 스타일’ 이라고 불렀는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MMORPG의 소개 영상이 아닌, 마치 팬 무비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느낌의 영상이었다.

-7명의 플레이어-

-최후의 생존자-

-최강의 영웅을 소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라-

리듬감 있는 랩과 함께 게임 내용을 소개하는 문구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게임 화면들은 분명 프로토타입의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게임의 모습이었다.

“3달 만에 저수준까지 만들었다고?”

적어도 원준이 아는 상식 하에서, 그것은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했다.

그리고 원준을 경악시킨 그 영상은, 화려한 스킬과 이펙트를 보는 이의 뇌리에 새긴 채 쿵 소리를 내며 화면에 한 줄의 문구를 출력했다.

-새로운 배틀의 시작을 지금 전쟁 크래프트3에서 함께 하세요.-

“유즈맵?!”

원준이 지른 소리는 영상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박수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상혁은 그렇게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원준을 한번 슥 바라보고는, 웃으며 무대에 올라 기자들에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Play to Win의 CEO! 이상혁입니다!”

상혁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박수소리가 터지고 있었기에, 상혁은 잠시 소리가 잦아들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행사장이 침묵에 잠기자 심호흡을 하고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여러분께 완전히 플레이 가능한, 전쟁크래프트3의 유즈맵으로 출시되는 저희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미소짓는 상혁을 보며, 원준은 깨달았다.

이번 행사에서, 자신은 완전히 x되었다는 것을.

영상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상혁이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은 자유롭게 기자의 질문을 받아 상혁이 대답하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질문의 내용은 주로 어째서 프로토타입을 유즈맵으로 공개한 것인지, ‘나이츠 어셈블’의 발표 이후 2년 가까이 지나 나온 신작인데 그동안 만든 것이 이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상혁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이기 때문에 유저들이 익숙해질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유즈맵으로 출시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나이츠 어셈블의 발표 이후에는 다른 프로젝트를 작업했고 지금 발표한 게임은 정직하게 3개월만에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상혁이 그렇게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동안, 원준은 자신이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이 갑자기 초라해 보이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너무 평범하게 했나?’

물론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원준이 9개월간 준비한 것들은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상혁과의 내기 이후로 VC투자까지 유치하게 되면서, 프로토타입에 있던 모델링을 일부 고퀄리티로 교체하고, 인원도 새로 뽑고, 영상도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그러나 눈앞에서 기자들에게 미소짓는 저 미친놈의 임팩트가 너무 강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그 순간에도 원준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임의 개발은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철저히 검증된 시장성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하며, 그 안에서 개발자 개인의 취향을 가미시켜 새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것은 철저하게 그 공식에 따르고 있었다.

인기 있는 게임들이, 아니 선구자들이 개척해 놓은 검증된 시스템들.

길드 시스템,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공성전, 다양한 캐릭터와 멋진 보스 몬스터들.

거기에 최근 부상하기 시작한 ‘부분 유로화’ 모델까지.

분명 그 정도면 성공의 기준을 넘을 것이라고 원준은 생각하고 있었다.

게이머가 현대 게임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저기 가증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상혁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싸그리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듣도 보도 못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서 가져와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그것은 대결의 본질을 해치는 행위다.

이 대결은 누가 게임을 ‘잘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지 ‘기발하게 만들었는지’의 대결이 아니니까.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원준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의 프로토타입이 3개월이 아니라 9개월간 개발한 버전이라는 것이나, 애당초 최초 상혁을 도발한 것이 자신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단지 비겁하고 야비한 음모에 자신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저희 게임의 소개는 이정도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주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떠오르는 스타트업 ‘넥젠’의 기획팀장 강원준을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직 머릿속이 정리도 되기 전에, 상혁은 강제로 자신이 올라오게 분위기를 잡고는 무대 저편으로 걸어가 버렸다.

원준은 그런 상혁을 보며 이를 바득 갈고는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자신이 상상했던 화려한 승리와는 전혀 다른, 아마도 치욕으로 가득 찬 15분이 될 게임 소개를 하기 위해서.

“완성도가 유일한 무기였던 게임에 완성도를 빼앗았으니 이제 뭘로 싸울 건지 기대되네.”

자리에 앉은 상혁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원준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것은 평소의 장난기 넘치는 상혁의 미소와는 다른, 등골을 싸늘하게 하는 차가움이 담겨있는 미소였다.

“어디, 재주한번 넘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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