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유즈맵 제작
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내기를 받아들인 것이 자신의 독단이었다는 이유로 팀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기존 멤버들이 이전과 같은 통상 스케줄로 작업을 진행하는 ‘개발팀’으로, 나머지 하나는 자신과 새로 뽑은 인원들을 주축으로 한 ‘유즈맵 팀’으로.
이렇게 나눈 이유는 개발 멤버들이 3개월의 발표 스케줄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유즈맵 작업 인원은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잘라야하는 한시적으로 필요한 멤버라서 이기도 했다.
유즈맵의 경우는 상혁이 xml 이나 엑셀로 입력한 데이터를 일괄적으로 유즈맵 파일에 입력하는 파싱(Parsing) 작업을 해줄 프로그래머,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는 입력할 수 없는 나머지 입력 작업을 수행할 유즈맵 개발자, 모델러와 애니메이터가 개발팀에 포함되었다.
상혁은 이번 유즈맵 개발을 위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구축한 외주 인맥까지 총 동원했는데, 3개월 안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 개발을 진행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을 제공하는 ‘전쟁 크래프트3’의 기본 제공 에셋들을 사용하면 조금 더 빠르고 간편한 개발이 가능했겠지만, 상혁은 자신이 만드는 유즈맵이 ‘전쟁 크래프트3’의 유즈맵이 아닌, 그것을 가지고 구동하는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PTW의 외주를 맡은 모델러와 애니메이터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외주 보너스를 엄청나게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외주는 정해진 비용으로 정해진 기간 안에 구매자가 원하는 퀄리티를 맞춰 주는 게 원칙이지만, 상혁은 외주를 줄 때 항상 외주비의 최대 100%까지를 ‘외주 보너스’로 설정했다.
기간 안에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주었을 때 50%, 기간을 단축하여 납품이 완료되었을 때 50%.
그렇기에 외주자들은 빠른 시일 내에 실력발휘만 하면 어렵지 않게 통상의 2배 가격의 외주비를 받을 수 있었고, 그것에 익숙해진 외주자들은 자신이 먼저 만들어둔 개인 작업 물들을 어레인지하여 상혁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물론 그 경우 상혁이 구매 결정만 하면 무조건 150%는 받을 수 있었기에 유즈맵 리소스 확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민준의 소개로 상혁의 유즈맵 작업을 도와주러온 프로그래머가 거의 괴수 수준이라, 상혁은 민준이 없음에도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요청하신 툴 작업해서 올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고마워요. 제이크. 어려운건 없었죠?”
상혁이 웃으며 말하자, MS에서 온 파견 직원 제이크가 말했다.
“어려운건 없고, 불만은 좀 있죠.”
“어떤 불만이요?”
“좀 어려운 걸 줘요. 난 민준씨가 부탁한다고 하길래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 필요 하겠구나 해서 왔는데, 유즈맵 툴 작업이라니, 이건 호두 깨는데 슬래지 해머 쓰는 격이라고요(Use a sledgehammer to crack a walnut).”
“아니, 저도 민준이가 소개해준다고 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MS 엔지니어를 데려다 줄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덕분에 작업이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지만요.”
상혁은 제이크가 처음 찾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오, Mr.민준이 저에게 헬프를 요청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대체 어떤 대단한 작업을 하시려는 거죠? 게임계를 뒤집어엎을 음모라도 꾸미고 계신건가요?’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 제이크에게 상혁이 작업 내용을 말하자, 제이크는 마치 ‘겨우 그런 작업 때문에 나를 부른 거냐?’라는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고, 상혁을 뻘쭘하여 코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MS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를 하고 있을 정도의 실력자를 겨우 툴 만드는 작업을 위해서 부른 거였으니.
그러나 난감해하는 상혁대신 나선 민준이 제이크에게 귓속말을 하자, 제이크는 군말 없이 작업할 내용을 달라고 이야기 했다.
나중에 물어봤는데도 제이크나 민준 둘 다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상혁은 어떤 내용의 말이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건 제이크가 도와주러 와 준 덕분에, 상혁이 유즈맵 작업을 하는 동안 민준이 민솔과 함께 본 게임의 네트워크 설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안한건 어쩔 수 없기에 상혁은 제이크를 보며 사과하듯 말을 건넸다.
“아, 혹시 보수쪽이 불만이시면···.”
“아뇨, 어차피 이번 일은 지난번 X-BOX LIVE 작업 때 민준 씨가 파견 와서 작업해준 것에 대한 답례 같은 거니까 보수는 괜찮습니다. 대신 민준 씨가 작업 중이라는 넷코드 쪽 작업을 좀 보고 싶은데요.”
현재 민준은 현재 통신 속도에서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백앤드 쪽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민준의 말로는 다른 게임엔진에 붙여서 쓸 수 있는 네트워크 플레이용 API라고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전문용어가 난무했기에 상혁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MS에서 온 제이크는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이라 그런지 민준의 작업 내용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흠. 일단 그건 민준이한테 부탁해볼게요. 일단은 이번 작업에 집중해주세요.”
“약속하신 겁니다?”
그렇게 말한 제이크는 상혁이 내민 기획서를 휙 낚아채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혁은 민준이 들어가 있는 작업실 방향을 향해 말했다.
“민준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상혁은 조금 더 큰 소리로 민준을 불렀다.
“민준아아!!”
그래도 대답이 없자, 상혁은 한숨을 쉬더니 이번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난 html로 프로그래밍 한다.”
“html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야.”
작게 말했는데도 귀신처럼 작업실에서 대답하는 민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혁이 피식하고 웃더니 작업실에 있는 민준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잠깐 와봐.”
“왜?”
잠시 후, 상혁의 앞에 나타난 민준의 모습은 완전히 피폐한 인간의 그것이었다.
“너 누가 보면 랩실에서 이주정도 틀어박힌 대학원생인줄 알겠다?”
“시끄러. 바쁘니까 용건이나 말해.”
“작업은 잘 돼가?”
“그럭저럭. 그게 용건이면 나 도로 간다?”
“아니, 그 혹시 괜찮으면 나중에 제이크도 작업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는데 해줄 수 있나 해서.”
“그러라고 해. 단 네 쪽 작업 완전히 끝나고 나서.”
그렇게 말한 민준은 몸을 휙 돌려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버렸고, 상혁은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됐건 다음번에 제이크가 결과물을 들고 올 때는 긍정적인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업자의 의욕과도 관련 있는 문제였고.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의욕관리가 아니긴 하지.”
상혁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상혁이 시급히 처리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떠 있었다.
“메인플레이의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결정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원작인 페이트의 느낌 100%를 그대로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넓은 맵을 배경으로 소수의 인원들이 서로를 찾아다니며 며칠에 걸쳐 싸움을 하는 것은 빠른 플레이가 요구되는 배틀로얄 장르에는 맞지 않았으니까.
누구도 게임 시간의 90%를 다른 플레이어를 찾는데 소모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을 막기 위해, 이 장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배틀로얄에서는 특정 지역의 플레이어를 죽임으로써 플레이어들이 허가된 지역을 찾아 강제로 이동하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마지막엔 공평하게 유저들끼리 최종 대결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배○그라운드에서는 자기장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지.’
구체적인 룰을 어떻게 할지도 문제였다.
원작의 7명은 배틀로얄 장르로 만들기에 너무 적었으니까.
‘카오스같이 5:5로 해? 아포크리파 설정 가져오면 무리는 아닐 것 같긴 한데’
물론 본격적인 배틀로얄 게임처럼 솔로, 듀오, 스쿼드로 자유롭게 팀을 꾸린다던가, 유저의 실력에 따른 매칭이 된다던가 하는 것은 유즈맵 시스템으로는 무리였다.
유즈맵으로는 단순하게 게임의 기본 플레이 정도만 제공할 수 있는 수준.
거기서 충분한 재미를 전달해 팬층을 만들 수 있다면, 추후 게임 오픈시에 기존 유즈맵 유저들을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게임의 핵심만 떼서 만들어야한다.’
생각하고 있는 전체 시스템의 어느 부분을 유즈맵에 구현하고, 어느 부분을 본게임에 구현할 것인가를 판단해야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이다.
상혁은 유즈맵 개발 인력을 관리하면서도 동시에 ‘유즈맵으로 했을 때 재미있는’ 형태의 기획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획 작업에 매달렸다.
***
유즈맵 제작팀에서 플레이 가능한 유즈맵을 만드는 데는 거의 3달 가까운 시간이 들었다.
애당초 이것도 상혁이 기획을 빠르게 잡고 진행했기에 가능했던 기간이었지, 만들려는 맵의 복잡도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인게임 모델링을 거의 쓰지 않고 전부 오리지널로 만들다시피 한 맵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상혁은 단 한 번도 본 개발팀에 유즈맵의 진행상황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팀원들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테스트 플레이를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전히 모르는 유저를 감안해서 테스트해야하니 게임 설명은 따로 하지 않을게요. 하면서 나오는 튜토리얼 메시지를 보고 익히세요.”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테스트 인원 중에는 민준도 있었는데, 멤버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페○트’나 ‘배틀로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멤버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지금, 굉장한 기대감으로 상혁이 만든 유즈맵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바꿔놨을까.’
페○트란 게임이 가진 파급력이 워낙 엄청났고, 그 게임성이나 캐릭터성이 뛰어났기에 당연하게도 민준이 기억하는 회귀 전 타임라인에서는 페○트의 유즈맵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이 만든 페○트 유즈맵이기에 민준은 상혁이 어떤 식으로 페○트를 해석했을지가 궁금했다.
그 결과에 따라, 본게임의 형태도 많이 바뀔 테니까.
‘멤버는 7명 그대로네.’
더 늘릴 수도 있었겠지만, 상혁은 원작대로 7명의 참가인원을 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마도 그것은, 유즈맵 참가인원의 한계 상 아예 배틀로얄에 맞는 대규모 인원참가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원작 재현에 힘쓰자는 선택일 것이다.
‘16명을 못 맞출 바에야 그냥 7명으로 가자는 건가? 아니면 맵 용량 한계 때문인가?’
플레이를 시작하면서도, 민준은 그래픽 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맵 용량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구현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준은 상혁이 익숙한 ‘전쟁 크래프트3’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유즈맵을 구현하리라고 생각했고, 잠시 후 캐릭터를 선택하는 순간이 오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잠깐만 상혁아.”
“어?”
손을 들어 게임을 중지시킨 민준이 상혁에게 물었다.
“이거 맵 용량 100%오버날거 같은데?”
“어 맞아. 오버나.”
당시 ‘전쟁 크래프트3’의 맵 용량에는 제한이 있었기에, 모델링이나 오브젝트의 퀄리티를 일정 이상 뽑을 수가 없었다.
프리서버에는 그 제한이 없긴 하지만, 본 서버에는 아직 그 제한이 존재하는 상황.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것 때문에 일정 퀄리티 이상을 낼 수 없는 것이 ‘전쟁크래프트3’유즈맵의 한계였는데, 상혁이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이 퀄리티로 배포 안 되지 않아?”
“퀄리티가 중요하잖아. 멋지게 보이려면 그래픽부터 좋아야지. 블레이드 마스터가 ‘약속된 승리의 검’같은 기술을 쓰는 건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배포 불가능한 수준으로 퀄을 올리면···.”
“그 부분은 제가 설명 드리죠.(Let me expand on that point)”
그때,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한 중년 남성이 상혁의 곁으로 걸어오며 영어로 말했다.
“이 유즈맵이 공개되는 날, 본 서버 패치로 맵 용량 한계를 확장하는 패치가 같이 나갈 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오, 물론 가능하죠. 아, 제 소개를 잊었네요. 제 이름은 필 콜슨. 눈보라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입니다.”
민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상혁이 원하는 퀄리티를 구현하기 위해서, 아예 ‘전쟁크래프트’의 개발사인 눈보라사에 헬프를 넣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