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배틀로얄 컨셉팅
2000년 이후로 한국에서는 그리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서구권에서는 컬트적인 인기를 구사했던 영화 배틀로얄이 상혁의 입에서 언급되자, 서연이 상혁을 보며 물었다.
“배틀로얄이면, 영화 말씀하시는거에요?”
“응. 정확히는 그 영화에서 나오는 게임의 방식을 말하려던 건데, 특정 공간에서 여러 플레이어가 서로 죽이고,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싸우는 걸 말하는 거야.”
“오, 저 그 영화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거 웹게임도 하나 있지 않나?”
성연이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웹게임도 있죠. 갓담같은 게 들어간 어레인지 버전도 있고요.”
“그럼 웹게임을 만들자는 거야?”
“아뇨.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 이기는 건 무리겠죠. 우리 버전으로 어레인지 해서 만들까 해요.”
“흠···. 그걸로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아마도 MMORPG를 가지고 나올 텐데.”
당시는 아직 ‘온라인 게임’ 이라고 하면 MMORPG가 떠오르는 시대였기에 성연은 상혁이 만들려고 하는 게임으로 원준의 게임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때, 상혁이 아닌 민준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길 겁니다. 아마도.”
“뭐랄까, 이번엔 대중성을 중심으로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너무 생소한 장르로 가는 거 아닐까 싶은데?”
“대중성 있어요. 설명하긴 힘들지만. 게임성은 검증된 장르라고 봐도 무방할 거에요.”
2017년 발매되어 온라인 게임의 장르판을 뒤집어버린 ‘배○그라운드’를 알고 있는 민준은 배틀로얄 장르 자체가 가진 대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지.’
단지 성공까지 가는 데 몇 가지 넘어야 할 과제가 있었을 뿐.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 PTW가 넘어야 할 숙제였다.
“상혁아. 일단 몇 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FPS 장르로 만들려는 건 아니지?”
가장 쉽게 성공하는 방법은 역시나 완전히 성공한 게임인 ‘배○그라운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2003년도 컴퓨터 사양으로 ‘배○그라운드’를 구동하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만들더라도 그래픽이 심하게 구려진다던가, 최적화를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제대로 된 플레이가 불가능할 수준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상혁은, 그 질문을 듣고는 민준의 예상대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무리지. 인원수가 어느 정도 보장돼야 재미있는 장르인데, 지금 서버나 컴퓨터 성능으로 100명이 동시에 FPS를 플레이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
“그럼 어떤 형태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건 고민 중. 일단 지금 네트워크 환경에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
“흠···.”
“너무 걱정하지 마, 안되면 억지로라도 되게 해놓을 테니까. 그러니까 일단 편하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게임이 될 거 같은지 니 생각을 말해봐.”
민준이 웃으며 말하자 상혁은 싱긋 웃더니 화이트보드에 적힌 도표를 지웠다.
그리고는 장르에 생소해하는 팀원들을 위해, 배틀로얄 장르가 가지는 재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는 라스트 맨 스탠딩이 기본이에요. 거기서 팀을 짜서 팀원만 남을 때까지 죽이는 형태가 파생이고요. 하지만 이 장르에 배틀로얄이란 이름이 붙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 영화에서처럼 활동 가능한 범위가 줄어드는 기믹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군데서 무조건 숨어 있겠다고 능사가 아니고, 언젠가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거죠. 최종적으로는 좁은 맵에서 데스매치를 펼치게 되는 거고요.”
“서로 죽이는 걸 배틀로얄이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단지 그게 전부면 데스매치나 아레나도 배틀로얄이라고 불러야겠죠.”
“흠···. 그게 그냥 서로 죽이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가 있어?”
“우선 맵에 따른 전략과 파밍이라는 변수가···.”
상혁이 설명을 이어나가려는데, 지수가 손을 들었다.
“어, 지수야.”
“저···.그게···.”
“편하게 말해···.”
“저 그 영화 안 봤는데···.”
상혁은 그제야 영화 배틀로얄이 한국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이마를 탁 쳤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다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 영화감상이나 할까요?”
“엑?! 지수는 아직 중3인데요?”
“뭐, 어때. 신고할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영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기도 할 거고.”
“필요한 거라면 난 볼 각오가 되어있다!”
지수가 씩씩하게 말하자 서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연은 문득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지수의 손을 잡고는 시어터 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지수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는 웃으며 말했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내가 눈 가려줄게.”
“아니 그렇게 어린애 취급하지 않아도···.”
“안 돼. 넌 너무 어려.”
지수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자 서연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수를 뒤에서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때, 서연의 뒤에서 상혁이 영화 ‘배틀로얄’의 DVD를 든채로 서연을 보며 말했다.
“나이로 따지면 너도 고3이잖아.”
“···전 이미 몰래 봐서 괜찮아요.”
“안 돼. 공평하게 해야지.”
결국 지수를 안은 서연의 뒤에 현주가 가서 앉은 채로, 팀원들은 다 같이 배틀로얄 영화를 시청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영화 상영이 끝나자, 지수가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이런···. 똥같은···,”
“재미없어?”
“재미를 떠나서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뭐, 개연성을 놓고 보면 진짜 너무 말이 안 되는 내용이긴 하지. 갑자기 섬에 모아놓고 서로 죽이라고 하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방의 불을 키고 방 중앙으로 이동했다.
“자, 그럼 이제 팀 멤버 전원이 영화를 봤으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그전에 질문할 게 있는데, 다들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해요?”
“흠, 오빠가 이야기하려는 게 뭔지는 알 것 같아요. 확실히 시간 지날 때마다 금지 구역에 있으면 목걸이가 폭발하게 되니까, 강제로 이동을 해야 하겠네요.”
“상대를 죽여서 무기를 빼앗거나 건물을 뒤져서 필요한 걸 찾는 것도 게임의 구성요소 중에 하나일 것 같아.”
“시작 때마다 다른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어떤 사람은 총을 가졌는데, 어떤 사람은 GPS를 가지고 있다던가.”
“대충 다들 배틀로얄의 핵심은 이해한 것 같네. 맞아요. 지금 말한 것들이 배틀 로얄 장르가 가진 기본적인 구성요소들이에요. 거기에 변주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서 게임이 완전히 변하게 되는 거죠.”
상혁이 설명하자 민준이 물었다.
“그래서, 상혁이 너는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줄 생각이야? 그냥 단순하게 영화를 그대로 옮길 생각은 아닐 것 같은데.”
“그렇지. 일단 시작 아이템이 랜덤인 부분은 문제가 있어. 시작할 때 구린 아이템이 걸리면, 그 유저는 고생하기보다 아예 그 방을 나가게 될 거거든. 그리고 다음 판을 시도하겠지.”
실제로 그 이유로 대부분의 배틀로얄 장르에서는 시작 시 빈손으로 시작하거나 캐릭터 선택의 자유만 줄 뿐 파밍등은 맵을 돌아다니며 해야 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배틀로얄 장르의 개성을 결정하는 건, 뭘 해서 강해지느냐고 생각해. 맵을 뒤져서 아이템을 먹어서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를 골라서 파워업 아이템을 모아서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재료를 모아 원하는 장비로 업그레이드 해 가면서 내가 가장 강한 타이밍에 상대와 싸움을 시도한다던가.”
“넌 어느 쪽이 좋을 거 같은데?”
“난 소환.”
“소환?”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거지. 각 플레이어들은 특정 스탯과 스킬을 가진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어. 각 캐릭터들은 마나가 많다던가, 체력이 높다던가, 공격력이 높다던가, 인벤토리 무게 한계가 높다던가 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그렇게 7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자신의 캐릭터’를 고르면 게임이 시작되고, 필드의 원하는 지점에서 게임을 시작해.”
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민준은 여기까지는 회귀 전에 했었던 게임인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혁의 이어지는 설명은, 민준이 기억하는 그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유저들은 무기나 방어구를 모으면서 파밍을 하고 상대와 싸우게 되지. 하지만 이 게임의 궁극적 목적은 내가 강해지는 게 아니야.”
“엥? 그럼 어떻게 이기는데?”
“서번트를 소환해서 이기는 거지.”
“서번트가 뭐야?”
성연이 묻자 상혁이 말했다.
“영웅 클래스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소환수죠.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페이즈는 2개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어요. 성유물이라 불리는 특정한 아이템을 모아서 내가 원하는 서번트의 소환을 시도하는 1페이즈, 그리고 그렇게 소환한 서번트를 데리고 상대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2페이즈.”
민준은 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지금 상혁이 설명하고 있는 게임이 뭔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게임의 내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민준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혁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유저는 선택할 수 있어요. 쉽게 완성할 수 있는 빌드로 빠르게 약한 서번트를 소환해서 육성을 시키던가,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서 강한 서번트를 불러서 역전을 노리던가.”
“흠···. 우주 크래프트에서 질럿 러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캐리어를 뽑아볼 것인가랑 비슷한 느낌인가?”
“비슷해요.”
“그거랑 배틀패스랑은 어떻게 연계되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상혁은 들고 온 마커를 가지고 유리벽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소환을 하는데 주문을 발동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을 ‘소환 아이템’ 이라고 하고, 그 주문을 가지고 원하는 서번트를 뽑기 위해서 필요한 아이템을 ‘성유물’이라고 부를게요. 기본적으로 ‘소환 아이템’은 소환되는 영웅의 클래스를 결정하고 ‘성유물’은 나오는 영웅을 결정하게 되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에서, 유저가 자신이 원하는 서번트의 성유물과 소환 아이템을 모두 파밍하는데 성공하면, 원하는 서번트를 소환할 수 있겠죠?”
“그렇겠지?”
“근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 굴러간단 말이죠. 맵에 아이템이 랜덤으로 뿌려지니까. 예를 들어, 어떤 유저가 엄청나게 강한 서번트의 성유물을 잘 모아서 그 서번트가 나올 확률을 80%정도까지 올려놨어요. 근데 모아놓은 소환 아이템은 그 서번트의 클래스를 지원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요?”
“모은 성유물을 포기하고 클래스에 맞는 성유물을 다시 파밍하던가, 아니면 원하는 클래스의 소환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파밍 하던가?”
“바로 그거에요.”
“근데 아까 확률 80%이야기를 했잖아. 그럼 성유물이 있어도 무조건 그 서번트를 소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이론적으로 모든 성유물이 다 갖춰지면 가능한데, 그렇게 형편 좋게 파밍 하는 건 어렵게 만들어야죠. 대부분의 유저는 적당한 시점에서 운에 맡기고 소환을 시도할거에요. 거기서 원하는 서번트가 나오면 럭키인 거고, 아니면 나온 서번트에 맞춰서 전략을 다시 세워야겠죠. 그 각 성유물로 올릴 수 있는 서번트의 소환 확률을 ‘인연치’라고 하는데, 100%가 맥시멈이고 아이템 하나당 10%씩 올라가요.”
그때, 민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상혁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씨, 너 이거···?!!”
그리고는 상혁의 팔을 거세게 잡아 끌고 빈 회의실로 들어가더니, 상혁을 보며 말했다.
“이거 페○트잖아!”
“어. 맞아.”
상혁이 말했다.
“내용은 완벽하게 배틀로얄 장르에 맞게 짜놓고 정작 게임은 항상 다른 장르로 나왔던 그거.”
2003년 1월에 체험판이 발매되어 2004년에 정식 출시된 이후로 동인 게임의 신화를 갈아엎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된 이후로 조단위 수익을 가볍게 거뒀던 괴물같은 IP.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싸우는 배틀로얄 스타일의 이야기를 짜놓고도 게임 자체는 비쥬얼 노블로 발매되었던 그 게임.
상혁이 배틀로얄 장르로 구현하려는 것은, 그 페○트의 성배 전쟁을 원작에 표현된 그대로 구현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