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70화 (71/485)

070.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

상혁은 크리스가 내민 전단지를 보며 얼마 전 현주를 통해 전달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혹시 이번 초청 강연에 청자로 참여할 수 있는지.

연사면 몰라도 청자로 들어와 달라는 요청은 꽤나 이례적이었기에 기억에 남아있었지만, 당시의 상혁은 귀찮다는 이유로 학교측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전단지를 받아든 지금, 상혁은 어째서 학교 측에서 자신을 집어서 청자로 요청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연설자가 요청했겠지.’

대놓고 작년 자신의 연설내용을 저격하는 내용을 보면, 아마 상혁의 예상은 십중팔구 들어맞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상혁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슈 메이킹을 하겠다는 거네. 작년에 내가 했던 것처럼.’

작년에 상혁이 천하대에서 강연한 내용이 게임 업계에서 꽤나 이슈가 되었기에, 강원준이라는 연설자는 상혁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만든 스타트업의 홍보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상혁은, 이 강원준이라는 연설자의 속마음이 어떻든 별로 그의 장단에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당초 게임 개발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도 하고.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상혁은, 일단 팀원들과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자신은 팀을 넘어 회사가 된 PTW의 CEO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런 자신에 대한 공격은 팀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사자인 상혁은 뭔 개뼉다귀가 짖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팀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잠시 크리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단지를 들고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팀원들을 소집해 전단지를 보여주었다.

“어? 이게 올해 초청 강연 내용이에요? 어디 보자···. 엥? 주제가 왜 이래요?”

가장 먼저 전단지를 본 서연이 황당하다는 듯 상혁을 보자, 상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지난번 내 강연 주제가 맘에 안 들었나 보지. 그때 업계에서도 꽤 논란이 되기도 했고.”

“그때 그건 이슈메이킹 하려고 상혁 오빠가 일부러 자극적인 주제를 골라서 이야기한 거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렇지. 그래도 절반쯤은 진심이었어. 난 게임 업계에서 효율성을 무슨 절대적인 지표처럼 추구하는 걸 싫어하거든.”

“흐응···. 오빠는 가끔 보면 진짜 업계 출신처럼 말하는 게 신기하단 말이죠. 실제로는 게임회사 다닌 적도 없으면서···.”

“뭐, 축구선수 출신만 축구 해설하란 법은 없잖아.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렴.”

상혁이 서연과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성연이 전단지를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뭐, 상혁이 니가 업계 혐오하는 이유는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것도 맞는 말 아냐?”

“예?”

“솔직히 지금까지 상혁이 니가 만든 게임을 보면, 마치 뭔가를 피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거든.

‘절대 내 게임은 평범해서는 안 돼’ 같은 강박관념이 느껴진 달까.”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는 다 재미있기도 했고.”

“그래도 옆에서 보면 좀 아쉬울 때가 있어. ‘아, 쟤는 조금만 타협하면 진짜 지금보다 훨씬 잘 팔리는 게임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지.”

“흠···. 돈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애당초 돈 때문이면 지분 너한테 다 몰아준다고 했을 때 반대했겠지. 그것보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 팀의 상업적 포텐셜이 어느정도냐는 거야.”

“상업적 포텐셜이라···.”

“음악으로 예를 들면, 결국 음악이 개개인에게 갖는 가치는 측정할 수 없으니까, 보통 음반 판매량이란 수치로 구분을 하잖아. 그래서 게임에서도 판매량이나 매출액으로 흥행을 판단하는 거고. 근데 상혁이 넌 그런 건 신경 안 쓰잖아.”

“그냥 우리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뭔 일 있었어요?”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예전엔 팀 업무랑 스튜디오 일이랑 같이하고 있었잖아. PTW 법인 설립 이후에는 스튜디오 쪽은 그만 뒀지만.”

“그렇죠.”

“근데 얼마 전에 놀러 갔다가 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가 그러더라고. 자기 외주로 MMO만든거 대박나서 정식으로 거기 회사에 음악 전담으로 취업한다고. 근데 이 새끼, 아니 선배가 ‘넌 돈 안 되는 게임만 만드는 팀이라 힘들겠구나. 힘내라 쯧쯧’ 이러더라고!”

“아···. 그래서 돈 되는 게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건가요?”

“솔직히 자존심 상하거든? 그리고 상혁이 너나 우리 팀 실력이면 지금보다 훨씬 대중성 있는 게임도 만들 수 있지 않아?”

그러자 성연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맞아. 우린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건데. 그쵸 상혁오빠?”

“후후. 상혁의 능력은 이 몸의 재능을 알아봤다는 것에서 이미 그 실력이 하늘에 닿아있다고 할 수······.”

“시끄러워 꼬맹이. 저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비록 합류는 가장 늦었지만 지금 저희 팀의 방향성은, 민준 오빠의 능력의 반에반에반도 안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팀원들이 단체로 자신을 몰아부칠 줄 몰랐던 상혁이 당황하며 슬쩍 눈빛으로 헬프를 치자, 민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더니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자, 우리 사장님 그만 괴롭히고 일단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휴, 고맙다. 민준아.”

“근데 팀원들 의견도 일리는 있으니까 너도 어느 정도 그에 대해 대답은 해 줘야 할 거야.”

“헐···. 민준이 너마저···.”

솔직히 민준은 회귀전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에 오퍼받은적도 있었고, 국내 대형 게임사에서도 자주 헤드헌팅을 받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이 상혁의 곁에 남아 중소기업에 처박혀 있었던 건, 상혁이 생각하는 유저를 위한 마음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준은 동시에 숫자로만 평가받는 게임업계의 현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상혁처럼 소수지만 특정 유저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만드는 게임회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런 회사의 대부분은 그 회사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만 고평가를 받을 뿐이다.

민준은 적어도 회귀를 해서 2회차 인생을 살고 있는 만큼, 상혁이 조금은 고집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PTW가 대중성 게임을 ‘못 만드는’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었으면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했더라면, 오늘처럼 어디서 굴러온 모를 개뼈다귀 같은 놈이 대놓고 상혁을 저격하는 강연 내용을 짜지는 않았을 테니까.

“흠···. 좋아. 어차피 ‘중2병 배틀러’는 당분간 개발 중지 예정이고 몇 년간은 손대지 않을 생각이니까, 슬슬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겠지.”

“인기 있는 걸로요?”

서연이 재빨리 묻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어, 인기 있는 거로.”

“앗싸아!”

기뻐하는 서연을 보며, 상혁은 조금의 미안함을 느꼈다.

왠지 지금까지 지나치게 자신의 가치관만을 팀원들에게 강요한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그 감정에는 약간의 계산도 깔려 있었는데, 조금 전 크리스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중2병 배틀러’가 ‘파이트 오브 캐릭터즈’가 되려면 무지막지한 라이센스 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팀원들에게 말은 안했지만, 상혁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라이센스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손익 분기점이 거의 800만 카피 정도가 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예상 판매량은 300만 카피 정도였고.

적어도 그 시점에 상혁이 원하는 대로 팀원들을 설득하려면, 이번에 만드는 게임을 대박 내서 모자란 500만 카피의 수익 정도는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뭘 만들지는 조금 고민을 해보자고. 이번엔 좀 대중성있는, 그리고 많은 유저가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좋아요!”

“뭘 만들자고 할지 기대된다.”

그때, 기뻐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민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이건 어쩔 거야?”

“강연?”

“어. 니가 팀의 얼굴인데, 널 대놓고 저격한 거잖아. 가서 뭔 내용인지 좀 봐둬야 하지 않겠어?”

“흠···. 글쎄, 내 생각에 강원준이란 놈은 날 저격해서 이슈 메이킹을 하려는 것 같거든? 거기 내가 가면 그놈의 의도대로 놀아주는 것 같아서 난 좀 그런데.”

“전 오빠가 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어찌됐건 상혁오빠가 욕먹는건 괜찮은데 민준 오빠까지 싸잡혀서 폄하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

서연과 민솔이 각자 의견을 내자, 다른 팀원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 다들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네. 어찌됐건 상혁 오빠가 우리팀의 대표잖아요. 대표가 욕먹는걸 그냥 가만 두고 볼 순 없죠.”

아무래도 팀원들은 강원준의 강연이 PTW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팀의 대표로써, 팀원들의 자존심에 상처가 가는 것을, 상혁은 용납할 성격이 아니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겠네.”

상혁은 오랜만에, 서연이 ‘상혁 페이스’라고 이름 붙인 사악함이 깃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방 장단에 놀아나러 가 보자고.”

그것은 과거 엘란테 소프트에서 PTW를 공격했을 때, 상혁이 반격계획을 세우며 지었던 바로 그 미소였다.

***

상혁은 전단지에 쓰여있는 내용만 보고 강원준이란 인물이 하려는 강연의 내용이 대충 게임 업계의 현실을 알려주는 그런 종류의 내용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혁의 예상과는 다르게, 강원준이란 인물은 작년 상혁이 했던 강연을 강하게 저격하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있었다.

상혁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신입 기획자나 가질법한 망상에 빠진 로맨티스트’ 라던가 ‘자신의 로망을 위해서 팀원들이 벌었어야 할 돈을 뺏어가는 악독한 팀장’ 같은 식으로 표현하며 매우 공격적인 어조로 강연을 진행하는 원준의 연설은 기획자 특유의 설득력 있는 화술이 합쳐져 매우 강렬한 인상을 청중에게 남겨주고 있었다.

물론 원준이 그렇게 공격적인 태도로 강연을 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공격의 대상인 상혁에게 있었다.

‘빌어먹게 건방진 놈.’

상혁의 예상대로 원준이 원래 그리고 있던 그림은, ‘천재 개발자’ 취급을 받으며 고교 시절부터 게임을 히트시킨 인디 개발자인 상혁을, 프로 현업 개발자인 자신이 말빨로 찍어 누르는 모습을 연출해 이슈 메이킹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하대 출신인 자신의 인맥까지 총동원하여 상혁의 참가를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이 시작될 때까지 상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원준은 자신의 그림을 망쳐버린 상혁에 대한 분노를 강연 내용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이게 유저가 바라는 거야.’같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력있는 개발자라면 숫자로 보여줘야죠. 1,000억을 번 게임이 10억을 번 게임보다 위대한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에 지갑을 열었단 이야기니까요.”

그리고서 원준은 강연 내용을 이어 말했다.

“1만 명이 좋아하는 평범한 게임보다 100명이 사랑하는 인생 갓겜을 만든다? 그건 그냥 기만일 뿐입니다. 분명 그 1만 명이 좋아하는 게임의 유저 중 100명 정도는 그 게임이 갓 게임이라고 생각할 거고요. 그건 물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죠.”

작년 상혁은 같은 연단에 서서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작년에 상혁의 강연을 들은 학생들은 원준의 강연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혁이 ‘게임 제작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원준은 ‘게임회사 직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양쪽 다 설득력은 있었지만, 학생들의 마음은 원준의 강연에 좀 더 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준이 말하는 좋은 개발자가 취직하기에도 좋고, 승진이나 연봉협상에서도 유리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어떤 게임회사든 직원을 평가할 때 ‘이 직원이 얼마나 유저를 기쁘게 했는가’를 척도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회사는 ‘이 직원이 얼마만큼의 매출을 내었는가’로 개개인의 가치를 평가한다.

전자는 측정 불가능한 기준이기도 하고, 실제로 유저가 즐겁지 않으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후자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더라도 좋은 개발자를 골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혁의 강연이 ‘꿈’과 ‘로망’ 같은 비현실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었다면, 원준의 강연은 오로지 ‘능력’과 ‘성과’를 절대적 가치로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중반을 넘어선 원준의 강연은, 점점 에스컬레이트 되어 상혁을 직접 공격하는 내용으로 바뀌고 있었다.

“업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누구처럼 ‘저는 다른 게임 베끼지 않고 저만의 게임을 만들 거예요!’라고 하는 신입을 진짜 지겹게 볼 수 있습니다. 다들 신입 때는 그런 꿈도 꾸고 하는 거죠. 그러나 그런 꿈은 동인팀에서나 꿔야 하는 거예요. 쉼즈 개발자를 보세요. 지금이야 쉼즈가 성공했으니 괜찮지만, 그 전에 말아먹은 시리즈가 몇 개인지를. 쉼어스 말아먹고, 쉼 라이프 말아먹고, 쉼 앤트 말아먹고···. 그러다 회사 기둥뿌리까지 흔들려서 결국 EA에 인수당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고집만 부리다가 직원들을 희생시킨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같은 글자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ㄱ이 될 수도 있고 ㄴ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작년 강연 때 상혁은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포기하지 않고 심즈를 만들어낸 개발자 윌 레프트를 칭찬했지만, 올해의 강연자인 강원준은 그런 윌 레프트를 직원을 희생시킨 개발자라며 대차게 까고 있었다.

‘무엇이 재미있을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유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창의력도 능력이라면 분석력도 훌륭한 능력입니다. 기존에 인기있던 장르를 업그레이드 시켜 시장에 안착하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고요. 독창적이고 괴상한 게임을 만드는게 절대 고평가 되지 않는 게 게임시장이란 곳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PTW가 잘 보여주고 있죠. 천재 개발자라고 하지만, 아직 밀리언 셀러는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그 게임들이 번 돈 다 합쳐도 ‘라니지’1년 매출도 안돼요. 현재 대한민국 개발자들은 그런 시장 흐름에 맞춰서 대부분 MMORPG로 개발 장르를 변경했죠. 그 와중에 혼자 콘솔게임 만들겠다? 돈보다 재미가 중요하다? 그건 그냥 무능한 거예요! 트랜드를 볼 능력이 없으니까 트랜드를 외면하는 거죠.”

이제 대놓고 PTW의 이름을 언급하며 상혁을 공격하는 원준의 강연을 듣던 학생들 중 일부가 조금씩 불편한 느낌을 가지기 시작했다.

주로 상혁과 함께 ‘코넥트’의 프로토 타입 개발에 참여했던 컴공과와 전자과 학생들이.

그들이 아는 상혁은 무능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와서 무지막지한 업무량을 넘기곤 했지만, 상혁은 틈날 때마다 찾아와서 개발 상황을 살피고 개발 진도가 나갈때마다 거의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의 상여금을 펑펑 쏴대곤 했었다.

그렇기에 상혁과 함께 일해 본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상혁은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분위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원준은 상혁의 이름을 언급하며 ‘독창성만 있지 대중성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마추어’라는 식으로 깎아내렸다.

아마 원준도 상혁이 처음부터 강연에 참여했었다면 이 정도로 수위를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던 그림을 상혁이 망친 이상, 그 이상의 이슈 메이킹을 위해서는 조금 자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원준은 상혁을 계속 공격했다.

그리고 그렇게, 강연이라기보다는 거의 상혁의 아마추어리즘을 공격하는 폭로전에 가까웠던 원준의 강연은, 마지막으로 원준이 생각하는 상혁이란 인물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본인이 ‘못하는 쪽’이라면, 적어도 이런 데 나와서 효율성이니 사악하다느니 그런 발언은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요.”

그렇게 말한 원준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어 강의실 뒤쪽을 향해 말했다.

“안 그렇습니까? PTW의 CEO. 이상혁씨?”

순간 원준의 말을 들은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강의실 뒤쪽의 벽을 향해 쏠렸다.

그리고 거기엔, 팔짱을 낀 상혁을 중심으로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상혁과, 그와 대조적으로 굉장히 빡친 표정을 짓고 있는 팀원들이, 마치 만화에 나오는 사천 왕들처럼 나란히 서서 원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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