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파이트 오브 캐릭터즈
상혁이 알파 버전을 다듬고 크리스를 부르는데 걸린 시간은 내부 테스트를 마치고 한 달여가 흐른 뒤였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한국으로 와 주시겠어요?’라는 상혁의 연락을 받은 크리스는 마침 한국에서 먹었던 삼겹살과 구운 김치가 그립기도 했고, 상혁 덕분에 X-BOX런칭 행사 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도 할 겸 회사에 출장계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고, 덕분에 크리스는 미칠 듯 일어나는 궁금증 때문에 캐리어를 그대로 가진 채로 PTW의 부실이 있다는 천하대 미래관으로 이동했다.
“어라? 공항에서 바로 오신 겁니까?”
“뭘 보여주실지 너무 궁금해서요.”
그렇게 말한 크리스에게 상혁은 지난번 시연 테스트 때 찍었던 영상을 보여주었다.
물론 시연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이 게임의 치명적인 단점 ‘할 땐 오지게 재미있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움’ 이 발목을 잡아서였다.
잠시 후.
영상을 본 크리스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조작 영상은···. 아니겠군요. 상혁 씨가 그럴 사람도 아니고.”
“뭐 그렇죠.”
“우선,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왔는데 상상하던 것보다 재미있는 물건을 보여주셔서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편하게 하시죠.”
“흠, 우선 이건 MS 직원 크리스가 아니라, 순수하게 PTW의 게임을 걱정하고 좋아하는 팬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니 내용이 조금 거칠더라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마음에 안 드셨나요?”
“게임이요? 아뇨,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게이머가 아니죠. 잠깐 내가 미래에 와있었나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걱정하는 건, CEO로서 상혁 씨가 뭘 생각하는지 물은 겁니다. 하드웨어 개발은 장난이 아니에요.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일 거란 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구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이야 어찌어찌 완성하신 것 같은데, 절대 적정 단가에 출시 못할 겁니다. 이번에 X-BOX를 출시하면서, MS가 부담한 적자가 얼마인 줄 아십니까?”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드웨어 개발을 하신다고요?”
거친 말투였지만 상혁은 화내지 않았다.
크리스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오직 상혁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화를 내는 대신, 크리스의 오해를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건 그냥 기술공개를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이에요. 저희는 지금 저걸 출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는, 이번엔 이 게임을 출시할 생각이 없다는 상혁의 말에 완전히 태도를 전환하며 상혁에게 소리 질렀다.
“미쳤어요?”
“예?”
“저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만들어놓고 출시를 안 한다고요?”
“아니, 출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건 크리스 씨잖아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젠장! 저도 저런 게 있다면 해보고 싶단 말입니다!”
“뭐 돌아가시기 전에 테스트 플레이는 해볼 수 있게 해드릴게요.”
“약속 하신 겁니다?”
크리스는 마음이 복잡했다.
멋진 게임을 만들었는데 비용 때문에 출시하지 못할 상황에서, 게이머로서의 자신과 MS직원으로서의 자신이 충돌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리스는 상혁이 타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편안하고 기분 좋은 향이 느껴지는 커피였다.
“뭐, 아직 PTW의 규모로는 소화하기 힘든 규모인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크리스 씨를 부른 건 그래서이기도 하고요.”
“저를요?”
“혹시 방금 시연에 쓰인 기술을 구매하신다면, 얼마까지 내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크리스의 앞에 한권의 기획서를 내밀었다.
***
“확실히, 탐나는 기술이긴 하네요.”
상혁이 내민 기획서를 꼼꼼히 검토한 크리스가 말했다.
“뭣보다 적외선 거리측정 기술을 모션 인식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이 좋군요. 영상으로는 사물의 모양은 구분할 수 있어도, 사물의 깊이(Depth)까지는 파악하지 못하니까요.”
“그게 이 기술의 핵심이긴 하죠.”
“제가 이쪽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거 말고도 여러 가지 기술의 집합체 같은데···. 일단 소리가 오는 방향을 인지할 수 있게 마이크도 다중 영역 마이크(multi-array microphone)를 사용하고, 음성 명령과 동작 명령의 차이를 보정하는 AI가 들어간 것도 흥미롭네요. 게임 하나 만들려고 이 많은 기능을 다 개발하신 겁니까?”
“뭐, 겸사겸사요.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하드웨어 쪽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예? 아뇨. 저는 단지 기본 원리만 설명한 거고, 만든 건 이곳 천하대 기계 공 학부와 전자과 교수님들이 대학원생분들과 함께 만든 거예요.”
“아이디어만 제공했다 하더라도 대단한 건데요.”
크리스의 칭찬을 들으며 상혁은 가슴속 한구석이 뜨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원래 타임라인 대로라면 이 기술은 전부 각각 다른 회사에서 개발되어 MS가 인수하거나 기술협력을 해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 일을 추진한 덕분에 앞으로 탄생할 벤처 3개는 날아가겠구먼.’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며, 상혁이 크리스에게 말했다.
“뭐, 어찌됐건 해당 기술의 특허는 저희에게 있습니다. 저희는 MS쪽에 저희가 만든 프로토타입에 대한 기술이전과 함께 실제로 게임을 만들 때 쓸 수 있는 SDK의 완성본을 제공하려 합니다.”
“그 댓가로 저희에게 바라시는 건 뭐죠?”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저희 쪽에서 해당 기기를 개발한 대학원생분중 취업을 원하는 분을 MS에서 연구원으로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금전적인 제안이 오갈 것으로 생각했던 크리스는 상혁이 던진 뜻밖에 조건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조건 한가지인가요? 그건 오히려 저희 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건데요.”
확실하게 초기 개발자가 참여하면 프로젝트의 진도를 빠르게 뽑을 수 있기에 크리스는 상혁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해당 기술 이전에 기반 해서 개발된 추가적인 기술들에 대해 저희 쪽에 기술공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게임의 개발 때문인가요?”
“아뇨, 사실 지금 완성된 시연버전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당분간 모션 인식 관련 게임 개발에서 손을 뗄 겁니다.”
“예?! 왜요?”
“지금 콘솔 게임기 성능으로 도저히 돌리는 게 불가능해서 말이죠.”
“민준 씨가 있는데도 말입니까?”
크리스는 X-BOX의 라이브 서버를 구축할 때 몇 번이고 있었던 기술적 난제들을 민준이 마치 히어로처럼 해결했던 사건들을 떠올렸다.
그 이후로, MS의 엔지니어들은 민준을 일종의 괴물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었는데, 그런 민준이 최적화에 실패했다면 이건 정말로 현존하는 콘솔에서는 돌리는 게 불가능한 물건이라는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콘솔이 그렇게 고가형 기기는 아니잖아요. 사양에서 어느정도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데, 이건 지금 특수 주문한 컴퓨터에서도 겨우 돌아가는 수준이에요.”
“그럼 저희도 당장 개발하는 메리트가 없지 않습니까?”
“차세대기 쯤에는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쯤에는 단가도 낮출 수 있을 거고요.”
“일종의 미래 먹거리라는 거군요.”
MS정도의 회사에서 미래에 대한 기술적 도전으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그리 보기 힘든 일은 아니었기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그 정도면 저희 쪽에서도 납득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넘기는 것은 저희가 가진 특허의 사용권한이지 독점 권한이 아닙니다.”
“예? 어째서요?”
이것은 크리스로써도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건이었는데, 상혁이 크리스에게 허용한 권한을 SANY측에 동일하게 허용하면, 양측은 비슷한 성능의 같은 기기를 가지고 경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진지하게 콘솔 시장 지배를 노리고 게임 시장에 뛰어든 MS로써는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혹시 SANY측에도 같은 제안을 하시려는건···.”
“아, SANY측에 넘기려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쓸 거예요.”
“예?! 하드웨어 개발을 계속 하시려고요?”
“아뇨, 이대로면 저와 민준이가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에, 게임용 모션 인식 센서를 군용으로 개조해서 대한민국 국방부에 납품할 생각입니다. 휴전선 감시 장비로요. 지금 적외선으로 동작하는 거리 측정을 레이저 측정 방식으로 바꾸면, 꽤 먼거리에서도 고라니와 사람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거든요. 그럼 병역특례 자격을 얻을 수 있겠죠.”
“아, 그런거라면······.”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우선 지금부터 12년간 게임 콘솔 한정해서 독점 사용권을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거로 하죠.”
“12년이라···. 왜 하필 12년이죠?”
“저는 게임 관련해서 하나의 기업이 기술을 너무 오래 독점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업계 전체를 위해서요. 12년이면 충분히 독점의 메리트를 받으실 수 있을 테니 그 조건으로 협상하시죠.”
“그럼 그렇게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대신 완전 독점이 아닌 만큼 특허 이용료에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셔야 할 것 같지만요.”
그 이후에, 상혁과 크리스는 나이츠 어셈블의 대략적인 판매 상황이나, X-BOX live 서버의 운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이야기의 주제가 ‘앞으로의 계획’으로 옮겨가자, 크리스는 상혁에게 어째서 이렇게 리스크가 큰 게임만 개발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전에 나이츠 어셈블때도 ‘이런 게임을 만들었단 말야?’ 하고 속으로 놀랐지만, 이번엔 정말 놀랐습니다. 아예 하드웨어까지 개발하면서 게임을 만들려고 하실 줄 몰랐거든요.”
“칭찬인가요?”
“반반입니다. 물론 게이머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 기쁘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건 너무 취향을 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스킬을 보너스로 넣으려는 거죠.
순수하게 게임 내 오리지널 시스템을 즐기고 싶은 유저와, 애니속의 캐릭터가 된 기분을 체험하고 싶어서 하는 유저들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요.”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라이센스비가 장난 아니게 많이 들 거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왜 굳이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걸 만들려고 하시는지를.”
“재밌잖아요.”
팔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수준만 아니라면, 상혁에게 이윤은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애당초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으면 기존에 성공하는 게임을 그대로 베껴서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하게 성공을 보장하는 방법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상혁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게임 제작자로서 상혁의 가장 큰 목표가, 유저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 개발자로써의 이상향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CEO로써의 올바른 가치관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크리스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상혁 씨, 회사는 이윤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이윤은 지금도 만족할 만큼 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개발 중인 게임을 상혁 씨가 바라는 형태로 만들려면 라이센스비가 엄청나게 들어갈 겁니다. 그걸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아까 말씀하셨죠? ‘이 게임은 차세대 기기에서나 돌아갈 것이다’ 라고요.”
“미안하지만 크리스씨,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예?”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는 일단 지금의 시연 버전까지만 개발하고 당분간 모션 인식 게임 개발에서 손을 뗀다고요. 그 말은 저희는 기기가 개발되는 동안 다른 차기작을 만든다는 의미에요.”
“아···. 하지만 그 게임도 굉장히 개성 있는 게임을 만들려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상혁 씨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니까요.”
“아뇨, 이번엔 조금 달라요. 아까 크리스 씨가 지적했던 것처럼, 지금 개발 중인 게임에 애니메이션 라이센스를 많이 넣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목표하는 애니메이션이 한두 개가 아닌가 보네요?”
“예.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에게는 ‘마법사가 된다’라는 시스템 보다는 ‘캐릭터가 된다’라는 시스템이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일 테니까요. 얼마나 많은 작품의 라이센스를 따 오느냐가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게 되겠죠.”
“그걸 위해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더라도?”
“예.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정식 출시 네임에 어울리는 정도의 작품 수는 갖추고 싶네요.”
“흠···. 만들고 싶은 게임의 라이센스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또 다른 게임을 만든다라···. 아마 그런 발상을 하는 개발자는 상혁 씨 밖에 없을겁니다. 대체 게임 제목을 뭘로 생각하고 계시길래 그러시는거죠?”
크리스의 질문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파이트 오브 캐릭터즈(Fight of the Characters)요.”
***
바로 얼마 전인 2002년 7월3일에 북미에 발매된 전쟁크래프트3는, 그 뛰어난 게임성이나 스토리 외에도 우주크래프트보다 훨씬 강화된 유즈맵으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2020년에는 전세계에서 1억명이 넘는 유저를 가지게 된 전설적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설 역시 전쟁크래프트 3의 유즈맵에서 나온 게임의 파생형이었으니 그 파급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당시 수많은 종류의 기발하고 재미있는 유즈맵 중에서도 상혁이 좋아하던 게임은, 애니에 나오는 캐릭터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파이트 오브 캐릭터즈(파오케:Fight of the Characters)라는 게임이었다.
물론 유즈맵이기 때문에 저작권 개념을 엿 바꿔먹은 게임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자유롭게 여러 작품의 캐릭터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 그 유즈맵의 커다란 강점이라 할 수 있었다.
상혁이 주목한 것은, 그 유즈맵이 가진 바로 그 재미였다.
중2병 배틀러를 개발하면서, 상혁은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좀 더 플레이어가 캐릭터 자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정말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즐거움을 완성하기 위해 상혁이 지불해야 할 막대한 비용.
상혁은 그것의 조달을 위해 코넥트의 개발을 위한 기간에 돈이 될만한 별도의 게임을 개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로지 ‘파오캐’에 캐릭터 하나라도 더 넣고 싶은 욕심 때문에.
“뭐, 미래의 이야기긴 하지만요. 적어도 이 기기를 적당한 가격에 적절한 크기로 발매하려면 앞으로 6~7년은 더 걸리겠죠. 그때까지 2~3개 정도의 게임을 추가로 개발해서 라이센스 비를 조달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로 이 게임의 성공에 확신을 가지고 계신건가요?”
“확신요? 아뇨? 물론 어느 정도의 재미는 있겠지만 돈을 그렇게 쏟아 붓는데 전용기기가 필요한 거까지 감안하면 이 게임은 절대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없을 겁니다.”
“예? 그럼 손해 볼 걸 감수하고 만드신다는 겁니까?”
황당함을 넘어서, 애당초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괴상한 발상에 크리스는 입을 쩍 벌리고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크리스의 표정을 보면서도 싱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뭐 어때요. 하는 사람이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됐지.”
“후······. 가끔 보면 상혁 씨 생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제 생각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세상 누군가가 저희가 만든 게임을 하면서 얼마나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냐 하 는거죠. 물론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데서 벌면 되는거고요.”
“다른 데서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좋네요.”
그렇게 이야기하던 크리스가 뭔가가 생각난 듯 상혁에게 말했다.
“아, 그럼 마침 상혁 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는데요.”
“예?”
“그 작년에 상혁 씨가 했었던 강연 기억하시나요?”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말씀하시는건가요?”
“예. 이번에 천하대 강연이 또 잡혔는데 주제가 그거랑 관련된 거더군요. 시간도 마침 오늘이네요.”
“그래요?”
애당초 자기 할 일 외에는 대학교 굴러가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던 상혁이 흥미를 보이자 크리스가 대학 입구에서 가져온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거기엔 ‘2002년 천하대 외부 초청 특별 강연: 스타트업 CEO 강원준.
머릿속에 꿈만 가득 찬 개발자에게 전하는 돈버는 게임을 만드는 방법’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문구를 본 상혁은 설마설마 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강연의 제목이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이 보여서.
물론 크리스는 어디까지나 현업 출신 개발자가 말하는 ‘돈을 버는 게임’에 대해 상혁이 배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추천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보는 상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강연의 주제를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거 나한테 하는 소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