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중2병 시연회
“봄을 부르는 생명의 어머니, 사자마저 품어 살리는 윤회의 수호자시여···.”
“오라, 위대한 죽음의 신이여. 지금 그대의 사자가 부르는 죽음의 노래에 응답하라!”
동시에 캐스팅을 시작한 두 사람이었지만 먼저 캐스팅을 끝낸 쪽은 짧은 주문을 선택한 상혁이였다.
데미지를 희생하더라도 선제 공격을 선택한 상혁의 캐릭터가 손에서 검은 불꽃이 피워 올리자, 상혁은 씨익 미소 지으며 손을 그대로 앞으로 뻗었다.
“아누비스의 노래!”
순간 상혁이 조작하는 캐릭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마치 빔처럼 뻗어나가 지수의 캐릭터를 덮쳤다.
그러자 지수는 재빨리 상체를 왼쪽으로 숙이며 상혁이 쏜 주문을 날아서 피했다.
“회피는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그 주문은 유도 주문이거든.”
상혁의 말대로, 검은 빛은 지수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휘어지며 지수의 캐릭터를 쫒아가고 있었다.
상체를 더 숙이며 자신을 쫓는 검은 그림자와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지수를 보며, 상혁은 다시 주문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개발 중인 게임의 시연을 할 때는 정확하게 시연할 시나리오를 정한 뒤 그 부분만 우선적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혁은 단순히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실제로 대전이 가능한 버전을 만들었다.
비록 원래 만들려던 것보다 주문수도 적고 캐릭터도 두 개밖에 구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구현된 주문 안에서는 완벽하게 대전이 가능한 버전을 완성한 것이다.
그 말은 시연을 위해 플레이중인 이 게임의 승자를 상혁 본인도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혁은, 뼛속까지 게이머답게 시연을 위한 이 플레이에서도 전혀 져줄 생각이 없었다.
“얍삽하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한번더 간다! ‘오라, 위대한 죽음의 신이여. 지금 그대의 사자가 부르는 죽음의 노래에 응답하라!’ 아누비스의 노래!”
상혁이 같은 주문을 한번 더 영창하자 검은 그림자가 빔처럼 쏘아지며 지수의 캐릭터를 덮쳐나갔다.
순간 지수의 캐릭터가 멈추며 그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고, 그 직후 상혁이 먼저 캐스팅한 주문이 뒤따라 지수의 캐릭터를 덮쳤다.
커다란 폭파음과 함께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상혁은 곁눈질로 지수의 체력게이지를 살폈다.
‘어라? 생각보다 데미지가 너무 많이 들어갔는데?’
스킬 테이블을 설계하고 작업한 상혁은 당연히 모든 스킬의 데미지 수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데미지는, 두 주문의 공격을 하나도 방어하지 않고 직격으로 맞았을 때 가능한 수치였다.
기본적으로 ‘중2병 배틀러’는 피격시에 몸을 뒤로 젖히거나 맞는 자세를 취하는 것, 그리고 방어주문을 사용하는 것으로 받는 데미지를 줄일 수 있었지만, 지수는 그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이 게임을 디자인했으니 지수가 깜빡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 상혁은, 옆에서 작게 들려오는 지수의 목소리를 듣고는 충격에 빠졌다.
“···중얼중얼···.”
“서, 설마?”
상혁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수는 회피 모션을 취하면서도 캐스팅을 멈추지 않았다.
상혁의 스킬에 직격을 당하는 순간 까지도.
상체를 젖힌 채로 손동작을 끊지 않고 계속 휘두르며 주문을 외운 지수의 캐릭터가 검은 구름 속에서 안광을 뿜었다.
“대지모신의 짓밟기!(Gaia's of Trampling)”
‘시작부터 한방스킬이냐!’
속으로 욕을 내뱉은 상혁은 자신의 캐릭터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여신의 발을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는 발이 머리에 떨어지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뻗어버렸다.
“크어어어어!”
‘아, 여기서 끝나면 안되는데···.’
현재 버전에서 가장 데미지 감소 효과가 크지만 가장 쪽팔린 자세인 ‘대자로 뻗기’를 쓰면서, 발이 머리에 닿는 타이밍에 맞춰서 비명을 지름으로써 상혁은 [자세 보너스] [타이밍 보너스] [리액션 보너스]의 3가지 데미지 감소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 스킬로 디자인된 대지모신의 짓밟기 스킬은 단 한방에 상혁의 캐릭터가 가진 체력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충분한 데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상혁을 으깨버릴 듯 짓누르던 여신의 발이 사라지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속에 상혁의 캐릭터의 생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상혁은 속으로 스킬 데미지를 대충 집어넣었던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며, 동시에 알면서도 그런 스킬을 대놓고 사용한 지수에게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나쁜 녀석. 날 이렇게 쪽팔리게 하다니.’
사실 테스트 시연에서 진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판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게임의 인상에 나쁜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런 스킬은 테스트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스킬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지수가 입을 열어 상혁을 구제할 한마디를 내뱉었다.
“해치웠나?”
순간 상혁은 자신의 캐릭터의 체력이 쭉 차오르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일종의 이스터에그로, 전투중 에 ‘해치웠나?’라는 말을 하면 상대의 체력이 절반까지 차게 되는 기믹을 넣어뒀기 때문이었다.
‘알고 쓴 거군.’
화려한 스킬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전투가 지나치게 짧게 끝나지 않도록 계산한 지수의 센스에 상혁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러자 지수가, 마치 칭찬해달라는 눈으로 상혁을 바라보았고, 상혁은 그런 지수를 힐끗 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센스지만 그렇다고 내 치욕이 사라지지는 않지! 내 숨겨진 카드를 보여주마!”
그렇게 말한 상혁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이상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미-신-해-오-인-미-신-유-술-해-미!”
“받아라! 풍둔! 나선수리···”
그때, 상혁이 무슨 기술을 쓰려고 한 것인지 알아챈 민준이 상혁을 향해 소리 질렀다.
“미친놈아! 그거 저작권 걸려 임마!”
“으하하하! 미안하지만 이 기술은 2007년도 연재분에 나온다! 아직 저작권 안 걸린다고! ···아,씨! 너 때문에 다시 해야 되잖아!”
“사-미-신-해-오-인···.”
그 모습을 본 지수는 상혁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의 기술을 데이터 테이블에 몰래 업데이트해놓았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러나 지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모니터 저편에 보이는 상혁의 캐릭터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자신도 상혁 몰래 삽입해놓은 비장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더 붉은 자여, 시간의 흐름 속에 파묻힌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중2병 배틀러’에는 특정 주문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하면 지정된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스템이 있었고 지수가 ‘슬○이어즈’의 간판 주문인 드○곤 슬○이브의 주문을 시전하려 한다는 것을 감지한 시스템은 스피커로 드○곤 슬○이브를 시전할 때 나오는 매우 친숙한 배경음악을 깔기 시작했다.
-빠바밤 빠바밤 빠바밤 빠바밤-
“아, X발 음악까지 퍼왔네?”
민준이 뭐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그런 민준의 말을 싸그리 무시한 채 영창에 집중했다.
그리고 고조되는 음악 속에서, 두사람은 자신이 마치 만화속의 캐릭터가 된 듯한 감각을 느끼며 완전이 뽕에 취해버렸고, 그 순간 이미 두 사람의 머릿속에 주변에서 이 대전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써보고 싶었던 주문이나 스킬로 상대를 박살낼 수 있다는 사실만이 둘을 흥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캐스팅이 동시에 끝난 순간,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던 민준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상혁과 지수가 서로를 향해 주문을 쏘아냈다.
“아 이 씨 이 돌아이 새끼들아!”
“풍둔! 나선 수리검!”
“드래고오온 슬레이브으으으!!!”
순간 두 사람의 스킬이 충돌하면서 모니터 속이 빛으로 가득 차고,
스피커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각자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며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애당초 둘다 상대 몰래 스킬을 집어넣을 때 데미지를 최대로 잡아놓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잠시 후 화면에 뜬 대전 결과는 두 사람의 더블 케이오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학원생들과 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바닥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은 자세를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연을 위해 자신과 열연을 펼친 지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상혁이 내민 손을 지수가 잡자, 부실 내에 있던 사람이 뜨거운 환호성을 질렀다.
“개쩌어어언다아아아!!”
“졸라 재밌을 것 같아!!”
“나오면 산다! 무조건 산다아아!”
“오빠를 의심해서 미안했어요! 이건 갓겜이야!”
상혁은 박수를 치며 결과물에 환호하는 팀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지수는 얼굴을 붉힌 채 상혁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두 사람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꺅!”
“둘 다 따라와!”
***
밖에서 자신도 해보겠다며 교대로 플레이를 시도하는 소리를 들으며, 민준은 조용히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뭔가 혼나는 분위기라 잔뜩 쫄아있는 지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수야.”
“네···. 네넵?”
“담부터는 저런 거 넣을 때 단어라도 좀 바꿔가면서 넣어. 미리 말좀 하고. 정식버전에 저거 들어가면 저작권 크리로 고소 먹는다.”
“네···.”
“그럼 지수는 나가봐.”
지수가 고개 숙여 두 사람에게 인사한뒤 쪼르르 회의실을 나가자, 이번엔 상혁을 바라보며 민준이 말했다.
“쟤는 저작권 위반이지, 넌 임마 아직 세상에 공개도 안 된 스킬을 멋대로 집어 넣냐?”
“킹치만 너무 써보고 싶었는걸···.”
“하아···원래 나○ 수○검은 인 맺는 동작 없는 스킬아냐? 원작처럼 바로 나가게 하지 그건 왜 넣었어?”
“간지 나잖아!”
“겨우 그것 때문에 그 손동작을 연습했다고?”
사실 성능을 최대로 올린 프로토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코넥트는 아직 손가락 모양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상혁이 주문을 하면서 취한 괴랄한 손동작 없이, 팔만 움찔움찔 움직여도 해당 스킬은 발동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분이 난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토에 나오는 손가락 동작을 연습해서 외워버린 자신의 친구를 보며, 민준은 ‘이 새끼를 어찌해야하나’라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결국 그냥 포기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민준은 이번엔 상혁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어?”
“일단 알파 버전은 완성된 거잖아. 네가 원하는 대로.”
“그렇지.”
“그렇다고 이거 출시할 수 없다는건 너도 알지?”
“알지.”
애당초 지금 사용한 프로토타입의 부품값을 포함한 개발비만 대당 1억 원 가까이 들어간 데다, 시연버전의 연산처리를 담당한 컴퓨터도 보통 컴퓨터가 아닌 고가 부품으로 떡칠된 특수 컴퓨터였다.
당연히 보급형으로 설계된 x-box에서 돌아갈 수 없는 사양이었기에 상혁은 민준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자 그런 상혁을 보며 민준이 덤덤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뭐, 일단 팀원들도 알파 버전까지 개발한다는 데는 동의했잖아. 물론 완성까지는 한참 남았겠지만 난 일단 지금 프로젝트를 여기서 접고 보류했으면 하는데, 상혁이 니 생각은 어때?”
“흠···. 나는 개인적으로 좀 더 가지고 놀고 싶긴 한데.”
상혁의 말에 민준이 닫혀있는 회의실 문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가.”
“뭐, 알지.”
“그리고 네 원래 목적대로 군에 납품하려면 그쪽 프로그램도 따로 개발해야하고.”
“아, 그쪽 진도는 어때?”
“일단 하드웨어 성능을 떨구면서 단가는 80만 원대까지 깎았어. 떨어진 부분은 소프트웨어에서 전처리해서 보조하는 거로 처리하고.”
“크기는?”
“지금은 전자레인지 정도. 교수님이 그러는데 1년 정도 더 만지면 컴퓨터 본체 크기 정도까지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럼 일단 당분간은 니가 다시 그쪽 맡아서 진행하는 거로 하자.”
“너는?”
“적외선 거리측정을 이용한 모션 인식 기술에 대해서 국제특허를 출원할 거야.
그리고 지금 버전에 캐릭터 셀렉트나 스킬 밸런스 약간 조정해서 시연용 버전 마무리 해야지.”
“흠···. 지금 상태에서 스톱 안 시키고?”
“보여줄 사람이 있거든.”
“누구?”
상혁의 말에 민준이 묻자, 상혁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 대신 코넥트의 소형화와 대량생산을 맡아줄 사람.”
상혁이 말하는 조력자.
그것은 원래의 타임라인에서 키넥트를 발매한 MS의 담당자. 크리스를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