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66화 (67/485)

066. 수수께끼의 프로그래머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영상속의 형상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2021년쯤에 실제로 영상만 가지고 사람의 손 모양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프로그램의 시연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한 프레임당 거의 30시간이 넘게 걸리는 연산을 수행해야 하는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2009년 MS의 개발팀은 이러한 동작 분석을 위해 간단한 로직으로 돌아가는 가정용 게임기를 위한 모션인식 센서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키넥트’였다.

키넥트의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레이저 거리측정 기술에서 쓰는 것처럼 적외선을 사방으로 쏴서 사물과 센서와의 거리를 인식시키는 방법이었다.

MS는 이 간단한 방법으로 출시 당시 149.99$달러라는 매우 싼 가격에 동작인식 센서를 출시 할 수 있었다.

사실 어찌보면 키넥트는 우선 그 뛰어난 성능과 가성비에도 불구하고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받쳐주지 않아 결국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졌다는 점, 그리고 그 가격대의 모션 인식 센서로써는 너무나 성능이 뛰어난 탓에 무려 군용으로 납품까지 될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일종의 시대를 앞서나간 물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상혁은 PS무브를 포함한 다른 모션 인식 컨트롤러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기술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기술로 키넥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카메라와 전선투성이로 이루어진 이 프로토타입이었다.

“저걸 TV위에 얹으면 TV가 부서질 것 같은데?”

한눈에 보기에도 무겁게 보이는 프로토타입을 보며 성연이 말하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크기는 줄여나가면 되죠. 개발 기간이 부족해서 있는 부속으로 급하게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머신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래도 동작해요.”

“아니 동작이 문제가 아니라···.”

“경량화는 지금도 랩실에서 열심히 납땜질하고 있을 대학원생 형들이 힘써 주실 문제고, 우선 우린 이 기본 프로토타입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계해야 해요.”

“우리가 아니라 나보고 하라는 소리 아냐?”

상혁과 성연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준이 기가 찬 듯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뭐, 그렇지. 그런데 넌 맨날 나한테 징징거렸잖아. 요즘 너무 쉬운 코딩만 해서 지겹다고.”

“그렇긴 한데···.”

작업 자체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민준으로서는 오랜만에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작업이기도 했고.

“그래도 하드웨어 쪽 관련 작업도 있어서 나 혼자서는 못할 거야.”

“그건 교수님들이 직접 도와준다고 하셨으니까 문제 없을 거다.”

“교수님들이? 왜?”

“몰라, 총장님 지시사항이라던데?”

“뭐, 지원 있으면 좋지. 그럼 일단 지금 있는 저 프로토타입 기반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PC에서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먼저 만들면 되지?”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준은 어느새 프로그래머 모드로 들어갔는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릿속으로 견적을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상혁은 이번엔 서연에게 추가로 필요한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연아, 이번 게임은 카툰렌더링을 사용한 3D 모델링을 써서 게임을 만들 거야. 그 외에도 외주로 작업해야하는 분량이 많으니까, 넌 이제부터 나랑 컨셉아트 작업을 들어가자.”

“컨셉아트요?”

“일단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이게 어떤 게임인지 이해하기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해. 특히 이번 게임은 핵심이 되는 주문의 계열이 여러 개니까, 그 부분에 대한 이미지를 잡아줬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그리고 이번 게임은 특히 성연이형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나? 잉? 진짜 나?”

갑자기 호명된 성연이 당황하자 상혁이 말했다.

“생각해봐요. 상대가 주문을 썼을 때 ‘큭! 강한 공격이 온다! 막아라 루시퍼!’ 같은 대사가 나오는 게임인데 음악이 웅장해야 오글거림이 상쇄되겠죠? 적어도 진짜 영화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플레이어도 진짜 마법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거란 말이죠.”

“흠···. 알았어. 여러 컨셉으로 준비해볼게.”

“그리고 선생님은···.”

3년 동안 불러왔던 습관 때문인지 상혁을 비롯한 멤버들은 교사일을 그만둔 현주에게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현주 역시 팀의 맴버들이 귀여운 제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 별다른 수정을 가하지는 않았다.

“어. 상혁아.”

“선생님은 혹시 효과음 관련해서 외주 해주실 수 있는 분 있으면 알아봐주세요. 돈은 많이 들어도 괜찮으니까요.”

“응. 그리고 그 3D? 그거 하려면 사람 더 필요하지 않아?”

“그건 SANY의 나츠 씨나 MS의 크리스 씨를 통해서 해외 쪽으로 알아보려고요. 아직 국내 개발자 중에는 3D 애니메이션이랑 이펙트 쪽으로 그렇게 특출한 분을 찾기 어려워서. 있긴 해도 다 다른 회사 다니시는 중이고···.”

“오케이. 그럼 난 효과음 하실 분만 구해오면 되지?”

“네.”

그렇게 회의를 정리하며, 상혁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이게 예전 기획보다 더 튀는 기획인 걸 잘 알고 있고,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이게 실제로 해보면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분명 누군가에겐 인생게임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조금 이해가 안가시더라도 알파버전 완성때까지만 힘내서 작업 부탁드릴게요. 만약에 알파 버전을 만들었는데 여러분이 이건 도저히 재미없다고 하시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게임으로 바꾸겠습니다.”

“뭐 상혁이 너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굳이 바꿀 필요까지는···.”

“아뇨. 필요해요. 개발자들 본인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누구한테 재미있으니까 하라고 권할 수 있겠어요? 취향은 취향이고 재미는 재미죠. 취향에 안 맞더라도 재미는 확실히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재미를 팀원 전부가 확실히 알 수 있어야하고요.”

회귀 전 구로의 중소기업에서 게임을 만들 때, 상혁은 단지 팀장이 시켰다는 이유로 재미있는지도 없는지도 알 수 없는 게임의 시스템을 수도 없이 기획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팀원들에게 같은 경험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기획은 상혁이 생각해도 개념 자체가 생소한 게임이었기에 단순히 기획만으로 이것을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상혁이야 2020년대를 살아본 적이 있으니 VR이나 체감형 게임에 익숙했지만, 지금 이 팀에는 민준을 제외하면 그런 종류의 게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상혁은 이번 기획은, 설명보다 직접 체험하게 하는 편이 좀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아?”

“···.”

“야.”

“···.”

“민준아!”

“어?! 뭐야? 왜 불러?”

생각에 깊게 잠겨있던 민준이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자 상혁이 말했다.

“견적 잡는 것도 좋은데 그전에 너 팀원 한명 뽑아라. 프로그래밍 파트도 충원 좀 하자.”

“외주로 안하고?”

“이제 슬슬 스케일도 커질 거고 하드웨어 개발이랑 소프트웨어 개발이랑 병행해야 하잖아. 니가 다른쪽 작업할 때 게임 쪽 작업할 인원도 있어야지.”

“흠···.”

사실 상혁도 자신의 요구가 무리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적당한 인원이 있었으면 진즉에 뽑았겠지만, 민준의 괴물같은 실력으로 성에 차는 팀원을 찾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지금부터 손발 맞는 프로그래머 한명 키운다 생각하고 찾아보는 건 어때?”

“흠···. 키운다라···. 근데 지금부터 구한다고 하면 좀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는 죄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 실력이야 어쨌든 부사수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좀 불편할 것 같아. 너야 여중생을 부사수로 뽑았으니 이런 생각 안하겠지만.”

“그래도 너보다 연하인 사람 중에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는 진짜 찾기 힘들거 아냐. 일단 웬만하면 실력으로는 니가 무조건 위일테니까 시도라도 해 보자고.”

***

프로그래밍 팀원을 뽑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상혁은 그날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라인을 동원해서 프로그래머 구인을 시작했다.

헤드헌팅 회사에 연락을 하는 것부터 컴공과 교수들에게 부탁하거나 이전에 ‘마리의 눈물’을 PS2로 포팅했던 일본 기업에 연락하기도 하면서.

물론 민준이 라이브 서비스를 같이 준비하면서 민준과 손발을 맞췄던 MS직원들에게도.

그러나 지금 있는 곳보다 연봉을 더 준다는 상혁의 제안에도, 민준과 한번이라도 같이 일했던 엔지니어들은 전부 합류를 거절했다.

‘이런 말을 하자니 죄송하지만 그분이랑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

상혁이 끈질기게 캐물어 이유를 알아보니 그 이유가 더 가관이었다.

‘도저히 안 풀려서 고생하던 문제를 보자마자 푸는 걸 옆에서 보면 자괴감이 들어서 프로그래머 때려 치고 싶어져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회귀 전에 상혁이 가장 미스테리로 생각하던 것도 ‘민준 정도로 실력있는 놈이 왜 날 따라서 중소기업에 처박혀 있을까’ 였으니까.

게임 업계에서 일하다보면 퇴사자도 수없이 겪게 되지만 프로그래밍 파트 퇴사자들이 죄다 떠나면서 같이 가자고 오퍼를 보내거나 이직한 곳에서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보낸 것만 봐도 민준의 실력은 충분히 중소기업 수준은 넘어섰다고 할 수 있었다.

애당초 휴일이고 쉬는 시간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택 오버플로우 사이트에서 다른 코더들이 못 풀겠다고 올린 질문에 풀이법을 올리는 게 취미인 놈이 민준이었다.

게다가 민준도 함께 일한 엔지니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기에 상혁은 그쪽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뉴 페이스를 영입하는데 집중했다.

어찌 됐건 최대한 빠르게 프로그래머를 영입하는 게 민준의 작업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민준은, 그런 상혁의 간절한 마음을 완전히 무시한 채 상혁이 가져온 모든 이력서를 한 번씩 훑어보고는 구석에 처박았다.

“다 마음에 안 들어.”

“아니 100%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니까? 50%정도인 사람을 찾아서 키우자는 거지!”

“50%도 마음에 안 들어.”

“알았어. 그러면 우선 이 안에서라도 우선순위를 매겨봐. 면접이라도 한번 보자.”

“내가 같이 일할사람이니까 내 기준이 제일 중요한 거 아냐?”

“니 기준에 맞추려다가는 올해 안에 사람 뽑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그런다!”

상혁이 엔진 같은 스타일의 성격이라면 민준은 브레이크같은 성격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혁은 자신이 밀어붙이지 않으면 민준이 팀원 영입을 어영부영 미룰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럴 때는 억지로라도 밀어 붙여야 무언가 진행이 된다는 사실도.

결국 상혁의 성화에 민준이 리스트에서 뽑은 20명을 면접 보기로 했지만 상혁은 그 20명이 합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트라이는 해봐야하니 면접을 계속 진행하려는 상혁에게 민준은 20명의 지원자를 모두 거절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민준이 면접자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코딩문제를 내서 상대를 당황시키거나 압박면접으로 상대를 울린 것은 아니었다.

대신 민준은 지극히 예의바른 태도로 진지하게 면접에 임하며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노트북을 가져다주며 적절한 레벨의 프로그래밍 문제를 풀게 하는 식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정상적인 형태의 면접을 진행했다.

단지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가 돌아가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쟤는 안 되겠어.” 라고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것도 ‘프로그래머가 면접을 볼 때 양복을 입고온 게 맘에 안 든다.’ 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없다’ 같은 황당한 이유를 대면서.

“아니 면접 기준이 그거라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상혁이 묻자 민준은 평소의 태연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이야기했다.

“뭔가 필이 안온다고 이야기하기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필이라···.”

사실 민준이 그 이유를 대면 상혁도 할 말은 없었다.

자신도 기획자를 뽑을 때 똑같이 필이 안 온다는 이유로 면접조차 거부한 적이 있었기에.

그래도 사람은 뽑아야했기에 상혁이 바라는 이상적인 부사수의 모습을 묻자 민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좀 찐같은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찐?”

“그 뭐랄까, 외모만 봐도 ‘아, 저 사람은 매우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일 것 같아’라는 느낌 있잖아.”

“그런 느낌이 어딨냐!”

“아냐, 있어. 그 실리콘 밸리같은 데 돌아다니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그룹 중에 왠지 ‘쟤가 저 팀의 프로그래머일 것이다’라는 느낌의 애가 있거든.”

“후···.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티브 워즈니악같이 생긴 애?”

“세상에 프로그래머를 외모로 뽑겠다는 미친놈은 니가 처음일거다.”

“실력도 봐야지. 근데 뭐랄까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받잖아. 프로그래머다운 삶이 자연스레 그런 외모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논리적인 발상을 해본거지.”

“뭐, 니 부사수니까 니 의견을 따라야겠지.”

상혁은 더 이상의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이번엔 민준이 이야기한 외모를 기준으로 이력서를 뒤적거렸다.

“여긴 없는 것 같은데.”

“언젠간 찾을 수 있겠지.”

“진짜 신기한 게 코드짜다 막히면 밥도 안 먹고 그거부터 푸는 녀석이 이상하게 이런 데는 엄청 느긋하다는 게 이해가 안가.”

“뭐,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갑자기 민준이 의자에서 등을 떼며 진지한 표정을 짓자, 상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이유?”

“너, 내 부사수 뽑으려는 이유가 ‘중2병 배틀러’ 완성하려고 하는 거 아냐?”

“어. 그렇지.”

“난 아직 그거 반대거든.”

이전 회의 때 동의 한 걸로 생각했던 상혁은 민준의 폭탄선언에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뭐? 왜?”

“올해가 몇 년인데? 2002년이라고? 아무리 내가 용을 쓴다고 해도 2010년에 나오는 키넥트발매 일자를 8년을 당기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그리고 그 사실은 너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야.”

“뭐, 그렇지.”

“나는 솔직히 기다리면 언젠가 나올 모션 인식 기술을 굳이 지금 타이밍에 당겨서 만들어야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설사 완성할 수 있다하더라도 소형화에만 지금부터 몇 년은 걸릴 거고, 양산까지 감안하면 더 걸리겠지. 지금 내가 느끼는 의문은 딱 하나야. ‘왜 굳이 지금인가’.”

“흠. 그건 내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미안. 내가 알던 너는 내가 무언가 기획할 때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관심 없으니까 내가 코딩할거나 내놔’라고 하는 스타일이었거든.”

“시간을 거스른 건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후. 좋아. 나도 지금 수준에서 제대로 경쟁력을 갖춘 모션 센서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아.”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상혁은 자신의 생각을 민준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민준은 상혁이 이야기한 이유를 듣고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애당초 알파만 만들고 출시할 생각이 없었다고?”

“어. 특허만 미리 확보하고 적절히 양산 가능한 시기가 올 때까지 출시는 미뤄 둘려고 했지.”

“뭣 때문에?”

상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수와 함께 놀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키넥트를 이용해서 이런 게임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실제로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기계인 키넥트의 특허를 MS가 보유한 것 때문에 이후 후발 주자인 타 게임기 제조사들이 제대로된 모션 인식 센서를 활용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키넥트가 그 뛰어난 가성비로 인해 대한민국 육군에 휴전선 감시 장비로 정식 납품되었던 것.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략적인 키넥트의 동작원리에 대해서···.

그렇게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춘 상혁이 세운 계획은, 한번에 3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우선 키넥트의 구동원리에 대한 특허를 선점하여 MS가 모션 인식센서에 대한 독점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해당 특허의 특허권을 오픈함으로써 타 게임 업체들이 모션 인식 게임에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마지막으로, 해당 원리를 이용한 키넥트의 프로토 타입을 이용하여 국방부 납품계약을 따내 방산업체가 가질 수 있는 병역특례 권한을 확보한다.

적어도 출시시기를 당기는 거니 키넥트처럼 150달러 수준의 가격에 출시할순 없겠지만, 그래도 방산납품용은 가격이 그리 문제되지는 않을걸는 계산에서였다.

가격이야 나중에 MS에 특허 사용권을 주면서 양산을 부탁해도 되는 문제였고.

상혁의 설명을 들은 민준은 어째서 상혁이 무리하게 하드웨어 개발까지 병행하면서 키넥트 게임을 개발하려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기에 민준은 설명이 끝나자 상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아. 이유는 이해가 가. 근데 하나 의문이 있는데, 왜 힘들게 특허낸 걸 독점 안하고 풀겠다는 거야?”

“이 기술을 MS가 독점 못하게 막으면 HTC 바이브나 오큘러스 리프트도 그 기술을 쓸 수 있으니까.”

“아, 게임업계 전체에서 VR기기의 성능 향상이 이루어질 거다?”

“희망사항이지만 말이지.”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뭔데?”

민준의 질문에 상혁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왜 질문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이 만든 개쩌는 VR게임을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런 거지. 당연한거 아냐?”

민준은 미소를 지었다.

결국 무슨 이유를 대던 결과적으로는 게임으로 귀결되는 상혁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친숙한 느낌이어서.

“어찌됐건 그런 나의 야망을 위해서 너는 부사수를 들여야 한다고.”

“확실히 그 말이 맞네. 그게 안 되면 군대 두 번 가야 하는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거지?”

“내말이 바로 그 말이야.”

“그런 거라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냐.”

민준은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을 펴 개인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혹시 우리 회귀 이후에 처음 만든 게임 기억나?”

“‘익스트림 발리볼?’”

“그때 너한테는 말 안했지만 내가 게임안에 소스코드 일부를 첨부했거든.”

“그랬어?!”

“그리고 만들어둔 히든 스테이지를 깨면 나머지 소스코드가 있는 홈페이지에 접속 가능하다고 써놨지.”

“오. 프로그래머라면 솔깃했겠네. 근데 그러면 능력 좋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게임 잘하는 프로그래머가 접속하게 되는 거 아냐?”

“그건 아니야.”

“왜?”

“그 히든 스테이지는 절대 깰수가 없는 스테이지 거든. 무조건 컴퓨터가 이겨. 프레임 단위로 상대 동작 체크해서 무조건 카운터 기술로 반격하게 짜놔서.”

“그렇게 말한 거 치고는 홈페이지에 접속자 카운트가 좀 되는데?”

“바로 그거야. 여기 접속했다는 이야기는 익스트림 발리볼을 강제로 뜯어서 개조했다는 이야기거든. 그러니까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에 실력이 있는 녀석일 거란 말이지. 그리고 내 나머지 소스코드를 가지고 공부했다면 내 코딩스타일에도 익숙할 테고. 보니까 하루에 5명꼴로 계속 접속하는 거 같으니까 홈페이지에 간단한 코딩문제를 적어놓고 풀면 연락처를 적는 페이지를 만들자고. 이 코드를 푼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그냥 연락처를 남겨두면 안 돼?”

“이건 홈페이지라서 누군가 주소를 공개했을 수도 있어. 프로그래머가 아니어도 접속할 수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한번더 테스트는 필요해. 적절한 난이도로.”

“좋아. 그럼 그렇게 해보자. 일단 하루에 5명은 접속한다는 거지?”

“카운트는 그렇게 올라가는데 잠깐만···.”

그렇게 말한 민준은 홈페이지의 접속자 DB를 열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접속자가 1명이야.”

“한명이 볼 것도 없는 홈페이지를 2500번 넘게 접속했다고? 봇 같은거 아냐?”

“이상한데···진짜로 익스트림 발리볼을 해킹해서 이 홈페이지 들어온 사람이 한명이라고···? 그리고 그 한명이 하루에 5번씩 계속 홈페이지에 들어오고 있다고···?”

“내가 묻고 싶은걸 왜 니가 말하고 있냐?”

“나도 이해가 안가니까 그렇지.”

민준의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남긴 문제를 풀고 연락처를 남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접속자가 단 한명이란 사실은 그 사람을 놓치면 다른 곳에서 부사수를 찾아야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싯팔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냐.”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준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방명록 메뉴를 눌렀다.

한번 퍼가면 그만인 소스코드밖에 없는 홈페이지를 매일 몇 번씩 방문했다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무언가를 남겼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잠시 후, 방명록에 들어간 상혁은 ‘히에에에엑!’하는 단말마를 남기며 뒤로 펄쩍 뛰었다.

상혁이 연 방명록.

거기엔 끝이 보이지 않을 긴 리스트로 끝없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민준오빠 코드가 너무 멋져요.]

[민준오빠 보고싶어요]

[민준오빠 오늘도 민준오빠 코드 보면서 공부했어요]

[민준오빠아아아]

[민준오빠]

[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민준오빠]

상혁을 경악시킨 방명록의 주인공은, 거의 종교 수준으로 민준에게 집착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스토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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