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65화 (66/485)

065. 중2병 배틀러

막상 상혁에게 등 떠밀려 갑작스레 PT를 진행하게된 지수였지만, 그것은 결고 그녀에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 용기를 내기 위해 망토를 두르고 마녀가 쓸법한 모자를 썼어도, 그녀의 다리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뭐, 뭐부터 설명해야하지?’

지수는 자신이 상혁의 도움을 받아 설계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면서, 상혁이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가르쳐준 것을 떠올렸다.

“좋아 지수야. 우선 중요한건, PT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야.”

“그냥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그렇지. 간단하게 예를들어볼게. 지수 니가 사람들에게 정말 맛있는 치킨을 추천하려고 해.”

‘이 치킨은 고기를 비법 양념에 하루 동안 재워 고기 깊이 양념의 맛이 배어들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뜨거운 기름과 만나면, 마법이 시작되죠.’

‘방금 튀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 치킨을 입에 무는 순간, 우선 당신의 귀가 즐거워합니다.’

‘바삭한 크리스피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이빨 사이로 살짝 매콤한 육즙이 분수처럼 튀어 올라 혀를 적시죠.’

‘그러나 마치 잘 구워진 빵껍질 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크리스피의 느낌과는 이질적으로, 고기는 놀라우리만치 매혹적으로 부드럽습니다.’

‘당신의 이빨은 전혀 저항감 없이 고기 사이를 파고들어 그 짭쪼름 하고 뜨거운 맛의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짠맛 사이에 몰래 고개를 내밀고 있는 매운맛은 씹을 때마다 당신의 입안에 새로운 감각을 선사합니다.’

“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상혁의 말을 지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듣다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지금 그게 제일 좋은 설명이 아닌가? 그리고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이따가 시켜줄게. 아무튼, 이건 뭘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설명이지. 반대로 그 사람이 다이어트 중이라면? 이 놀라운 치킨은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는 양념에 재워두었기 때문에 튀기는 동안 닭 안의 불필요한 지방이 빠져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상혁은 말을 이었다.

“추가로, 반죽에는 맛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효소를 넣었죠. 결과적으로 저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같은 양을 먹었을 때 다른 치킨에 비해 칼로리가 20%나 적었으며 흡수된 열량은 타사의 다른 치킨보다 25%나 적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 치킨이 있어?!”

놀라서 묻는 지수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상혁이 말했다.

“없어 임마. 그런 게 있으면 너 안주고 내가 다먹을 거다.”

“히이잉···.”

“아무튼,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겐 이게 더 솔깃하겠지?”

“그럴 것 같아.”

“그럼 이건 어때?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각 브렌드의 후라이드 메뉴 중 ‘매운 맛 치킨’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조사결과, 자사의 새 치킨에 대한 고객선호도가 25%이상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기존 치킨 프렌차이즈에 비해 ‘타사 치킨보다 맛있다.’ 라는 응답이 79%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기존 메뉴인 ‘순살 후라이드’의 33%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로, 저희는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새 메뉴를 저희의 3월 주력 마케팅 포인트로 밀어붙일 것입니다.”

“흠···. 뭔가 숫자가 많은 느낌?”

“듣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회사 사람들이나 가맹점 사장님들일 것 같아.”

“정답.”

“그러니까 닝겐의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적절한 설명방법이 다르다는 건가?”

“맞아.”

상혁의 말을 들은 지수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난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 거지?”

“어떤 방법이 좋을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기엔 첫 번째 같은데.”

“맞아.”

상혁은 칭찬의 의미로 지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중요한건 이 모든 설명의 목적이, 팀원들이 ‘아, 이 게임 진짜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야.”

“그럼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아? 감도 안 잡히는 게임의 재미를 전달하는 것보다 그게 더 빠를거 같은데?”

“뭐, 그 말도 맞아. 어찌보면 정론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미소지었다.

“재미있어야할 기획이 기획자가 설명을 재미있게 못해서 묻힌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겠어?”

기억을 더듬던 지수는 고개를 흔들며 각오를 다지려 했지만, 눈앞의 팀원들을 보고는 다시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어쩌겠는가.

이제 중학교 3학년. 겨우 갓 16살이 된 소녀일 뿐인걸.

필사적으로 가빠오는 숨을 고르면서, 지수는 상혁이 가르쳐준 것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중에는, PT를 할 때 긴장을 풀기 위한 요령도 있었기 때문에.

‘뭐였지? 어···또···. 분명히···. 아, 맞아. 눈앞의 사람들이 다 문어대가리라고 생각하라고 했었지! 난 지금 문어한테 설명을 하는 거다. 문어한테···문어한테···.’

그렇게 중얼거리던 지수는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가슴속에서 작은 촛불처럼 자신감이 피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맞아. 이건 무조건 재밌는 거야. 난 설득할 수 있어. 겨우 문어들인걸?’

그렇게 생각한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힘차게 외쳤다.

“야 이 문어대가리들아!”

“·········.”

팀원들이 경악으로 입을 벌리며 지수를 쳐다보는 가운데, 자신이 방금 무슨말을 한 것인지 깨달은 지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흉인 상혁은···.

“푸하하하하! 문어대가리래!!!!!”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덕분에 겨우 용기를 내서 설명을 시작하려던 지수는 얼굴을 감싸 안으며 다시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고, 한참을 웃던 상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직도 얼이 빠져있는 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 방금 건 지수가 너희를 문어대가···풉···대가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긴장 풀 때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게 있어서 실수한 거야.”

“아항···. 잠깐만, 그럼 너도 매번 기획회의할 때마다 우리를 문어대가리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난 안 그래. 긴장 안하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아직도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지수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수가 설명하는 건 무리인 거같고 나머지는 내가 설명하는 걸로···”

그때, 어느새 다가온 지수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상혁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히끅···. 내···.내가 할래···.”

“어? 괜찮겠어?”

지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며 보드 앞에 섰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수가 팀원들에게 문어대가리라고 소리친 것은 나름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었다.

한번 크게 에너지를 쏟은 탓에 오히려 긴장이 풀려 마음의 부담 없이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간중간 딸꾹질을 하며 설명한 내용을 듣는 팀원들은, 비로소 상혁이 왜 몇 달이란 시간을 이 게임의 선행기획에 투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전자의 정면 중앙을 기준으로 십자가 형태로 지면에 가까운 무릎쪽에 땅, 왼쪽이 물, 위쪽이 불, 오른쪽이 바람의 순서로 4속성 마나가 존재하는데, 주문을 시전 할 때 올바른 순서로 각 마나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순환시키며 시동어를 외치면 주문이 발동한다. 또한 특정 주문의 경우 미리 만들어둔 동작인 ‘프리샷 루틴’을 사용하여 호출할 수 있으며 이때도 마찬가지로 시동어는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주문은 동작+시동어로 이루어지며 강력한 주문은 여러 페이즈의 모션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주문의 계열과 이론, 시전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지수의 모습은 그녀가 걸친 망토와 모자 덕분인지 정말로 마법사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내용의 핵심은, 가상으로 동작하는 ‘진짜 마법’을 만드는데 있다고 할 수 있지. 내가 움직이는 대로, 내가 말하는 대로, 내가 계산한대로 발동하는 마법을 실제로 써 볼 수 있는 거다!”

잘 짜여진 공식을 바탕으로, 모니터 안에 또 하나의 현실을 구현하겠다는 지수의 야심찬 계획을 들은 팀원들은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지수를 향해 솔직한 평가를 내놓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팀 내에서도 가장 지수를 귀여워하는 서연이었다.

“······괜찮은데?”

“정말이냐!?”

“응. 솔직히 상혁 오빠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누가 더 오글거리게 연기를 잘하는지를 겨루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수 네 말대로 이게 그런 종류의 게임이 아니라 진짜 동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법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건 재미있을 것 같아.”

서연의 말에 성연도 동의의 말을 꺼냈다.

“나도. 단순히 연기력 배틀이라면 금방 질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파고들 요소가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진짜로 마법사가 된 기분이 들 테니까.”

“난 싱글플레이가 잘 갖춰져 있다면 찬성할래. 재미는 있을 것 같지만, 솔직히 모르는 사람 앞에서 소리 지르면서 포즈 취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현주도 의견을 내놓자 팀원의 시선이 민준에게 쏠렸다.

민준은 턱에 손을 괸 채 잠시 고민하더니, 상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좋아. 기획 자체는 참신함을 넘어 엽기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해. 다만 기술적인 문제가 너무 많이 보이는데.”

“어떤 거?”

상혁이 답하자 민준이 물었다.

“너 올해가 몇 년인지 까먹었냐?”

“2002년이지.”

“지금 수준의 음성인식이랑 모션 인식 기술로 네가 원하는 수준의 기능 구현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야?”

“AI로 보정할 생각이야.”

“AI로?”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캐스팅 행위는 2가지 판정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음성으로 된 ‘주문’과 동작으로 된 ‘모션’으로.”

“그렇지.”

“모션의 편차를 음성으로 보정하고 음성의 편차를 모션으로 보정하는 식으로 정확도를 올리는 거지.”

“흠···.”

물론 그 코드를 짜는 사람은 팀내 유일한 코더인 민준이 되겠지만, 그가 듣기에 그것은 충분히 구현 가능한 범위 내의 기술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매한 음성과 정확한 모션이 오면 해당 음성의 판정범위를 넓히고, 부정확한 모션과 정확한 발음이 오면 모션의 판정 범위를 넓힌다는 거지?”

“맞아. 그리고 그 보정값을 계속 저장해서 연습하면 연습할수록 판정이 좋아지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계속 반복시키면 사투리로도 발동시킬 수 있겠네. 재밌겠어.”

사실 이것은 민준을 혹하게 하기 위한 미끼이기도 했다.

이미 회귀 전부터 굳이 상혁과 같이 쓰레기같은 중소기업에서 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수준의 높은 실력을 가진 민준은 회귀 이후로 계속 갑갑해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익스트림 발리볼’이나 ‘마리의 눈물’이나 ‘나이츠 어셈블’ 모두 ‘애들 장난’ 수준의 구현 난이도에 불과했다.

단지 노가다가 좀 많을 뿐이지 시스템적인 신선함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이 기획이 민준에게는 그가 다뤄본 적이 아예 없는 모션인식 관련 코드를 다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였다.

‘재밌겠다.’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도전의식을 느끼는 민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기획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적한 부분보다, 그리고 팀원들이 지적한 어떤 부분보다 커다란 난제가 프로젝트의 시작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 소프트웨어적으로 모션이나 음성을 인식하는 건 네 말대로 구현한다고 치자. 그런데 제일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떤 거?”

“그 모션인식은 뭘로 할 건데?”

민준이 보기에, 이 기획은 완전히 MS에서 만든 모션 인식 장비, 키넥트(Kinect)를 고려하고 만든 기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해는 2002년이고 키넥트의 발표는 2009년에 이루어진다.

발매까지 감안하면 거의 8년의 갭이 있는 셈.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장비를 위한 게임을 만들겠다는 상혁의 계획은 민준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혁은, 민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네.”

“뭐?”

“내 비밀무기를 꺼낼 때가.”

그렇게 말한 상혁은 민준을 데리고 팀원들이 있는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화이트보드 옆에 있는 커다란 박스에서 엄청나게 조잡해 보이는 복잡한 기계 장비를 하나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멀쩡한 전자 제품들을 뜯어 조합한 것 같은 비주얼을 가진 그 기계에는, 2개의 커다란 캠코더와 노래방 마이크 같이 생긴 커다란 마이크,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레이저 포인터들이 넘치는 전선 속에 파묻혀 있었다.

“오빠? 저 백투더 퓨처에나 나올 것 같은 괴랄한 기계는 뭐에요?”

서연이 묻자 상혁은 기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자랑스런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팀원들에게 기계를 소개했다.

“여기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천하대 로보틱스 공학부와 컴퓨터 공학과, 전자학과의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을 총 동원해 만든 차세대 게임 컨트롤러. 코넥트(Konect)의 프로토타입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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