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중2병 면접
인생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진짜로 드라마처럼 극적인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게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게임을 하다보면 가끔 프로게이머 뺨치는 펜타킬이 나온다던가, 우연에서 나오는 예술적인 앵글이 잡힌다거나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상혁은, 신규 팀원에 대해 ‘우주의 기운’ 운운하는 타이밍에 등장한 이 소녀를 보고 이게 혹시 운명의 인도는 아닐까 하는 망상에 잠시 잠겼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당신도 그 타이밍에 노크소리 들리면 그 생각 똑같이 할 거라니까?’
아마 누군가가 후에 이 일에 대해 물어보면 상혁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그정도로 예술적인 타이밍에 나타난 소녀는, 거의 ‘신병 받아라’수준의 컬쳐 쇼크를 상혁에게 안겨주며 당당한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소녀를 보며 대뜸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얘, 좀 재밌어 보인다.’
***
잠시 후, 부실 쇼파에 앉은 소녀에게 서연이 핫 코코아를 내밀며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온거야?”
일단 찾아온 상대가 어린 여성이었기에, 소녀의 안내는 같은 소녀인 서연이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 오빠들보다는 같은 성별의 언니가 조금 더 편하게 보일 수 있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배려대로, 소녀는 아까 팀원으로 받아달라고 소리지를때보다는 훨씬 편한 표정으로 서연이 건네주는 핫 코코아 잔을 양손으로 다소곳이 받아들었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줄래?”
“이 몸은 양화중학교 2학년인 이지수다!”
“내년에 2학년?”
“아니, 지금 2학년···. 아악!”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상혁이 지수의 머리에 딱소리가 나게 꿀밤을 먹이자 지수는 작은 머리를 감싸안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까부터 왜 반말이냐?”
“으···. 닝겐 주제에 감히···.”
울먹이며 말하는 지수를 보며 서연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귀여워서 지금이라도 당장 껴안고 싶다는 듯한 눈이었다.
상혁은 그런 서연을 눈빛으로 제지한 후 지수에게 물었다.
이곳을 어떻게 찾아온 것인지에 대해.
애당초 CGM에 기사가 실렸다고 해도, 그건 해외 잡지기사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 온 메일도 대부분 북미에서 온 입사 제안메일이었고,
아직 한국에는 이슈는커녕 정보전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 구인 관련 정보를 구했는지 알아봐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지수는 상혁의 질문에 잠시 주저하더니 가슴을 펴며 외쳤다.
“운명의 인도함이지!”
“운명?”
“하늘이 정한 운명이 이 몸을 이곳으로 이끌···. 꺄아아아악!!!”
계속 헛소리를 하는 지수의 관자놀이를 상혁이 양 주먹으로 빙빙 돌리자, 지수가 괴성을 지르며 팔다리를 방방 굴렸다.
“으아아! 오빠! 어린앤데 너무 심한 거같아요!”
“자꾸 헛소리 하잖아.”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죠.”
상혁이 손을 놓자 지수는 머리 양쪽을 손으로 슥슥 비비더니 그래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지 상혁을 휙 흘겨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상혁이 말했다.
“인터넷에서 우리 팀에 대한 기사를 찾다가 영문 웹에 올라온 기사를 봤다는거네?”
그 말은 이 귀엽게 생긴 여중생이 어느정도 영어 실력이 된다는 이야기에, 상혁은 흥미를 느꼈다.
“영어 잘해?”
“후훗. 세계의 진리를 추구하는 이몸에게 인간의 언어따위는···. 좀 합니다···. 네넵. 좀 해요···.”
왠지 모르게 중2병스럽게 말하려던 지수는 상혁이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자 모기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투를 바꿨다.
그러자 상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다른 언어는 뭐 할줄 알아?”
“일본어랑 독일어···. 랑···.”
그 말은 이 쪼그만 중2병 소녀가 한국어 포함 4개국어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라···크······.”
“뭐? 더 있어? 크게 말해.”
“···라틴어랑 클링온이랑 ‘반지제왕’에 나오는 꿰냐(엘프어)를···.”
그녀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나마 했던 그녀가 혹시 어학의 천재일까 하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대신 상혁은, 그녀가 심각한 돌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대체 그딴 건 왜 배운 거야? 어따 쓰려고?”
“···멋지니까···.”
그제야 상혁은 대충 이 소녀가 어떤 스타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중2병.
아마도 일본 게임을 하면서 그 세계에 빠져들고 그게 멋지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공부한 스타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석하니 처음 보자마자 뭔가 최종보스같은 말투를 쓰며 자신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단순한 연기구나.’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은 아니었다.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니까.
사람이 멋짐이나 특별함을 동경하는 건 결코 비정상이 아니다.
다만 그 동경의 깊이에 차이가 있을 뿐.
상혁도 탱탱볼에 새겨진 불꽃 마크에 손가락을 대고 불꽃슛을 던져본 사람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다들 양손을 가슴께로 끌어 모으며 ‘에~~네~~르~~X~~파~~’정도는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서연은 이런 타입의 아이를 처음 보아서 그런지 귀여워하면서도 지수의 태도에 당황하고 있었다.
“오빠 잠깐 저 좀 봐요.”
그렇게 말한 서연은 상혁을 부실 구석으로 끌고가더니 상혁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쟤 좀 이상한 거 같아요.”
“그래? 그냥 중2병에 심취한 거지 이상한 애는 아닌 거 같은데.”
“중2병? 그게 뭐에요?”
“그 중학교 2학년 즈음에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도서같은거 찾아다니고 마법진 그리고 그러는 거를 중2병이라고 한다.”
“엑? 무슨 정신병같은거에요?”
“아냐. 진짜 이상한 건 그게 진짜라고 믿는거지. 쟤가 진짜 비정상이면 내가 쟤 꿀밤 때렸을 때 ‘으윽 더러운 닝겐이 나에게 손을 대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구나, 울어라 지옥참마도!’ 정도는 해야 된다고. 그 정도면 이제 정신병원에 보내야하는 거지.”
“오빠는 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아니, 니 기준이면 너도 정상은 아닐 텐데?”
“엑?! 왜요?”
“너 전에 부실에서 혼자 있을 때 ‘마리의 눈물’ 여주인공 대사 따라하던 거 봤거든? ‘당신의 악행은 여기에서 끝···.’ 우웁!”
상혁이 서연의 말투를 따라하자 서연이 급하게 상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빠, 거기까지.”
그러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고 상혁의 입을 풀어준 서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 결국 그런 거의 연장이라는 거죠?”
“그렇지. 결국 쟤도 저게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비정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특별함을 동경하는 거지.”
“특별함요?”
“뭐 마법진을 그리면 악마를 소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던가 왠지 반짝이는 돌을 보면 거기 특별한 힘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거.”
“아···.”
“그리고 중2때 그게 좀 심해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중2병이라고 하는 거지.”
“그렇군요···. 흠,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일단 열정은 합격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어 하나를 온전하게 습득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특별함에 대한 동경만으로 익힐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저 소녀가 엄청난 집념과 끈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상혁은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푹 빠지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일단은 이야기 좀 더 해보고.”
그렇게 말한 상혁이 다시 쇼파로 돌아오자, 힐끗 힐끗 상혁이 있는 자리를 훔쳐보던 지수는 급하게 코코아 잔을 들어올려 호로록 코코아를 들이켰다.
“흠···. 일단, 지수라고 했나? 혹시 언어 말고 다른 할 줄 아는 건 없어?”
“다른 거라면 어떤?”
“그림은 어때?”
“잘 못 그린···려요..”
“프로그래밍은?”
“놉.”
“뭐 아무거나 게임 제작 관련된 기술같은 건 없어? 3D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이라던가 작곡이라던가···.”
“그런 인간의 재능따위엔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럼 대체 여기서 뭘 하겠다고 찾아온 건데?”
상혁이 말하자 그녀는 교복 마이 안에서 여러 번 접힌 종이를 꺼내 펴보였다.
그것은 그녀가 인터넷에서 보았다는 상혁의 인터뷰 기사였다.
“여기는 분명 기획자를 모집한다고···.”
“기획서 쓸 줄 알아?”
“아니···. 그래도···!”
“그래도?”
“배우면···.”
“아쉽게도 저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 하군요. 저희 팀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저희 팀이 아닌 다른 좋은 곳과 인연이 닿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벌떡 일어나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부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부실 밖에 그녀를 떨군 채로 다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잠시 얼떨떨하게 얼어있던 지수는, 정신을 차렸는지 부실문을 두들기며 부실
밖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 인터뷰에서는 능력은 필수가 아니라고 했으면서! 재미있으면 뽑아준다고 했으면서어어!!!”
그러나 그런 그녀의 외침을 상혁은 싹 무시한 채, 무심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의 소동은, 그 이후로도 30분 정도 밖에서 소리를 지르던 지수가 지나가던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도망치고 나서야 끝나게 되었다.
***
전날 그렇게 팀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상혁이 바라는 인재상인 똘끼있는(weirdo)인물 그 자체인 지수는, 역시나 범상치 않은 똘기를 자랑하는 인물답게 다음날에도 게임부 부실을 찾아와 상혁과 팀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수가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부실을 찾아오기 시작하자 상혁은 반쯤 대응을 포기하게 되었다.
애당초 중2밖에 되지 않은 여자애를 한겨울에 부실밖에 계속 세워두는 것도 인간이 할 짓은 못되었기에,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하던 상혁도 나중엔 지수를 부실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결정에 그녀의 귀여운 외모와 인상적인 끈기가 한몫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실에 들어온 지수는 팀 내에서 약간 NPC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그렇게 된 것에도 모종의 사연이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긴 휴식기.
‘나이츠 어셈블’의 발매 이후로 상혁은 공식적으로 게임부 활동의 종료를 선언한 상태였고 팀원들은 그 이후로 대부분 게임부에서 놀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사실 집에 있는 자기 방보다 게임부 부실이 더 편하기도 했고, 수업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3년간 매일 붙어다니는 사이였으니 이제 떨어지는게 더 어색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상혁이 지수를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매일같이 부실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애니를 보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시기였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팀원들이었지만 다들 지쳐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팀원들도 이 잠깐의 휴식에 동의했다.
서연이 손이 굳는다며 상혁을 졸라 이것저것 컨셉아트 연습용 소재를 뜯어내거나, 민준이 가끔 MS쪽에서 오는 기술 지원 요청에 원격으로 대응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두 사람과 달리 상혁은 완전히 게임 제작에서 손을 떼버렸다.
쉴 때는 쉬어야한다고 말하며.
그리고는 밀린 게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팀 내에서 가장 바빴었지만 지금은 가장 한가해진 상혁을 주로 상대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로 게임제작을 위해 기어들어왔지만 팀원으로 인정도 받지 못한채 부실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던 지수였다.
의외로 팀 안에서 상혁과 비빌만한 게임실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 중학교 2학년인 지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혁은, 지수와 게임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인피니티 슬래쉬!”
“라메세움 텐티리스!”
“피에드라 델 솔!”
애당초 SF 배경의 로봇 대전 게임인 ‘아머드 코아’를 하는 중임에도 공격할 때마다 온갖 중2병 스러운 기술명을 붙여서 공격하는 지수의 모습은 대전상대로 하여금 엄청나게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미묘하게 게임실력이 딸려서 결국엔 분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상혁은 그녀가 같이 게임하면 엄청나게 재미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10연패 이후에 삐져서 말도 안하다가 과자주면 풀리는 모습을 포함해서.
결국 상혁은, 그녀가 자신이 인터뷰에서 걸었던 ‘재미있는’ 인재라는 부분에 대해서 그녀와 함께 과자를 먹으면서 덤덤하게 인정하고 말았다.
“뭐, 애당초 내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한 게 잘못이니까, 일단 지수 너가 조건에 맞는다는 건 인정할게.”
“그럼 기획자 시켜 주는거냐?”
“아니.”
“쳇. 더러운 그짓말쟁이.”
말투가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반말이나 폭언을 허락한 상혁은 그녀의 폭언에도 표정하나 찡그리지 않고 과자를 씹으며 답했다.
“뭐, 그래도 놀러오는 건 안 말릴게.”
“그건 의미가 없다구···.”
그렇게 말하며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지수는 가방에서 너덜너덜한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지만, 상혁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당초 호기심에 몇 번 보려고 했다가 그녀에게 아프게 물린 적도 있을뿐더러, 어차피 그녀가 적는 게 무엇이던 딱히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 노트를 훔쳐보려 강제로 뺐었을 때 그녀가 거의 경기수준으로 난동을 부렸던 사건을 떠올리며, 상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게임기 앞으로 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상혁이 깊게 몰입하여 하던 게임을 마친 것은 그 이후로 3시간여가 흐른 후였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팀원들이 다 떠나도록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자신을 몰입하게 만든 게임의 제작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도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다,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을 발견했다.
“노트?”
그것은 지수가 상혁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발악하던, 낡고 너덜너덜한 바로 ‘그’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