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같이 일하는 조건
“앞이라뇨?”
“‘나이츠 어셈블’의 발매 이후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회사, 아니 지금은 팀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팀을 어떻게 운영하실 것인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차기작에 대한 질문인가요?”
“아뇨, 경영적인 측면에 대한 질문입니다.”
“경영이라···.”
상혁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사실 진즉 고민했어야하는 것이었지만 상혁이 그에 대한 결론을 피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만들 게임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라면 상혁은 몇 십개든 기쁘게 토론할 수 있었어도, 팀의 운영에 관한 문제는 상혁에게 대답하기 거북한 문제였다.
그때, 거북한 질문을 던진 당사자인 포츠가 상혁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고민 중이신가 보네요.”
“그렇죠.”
“제가 맞춰볼게요. 아마도 상업적으로, 나이츠 어셈블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겠죠?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되실테고요.”
“그렇겠죠.”
“그러나 현재 함께 하고 있는 팀의 규모를 확장하는데 거부감을 느끼시는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제 나이가 얼마로 보이시나요?”
“글쎄요. 40대 후반정도?”
“맞아요. 대충 그 정도 됩니다. 1983년에 아타리 쇼크가 났을 때, 저는 26의 게임 잡지 기자였죠. 당시엔 집 주차장이나 창고에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었고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게임제작에 자주 뛰어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열정만 가지고 창고에서 게임팩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게임을 만들던 시절이었죠.”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과거를 회상하던 포츠가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 상혁 씨를 보면 그 시절의 게임 개발자들이 떠올라요.”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아타리 쇼크맞고 망할 것 같다는 의미인가요?”
“하하하 설마요. 단지 그때 개발자들이 가진 열정이나 경영에 대한 어설픈 경험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당시 돈을 만졌던 개발자들 중 상당수가 그리 좋게 풀리지는 않았었거든요.”
개발자에서 경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하게 되면서 팀 내부에 분쟁이 생기거나 지속적인 실패로 경영권을 빼앗기는 이야기는 실리콘밸리에선 그리 보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가 알고 있는 개발자 출신 CEO는 보통 2가지 길을 걷더군요. 개발자의 마음을 지키다가 회사를 말아먹거나, 경영자의 마인드로 전환하고 개발자의 마음을 버리거나.”
상혁은 포츠의 의견에 동의했다.
자신도 비슷한 사례를 여럿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경영인의 입장이 되면 돈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상혁 씨의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를요.”
잠시 고민하던 상혁이 포츠의 질문에 답했다.
“흠···. 일단은 쉬는 게 우선일 것 같네요.”
“휴식 말이군요?”
“네. 전부 자발적으로 한 거긴 하지만, 다들 학교 수업을 병행하면서 무리하게 개발 작업을 소화해왔었으니까요. 돈 벌어서 뭐하겠어요? 다 쓰자고 버는 건데 돈 좀 쓰면서 놀아야죠.”
“팀 규모 대비 예상 매출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화려한 휴가가 되겠군요.”
“휴가라기보다는 휴업에 가까울 겁니다. 한 1년 정도는 정신없이 놀아볼까 생각중이거든요.”
“예!? 1년이나요?”
“이제 곧 대학교에 가게 되는 데 원화가가 내년에 고등학교 졸업이라 1년 정도 기다려야 해서요. 뭐, 그사이 간간이 선행기획 작업하면서 다음작품 천천히 준비하는 김에 겸사겸사 길게 쉬는 거죠. 밀린 게임도 좀 하고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싱긋 웃어보였다.
“게이머가 게임을 안 하면 안 되잖아요?”
“하하하···. 그런 부분은 회사가 아닌 동인팀이라서 가능한 부분인걸까요? 부럽네요.”
“글쎄요. 저희도 곧 법인설립을 하게 되겠지만 저는 지금의 팀이 회사가 되더라도 게임 완성 이후에 팀원이 원하는 기간만큼의 유급휴가를 보장해주고 싶어요. 뭐, 그게 가능할 만큼 열심히 잘 벌기는 해야겠지 만요.”
“좋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노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현재 PTW는 고등학생이 주력 멤버임에도 고등학생 수준을 벗어난 퀄리티로 주목을 받아왔는데, 이제 대학생이 되면서 더 높은 퀄리티를 기대 받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유저의 그런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팀 규모를 늘리 실 생각이 있나요?”
팀 규모를 늘리자는 의견은 나이츠 어셈블 개발 중에도 팀 내에서 계속 나왔던 의견이었다.
주로 보강의견이 제시된 쪽은 기획 파트.
그래픽 파트야 서연이 컨셉아트만 작업하게 되면서 부담이 크게 줄었고, 프로그래밍 파트의 경우는 민준이 워낙 괴물인데다 서버 관리를 MS에 이전하게 되면서 더 여유가 생긴 편이었지만 기획은 시간이 갈수록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외주 컨펌부터 MS와의 계약 진행이나 마케팅 준비 등의 게임 제작 외적인 일부터 음악, 프로그래밍, 그래픽 등의 게임 전반에 걸친 모든 부분에 대한 기획서 작업과 컨펌을 진행해야하는 상혁의 업무 부담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 덕에 걸쭉할 정도로 진한 커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항상 피곤해 보이는 상혁을 보며 팀원들은 우선적으로 기획 인력을 보강할 것을 권유했고 상혁은 일단 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 생각해보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보류했었다.
그리고 현재, 나이츠 어셈블의 발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시점에서 팀 멤버의 보강은 상혁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었다.
“멤버 보강은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저희 팀에 맞는 인재만 있다면요.”
“오,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듣고 싶은데요?”
“글쎄요···. 우선은 기획 파트에서 저를 도와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싶네요.”
“그 대상은 아무래도 한국인이 편하시겠죠?”
“아뇨, 뭐 팀 내에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인력은 없으니 아예 언어가 안 통하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영어나 일본어 정도만 할수 있으면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그게 필수는 아니고요.”
“그럼 특별히 원하는 인재상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어떤 팀원이 이상적일까.
사실 그것은 함께 일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상혁은 이상적인 멤버를 떠나서 어떤 멤버와 함께 하고 싶은지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분이었으면 좋겠네요.”
“재미요?”
“같이 일하면 재미있는 사람이요.”
“어떤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던가, 아니면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 좋겠다던가 같은 게 아니고요?”
“뭐, 그것도 있으면 좋은 거지만 필수는 아니죠.”
“같이 일하면 재미있는 것도 필수는 아니잖아요?”
“아뇨, 그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흠, 예를 들어 아침에 출근을, 아, 저의 경우는 등교를 한다고 생각해보죠.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출근을 싫어하잖아요? 직장이 멀어서 그럴수도 있고, 오늘 회사에 가서 봐야하는 상사의 면상이 보기 싫을 수도 있고, 혹은 오늘 하는 업무가 부담이 되거나 잘 모르는 업무를 해야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그렇죠.”
“저는 기본적으로 일이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중 하나가 즐거움이라고 보거든요. 아, 빨리 출근해서 동료들을 보고 싶다. 내가 만든걸 보여주고 칭찬받고 싶다. 그런 기분이요.”
“그게 이상적이긴 하죠.”
“저는 그것 때문에라도 가급적 팀원들이 가져오는 결과물에 대해서 가장 먼저 칭찬을 하고, 수정할 사항을 지적합니다. 이건 외주도 마찬가지고요. 만약에 결과물이 제 의도와 완전히 다르더라도 상대도 무언가 그게 좋은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상대가 왜 이런 걸 가져왔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요컨대 중요한건 팀의 분위기라는 거군요?”
“그렇죠. 저도 일하고 싶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지, 억지로 일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팀원이 온다면 좀 재미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똘끼 있는 사람으로요.”
“똘끼(ddolkii)요?”
“아, 영어로는 특이한(weirdo)사람정도 되겠네요.”
이후에도 몇 가지 간단한 질문답이 이어진 후, 포츠와의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자신의 이 인터뷰가, 어떤 상황을 불러올지에 대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로.
***
“미친놈아 대체 미국가서 뭔짓을 한 거야?”
며칠 후, 언제나처럼 평화로워야할 게임부의 부실에서 민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민준의 앞에는 수많은 종이 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좀 너저분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는 상혁과는 다르게 민준은 키보드와 모니터 말고는 책상위에 아무것도 놓지 않는 스타일이었기에 그 광경은 꽤나 어색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민준이 그 서류뭉치들을 일부러 자신의 책상에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 서류더미들은 상혁의 책상에 높게 쌓여있다 무게의 불균형을 버티지 못하고 옆에 있는 민준의 책상으로 무너져 내린 종이더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사태를 발생시킨 사건의 원흉인 상혁은 그런 민준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이츠 어셈블의 성공적인 발매 행사 이후 한국에 돌아온 상혁은 그후 며칠이 지난 시점부터 이상한 메일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대부분은 황당하게도 입사 지원을 위한 메일들이었다.
이게 왜 황당한 일이냐면, 정작 상혁은 한 번도 구인 관련 글을 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아리 활동을 명분삼아 게임을 제작하는 시점에서, 상혁이나 민준, 서연은 항상 친구들이 말하는 ‘나도 껴주면 안돼?’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상혁은 ‘팀원 전원 합의 전에 절대 개별 구인 금지’라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덕에 졸업을 앞둔 지금은 아예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 자체가 없어진 상태였는데, 갑자기 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상혁이 미국에서 빈 포츠와 진행했던 인터뷰에 있었다.
-게임 업계의 젊은 천재들이 새 동료를 구하고 있다-
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GCM에 대형 기사를 실어버린 것이다.
포츠는 거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만점을 부여한 게임을 제작한 팀에 대해 애정어린 과장을 마구 섞어놓았고, 결국 그 기사는 상혁이 말한 팀내 분위기의 묘사가 더해져 누가봐도 함께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개발팀의 신규 팀원 공고같은 느낌의 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기사를 보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지원을 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처음에 상혁은 그 메일들을 싹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팀원들이 신규 멤버 영입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기에 상혁은 곧 메일을 전부 인쇄해서 자신의 책상위에 쌓아놓았다.
무게를 견디지 못해 민준의 책상으로 무너져 내릴 때까지.
그리고 서류가 무너진 시점까지 상혁이 읽은 입사지원서의 개수는, 0개였다.
“오빠는 왜 지원서 안 읽어봐요?”
그때, 투덜대며 서류를 다시 상혁의 책상에 쌓고 있던 민준을 바라보던 서연이 상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상혁은 잠시 다시 쌓인 서류더미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서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필이 안와.”
“엥? 필요?”
“뭐랄까, 이런 메일 말고 난 좀 더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엑?! 그건 무슨 소리에요?”
“뭐 서연이 너한테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가 고등학교에서 게임개발을 결심하고 추진하게 된데는 울트라하게 미스테리한 계기가 있었거든. 초자연적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초현실적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 그런거.”
그러자 옆에서 민준이 거들었다.
“그렇지. 그거 정도면 초현실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지. 남한테 말은 못하지만.”
“어. 남한테 말은 못하지만.”
상혁이 지금 말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계기라는 것은 당연히 회귀와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서연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서연은 두 사람이 평소처럼 자신을 가지고 농담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살짝 눈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오빠들, 지금 저 약 올리는 거예요?”
“푸흡. 아냐.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거지. 아무튼 그 이후에 민준이랑 같이 게임을 만들고 나서,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너를 만났지. 그리고 선생님의 소개로 성연이 형을 만났고.”
“그러니까, 그런 종류의 만남이 아니면 싫다? 그러면 그냥 친구 중에 한명 뽑아도 되지 않아요?”
“아니야···. 뭔가···. 너나 성연 형을 봤을 때 왔었던 찌르르한 느낌이 없어···.”
“가끔 보면 오빠는 지구에서 제일 논리적인 사람인 것 같다가도 지구에서 제일 이해 안가는 사람같아요.”
“후후···. 바로 그것이 나지···.”
그렇게 말한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게임을 만드는 것이, 너희를 만나서 즐겁게 일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분명 지금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새 팀원을 가져다 줄 것이야! 그게 내게 꼭 필요한 팀원이라면! 당장이라도 저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똑똑똑-
그렇게 말하던 상혁은, 정말로 기가막힌 타이밍에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단순히 드립을 치려고 했던 것인데 너무나도 황당한 타이밍에 노크소리가 들려와서, 심지어 옆에서 듣던 민준조차 서류탑을 쌓던 그대로 굳어버릴 정도였다.
“혹시···?”
“에이,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서연과 민준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상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게임부 부실 문으로 다가가서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문 건너편에 있는 상대가, 정말로 우주가 보내준 자신의 팀원이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상혁이 문을 열고 복도에는, 상혁이 기대하던 새 팀원이 서 있지는 않았다.
단지 팀 내에서 키가 작은 편인 상혁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작은 듯한 왜소한 소녀가 문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누구세요?”
상혁이 묻자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작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렸다.
“나···.” “나를 팀원으로 받아라아아아앗!!”
상혁은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설사 이게 우주가 밀어주는 인연이 맞다고 해도, 얘는 무조건 반품해야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