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55화 (56/485)

055. 뜨거운 감자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중 하나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은 본능’이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튜브에 대놓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을 찾아보자.

아마 수백에 가까운 지적 댓글을 보게 될 것이다.

회귀전 인터넷 황금기를 살아온 상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대놓고 반박거리가 넘치는 강연 내용을 선정했다.

사실 효율성 자체는 상혁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발 요소 중 한가지였다.

게임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는데 개발하는데 몇 달이 걸리는 그런 요소를 억지로 집어넣는 것은 어리석은 개발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게임이란건 수많은 요소의 집합이고 기획자로써 상혁은 그 수많은 요소들이 게임에 끼칠 영향을 시뮬레이션하고, 판단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이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유능한’ 개발자들을 공격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사실 소비자에게 거의 영향이 없는 요소를 삭제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을 낮춘다면, 그것을 싫어하는 소비자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원가절감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회사의 이익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데 있었다.

상혁은 적어도 게임업계에서만큼은 그런 자세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꼴랑 능력치만 조금 더 높은’ 아이템을 위해서 수백~수천시간을 유저에게 투자할 것을 강요하는 게임들.

게임의 수명을 ‘억지로’늘리기 위해서 들어가는 요소들.

그런 것들을 상혁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강연에서 상혁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까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유저나 개발자의 비판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의 의도대로, 천하대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공개된 강연 내용은 바로 해외 게임 웹진을 통해 기사화되어, 인터넷에서 뜨거운 불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자네가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아직 준비도 안 된 서비스를 2년이나 앞당겨서 오픈해달라는 그 개발자가 그 정도로 미친 놈일 줄은 몰랐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크리스가 쓴 웃음을 지었다.

“거기 반응은 어떻습니까?”

“뭐,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면서 좀 시끄러워졌지. 대부분의 개발자는 그 소년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테니까.”

“유저들은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절반. 왜 니가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을 함부로 평가 절하 하냐는 의견이 절반.”

“뭐, 그걸 노리고 의도적으로 한 이야기일 테니까요.”

“그걸 노리고 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천재적인거지. 지금 여기서는 아예 ‘나이츠 어셈블’의 체험판을 게임샵에서 돈 받고 팔고 있다니까?”

“체험판을요?”

“미국은 인터넷이 느리잖아.”

사실 웹에서 받을 수 있도록 상혁이 체험판을 인터넷에 공개하긴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는 느린 속도의 인터넷을 쓰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친구집에서 CD를 복사하거나 게임샵에서 복제 CD에 담긴 체험판을 구매하고 있었다.

조금 소름끼치는 점은, 체험판 실행 부분이 약관에 그에 대한 부분이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50센트의 순이익 이하를 취하는 조건으로 본 게임의 체험판의 복제 및 상업적 이용을 허가함’ 이라고.

덕분에 지금은 미국의 게임샵 어느 곳에서나 복제된 나이츠 어셈블의 체험판을 1달러 정도에 구매할 수 있었다.

“이슈가 꽤 되었나봐요?”

“신문에도 꽤 실렸어. 다른 개발자들의 코멘트랑 같이.”

“코멘트가 있어요?”

“잠깐만, 지금 내가 몇부 가지고 있는데···. 아, 여기 있다. ‘눈보라’사의 개발자중 한명은 이렇게 이야기했군."

-게임 망해서 두 달 동안 컵누들만 먹으면서 개발해본 적 없는 애송이나 할 만한 이야기다-

"그리고 ‘쉼즈’의 개발자 중 한명은···."

-소년의 말이 맞다. 빌어먹을 법학과 경제학을 배운 윗대가리들이 저 소년의 반만 닮았으면 쉼즈의 개발은 3배는 편해졌을 텐데-

"···라고 했다네.”

“안 그래도 상혁이 저에게 강연 이후로 체험판의 동시접속자 수가 매우 늘었다고 이야기해줬어요.”

“그걸 매우라고 이야기했다면 엄청나게 겸손하게 이야기한 거겠지. 아무튼 그것 때문에 우리 쪽에서도 계약 조건을 다시 검토하자고 이야기가 나왔어.”

“그 정도입니까?”

“이봐, 지금 여기서 나이츠 어셈블은 ‘뜨거운 감자’라고. 유저의 절반은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은 어떤 게임일까?’ 하고 플레이하고, 유저의 절반은 ‘대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자’ 하고 플레이한단말이지. 우리가 X-BOX를 정식으로 판매할 때까지만 지금의 이슈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린 우리 게임기의 예상 판매량을 훨씬 위로 조정해도 될 거야.”

“좋습니다. 그럼 언제 결정이 날까요?”

“흠···. 아무리 그래도 우리 온라인 서비스의 오픈 시점을 2년이나 앞당기는 건 무리가 있지. 로얄티를 ‘0’ 수준까지 낮추는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그 조건은 딱히 그에게 메리트가 없을 겁니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하게 자기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게임을 하는 거니까요.”

“그게 정말이면 진짜 미친놈이군. 수천만 달러가 될 수도 있는 돈을 그것 때문에 포기한다고?”

“상혁은 그런 사람입니다.”

“젠장, 그러면 이야기가 복잡해지는데···. 돈으로 메꾸는 게 더 쌀 정도란 말이지···.”

아무리 이슈가 되고 게임기 판매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단 한 개의 게임을 위해 통합 온라인 플레이의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다는 것은 크리스가 보아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크리스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

“그래도 그런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도 있는데, 그런 유저들을 개돼지로, 개발자를 가축업자에 비교한건 좀 심했어.”

게임부실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상혁에게 민준이 말하자, 상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뭐, 나도 그런 게임 좋아하는 유저니까 할 말이 없긴 하지.”

“그런데 그런 말을 해? ‘내가 정의고, 나머지 개발자는 쓰레기다’ 라는 식으로?”

“그래야 어그로가 끌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다가 나중에 니가 만든 게임이 유저 마음에 안 들면 변했다고 욕 무지 처먹을 걸?”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아냐,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유저들이 욕할 일이 없을 거라고?”

“아니, 내가 돈만 보고 게임을 만드는 일이 없을 거라는 소리야.”

그때, 수화기가 울리며 서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음···. 헬로우? 나이스 투 밋유?”

갑자기 영어를 쓰는 서연을 보며 상혁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크리스 씬가보네?”

“아 네, 잠깐 기다리세요. 금방 바꿔드릴게요를 영어로 뭐라고 해요?”

“그냥 전화 줘.”

상혁이 피식피식 웃으며 수화기를 건네받자, 서연은 붉어진 얼굴을 긁적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상혁은 그런 서연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잠시 바라보다 수화기를 통해 영어로 말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아, 상혁 씨. 저 크리스입니다.”

“예. 무슨 일이시죠?”

“계약 조건에 대해 재협상을 진행할까 해서요.”

“아, 그런가요? 그럼 편하실 때 아무 때나 방문해주세요. 가급적이면 4시 이후로요.”

“학교 수업 때문이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바로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네.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 뵙죠.”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가 부실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상혁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상혁에게 말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커피를 정말 잘 타시네요. 미국에 가면 여기 커피맛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로스팅한 원두를 드릴테니 가서 타 드세요.”

“아, 매우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희 조건은 검토해보셨나요?”

“네. 하지만 아무리 고려해도 그 조건엔 무리라는 결론을 통보받았습니다. 2년이나 서비스를 당기기에는 자금을 떠나서 기술적인 문제가 너무 많아서요.”

“흠···. 그럼 어쩌죠? 저는 로얄티 할인에는 관심이 없는데.”

크리스는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든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자신이 준비한 카드가 최선임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으면 정말로 계약을 포기해야할 수 도 있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저희 아버지는 작은 낚시 가게를 운영하셨었죠.”

“아, 그러시군요.”

“가게는 작았지만 단골은 꽤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저런 가르침을 받았었죠. 그 가르침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상대가 모르지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찾아라’ 라는 것이요.”

“좋은 말이네요. 게임 개발도 비슷하니까요.”

“그런가요?”

“생각해보세요. ‘쉼즈’가 나오기 전에 ‘쉼즈’같은 게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유저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적어도 판매량만큼의 숫자는 절대 아니었겠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러하네요.”

“그래서, 저희 측에 제시할 ‘저희도 모르는, 저희가 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요?”

“원래 원하시던 것은 저희 온라인 서비스의 조기 오픈이었죠? 서버를 저희 쪽에서 관리하는 통합 온라인 서비스요.”

“예.”

“그건 원래 유료로 기획된 겁니다. 월 얼마씩을 받고 온라인 플레이를 지원해 주는거죠. 그런데 월정액을 받으려면 아시겠지만···”

“게임 수가 부족하시군요?”

“제일 곤란한 게 그거죠. 게임 하나를 위해서 월정액을 부담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그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은 P2P 방식에 방만 저희 쪽에서 매칭시켜주는데 그것도 서버를 엄청나게 증설해야했어요. 게다가 데디케이트 서버 방식인 ‘모험가의 주점’은 지금 거의 접속이 불가능한 수준이라 500명만 접속 가능하게 해놔서 대기 인원이 수십만이고요. 랙도 엄청 심하죠.”

“그렇죠. 아무래도 북미 쪽에서 서비스를 하시려면 장비가 북미쪽에 있는 게 편하실 테니···.”

“이해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래서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통합서비스의 정식 오픈이 아니라, 아예 나이츠 어셈블의 전용 서버를 구축해드리는 걸로요.”

크리스가 가져온 카드.

그것은 MS측에서 나이츠 어셈블의 글로벌 서버를 통째로 구축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흠···. 월 이용료를 받고요?”

“아뇨. 서버 관리비 및 구축비는 저희가 부담하는 조건입니다.”

상혁은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마치 ‘짜잔, 어떠냐?’ 라는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크리스의 제안은, 상혁이 바라던 것 이상이었다.

가능만 하다면, 서버 관리 부담도 크게 줄고 현재 발생하는 핑문제도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은 제안이네요.”

“그렇죠? 사실 저희도 통합 온라인 서비스 제공 전에 각 게임들에 대한 서버 운영 경험이 필요했으니까요. 베타 테스트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양측 모두에 이득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혁 씨가 바라던 것처럼, 유저들도 쾌적한 환경에서 나이츠 어셈블의 온라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을 거구요.”

그러나 상혁은 크리스의 제안을 바로 수락하는 대신,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크리스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크리스에게 덤덤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 씨가 지금 한국 오신지 얼마나 됐죠?”

“첫 만남 이후에 다음날 강연에 함께 가고 1주정도···.”

“그쵸 1주일이죠. 문제는 그 일주일 사이에 상황이 좀 변했어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 한 장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탁자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사진에 실려 있는 한쪽이 은색 금속으로 되어있는 검은색 물체.

플라스틱으로 된 검은색의 표면은 크리스가 가장 경계하는 물건과 동일한 질감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한눈에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하얀색 구멍과 함께.

“혹시 이거···.”

“맞아요. 소니에서 개발중인 네트워크 어댑터의 시제품이에요.”

그 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일주일의 시간.

그 시간동안 나츠가 상혁에게 PS2의 온라인 플레이를 위한 모듈의 완성을 통보했다는 것.

그리고 조건만 맞추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했을 계약에 기존 게임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SANY라는 거인이 끼어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발 이거 귀찮게 되겠는데···.’

경쟁자가 있으면 당연히 가격은 올라간다.

‘그래도 어쩌면···.’

적어도 일주일동안 자신은 상혁과 함께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고 상혁의 편에 서서 MS측에 좋은 조건을 타내기 위해 싸운 동지였다.

그리고 상혁은 동지를 배신하지 않을 인물이라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크리스는 언제나 자신이 게임부에 올때마다 맛있는 커피를 타준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상혁의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고등학생이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