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54화 (55/485)

054.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천하 대학교에는 강연을 위한 강당이 여러개 있었지만, 초청 강연은 주로 ‘대강당’이 아닌 ‘소강당’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대 1,000명 가까이 수용 가능한 대강당에 듬성듬성 사람이 채워진 것 보다는, 2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공간에 꽉 찬 인원이 강연자로 하여금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 강연은 게임에 관련된 학과가 아닌 학생들도 꽤 많이 참여 했기에 소강당은 자리가 없어 서 있는 학생들을 포함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잠시 후, 행사의 전통대로 학장인 임하균이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오늘의 강연자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제 12회 천하대 외부 명사 초청 강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행사는 1990년 처음 시작되어···.”

매년 똑같은 행사 소개가 이어지고, 이윽고 강의자를 소개하는 부분이 되자, 행사장이 술렁이는 분위기로 변했다.

“···이전에도 젊은 기업인이 초대된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은 특별하게도 저희 천하대 역사상 최연소 강연자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강연을 맡아주신 분은 현재 선문 고등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인 고등학생으로···.”

상혁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연단으로 걸어나갔다.

“그럼 오늘의 연사이신 게임 제작자 이상혁 군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들 천하대에 방문한 귀한 손님을 힘찬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연단으로 걸어 나온 상혁은 총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강당 정면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박수소리가 잦아들며 수백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

상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거절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그렇게 대단한 개발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디가서 강연같은 걸 할 만한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천하대 음악과 교수님께 도움 받은 부분도 있고, 담임선생님의 부탁도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시작된 상혁의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여기 한 게임이 있습니다. 운과 시기가 맞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이요. 그리고 그 게임은, 그 흥행의 가치를 인정받아 후속작으로 제작됩니다. 많은 투자금이 몰리고, 수많은 개발자가 추가되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사진의 의결로 선출된 새 CEO가 개발팀장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효율성’이었죠.”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청중들은 상혁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혁은 계속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흔히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합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버는 게 미덕이라고 평가받곤 하죠. 그것을 단어로 압축하면, ‘효율성’이란 단어가 됩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유저의 돈을 끌어 모을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사의 리소스를 아끼는지요.”

숨을 한번 몰아 쉰 다음, 상혁은 말을 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하죠. 6달 동안 개발해서 10만 달러를 버는 개발자보다, 2달 동안 개발해서 100만 달러를 버는 개발자가 더 유능하게 평가 받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이 과정에서 원작의 재미를 강조하던 개발팀장이 잘려나갑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에서 그 ‘엄청난’ 효율로 많은 매출을 올린 새 팀장이 들어오게 됩니다. 슬프게도, 그는 너무나 ‘유능’ 했기에 기존에 있던 리소스를 재배치하고 살짝 손을 봄으로써 작업량을 최소화하고, 필요한 부분만을 추가하며 게임을 바꿔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어요. 개발비는 줄어들고 매출은 엄청나게 올라갔죠. 새 유저들이 엄청나게 유입되고 게임은 크게 흥행했습니다. 그러나 전작을 너무나 사랑했던 몇몇 유저들은 후속작을 컴퓨터에서 지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사랑했던 그 게임이 아니야.’

“그리고는 후속작을 중고샵에 팔아버렸죠.”

여기까지 말한 상혁이 청중을 보며 물었다.

“자, 여기서 이 후속작은 잘 만든 게임일까요? 아니면 못 만든 게임일까요?”

웅성거리는 청중들을 바라보던 상혁은 그중 한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 형? 어떻게 생각해요?”

“흠···. 주주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득을 끌어냈으니 잘 만든 게임이 아닐까요?”

“좋은 대답이네요.”

상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르지만요.”

상혁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러분이 직접 창업을 해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결국 회사에 취직해서 개발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개발자의 유능함은 회사의 기준으로 평가받겠죠. 예를 들면 ‘저 개발자는 2년이 걸릴 프로젝트를 1년 만에 완성해서 100억을 벌었다더라.’ 같은 식으로요. 저는 그게 굉장히 잘못된 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잘못된 건가요? 효율성을 따지는 건 당연한 거지 않아요?”

아까 상혁에게 지목받았던 학생이 손을 들며 말하자 상혁이 답했다.

“맞아요. 당연한거죠. 회사는 직원에게 효율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죠.”

“그럼 그게 왜 잘못되었다는거죠?”

“그건 유저 좋으라고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 회사 좋으라고 만드는 게임이 되기 때문이에요.”

상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가 장사가 잘되고 매출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해서 ‘저길 봐! 카지노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있네!’ 하지는 않잖아요?”

계속해서 상혁은 담담한 말투로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위 말하는 ‘유능한’ 개발자들이 어떻게 게임을 망치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상혁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심시티’ 시리즈를 성공시켜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은 개발자가 쉼즈를 개발할 때 얼마나 낮은 대우를 감수해야했는가 부터 단순히 게임을 숫자로만 평가하는 경영진이 게임을 망쳐놓은 수많은 사례들을 들며, 그리고 그런 문화로 인해 게임 개발자들이 스스로 ‘유능하다’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게임을 어떻게 망쳐놓았는지를.

그렇게 상혁은 철저한 이분법적인 논리에 따라서 순수하게 ‘선’과 ‘악’으로 게임을 분류하고 돈을 벌기 위해 게임에 손을 대는 것을 ‘악’으로, 망했어도 무언가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을 ‘선’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듣는 이로 하여금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이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이 ‘사악한 악의 산물’이라고 평가 절하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그 시점에서 상혁은 아예 질문까지 싹 거부하고는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당의 분위기는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져있었다.

상혁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인원들과, 완전히 반대하는 인원들로.

강연을 듣는 크리스는 상혁이 왜 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어제 미팅을 했던 상혁은 굉장히 생각이 깊고 논리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이런 식의 강연을 한다고?’

아마 상혁의 팀원들조차 상혁의 오늘 이야기를 들었으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딱히 추궁해도 감정적으로 속시원해진다는 것 말고는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 중인 게임 데이터가 유출 되었을 때도 유출 당사자인 성연에게 화를 안낸 인간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듣는 이를 화나게 하는 강연 주제를 선택하고는 그것을 밀어부쳤다는 게 크리스의 머릿속에 묘한 위화감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상혁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자신이 발생시킨 이 소란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청중을 향해 물었다.

“질문 있으신분?”

아이비리그의 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던 크리스는 당연히 대학교에서 수많은 교수들이 강연한 것을 본적이 있었지만, 단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본 어떤 강연도 지금처럼 청중 모두가 손을 들게 만든 강연은 없었다는 사실을.

***

“그러니까, 상혁 씨는 게임 개발자가 돈을 추구하는 건 무조건 악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뇨, 돈은 추구할 수 있죠. 단지 유저를 원숭이처럼 취급하는 개발자가 악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적어도 자기 게임을 사주고 자신에게 돈을 지불하는 유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좀 더 재미있는 즐길거리를 제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거죠. ‘오, 지금 있는 장비에 이름하고 능력치만 바꿔서 상위 장비로 넣어서 뿌리면 유저들이 좋아하겠지?’ 같은 개같은 마음 말고요. 예. 거기 손들고 계신 이쁜 누나 질문하세요.”

“네. 저는 경영학과 3학년 이지나라고 합니다. 상혁 씨에게 질문하고 싶은데요. 저는 마리의 눈물을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오늘도 상혁 씨가 온다고 해서 싸인을 받으려고 가져왔고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효율성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 상혁 씨의 말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마리의 눈물’만 해도 리소스 재활용이 된 부분이 꽤 있지 않았나요? 본인도 그렇게 하면서 무조건 나쁘다라고 하는 건 안 좋은 거 같아요.”

“예, 마리의 눈물도 어느정도 리소스 재활용이 된 부분이 있죠. 근데 그때는 저희가 개발팀이 꼴랑 4명인 상태에서 고등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남는 시간에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그리고 그 게임은 지나 씨도 인정하시겠지만 그런 개발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오버퀄리티죠. 저희는 할 수 있는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서 게임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리의 눈물’에서 나온 수익 대부분을 차기작 퀄리티 업그레이드에 쓰고 있죠.”

제 입장에서는 그래요. 상혁은 말을 이었다.

“‘좋은 효율성’이란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드는 거지, 충분히 가능한 걸 날려버리고 가성비 좋게 개발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크리스는 자신이 원하던 정보를 캐치할 수 있었다.

어째서 상혁이 X-BOX LIVE의 서비스를 2년 당겨서 오픈해달라는 무리한 요청을 한 건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상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냥 자기 게임을 유저들이 랙없이 편하게 플레이하길 바라는 거군. 그게 가능한 인프라를 MS측에서 준비해주길 바라는 거였어.’

영업의 기본은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가 파악한 상혁은 온갖 미사여구나 허황된 데이터를 보이며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단순하게 ‘내 게임을 유저가 더 즐겁게 플레이 하게 해주고 싶다.’ 같은, 어찌보면 고등학생 개발자에 걸맞는 유치하고 단순한 사고방식에 가까웠다.

물론 그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대학교 강단에서 다른 개발자를 ‘유능한’게 아니라 ‘사악하다’고 폄하해서 온갖 질문 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근데 밉지가 않다.’

아마 경영자라면 엄청나게 싫어할 타입의 개발자일 것이다.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요소를 개발하기 위해서 수만 달러를 더 쓰게 해달라고 할 타입의 개발자였으니까.

그러나 유저는 상혁의 강연을 들으며 저런 개발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크리스는 저 영악한 고등학생이 어째서 오늘 강연 주제를 이런 식으로 잡은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holy mother···.”

오늘 강연 내용은 당연히 천하대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공개된다.

그리고 상혁은, 오늘 강연을 통해 전세계의 개발자들에게 선전포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돈이나 밝히는 쓰레기들’ 이라고.

이유? 아마 상혁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직 어려서 업계의 쓴맛을 못본 애송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마도 상혁과 함께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섞어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저 영악한놈이 이제 노이즈 마케팅까지 하는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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