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팀원과 외주
당연히 처음부터 콘솔로 개발한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pc판 발매를 늦춘다는 이야기는 이미 완성한 버전을 발매하지 않고 묵혀둔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까지하면서 아직 발매도 되지않은 신형 게임기에 비중을 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이다.
그렇기에 크리스는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 진의를 먼저 파악하고자 했다.
“그렇게 까지 해 주시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로얄티 제로? 아니면 투자금이 필요하신겁니까?”
“죄송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조건은 그게 아니에요.”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로얄티는 다른 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특별히 대우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투자금은 아시다시피 저희가 법인이 아니라서 받을 상황도 아니고요.”
“그럼 뭐가 필요하신 겁니까?”
“통합 온라인 서비스요.”
“예?! 그걸 어떻게···.”
애당초 X-BOX자체가 온라인 서비스인 X-BOX LIVE를 전제로 개발된 콘솔이긴 했지만, 실제 X-BOX LIVE서비스는 해당 콘솔이 아닌 다음 세대의 X-BOX ONE이 출시되며 이루어졌다.
그 전에는 단순하게 기기간의 통신 기능만 지원하고 있었을뿐, 2020년도처럼 게임기=온라인 서비스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이 개발자가 아직 비공개인 X-BOX의 통합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크리스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상혁은 ‘미래에서 봤슴네다’ 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대략적인 추정 근거를 꾸며서 이야기 해 주었다.
“추정은 어렵지 않죠. 어디보자···.일단 100mbps급 이더넷이 탑재된 부분부터 이야기할까요? 단순하게 F2P기반의 멀티를 위해서는 좀 과한 사양이죠. 처음 출시하는 게임기가 경쟁사도 탑재하지 않은 기능을 무리하게 탑재했다? 그것도 더 높은 사양 때문에 단가도 맞추기 힘든 상황에서? 그건 의도가 있다고 봐야겠죠.”
“그게 통합 온라인 서비스라는 건가요?”
“그렇게 보는 편이 합리적이겠죠. 뭐, 아님 말고요.”
“그렇다면···. ‘만약에’ 저희가 그런 서비스를 실제로 준비하고 있다면, ptw측에서 저희에게 원하는 건 뭐죠?”
“서비스 개시시기를 저희 게임 출시일에 맞춰서 앞당겨주셨으면 합니다.”
상혁의 말은, 현재 MS에서 진행중인 X-BOX LIVE의 서비스 개시를 앞당겨 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로얄티를 제로로 해달라는 조건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이었다.
“불가능해요! 아직 내부 테스트 중인 기능이고 인프라도 준비되지 않았단 말입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니까 로얄티도 그대로 드리겠다는 조건으로 하는 거잖아요. 저희가 받을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그쪽에서 준비 중인 서비스를 앞당겨 달라는 거죠.”
“기술적 문제가 너무 많아서 무리일 듯 한데요···. 아마 건의를 올려도 바로 기각될 겁니다.”
“그럼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죠. 저흰 PC판 발매에 주력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상혁이 냉정하게 협상을 끊자 크리스가 급하게 상혁을 불러 세웠다.
“어려운 조건이니 만큼 저희 쪽에서도 확신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일정을 앞당기는데 성공했음에도 PS 진영에서 출시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PS2는 네트워크 어댑터 출시까지 한참 걸릴 테니···.”
“엑? 그건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그냥 게임 제작자의 감입니다.”
이정도로 게임사 사정에 대해 깊이 아는 놈이 말하는 게 단순한 감에서 나올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크리스는 일단 상혁에게 판단의 보류를 요청했다.
지금 안건은 자신 혼자 결정하기엔 너무 큰 건이었기 때문에.
“우선 본사측이랑 연락을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미팅하는 걸로 할까요?”
“그러시죠.”
나머지 팀원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크리스는 그길로 부실에서 나서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상혁은 언제나처럼 부실에서 팀원들의 질문 공세를 처리해야했다.
“왜 그런 제안을 한 거야?”
“오빠, 나츠 씨는 버리는 거예요?”
“난 니가 뭔소리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는데 쉽게 설명 좀···.”
그러자 상혁이 미소를지으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아니, 이유는 내부 회의할 때 다 말해줬잖아요.”
“그랬나?”
“좀 설명 할라고 하니까 ‘뭔소리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냥 니가 알아서 처리하는 게 좋겠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엌···. 미안···.”
“그리고 이번 제안은 나츠 씨를 버리는게 아냐. 그쪽에도 같은 제안을 했으니까.”
“같은 제안을요?”
“SANY에서 네트워크 어댑터 출시를 당겨주면 PS2판 출시를 고려해보겠다고 했지.”
“아···.”
“근데 그건 지금 바로 개발하기는 좀 무리가 있거든. 나츠 씨 힘으로 밀어붙이기도 어렵고.”
“그래서 나츠 씨는 뭐래요?”
“이야기는 해보겠는데 크게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뭐, 직장인 입장이란게 다 그런 거니까···”
“꼭 직장 한 십년 다닌사람 같이 이야기하네···.”
“헤헤···.”
“근데 굳이 온라인 기능에 목매는 이유가 있어? 우리 게임은 싱글도 가능하잖아.”
“있죠. 뭐, 아까 내부 회의때 설명하려 했던거 니까, 지금 다시 쉽게 설명 드릴게요.”
상혁은 화이트보드를 끌고와 거기에 2001년 11월 이라고 적었다.
“이게 X-BOX의 예상 발매월이예요. 날짜는 저도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월만 적을게요.”
“반년 정도 남았네.”
“그리고 우리 게임이 출시 가능한 시점은 X-BOX포팅 과정을 감안해도 11월까지 가능하죠.”
사실 게임의 핵심 기능은 모두 구현 되어 있었고 맵 에디터에 확장용 리소스까지 모두 준비되어있는 상태였다.
맘만 먹으면 한두 달 내 PC판 출시도 가능한 상태.
상혁은 이 상황에서 상혁이 X-BOX 측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저희가 현재 북미측에 배포한 PC판 멀티는 P2P라는 방식으로 돌아가요. 유저 각각이 서버가 되서 서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거죠. 저희는 로비 서버만 운영하고요. 쉽게 말하면 배틀넷 같은 방식이라고 보시면 되요. 방을 관리하고 접속하는 건 저희쪽 서버가 처리하고, 실제 게임을 시작하면 각 컴퓨터끼리 데이터를 주고 받는 거죠.”
“그게 문제가 있나?”
“문제는 단순히 방을 만드는 건 상관없는데 저희 게임에 MMO 스타일의 로비가 붙어있다는 게 문제에요. 그건 불특정 다수를 회사 서버에서 관리하는 데디케이티드 서버(Dedicated Server) 방식이거든요.”
“음···. 그게 문제가 있나?”
“어떤 유저가 뉴욕에서 우리 게임을 한다고 쳐요. 그럼 서울에 있는 저희 서버까지 데이터를 보내야겠죠? 그렇게 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흠···.”
“참고로 뉴욕이랑 서울간 거리는 11만 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빛이 1초에 30만 키로미터를 가니까···.”
“빛의 속도로 전달해도 0.3초 걸리는 거죠.”
“아, 그래서 MS측에서 북미쪽에 서버를 만들게 하고 그 서버를 관리하게 하겠다?”
“그쪽은 인프라가 있으, 아니, 인프라를 만들 힘이 있으니까요.”
상혁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만을 위해서 구축해야한다면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그런 계획이 있었을 테니 좀 당겨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흠···. 그게 그쪽에서 제안한 로얄티 할인을 포기할 정도의 메리트가 있어?”
“저희한테요?”
“어.”
“아뇨.”
“그럼 왜 하려는 거야?”
“유저한테는 메리트가 있으니까요.”
상혁이 말했다.
“저는 단순하게 이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MS에서 제공하는 대형 서버에서 쾌적하게, 랙 없이 게임을 즐겼으면 하는 것 뿐이에요.”
그러자 이번엔 민준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그냥 북미에 서버를 구축하면 안 돼?”
“그건 안 돼.”
“어? 왜 안 돼요 오빠?”
“귀찮아.”
이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팀원들은 입을 떡 벌리고 상혁을 바라보았고, 상혁은 고개를 흔들며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북미에 있는 걸 관리하려면 그쪽에 사람도 뽑아야하고 월급도 줘야하는데 관리하기 귀찮다.”
“관리할 사람을 뽑으면 되잖아.”
“그것보다 그냥 MS측에서 서버 열어주면 거기에 우리 서버 구축해놓고 관리는 MS측에 맡기는 게 훨씬 편해요.”
“그건 그렇긴 하지···.”
“말했지만 우린 개발팀이지 관리팀이 아니잖아요. 열심히 잘 만들어서 고객한테 팔고나면 우린 다음 게임을 만들어야죠.”
“흠···. 궁금한 게 있는데···.”
“뭔가요?”
상혁이 답하자 성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건데 혹시 상혁이 너는 팀원이 늘어나는 거에 대해서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회피하는 것 같은 기분이거든? 혹시 이유가 있어?”
“노이로제라···.”
사실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실제로 상혁은 충분히 내부 팀원으로 영입해도 될 만한 인력을 전부 외주로 돌리거나, 혹은 이번처럼 다른 회사에 일감을 떠맡기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으니까.
번역을 담당했던 코즈에를 끝까지 팀원으로 영입하지 않은 것이나, 도트를 맡고 있는 한태민을 팀에 영입하지 않은 것처럼.
“뭐,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아니에요.”
그러나 대답은 상혁이 아닌 민준에게서 나왔다.
“쟤,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못 믿거든요.”
“상혁이가?”
상혁은 작업할 때 전적으로 상대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기에 성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아닌거 같은데?”
“그건 형이나 서연이가 상혁이 믿을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줬으니까 믿고 맡기 는거죠. 쟤 기준은 간단해요. 밑고 맡길수 있으면 팀원, 아니면 외주.”
“흠···.”
성연이 민준의 말을 곱씹고 있는데, 상혁이 입을 열었다.
“넌 왜 내가 할 대답을 대신하고 있냐?”
“그럼 아냐?”
“뭐···. 맞긴하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뭔가 굴러가는 것을 불안해하는 것도 회귀전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었기에, 상혁은 민준의 의견에 순순히 동의했다.
“뭐···. 여러분이 계속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상 아마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저희는 회사를 차려야할 거예요. 아무래도 동인팀 형태로는 할 수 있는 행동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회사가 되면, 사람도 뽑게 되겠죠. 건물도 구해야할 거고요. 지금처럼 학교 부실에서 놀면서 개발하는 분위기가 아니게 될 수도 있죠. 사람이 늘어나면서 관리해야할 것도 늘어날 거고요. 저는 단지, 그 시점을 가능한한 늦추고 싶을 뿐이에요. 지금 충분히 즐거우니까.”
상혁에게 중요한건 그것이었다.
유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을 즐겁게 개발하는 것.
비록 그것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손해나 제약이 있더라도 상혁은 그 댓가를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 있었다.
그것이 직접 고용이 외주보다 저렴함에도 상혁이 굳이 팀 규모를 늘리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그럼 이번에 강연 가서도 팀원 구하지 않을 거야?”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현주가 상혁에게 묻자, 상혁은 잊고 있었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렇죠. 일단은 지금 체제로 가려고요.”
“거기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 안할텐데?”
“제가 수락한건 초청강연이지 리쿠르트(Recruit : 채용)가 아니잖아요.”
“뭐, 기대는 어느정도하고 있을 거라는 거지. 내용은 너한테 맡길 거지만.”
그때, 서연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물었다.
“저기···. 강연이라니 그게 뭐에요?”
“어, 팀원들한테 이야기 안했어?”
현주가 말했다.
“상혁이, 이번에 천하대학교에서 강연 제의 받았어.”
대학교에서 고등학생을 초대하여 강연을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놀란 팀원들이 상혁을 바라보자, 현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 커리큘럼중에 학생들이 투표로 뽑은 외부 CEO 초청해서 강연하는 행사가 있는데, 상혁이 이번에 1위 했다고 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