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칭찬과 보너스는 외주도 춤추게 한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태민은 자기 귀가 잘못되었는가를 의심했다.
분명 일본가기 전에 알파버전 제작을 위한 최종 리소스를 전달하면서, 상혁이 결과물에 대해 극찬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쪽 하자가 없는데 결과물을 갈아엎자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던 태민은 이유가 뭔지 상혁에게 물었고, 상혁은 팀원들에게 했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이유를 대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을 보고, 성연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진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기본적으로 상혁이 태민에게 설명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우선 보내준 결과물은 완벽했으며 절대 그쪽의 하자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태민측의 작업퀄리티가 너무 높았기에 지금의 컨셉이 해당 퀄리티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찰나에 일본에서 새 컨셉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지금 메일로 보낸 그 컨셉이라면 태민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100% 쏟아 부을 수 있는 멋진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욕심을 내고 싶다.
대충 이런 식으로 상대를 띄우며 말을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려 먹히는 것임에도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위해서 일의 수준을 올리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혀로 태민을 구워삶은 상혁은 늦어진 일정에 대한 비용과 추가 작업에 대한 상여금도 함께 지불하겠다고 이야기했고, 통화의 끝에는 오히려 감사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통화를 종료했다.
“어휴, 그쪽도 작업이 많으실 텐데, 일부러 저희 수준에 맞춰서 게임 컨셉까지 변경하신다니 저희가 거절할 수가 없네요. 보내주신 컨셉아트는 잘 받았으니 바로 그쪽 작업해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해 주세요. 퀄리티만 나오면 되니까요. 그래도 태민 씨 실력으로 그 컨셉이 어떻게 완성되어 나올지 좀 기대되기는 하네요.”
“하하하! 맡겨만 주십쇼! 보너스도 주신다는 데 제가 밑에 애들을 채찍질을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보내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드리고 있는 거 아시죠?”
“저야말로 항상 믿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로 작업하러 가볼 테니 푹 쉬십쇼!”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상혁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눈을 떴다.
“뭘 그렇게 봐?”
“아니, 뭐랄까···. 오빠 좀 무서운 거 같아서···.”
“어?”
“방금 그게 연기면 진짜 아카데미 주연상감인데···.”
“흠···.”
“어찌보면 이쪽이 갑인데 너무 저자세로 나가는 거 아냐?”
민준의 말에 상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삼국지를 보면 말이지···.”
“아 저놈의 삼국지.”
삼국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민준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했지만 상혁은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공손찬이 유비에게 병사 3천 명을 줄 테니 서주로 가라고 했을 때 유비가 병사 3천 명보다 장수 한사람을 달라고 했지. 그 장수가 누군지 알아요?”
“누군데요?”
“상산 조자룡. 유비는 혀 한번 잘 굴려서 통솔 95 무력 98 지력 87 정치 74 매력90짜리 초특급 장수를 얻은 거죠.”
“그러니까 엘란테 도터가 조자룡이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누가 저한테 도터 3천 명 준다고 하면 태민 씨는 바로 버릴 건데.”
“그럼 만약에 진짜 조자룡이 될 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어떡할 거야?”
“흠···. 만약에 그렇게 되면···.”
상혁이 혀를 낼름낼름거리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아부아첨이 뭔지 보여드리죠.”
“으아 오빠 징그러···.”
“나한테는 그런 거 하지마라.”
팀원들의 반응을 본 상혁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말 몇 마디 해서 상대가 기분 좋아지고, 그걸로 결과물이 좋게 나온다면 저는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응. 내가 오해한 것 같다. 왠지 팀원들보다 외주인력을 더 챙겨주는 것 같아서 조금 질투 났었거든.”
“뭐, 원하시면 언제든지 칭찬해드릴 수 있는데요?”
“아냐 됐어. 지금 보니까 너한테 칭찬받으면 왠지 기분이 묘해질 거같아.”
“흐흐흐···”
“뭐, 일단 그럼 외주처 쪽도 정리가 된 것 같으니 다들 해산하자고. 그리고 철야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내일 나오고 싶은 사람만 나오고, 쉴사람은 쉬는 걸로 하고.”
성연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의 캐리어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성연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게임부에 나온 팀원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야했다.
“너넨 진짜 미쳤어.”
***
개편이라고는 했지만 캐릭터 스프라이트나 아이템 디자인은 그대로 쓸 수 있었기에, 작업량의 대부분은 기획과 프로그래밍 파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물론 아예 테마가 바뀌면서 음악 자체를 싹 재작업해야 하는 성연을 제외하고.
특히 상혁은 외주 작업물 컨펌부터 스크립트 작업까지 온갖 업무에 얽혀 있었기 때문에 가장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최근에는 성연이 담당한 음악부분에 대한 상담도 함께 맡고 있었다.
물론 질릴 정도의 작업량을 커버하고 있는 상혁이었기에 성연도 처음엔 혼자 작업하려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떤 파트에서건 상혁이 개입하면 막혀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결국은 도움을 받는 걸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타이틀 음악에서 사용할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칼림바는 어때요?”
“칼림바? 그게 뭔데?”
“그 아프리카 전통악기인데, 굉장히 오르골이랑 비슷한 소리가 나는 악기거든요?”
“아니, 아프리카 전통악기를 니가 어떻게 아냐? 너 뭐하는 놈이야?”
물론 2019년쯤 유튜브에서 유행하길래 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상혁은, 언제나처럼 똑같은 핑계로 성연의 추궁을 회피했다.
“책에서 봤어요.”
“대체 어떤 종류의 책을 보고 다니는건지 궁금하군···. 흠. 그래도 오르골 같은 음색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거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을까?”
“알아볼게요.”
자료를 잘 찾는 것도 기획자의 역량 중 하나다.
상혁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인터넷으로 구할 수 없을 경우 악기 수입상이나 아프리카 쪽과 거래가 있는 수입사 측에 연락해서 칼림바를 구할 계획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상담을 마친 후에는 지훈에게 연락을 넣어 마리의 눈물의 일본 매출 상황을 파악한다.
이미 개편 작업 도중에 일본에서 PS2가 발매된 상황이고 ‘마리의 눈물’은 런칭 타이틀로 함께 발매되었기에 PC판과 PS판 두 군대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거기에 크지는 않지만 북미와 유럽쪽 매장에도 어느 정도 진출을 하여 매출을 꾸준히 내는 상황.
그런 식으로 현재는 한/일/영/프/독 5개 국어로 번역해 판매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상혁과 민준은 마의 고3 구간에 진입했고, 서연은 고2가 된 상태.
그렇기에 상혁과 민준은 심각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했다.
대학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솔직히 게임 만든다고 2년 넘게 내신은 갖다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내신으로 가는 건 무리였지만, 수능은 회귀 전 기억도 있으니 좀 고생하면 SKY는 아니어도 왠만한 인서울은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상혁은 딱히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게임관련 학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명대 대학원에 게임학과가 있긴 했어도 그건 대학원 과정이었고, 이미 현업 경력이 긴 상혁에게는 눈에 차지 않았다.
반면 민준은 그래도 대학 졸업 타이틀 하나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라 둘의 의견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빠르게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법인 설립을 통해 정상적인 회사의 구조를 갖추고 싶은 상혁과, 시간을 날리더라도 졸업증은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민준의 의견은 요즘 게임부의 메인 아젠다였고, 그 덕에 게임부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두 사람이 투덜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건, 듣다 못한 서연이 ‘그럼 그냥 따로 가시면 되잖아요. 상혁 오빠는 창업하고, 민준 오빠는 대학 가는 걸로.’ 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이 동시에 ‘안 돼!’ 라고 외친 것이었다.
결국 서로 죽어도 의견은 못 굽히면서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두 사람을 본 서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중재를 포기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으며 그 문제에서 손을 놔버리고 말았다.
당면한 더 큰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E3.
전자 오락 박람회(Electronic Entertainment Expo)라고 불리는, 세계 최대 게임쇼라고 불리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편 작업 이후 빠른 개발을 통해 알파를 넘어 거의 베타버전까지 신작의 개발을 완료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3 참가 자체는 굉장한 부담이었다.
애당초 고등학교 동인팀 따위가 참가할만한 규모의 행사가 아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부스 참가도 신청제가 아니라 초대제라서, E3측에서 초청을 하지 않으면 부스 참가가 불가능했고, 일반인 참가조차도 게임 시연만 가능한 일반 입장이 아니라 컨퍼런스 행사에 참가하려면 별도의 초대장을 받아야 참석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PTW의 경우는 SANY의 서드파티 자격으로 이미 부스 참가권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참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된 상태.
공개할 게임의 시연 버전도 준비가 마무리 된 상황에서 상혁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단 하나였다.
‘과연 홍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E3는 전 세계의 게임 기자들이 참가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주목만 받을 수 있다면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북미나 유럽 쪽에서 낮은 인지도를 가진 PTW입장에서는 신작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시선을 끌어야하는 상황.
이 상황에서, 상혁은 자신들의 게임이 가지는 매력 포인트가, E3에서는 역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플레이해야 게임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게임’인데 ‘플레이를 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다른 회사의 게임들처럼 화려한 3D 그래픽이나 영화같은 연출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퀄리티는 높지만 시대에 떨어지는 듯 한 픽셀 아트의 그래픽을 사용하는 RPG.
하다못해 ‘마리의 눈물’ PS2판이 발매된 상태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북미에서는 PS2가 출시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국내와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어도, 현재는 그 인지도가 아시아 시장에 한정되어있는 상태의 PTW에게, 이번 E3참가는 반드시 성공해야할 행사나 다름없었다.
애당초 게임 자체가 D&D에 익숙한 북미 유저를 대상으로 만든 게임이었으니까.
준비는 이미 완벽하리만큼 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참가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회귀 전에도 중소기업만 뺑뺑이 도느라 E3같은 대형 게임 행사는 참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 E3에 대한 고민으로 상혁이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자, 민준이 다가와 상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 되냐?”
“걱정은 아니고 그냥 긴장 정도. 스트레스 점수로 따지면 한 10점 만점에 5점?”
“뭘 그리 걱정해? 다른 팀원들은 자신만만한데?”
“준비한 게 먹힐까 싶어서. 이거 홍보 준비한다고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상혁이 준비한 행사물품의 대부분은 이미 행사 준비를 위해 라스베거스에 있는 컨벤션 센터로 배송된 상태였다.
아마도 지금쯤 나츠를 통해 알선된 현지 직원들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상혁 본인이 사전 점검을 위해 베거스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방학기간도 뭣도 아니었기에 상혁은 일단 그쪽에 도우미로 파견한 성연을 믿기로 했다.
행사 준비에 대한 모든 부분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를 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성연 씨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렇겠지. 그 정도로 설명을 했는데.”
“후, 그래도 걱정이 좀 되네.”
“너만 그렇다니까? 솔직히, 지난번 서울 코믹때 플래시 몹도 괜찮았지만 이번에 E3이벤트는 뉴스 좀 탈걸?”
그렇게 말하며, 민준이 행사 사은품으로 준비한 패키지를 집어 들었다.
“이건 무조건 먹힌다니까?”
“그렇게 생각해?”
“나도 갖고 싶을 정도니까.”
그제서야 상혁은 고민을 털어버린 듯 민준을 향해 웃었다.
어차피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여기서부터는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단지 상혁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고집으로 매니악 한 소재의 게임을 개발하게 된 만큼, 팀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흥행에 성공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E3행사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상혁은 책상위의 여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