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7화 (48/485)

047. 보상과 창의력

“좀 더 이야기 해봐.”

배경 자체를 변경하면 재작업 할 양이 꽤 많았지만, 민준과 성연은 흥미를 보였다.

민준은 원래부터 해리버터 시리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성연의 경우도 이미 상혁이 발매되자마자 책을 사서 부실에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해리버터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반대하던 분위기가 한방에 들어갈 정도로, 해리버터는 그 정도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해리버터 시리즈의 핵심은 이거죠. 자신이 평범한 소년인줄 알고 있던 해리가 11살 생일에 찾아온 해글위드에게 듣는 대사요.”

“넌 마법사야. 해리.”

성연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상혁은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학을 간 주인공은 신비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인물은 주인공에게 낡았지만 신비한 느낌의 D&D 세트를 건네주죠. 그리고 그 세트를 사용한 주인공은 깨닫게 되는 거예요.”

‘아, 이 D&D는 마법이 깃든 물건이구나.’라고.

“그래서?”

“그 D&D를 넘겨받는 순간 주인공에겐 사명이 생긴 거죠. ‘원탁의 기사를 모아 사악한 마녀를 봉인하라.’ 라는 사명이요.”

“그리고 그 원탁의 기사가 친구들이고?”

“맞습니다.”

“흠···.”

어찌보면 굉장히 클래식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소년이 마법의 세계로 가서 활약한다는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굉장히 인기 있는 스토리였으니까.

그러나 그 클래식함이 역설적으로 게임 컨셉에 매력을 부여해주게 되었다.

단순히 취미를 같이할 친구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원탁의 기사’의 후보를 모으는 일이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행동이 모여 세계를 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확실히 이 컨셉이라면 목적의식도 생기고 네가 말하는 로망이란 것도 부여될 것 같기는 해.”

상혁의 설명을 들은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미 해리포터 분위기의 신비한 멜로디를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민준은, 상혁이 바꾸자고 하는 컨셉이 매력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개편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좋아. 로망을 넣고 싶다는 니 마음은 잘 알겠어. 그런데 지금 이 기획에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거든.”

“치명적인 문제?”

“몰입도 시스템은 어쩔 거야?”

이전 게임 시스템의 핵심중 하나가 몰입도 시스템이었다.

던전 마스터가 되어 친구들을 모아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어가 짠 시나리오에 친구들이 매료될수록 친구들의 대사나 외형이 바뀐다.

처음에 어색하게 질문만 날리던 파티원이 어느새 숙련된 바바리안이 되어 오우거의 머리를 쪼개버리고 포효하는 것을 볼 때의 독특한 감각은, 비록 로망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버리기 어려운 매력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 부분에 대한 해결도 이미 잡아둔 상태였다.

사실 서연과 일주일동안 철야를 했던 것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상혁은 웃으며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 부분은 일단 이렇게 해결할 까 하는데.”

“말하지 못하는 비밀?”

“그러니까 이런 거지. 주인공은 자신이 플레이 하는 D&D가 마법의 D&D라는 걸 알아. 그리고 지금 친구들과 하는 게임의 결과가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그런데 친구들은 모르는 거네? 주인공은 말할 수도 없는 거고?”

“그렇지. 주인공에게는 이게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주인공은 정말 열심히 하거든. 친구들은 그런 주인공을 이해를 못하다가, 점점 감화되면서 나중엔 자신의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되 는거야. 이순간 자신이 D&D플레이어가 아니라 원탁의 기사라고 느끼는 순간에, 친구들 역시 주인공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 중인건지 알수 있게 되는 거지.”

“약간 ‘피터팬’ 같네. 날수 있다고 믿으니까 날게 된 것처럼.”

“맞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의 몰입도 시스템이 그런 형태로 바뀌어 들어가는 거고?”

“그 각 친구들이 각성하는 순간의 연출이 중요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성연이 형한테 달렸어요.”

“어? 나?”

“그래픽은 이미 도트기반 2D 그래픽으로 고정이니까요. 퀄리티를 올려도 한계가 있죠.”

“아, 그러니까 분위기를 전달하는 걸 음악에 힘을 줘서 해결 하겠다?”

“네. 오케스트라든 합창단이든 필요한건 다 쓰셔도 되요. 비용은 지원할 테니까요.”

“흠···. 정확히 그 장면에서 네가 원하는 느낌이 어떤 건데?”

“에픽(EPIC)이요.”

“메모리(memory)에서 에픽(EPIC)이라···. 많이 바뀌긴 하네···.”

추억을 컨셉으로 잡은 게임이 놀이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이상, 기존에 작성해두었던 음악을 상당부분 바꿔야할 것 같았다.

솔직히 부담은 좀 된다.

세상 누가 작업해놓은 곡을 다 버리고 새로 작업하자는데 기분이 좋겠는가.

그리고 지금의 게임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성연은 상혁이 새로 잡은 컨셉이 마음에  듬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주저하고 있었다.

“흠···.”

성연은 상혁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속한 팀의 팀장.

팀내  유일한 기획자.

자신이 아는 한 게임에 있어 가장 진지한 녀석.

그런 녀석이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이 길이 맞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가야지.’

상혁의 제안이 단순히 ‘내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라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면 성연은 무슨 수를 써서든 반대했을 것이다.

이번에 게임을 하나 발매하고, 다음에 상혁이 원하는 컨셉의 게임을 한번 더 발매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아는 상혁은 절대 그런 이유로 이런 제안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오로지 게이머를 위해서.

자신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다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뜨겁게 흥분하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 하는 게 상혁이었다.

‘얘는 진짜 한결같네.’

처음 D&D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자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성연은 왜 그런 마이너한 소재를 가지고 게임을 만드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혁의 부탁대로 D&D를 배우고 플레이하면서, 어느 정도는 상혁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요가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D&D를 즐기는 유저라면 이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리고 이미 멀쩡하게, 그것도 재미로 넘치는 게임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는 상혁을 보면서, 성연은 상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미친놈이야.’

유저에 미친 놈.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에 감동까지 주고 싶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걸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저놈은 돌아이라는 걸.

‘근데 싫지 않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던 성연은 어느새 자신의 주먹이 꽉 쥐어져있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상혁의 흥분에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좋아. 난 찬성. 어차피 규모 있는 음악도 좀 다뤄보고 싶기는 했어.”

작곡가인 성연이 찬성하자 상혁이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혁의 시선을 받은 민준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결국 찬성표를 던졌다.

“나도. 일단 어떻게 될지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알파라는 게 그러라고 만드는 거니까. 만들고 별로면 원래대로 돌리면 되는 거고.”

“좋아. 그럼 개편은 하는걸로 결정 된거다?”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안 되는 줄 알고 심장이 조마조마 했어요.”

그러자 민준이 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서연이 니가 같이 작업했다고 했지?”

“네.”

“잘했네.”

“엥? 별로 한건 없는데요?”

“PT에 컨셉아트 다 니가 그린거 아냐?”

“아···.”

“저게 결정적이었지. 딱 정확하게 바꾸려고 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더라.”

“헤헤···. 그래요?”

“어, 나도 그거 아니었으면 아직도 좀 긴가민가 했을거 같아.”

성연이 옆에서 부추기자 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관광도 포기하고 상혁의 옆에서 밤새 작업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상혁은 잠시 그런 모습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럼 여행 다녀와서 다들 피곤 할테니 오늘은 이만 해산합시다.”

“네~”

“상혁이 너도 가서 쉬어라. 이거 일주일간 작업한다고 피곤했을 텐데.”

“전 뭐 하나만 더하고요.”

그렇게 말한 상혁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더니 컴퓨터를 키자, 성연이 다가와 물었다.

“뭐 할게 남았어?”

“겨우 PT하나 만드는데 일주일이나 걸리지는 않죠. 남은 시간 동안은 외주처에 보낼 작업 요청서 만들었어요.”

“아, 엘란테 소프트?”

“네. 도트 작업 쪽도 수정이 좀 많이 갈 테니까.”

“그래? 근데 만약에 팀에서 나나 민준이가 끝까지 거부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세뇌 될 때까지 한 3일정도 계속 릴레이 설득해야죠.”

“헐···. 무, 무서운 자식···.”

“애당초 우리 지금 버전 게임도 소재도 그렇고 완전 마이너 그 자체잖아요. 반대의견은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어요.”

“흠···. 그럼 외주 작업자들도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 오늘 초대해서 회의하는 편이 좋았을 거같은데?”

“엥? 왜요?”

“어? 팀원 전체가 동의할 때까지 설득한다는 의미 아니었어?”

“외주는 팀원이 아니잖아요.”

의외로 냉정한 상혁의 답변에 성연은 입을 다물었다.

“흠···.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개발자를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어요.”

“어떻게?”

“창의력을 발휘해야하는 개발자. 퀄리티를 올려야하는 개발자.”

“그럼 전자가 우리니까 외주는 후자라는 거야?”

“예.”

그것은 상혁이 현업에서 일하면서 만난 수많은 개발자를 보면서 내린 나름의 분석이었다.

“1945년도에 심리학자 칼 던커(karl dunker)가 만든 촛불문제라는게 있어요. 실험 대상한테 초, 압정, 성냥이 든 상자를 주면서 초를 벽에 붙이라는 문제를 내주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보니 평균적으로 5~10분이 걸렸죠.”

“그래서?”

“이번엔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어요. 빨리 푸는 25%에게는 5달러를 주겠다. 가장 빨리 푸는 사람에게는 20달러를 주겠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기가 있으니까 더 빨라지지 않을까?”

“아뇨, 3.5분이 더 느려졌어요.”

“엑?!”

상식과는 다른 결과에 성연이 놀라자, 상혁은 추가적인 설명을 붙였다.

“이번엔 창의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누구나 풀 수 있는 형태의 쉬운 문제를 주고 같은 실험을 했죠. 어떻게 되었을까요?”

“혹시···. 빨라졌나?”

“빙고.”

“그럼 상혁이 니 말은 보상이 창의력에 방해가 된다는 거야?”

“보상에 대한 약속이 창의력에 방해가 된다는 거죠. 뭐, 어디까지나 심리학적인 해석이긴 하지만요.”

“그럼 외주 인력은 퀄리티가 중요하니까···.”

“확실한 금전적 보상을 약속한 거죠. 제가 바라는 외주는 높은 창의력을 발휘해서 서연이가 잡은 컨셉을 압도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충실하게 서연이가 그린 컨셉아트를 고퀄리티로 작업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거니까요.”

“아···.”

“그래서 저희 팀이 정해진 임금이 없는 거기도 하고요.”

현재는 국내 총판을 통해서 판매되는 ‘마리의 눈물’의 판매 대금이나 이번에 일본에서 5,000카피를 팔아서 번 돈 모두 팀 공동계좌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별도의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팀원들이 사고 싶은 게 있거나 필요한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빼갈 수 있도록 방치해놓았다.

그것은 매 작업마다 고정된 임금을 받는 엘란테 외주자들과는 큰 차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상혁이 너는 그쪽에는 단순하게 작업 퀄리티만 요구한다는 거지? 뭔가 생각하거나 창의적인 걸 요구하는 게 아니라?”

“맞아요.”

“그럼 이번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할 거야? 아무리 그런 경우라도 그쪽 결과물에 하자가 없는데 재작업을 하자고 하는 거잖아?”

“그럴 때 제가 쓸 수 있는 총알이 두발 있죠.”

“총알?”

“칭찬이랑 보너스요. 뭐, 보시면 알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메일을 보낸 후에 바로 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태민 씨? 저 상혁입니다. 지금 메일 하나 보냈으니 확인 부탁드려요. 예. 좀 큰 건인건 아는데 게임 메인 컨셉이 변경 되서 작업하신 걸 좀 많이 고쳐야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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