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코믹마켓의 대박
다행히도, 주문 실수는 아니었다.
대신 코즈에는 다른 이슈가 있었다고 상혁에게 알려주었고, 이유를 들은 상혁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에 한국에 방문했던 게 이슈가 되었다고요?”
‘딱히 이슈가 될 만한 일을 했던가?’
상혁이 되짚어보았지만 딱히 짚이는 항목이 없었다.
단순하게 일본에서 번역 배포한 사람을 한국으로 불러서 커피한잔 대접하고 돌려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상혁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는 것이었다.
남의 게임을 멋대로 번역해서 배포했는데 개발자측에서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며 번역자를 초대해서 감사인사까지 받았다.
거기에 개발팀 대부분이 풋풋한 고등학생.
별천지 같이 보이는 부실 안에 가득한 고급 기자재들.
마치 애니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PTW의 학교 생활이 코즈에가 올린 게시물로 인해서 일본 동인계에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
‘개 부럽다’라는 반응과 함께.
당연하게도 이슈는 관심을 부르고 관심은 플레이를 부른다.
덕분에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구해서 하던 마리의 눈물은 그 뛰어난 게임성이 다시 회자되며 일본 유저들 사이에 매우 핫한 게임이 되어 있었다.
“1,000카피로는 택도 없을 거 같아서 추가 주문했어요.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합니다.”
“뭐 저희야 많이 팔리면 좋긴 한데 비용은 어떻게 하셨어요? 저희는 1,000카피 비용만 드렸을 텐데?”
“그때 번역비라고 따로 주신돈으로 제가 처리했어요.”
“그럼 그 부분은 나중에 저희쪽에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다, 그냥 오늘 판매 수익에서 바로 떼서 드릴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혁은 5천 카피를 모두 파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어마무시’한 인파를 눈으로 보기 전 까지는.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으으!!”
코즈에가 데려온 팀 멤버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패키지를 넘기자 다음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섰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으으!!”
그러자 바로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멤버가 패키지를 앞사람에게 넘기고 또 한 카피가 팔려 나간다.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마리의 눈물’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들은 고민도 안하나?’
서코 때도 꽤 빠른 속도로 팔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같은 페이스는 아니었다.
아직도 뒤쪽에 길게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서 있는 행렬을 보며, 상혁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상혁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방금 저편에서 게임을 산 사람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손님이 내미는 패키지에 사인을 해 주었고 게임을 구매한 남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더니 옆에 앉아있는 서연에게 싸인을 받기 위해 이동했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제값주고 기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은 상혁에게 늘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연속으로 2,500번쯤 넘어가면 슬슬 팔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선착순 걸걸 그랬나?’
지금와서 그 이야기를 했다간 저기 줄서있는 오타쿠들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혁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눈앞에 다가온 팬에게 싸인을 해 주며 영업용 미소를 날렸다.
“죄송하지만 준비한 제품은 여기까지 입니다!”
코즈에가 그렇게 소리를 치기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2초에 한 카피 페이스로 팔아치웠으니까.
5천 카피라고 해도 3시간 정도면 다 팔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싸인은 그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그 덕에 4000카피를 넘어가자 상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붙잡고 싸인을 해야 했다.
거기에 코즈에 팀에서 준비한 ‘마리의 눈물’동인지에 싸인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어 일일이 해주다보니 싸인을 다 마칠 때쯤에는 코믹 첫째날 행사가 종료될 시간이 되어있었다.
당연하게도 죄다 코즈에한테 맡기고 설렁 설렁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던 상혁은, 떨리는 팔에 에어파스를 뿌리며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코즈에가 미리 준비한 얼음물을 내밀며 상혁에게 말했다.
“엄청나네요.”
“전 죽을 거 같아요.”
“오늘 풍경만 보면 저희 완전 인기 서클 같았잖아요! 신나지 않아요?”
“신난 건 신나는 거고, 팔아픈 건 팔 아픈 거죠. 전 구경도 하나도 못했는데.”
“그래도 돈은 많이 벌었잖아요?”
코즈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상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 돈보다 팬들이 기뻐하면 된 거죠.”
사실 상혁보다 서연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서연은 동인지쪽 일러스트도 일부 참여했기에 더 싸인을 많이 했으니까.
그러나 상혁의 걱정과는 반대로, 서연은 오히려 엄청나게 상기된 얼굴로 방방 뛰고 있었다.
“오빠, 보셨어요? 완전 오늘 슈퍼스타 된 기분이었는데!?!”
“팔 안 아파?”
“에이, 이 정도는 침바르면 나아요. 그것보다, 저희 이제 어디로 가요?”
“원래는 좀 돌아다닐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고생해서 그냥 호텔 가서 자야겠다.”
“엑?! 기껏 해외여행 와서 그게 뭐에요! 관광해야죠!”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그리고 팔 아프다니까?”
상혁이 핀잔을 주자 서연은 정말로 기대를 많이 했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코즈에가 급하게 끼어들며 말했다.
“그럼 온천은 어떠세요?”
“온천?”
“오다이바 명물은 코믹이 열리는 여기 빅사이트도 있지만 오오에도 온천도 유명하니까요! 실내 온천인데 엄청 크고 놀거리도 많아요!”
마침 따뜻한 물에 몸을 담구고 싶었던 상혁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고, 서연도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손을 들며 말했다.
“저요! 저 갈래요!”
“저도 온천이면 괜찮을 것 같네요.”
코즈에는 나머지 팀원들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는 상혁과 서연을 데리고는 온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혁은 겨우 여행과 코믹 참가로 인해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으어어어···.”
뜨신 물에 몸을 담그니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은 상혁이 탕에서 나오자, 반대편에서 유카타를 입은 서연과 코즈에가 상혁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상혁도 돈 주고 대여한 유카타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한국으로 치면 찜질방에서 대여해주는 찜복 같은 개념의 복장인 것 같았다.
방금 목욕탕에서 나와 하얀 피부에 살짝 붉은 홍조를 띄고 있는 서연이 상혁을 보며 말했다.
“저 어떤 거 같아요?”
“뭐가?”
“엑? 기껏 기모노 입었는데 반응이 그게 뭐에요?”
“이거는 기모노가 아니라 유카타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찜복같은 거고. 넌 찜질방 티셔츠 입고 저 어때요 같은 거 물어보냐?”
“우와. 말 넘 심···.”
“알았다. 이뻐. 이쁘니까 밥이나 먹자.”
그렇게 말한 상혁은 터덜터덜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그 뒤를 코즈에와 서연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잠시 후.
투덜대던 상혁은 잔뜩 상기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기 물풍선 낚기도 있다!”
‘온천 테마파크’라는 별명에 걸맞게 오오에도 온천은 실내임에도 안에 일본 축제 거리 분위기의 매점을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상혁은 그 모든 매점을 다 돌기라도 할 것처럼 이것저것 구경을 하러 다녔고 결국 애니에서 봤던 온갖 것들을 모두 해보고 나서야 쉬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은 탓에 배도 불렀던 일행은 탁자에 간식거리를 늘어놓고 이야기 삼매경을 피울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중 가장 핫했던 토픽은,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코믹에서의 이슈였다.
“자, 이제 말해봐요.”
행사 전에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상혁이 코즈에를 보며 물었다.
“대체 행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자 코즈에는 멎적은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더니 상혁을 처음 만난 이후에 일본에 와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
[초 대박! 한국 고등학생 동인팀에 초대 되서 갔던 썰 푼다!]
좋아하는 게임의 개발자를 만난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번역을 공식번역으로 인정받고, 번역비도 받은데다 멤버 전원이 싸인한 패키지도 받은 코즈에의 흥분은,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쉽사리 식지 않았다.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기념사진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그녀는 집에 가자마자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그것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원화가 초 귀여워!-
-그 게임을 이렇게 어린애들이 만들었다고? 지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겠지?-
-것보다 저거 고등학교 부실 맞아? 저 학교는 재벌 2세만 다니나?-
-글 안 읽었냐? 다 게임 판돈으로 산 거 라잖아.-
-내가 저 학교에서 저런 친구들이랑 게임 만들 수 있었으면 난 유급해서라도 졸업 안한다.-
기본적으로 원화가인 서연이 귀엽다는 댓글이 절반정도에 나머지는 거의 부럽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부러움은 그곳에 초대되어 간 코즈에에게도 향해 있었다.
-번역은 그렇다 치고 불법 배포까지 했는데 그걸 따지지 않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고? 팀장 정신 나간 듯.-
-애당초 따지려고 했으면 비행기 표까지 보내면서 초대했겠냐?-
-그나저나 너무 부럽네요. 일본어로 된 정품도 선물로 받았다면서요? 그럼 그거 지금 일본에 딱 한 개 있는 거 아니에요?-
-10배 가격에 구매하고 싶습니다. 연락 주십시오-
글을 올린 당사자인 코즈에는 너무 흥분했던 나머지 피곤하기도 했고 글 작성에 시간도 걸렸기에 글을 올리고는 바로 자러 갔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이 올린 글을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댓글이 뭐 이렇게 많아?”
처음에 댓글이 수십 개 정도였던 게시글은 해당 스레를 본 사람들이 사방에 퍼가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게시판으로 유입된 상태였다.
코즈에가 일일이 다 읽기도 버거울 정도로.
그리고 그 댓글의 상당수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잘난 게임인지 해보고 싶다.’
그렇게 불타는 게시판에 코즈에가 다음 코믹에 PTW가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올렸고, 그게 오늘의 사태로 발전되었다는 이야기.
“신기하다. 상혁 오빠. 설마 이것까지 다 예상하고 책상이랑 의자같은 거 새로 사신 건 아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혁은 씹고 있던 마른 오징어를 손에 든 채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오빠? 오빠아?”
“어? 아, 아니거든?”
그냥 운이 좋게 잘 풀렸을 뿐이다.
계산은커녕 단순하게 현재 미성년자라 해외 동인행사에 참가하기 어려워서 코즈에를 끌어들인 것 뿐인데, 상혁도 일이 여기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말 그대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격.
“뭐 어찌됐건 잘 됐으니 다행이네요. 민준 오빠도 오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민준 씨는 오늘 왜 안 오신거예요?”
“걔는 지금 PS판 외주 주기로 한데서 미친 듯이 코딩하고 있을 걸요?”
일본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푼 일행은 가장 먼저 일본의 외주업체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민준은 담당자라는 프로그래머와 외계어인지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더니 잠시 후 의기투합해서 사무실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업체측에서 미리 불러놓은 통역사와 함께.
그래서 지금 코믹에는 상혁과 서연만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 앞으로 며칠 더 계시겠네요?”
“그렇죠. 일단 그쪽에서 급한 부분을 다 마무리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그럼 내일은 제가 코믹마켓을 안내해드릴게요.”
“그래주시겠어요?”
상혁이 기쁜 표정을 짓자 서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오빠.”
“응?”
“코믹이란데가 다들 물건 사거나 팔거나 하는 곳이잖아요? 아니면 코스프레를 한다던가.”
“그렇지.”
“그럼 사실 그냥 거대한 쇼핑행사고 놀거리는 없지 않아요?”
“그 쇼핑이 중요한 거거든?”
“아니, 뭐 사시려고요?”
“야한 책이라던가, 야한책이라던가, 야한책이라던가···.”
“으와아아···.”
서연이 눈을 가늘게 찢으며 상혁을 바라보자 상혁이 헛기침을 하며 서연에게 말했다.
“거기 여자애들 보는 동인지도 많이 팔아.”
“아뿔사! 그 생각을 못했네!?”
그러자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코즈에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하핫! 두 사람 너무 재미있어요. 이번 행사까지만 같이 한다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요.”
“왜 이번행사 까지만 같이 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분명 이번 코믹에서 선행 판매한 이후에는 마리의 눈물을 정식 발매하신다고···”
“아,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상혁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코즈에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본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에 대해서.
“사실, 코즈에 씨에게 부탁드릴게 하나 있었거든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번역 관련 업무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번역이요?”
“저희, 차기작 개발 중이에요.”
팀 PTW의 신작 게임.
상혁은 그 게임의 3개국 동시 발매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