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1화 (42/485)

041. 서드파티

사실 PS2의 최초 공개는 1999년 9월에 이루어졌으나 개발은 이전부터 되고 있었고, 런칭작을 준비하기 위해 일부 게임회사에는 개발킷이 이미 배포되어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식 공개 직전까지 해당 정보는 비밀유지계약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일반인들은 PS2의 개발 여부조차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혁은 대충 자신이 아는 게임 업계 히스토리를 되짚어 지금이 한참 소니에서 서드 파티를 모집 중인 시기라고 추정했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사실 일반 공개만 막았을 뿐이지 공공연히 PS2용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았기에 일본 게임 업계에서는 그리 비밀스런 내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등학생이 주변 상황만으로 나츠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점은 나츠로 하여금 상혁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속으로 상혁에 대한 이미지를 재미있는 고등학생에서 어느 정도 식견이 갖춰진 개발자로 조정한 나츠는 아까보다 정중한 태도로 상혁에게 말했다.

“사실 일본의 여러 게임사에서 개발 툴킷을 지급받아 PS2용 게임을 개발 중입니다. 저희는 저희와 함께할 다른 회사를 찾는 중이고요.”

“그리고 그게 저희인가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죠? 딱히 한국까지 와서 손 벌리셔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쁜 건 아니실텐데요?”

“퍼스트 파티야 많을수록 좋죠. PS2용 게임은 아직 수가 적기도 하고요. 게다가 ‘마리의 눈물’은 여성이 해도 재미있는 게임이기도 하니까요.”

확실히 이 시기에 여성이 즐긴만한 게임이 콘솔 쪽에 절대적으로 부족한건 사실이었다.

물론 의도한건 아니지만, 마리의 눈물 같은 경우 주인공이 여성으로 설정되면서 알게 모르게 측근에 꽃미남이 많이 등장하게 되기도 했고.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PS2용 게임 개발 경험이 있는 개발자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있었다.

2020년에 달해서 PS4세대야 유니티나 언리얼같은 범용 엔진이 PS 개발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1999년엔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PS2용 언리얼 엔진의 경우 2002년에야 정보가 겨우 공개되었을 정도였으니, 지금 시점에서 PS2 게임 개발을 하려면 바닥부터 배워야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회귀 전 스택 오버플로우(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을 하다 막혔을 때, 또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 사이트. 답변을 달면 평가에 따라 점수를 받는다.)  2만 7천점대에 빛나는 괴물 개발자인 민준이 팀에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당시 대당 250만엔 수준의 PS2 개발킷(DTL-T10000)을 구해서 PS2용 개발을 진행해야 하느냐는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였다.

결국 고민하던 상혁은 일단 보류라는 결론을 내렸다.

신작 개발에 전념해야하는 시기에 굳이 콘솔 시장으로의 도전은 리스크가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일단 그 부분은 거절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대한민국을 싹 뒤져도 지금 PS2 콘솔 개발가능 한 개발자를 찾기 어려울거 같아서요.”

“물론 동인 팀인 PTW에 독자 개발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허락만 해 주시면 저희 쪽에서 포팅 가능한 업체를 선정해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가능성이 있겠네요.”

PC판 버전의 리소스와 소스코드를 넘기고 외주 업체에서 PS판 이식을 맡는 방식이라면 딱히 시간적으로 손해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중간 검수라던가 커뮤니케이션 등 이것저것 일이 늘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PS2 개발을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낫기에, 상혁은 머릿속으로 서드 파티 진영 합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때, 상혁의 뇌리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근데 왜 서드파티지?’

기본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콘솔업체는 게임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퍼스트, 세컨드, 서드.

그중 퍼스트는 아예 콘솔 개발사 자체에서 게임을 출시하는 게임을 말하는데 난텐도에서 출시하는 뫄리오나 링크의 전설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콘솔 개발사에서 직접 개발하지는 않지만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고 자사 게임을 개발하게 하는 세컨드 파티.

마지막으로 그냥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기술 지원 등을 받으며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서드파티였다.

지금 상혁에게 나츠가 제안한 것은 서드파티.

그것은 한마디로 개발은 너희가 알아서 하고 딱히 큰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우리 인지도가 많이 딸리기는 하지···.’

애당초 퍼스트 파티에 들어가려면 아예 SANY측에 들어가야 하기에 정식 회사도 아닌 동인팀 상태의 PTW가 가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딱히 특정 콘솔 독점작을 개발할 생각이 없기도 했기에 투자금이라는 족쇄가 달리는 세컨드 파티보다 단순하게 시장 진출을 돕는 서드파티쪽이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좋습니다. 일단 이 자리에서 확답은 못 드릴거 같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멀리서 한국까지 오셨는데 바로 계약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하네요.”

“아뇨, 말씀하신대로 비즈니스는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니까요. 첫만남에 계약을 기대하고 온건 아닙니다.”

“그래도 멀리서 오셨는데···.”

“사실 제가 ‘마리의 눈물’을 정말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이번에 억지로 출장온 거기도 하니까, 그 부분은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정 미안하시면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예. 어떤 거죠?”

“저···. 혹시 마리의 눈물 정품 있나요? 일본에서는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상혁은 씨익 웃더니 캐비넷에서 마리의 눈물 패키지를 하나 꺼내어 나츠에게 넘겼다.

그러자 나츠는 잠시 쭈뼛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상혁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싸인도···.”

상혁은 풉 하고 웃더니 책상에서 매직을 꺼내 싸인을 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팀원들의 싸인도 해서 나츠에게 주자, 나츠는 그게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가방에 넣더니 상혁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부실을 나섰다.

언젠가 티비 앞에 앉아 즐겁게 콘솔로 ‘마리의 눈물’을 플레이할 것을 기대하면서···.

***

상혁이 지훈에게 YES의 대답을 보낸 것은, 나츠와의 미팅이 있은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였다.

사실 결정이야 그 전에 팀원들과 회의를 통해 이미 끝나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바로 연락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상혁에게 연락을 받은 지훈은 바로 다음날 나츠가 굉장히 기뻐하더라고 전하며 나츠가 알려준 외주 업체의 연락처를 넘겼다.

그래서 상혁은, 그 길로 바로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저 왔어요.”

사실 이게 싫어서 답변을 미룬 것이기도 하기에, 상혁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았는지 상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사무실 안쪽에서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밝은 표정의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아이고 우리 고등학생 CEO오셨습니까!”

“그냥 고등학생입니다.”

“그냥 고등학생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계약서 의뢰 하러 변호사 사무실 오지는 않아요.”

뭔놈의 계약을 그리 많이 하는지 상혁은 거의 일주일에 한번 꼴로 사무실에 찾아오고 있었고, 그때마다 쏠쏠하게 계약서 작성 대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변호사인 공태규는 상혁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무엇보다 신기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런 경우 모종의 사고를 치고 수습을 위해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혁같이 사업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경우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교통사고나 이혼 상담같은 일반적인 변호사 업무만 진행하던 태규로써는 상혁의 의뢰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생긴 건 분명 고등학생인데 말하는걸 보면 40대 아저씨 같은 면이 있어서 그 부분도 태규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상혁은 이런 일을 매우 귀찮아 하긴 했지만···

‘민준이한테 팀장하라고 할 걸.’

상혁의 생각은 전혀 알지 못한 채, 태규는 이번엔 이 고등학생이 대체 어떤 건수를 물어왔나 싶어 즐거운 기분으로 커피를 대접하며 상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뭘 부탁하시려고요?”

“이번에 저희 게임 개발 소스를 일본 외주업체에 넘겨서 콘솔 버전 포팅···. 음, 그러니까 PC에서 돌아가는 게임을 게임기에서 돌아가게 만드는 작업을 맡기려고 하거든요.”

“아, 그러면 넘긴 프로그램의 소스코드 도용 방지라던가 비밀 유지 계약서, 외주 계약서 같은 종류겠네요?”

“대충 그렇죠.”

“비용은 얼마나 잡으셨어요?”

“저희 쪽에서 외주 업체 쪽에 3억 지불할겁니다.”

태규는 즐거웠다.

세상에 어느 고등학생이 ‘저희쪽에서 외주 업체 쪽에 3억 지불할겁니다.’같은 대사를 날리겠는가.

물론 상혁이 물어오는 작업의 대부분이 아직 제대로 정비도 되지 않은 IT 관련 법규와 관련 있었기에 매번 관련 법전을 뒤적여야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과의 일은 태규에게 늘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었다.

“그거 말고는 또 없습니까?”

“뭐, 당장 진행할건 아니지만 몇 개 더 필요한게 있긴 해요. 신작 게임 관련해서도 이용약관이라던가 작업할게 꽤 있어서.”

작업 중인 신작 게임 ‘프로젝트 너드’의 경우 D&D가 소재인만큼 국내나 아시아 시장보다 상혁은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D&D에 익숙한 유저층이 서구권에 밀집해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미국에서 게임을 함부로 내면 뭔 시비가 걸려서 소송을 당할지 모른다.

잘못해서 게임 시작시에 ‘광 과민성 발작에 대한 경고’를 삽입하지 않았다고 소송 걸릴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난텐도의 포케몬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을 때 번쩍이는 이펙트로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TV를 볼 때는 방을 밝게 하고 TV에서 멀리 떨어져 시청하세요." 라는 문구가 생긴 이유도 그것이고.

어찌보면 회귀전 MMORPG의 라이브팀에서 일했던 경험이 지금의 예민한 상혁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이템 강화할 때 ‘아이템이 파손될 수 있습니다. 정말 강화 하시겠습니까?’ 문구 안 넣었다고 아이템 복구해달라고 하는 유저도 흔한 바닥이었기 때문에, 게임 진행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약관이나 문구를 신경 쓰는 습관이 생긴 상혁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건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변호사 사무실에 외주 계약서 의뢰를 맡긴 상혁은 추가로 일본 업체와 진행하기 때문에 일본어 계약서도 준비해달라고 이야기 하고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부실에 돌아와 언제나처럼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은 토요일.

아직 주 5일제 시행이 안 되었기에 학교에 나와야하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부활동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작업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주간 유급휴가를 받았던 태민이 복귀하면서 엘란테 측에 보냈던 작업 의뢰도 결과물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있었고, 지훈과 추진한 퍼블리싱 계약도 잘 진행되어 이제는 전국 어디의 게임 매장에서나 ‘마리의 눈물’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박스를 접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조금 시원섭섭하긴 했지만, 게임 판매에 대한 추가 수익도 괜찮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다.

제일하기 싫었던 변호사 사무실 방문을 끝낸 지금, 상혁의 마음속은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상혁의 그런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인데 자꾸만 경영관련 문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제 제대로 작업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상혁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상혁 군? 저 나츠입니다.”

“아, 나츠 씨. 무슨 일이에요?”

“외주 관련해서 문제가 생겨서요.”

“어? 이쪽은 오늘 가서 계약서도 준비 마쳤는데? 그리고 전에 그쪽에서 이쪽 코드가 작업 가능한 수준인지 모르겠다고 소스코드 견본 보내 달래서 보내드렸잖아요?”

나츠가 연결해준 포팅업체는 일본의 중소기업이었는데 거기서는 이전에도 여러번 다른 PC게임의 포팅을 한 적이 있는 업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발매도 안 된 PS2의 포팅은 처음이기에 그쪽에서도 작업 가능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 코드 일부를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고, 상혁은 민준과 상의 끝에 정식 버전이 아닌 초창기 개발했던 알파 버전의 소스코드를 업체에 넘긴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알파버전이 PS2 개발킷에서 정상적으로 구동 가능하게 포팅을 해보고 전체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자는 게 전체 작업의 요지였다.

“그 보내주신 소스코드가 문제라고 하네요.”

“그럴리가요?저희쪽 코드는 완벽할텐데요?”

상혁은 자신의 기획서가 까이는건 용납해도 민준이 짠 코드가 문제가 된다는건 절대 인정 못할정도로 민준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문제는, 민준이 짠 코드가 떨어져서 생긴문제가 아니었다.

그 반대로, 너무 뛰어나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다.

상혁의 말을 들은 나츠는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쉬더니, 자신도 황당하다는 투로 상혁에게 말했다.

“거기 프로그래머가 보내준 소스코드를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네요?”

상혁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는 민준을 불렀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민준에게 나츠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고는 뭔가 짐작가는게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민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입에서 조용히 단말마를 내뱉었다.

“아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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