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화 (40/485)

039. 호감과 불만은 종이 한장 차이

이 부분은 아직 작업 중인 기획서였기에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획서를 프린트 해서 태민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기획서를 읽고 나서야 태민은 상혁이 개발하려는 게임의 멀티 플레이가 어떤 형태인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인원 모집을 할 수 있는 로비가 따로 있구나.’

‘모험가의 주점’에서는 마치 술집처럼 생긴 공간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다른사람에게 말을 걸고 멤버를 모집할 수 있었다.

게시판에 모집글을 올리거나, 자신이 만든 던전의 홍보를 할 수도 있도록 만든 기획에 태민은 강한 매력을 느꼈다.

“D&D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진짜로 인생게임이 될 수도 있겠네요.”

호불호? 물론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게임이 전달하려는 재미는 전 세계에서 이 게임만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태민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자신이 작업한 비쥬얼로 돌아가는 완성된 게임의 형태를.

그리고 그것은, D&D를 플레이해보지 않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썩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업 여부를 물으시는 건가요?”

태민의 질문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오히려 솔직히 말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오늘 같이 작업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러 온 거였어요.”

“그건 준표 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토사구팽 당한 느낌이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럴 수밖에 없죠. 3년 동안 죽어라 개발했는데 보너스 한번 제대로 못 받고, 만든 게임은 히트 근처에도 못가고, 그리고 결국 남은 게 다른 팀 외주나 맡으라고 한 거였으니까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민의 마음은 회귀 전에 누구보다 외주 작업을 많이 해본 자신이 가장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열받는 건 말이죠? 딱히 제가 작업한 작업물이 퀄리티가 떨어진다거나 해서 작업에서 제외된게 아니라, 그냥 ‘옛날 기술’ 이라는 이유로 밀렸다는 거예요. 그놈의 3D가 미래라고 하면서요.”

애니메이션 하나를 작업하려면 일일이 프레임별로 다 그려줘야 하는 도트 기반 그래픽에 비해 3D는 모델링 안에 있는 본만 움직이면 간단하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게 가능했다.

그렇기에 2D 게임에 비해 좀 더 화려한 액션이나 표현이 가능했고 그런 이유로 많은 회사들이 3D 기반 게임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기가 나왔다고 해서 손그림이 저평가 받는 건 아니잖아요? 그림은 사진이랑 다른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3D가 인간의 손재주를 따라잡을 만큼 컴퓨터 사양이 발전하지 못했으니까요.”

“위로라도 듣기 좋네요.”

태민이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위로가 아닙니다. 도트는 구시대의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그래픽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아직 제대로 포텐셜을 전부 발휘한 것도 아니고요. 강철 슬러그 시리즈도 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3D 게임에 도트 텍스쳐를 입힌 게임도 나올테 고요.”

“엑? 그런 게 나온다고요?”

“믿지 못 하실만큼 인기 있을겁니다.”

“참···. 젊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려서 그런 건지···말하는 거 하나 하나 전부 확신에 차 있네요.”

자신도 업계에 처음 투신할 때는 저랬었지···하고, 태민은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이 게임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긴가민가해요. 워낙 독특한 게임이니까. 그래도 작업할 때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지금 이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잘릴 것 같으니 외주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솔직히 꼭 태민 씨랑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혁이 태민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하자 태민은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태민은, 자신이 뒤에서 민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저새끼 또 저 지랄하네’

사람 우쭈쭈 시켜서 잔뜩 비행기 태운다음 영혼까지 빨아먹는게 상혁의 특기였기에 민준은 속으로 태민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상혁은, 민준의 예상대로 태민의 마음이 돌아서 마자 열정적인 태도로 추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우선 저희 작업 퀄리티부터 좀 조정을 하죠.”

“작업 퀄리티를요?”

“솔직히 이전에 개발일정이나 게임 해상도 문제 때문에 포기했던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희는 개발 기간에 제약을 두지 않으니 태민씨가 좀더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기존 게임을 개발할 때 작업시간에 쫒겼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표준적인 SRPG 퀄리티로 개발을 진행했던 태민은 퀄리티를 올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상혁이 교묘하게 ‘니 잠재력은 그 수준이 아니야.’ 라는 식으로 말하자 태민은 자신도 모르게 ‘어 맞아, 내가 이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퀄리티를 올려달라.’ 라고 말하면 부탁같이 들리지만 ‘니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해달라’ 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괜히 지금까지의 작업이 마치 시간의 희생양이라도 된 양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태민쪽에서 적극적으로 상혁의 수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상혁의 수가 완벽하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그럼 ‘루나시아 스토리’보다 더 퀄리티가 올라간 도트를 원하신다는거죠?”

“예. 거기에 4:3 해상도와 16:9 해상도에서 가변으로 그래픽이 변경되게 할 생각입니다.”

“16:9도 지원한다고요? 지금 모니터가 그런 모니터는 거의 안쓸텐데?”

“앞으로는 쓰게 될 겁니다. 미리 준비해 두는 거죠.

그렇다고 도트를 두 개 준비하는 건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캐릭터나 오브젝트 비율은 그대로 두고 화면에 표시되는 UI를 두 개를 짜서 구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배경이나 오브젝트 같은 경우에는···.”

상혁은 거침없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했고 그것을 듣는 태민의 표정은 때로는 충격으로, 때로는 고민으로 물들면서 다이나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의 설명이 끝났을 때, 태민은 완성된 게임의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진짜 이정도면 3D 그래픽보다 훨씬 낫겠는데?’

일러스트 스타일 중에 픽셀 아트라는 장르가 있다.

픽셀 스타일을 지키면서 마치 원화 일러스트 수준으로 퀄리티를 높인 그림인데 상혁은 그 정도 수준의 오브젝트 퀄리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엄청난 작업량이 수반되기에 작업자 입장에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솔직히 그 정도면 도트 일러스터 입장에서는 거의 도전이나 마찬가지인 퀄리티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근데 지금 인력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네요···.”

태민의 말에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필요하시면 인력을 더 충원해도 좋습니다. 그에 대한 비용은 저희 쪽에서 지불할 테니까요. 그리고 게임이 잘 되었을 때 인센티브도 저희 쪽에서 별도로 지급해드릴겁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제가 거부할 이유가 없겠네요. 좋아요. 하겠습니다.”

이제 완전히 태민을 자기 사람으로 구워삶은 상혁은 아예 여기서 쇄기를 박았다.

“잠시만요. 그럼 이렇게 협업하게 된 김에···.”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상대방과 통화를 하더니 자리에 돌아와 태민에게 말했다.

“진만 사장님과 이야기 끝냈습니다. 도트팀 전원, 2주간 유급휴가니까 내일부터 푹 쉬시고 2주 후부터 작업 시작하시죠.”

“예?! 갑자기 왠 유급···.”

“지난번 게임 만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을 텐데 가고 싶은데 여행도 가시고 재충전 좀 하고 오세요. 그리고 같이 재미있게 게임한 번 만들어보죠.”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모습은 태민의 눈에 더 이상 게임하나 우연히 성공시켰다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애송이 개발자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개발하는 인원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려 깊은 팀장으로 보일 뿐.

상혁은 그걸로 멈추지 않고 감사인사를 하려는 태민에게 웃으며 추가타를 날렸다.

“그리고 오늘 저녁까지 도트 외주 맡으실 분들 전원 300만원씩 통장에 보너스 지급될겁니다. 그걸로 2주동 안 푹 놀고 오세요.”

“어휴···. 제가 더 드릴 말이 없네요. 이거 진짜 열심히 안하면 제가 면목이 없겠는데요?”

“그걸 노리고 드리는 거니까 열심히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웃으며 악수하는 두 사람을 보며, 민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 저 인간도 상혁이란 그물에 빠져 헤어 나올수 없는 착취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회귀 전 개발자 시절에도 상혁 때문에 최소시급 받으면서도 회사에서 버티던 수많은 개발자들처럼.

그러나 그때와 다른점이 있다면, 지금은 상혁에게 돈과 힘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직장인의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마법의 도구였고.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 채로 게임부에 찾아왔던 태민을 택시비까지 쥐어주면서 웃으며 돌려보낸 뒤, 상혁은 부실에 돌아오자마자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어휴 비위 맞춰주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아까 그게 연기였어요?”

“반은 진심. 반은 연기.”

“어휴, 저는 오빠가 너무 반갑게 환대 하시길래 섭섭할 뻔 했다니까요? 저도 나름 초창기 멤버인데, 저한테보다 더 잘해주시는 거 같아서요.”

“질투?”

“뭐, 질투라면 질투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럼 서연이 너도 유급휴가 좀 줄까? 해외여행이라도 좀 다녀올래?”

“방학도 아닌데 어떻게 가요. 그리고 이제 개발 초기라서 한참 재밌을 땐데 저만 혼자 놀고 싶지 않아요.”

“그럴 거 같아서 너한테는 제안 안한 거야.”

“그래도 말이라도 꺼내는 거랑 안 꺼내는 거랑은 좀 차이가 있잖아요. 거절당하더라도 제안정도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서연아 혹시 너 2주 정도 휴가 갈래? 휴가 비용 줄게.”

“됐어요. 앓느니 죽지.”

“아오, 해 달래서 해줘도 뭐라 그러네.”

그렇게 상혁과 서연이 틱틱대는 사이, 현주가 다가와 상혁에게 말했다.

현주가 걱정하는 것은, 상혁의 씀씀이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런데 유급 휴가 비용도 이쪽에서 지불할거 아냐? 거기에 보너스도 우리가 지불하는 거면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냐?”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분명 팀통장에 아직 6억이 넘는 수익금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주는 상혁이 어린마음에 돈을 물쓰듯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 거기 도트 작업자가 지금 태민 씨 포함해서 부사수까지 총 3명인데 900만원에 2주 유급휴가 비용까지 해서 1100만원 정도 들겠죠.”

“그게 적은 돈은 아니잖아.”

“사람 마음 사는데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싼 거에요.”

마음이 동해서 작업하는 것과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의 차이는 꽤나 크다.

회귀 전 과로사까지 할 정도로 외주 작업을 오래했던 상혁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생한 사람들에게 그게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던 하다못해 한우라도 사먹으라고 법인카드한번 건네주는 거랑 아닌 거는 차이가 크죠. 호감은 적절한 타이밍에 사면 싼값에 살수있지만 불만은 몇 백 몇 천을 써도 지우기 힘드니까요.”

‘상대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댓가를 지불할 사람이다.’

이런 믿음은 작업자로 하여금 작업에 영혼을 불태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상혁은 어찌보면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금액을 아낌없이 투자한 것이었다.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현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고, 그로써 사태가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상혁은 이제 다시 개발을 향해 달려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손뼉을 치며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자, 그럼 그래픽 문제도 해결 된거 같으니 우린 알파버전 개발에 집중하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기획서 작업에 들어갔고, 그것을 본 나머지 팀원들도 자신들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부실은 타블렛 팬이 슥슥 그어지는 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전에 마리의 눈물을 개발할 때 그랬던 것처럼.

상혁이 바라는 대로, 누군가에게 인생 게임이 될 수 있을만한 최고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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