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8화 (39/485)

038. 들어올 때는 몰라도 나갈 때는

“여기 팀장이 누구냐?”

태민은 이쪽 담당자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 생각으로 부실에 들어오자마자 퉁명스런 말투로 팀장을 찾았다.

그러나 태민의 예상과는 다르게 부실의 누구도 동요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미리 전화로 준표에게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부원들이 태민에게 취한 태도는, 태민의 예상과는 정반대되는 극도의 환영이었다.

“오, 한태민 씨죠? 제가 PTW 팀장 이상혁입니다.”

상혁이 인사하자마자 서연이 다가와 반갑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 이 오빠가 상혁오빠가 말한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터분? 되게 젊으시다!”

거짓말이다.

상혁은 태민이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터라고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오면 비행기 좀 태워주라고 언질을 주었을 뿐이었다.

“이야, 이렇게 직접 만나뵙 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이 팀의 음악 담당인 남성연입니다. 평소부터 엘란테 소프트 게임을 하면서 아름다운 도트 그래픽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이다.

성연은 엘란테 소프트 게임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저는 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임부 담당 선생인 이현주에요. 한태민 씨의 개인적인 팬이기도 하고요.”

거짓말이다.

현주는 상혁이 이야기하기 전까지 태민이란 인간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던 태민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찌되었건 언제나 애널써킹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법이니까.

동서고금의 왕들이 괜히 환관한테 홀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어찌되었건 상혁의 계획대로 격한 환대를 받은 태민은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 현주가 타온 커피를 마시며 상혁과 마주할 수 있었다.

“헉, 커피 진짜 맛있네요?”

자신도 모르게 현주에게 놀람을 표현하는 태민을 보자 현주가 아름다운 미소를 흘리며 이야기했다.

“기계가 좋아서요.”

이제 겨우 한국에 스타벅스 1호점이 막 들어선 시기.

2020년처럼 한집 걸러 한집이 카페인 시대와는 다르게 1999년에는 커피숍이란 곳을 찾아보는 것이 꽤 어려웠다.

그래서 상혁은 원두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먼 곳에 있는 대학교 근처까지 가서 커피를 사와야 했는데, 그 시간이 아까웠던 상혁은 팀원들의 동의를 얻어 폐업하는 카페의 장비를 통으로 얻어왔다.

그리고 지금 태민이 마시고 있는 커피는 무려 이태리에서 직수입된 1000만원짜리 중고 커피 머신으로 뽑은 커피였다.

최근에는 커피맛이 소문나서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도 커피먹으러 게임부에 종종 들를 정도로 인기 있는 커피의 맛에 태민은 속으로 감탄사를 흘리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처음 가졌던 마음의 각오를 다지며 상혁에게 말을 건넸지만 이미 상당히 마음이 누그러진 이후였기에 태민의 말투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아까 반말한건 죄송합니다. 저보다 어려도 어엿한 한 개발팀의 팀장인데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태민 씨 정도되는 업계 선배님이면 저한테 충분히 편하게 대하셔도 괜찮습니다.”

“솔직히, 여기 오기전까지만 해도 와서 단박에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외주를 하려고 엘란테에 입사한 게 아니니까요.”

“이해합니다. 한 3년 되셨겠네요. 초창기부터 참여하셨으니까. 그동안 엄청나게 고생하셨을 텐데 갑자기 그래픽 컨셉 바꾼다고 일이 없다고 하면 누구라도 배신감을 느끼겠죠.”

“솔직히 저는 지금도 회사에 도트 그래픽으로 MMO를 제작하자고 주장하고 있어요. 폭풍의 나라 같은 게임도 있고, 라니지도 결국 2D 아닙니까? 아직 2D도 할만한 데 왜 몰라주는지···.”

“할 만한 정도가 아니죠. 지금 잠깐 3D로 대세가 넘어가는 것뿐이지 나중 가면 분명 도트 그래픽의 진가가 재평가 될 겁니다.”

항상 ‘시대에 뒤떨어진다.’ ‘이제 슬슬 3D좀 배워둬라’ 같은 이야기만 듣던 태민에게 이런 상혁의 이야기는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문할 정도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생각이 아니라 확신합니다. 도트는 도트만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사실 미래에서 보고 왔기 때문에 호언장담할 수 있 는거지 상혁도 회귀전 이시기에는 도트 그래픽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회귀한 지금은 도트도 퀄리티를 올리면 얼마든지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상혁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린데 생각이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시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좋아요. 제가 사람에 대해서는 잘못 판단한 거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드리죠.”

전투 태세로 찾아온 상대가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쓰게 만드는 모습을 보며, 서연이 민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상혁 오빠, 장난 아니네요.”

“그렇지, 사실 쟤가 슈퍼히어로라면 아마 Dr.주둥이 같은 이름이 있었을거야.”

“흠···. 히어로보다는 빌런같은 느낌인데요?”

“그것도 맞고.”

민준은 애당초 태민이 찾아오기 전에 상혁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차피 억지로 일을 하는 사람은 결과물이 절대 좋을 수가 없어. 그럴 바에는 비행기라도 잔뜩 태워줘서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야지.’

‘그게 가능해?’

‘뭐, 보고 있으라고. 내 화려한 혀가 움직이는 모습을.’

상혁이 호언장담한대로, 상혁은 태민과 대화하며 때로는 직장인의 애환을, 때로는 그래픽 작업자가 기획자와 작업할 때 갑갑해하는 부분을 적절히 찌르면서 상대를 요리해 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상대가 완전히 구워삶아졌다고 판단된 상혁이 제안을 던졌을 때, 태민은 싸우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반쯤 세뇌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럼 저희랑 같이 작업 해 주실 건가요?”

“저도 상혁씨 같은 분과 함께라면 해보고 싶기는 한데······. 솔직히 이제는 패키지보다는 MMO쪽을 하고 싶어서요.”

상혁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사실 대우의 문제라던가 하는 문제라면 돈으로 밀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더 편하다.

그러나 개발자의 지향점이 다르다면 그것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된다.

만들기 싫은 게임을 억지로 만들게 시키는 것보다 개발 의욕을 떨어트리는 것은 없으니까.

그렇기에 상혁은 조심스레 태민에게 어째서 MMO를 만들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꼭 MMO를 만들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패키지 게임에 미래가 없잖아요. 제가 3년 동안 패키지 게임 만들면서 남은건 야근 때문에 생긴 역류성 식도염이랑 스트레스성 탈모밖에 없어요.”

“아···.”

솔직히 한국 패키지 시장에서 아직까지 불법복제에 대한 부분은 답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마리의 눈물도 지금 절찬리에 복사 CD가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단지 게임의 성공여부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개발 지향점이 다른것보다 설득의 여지가 있기에 상혁은 밝은 표정으로 태민에게 말했다.

“패키지 게임인 ‘우주 크래프트’는 엄청나게 많이 팔리고 있잖아요?”

“그건 정품이 아니면 온라인 멀티가 안 되잖아요.”

“그거 저희도 만들 겁니다.”

“예?”

“온라인 멀티요. 저희 게임도 온라인 멀티 넣을 겁니다.”

상혁의 말에 태민은 앉아있던 자세를 고치며 진지하게 물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

상혁은 팀원들에게 넘겨주었던 기획서를 태민에게 보여주며 신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태민은, 팀원들이 보여주었던 태도처럼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상혁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게임에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상혁의 설명이 끝나자, 설명을 다 들은 태민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거 대박 아니면 쪽박인데.’

분명 매력은 있다.

학교 파트에서 친구들을 섭외하며 그 주에 플레이할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주말에 모여서 일주일간의 플레이 결과를 보는 형태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몰입도 시스템이 매우 참신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위험한 기획인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은 취향에 맞으면 엄청나게 빠져들지만 잘 모르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아예 손도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생각해서 나쁜 기획이라고 치부하기엔 상혁의 기획서에는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기획서를 보던 태민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기획팀장 준표보다 상혁이 쓴 기획서가 훨씬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을.

양식부터 내용까지 완전히 프로가 쓴 것 같은 기획서에서는 고등학생 동인 개발자가 아닌 업계 프로의 냄새가, 그것도 몇 년차인지 가늠도 안 될 정도의 진한 노하우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어떤 거 같으세요?”

그때 생각에 잠겨있는 태민에게 상혁이 기획에 대한 평가를 물었고 태민은 결국 상혁의 기획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을 것 같은 게임이네요.”

딱히 흠을 잡으려고 해도 소재가 한국에서 마이너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참신함으로 가득 찬 각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짜임새 있는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게임이 있다면 자신도 한번쯤 해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게임이 재미있는 것과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상혁이 말한 온라인 멀티 플레이의 메리트가 없다면, 결국 이 게임도 다른 잘 만든 게임처럼 불법복제의 파도속에 묻힐게 뻔했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건 불법복제 쪽인데···.”

“그건 ‘우주 크래프트’처럼 온라인 멀티할 때 정품 CD키를 체크해서 정품 유저만 멀티를 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에요.”

사실 데누보 같은 불법 복제 방지 시스템이 없는 1999년 기준으로는 온라인 인증이 가장 확실한 불법 복제 방지 대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멀티가 재미있어야한다.

“근데 멀티 플레이 쪽에 ORPG 툴로서의 기능을 제공한다는 부분은 무슨 뜻인지?”

상혁은 그에 대한 답으로 ORPG의 폼을 제시하고 있었다.

“D&D는 아시죠?”

“알죠.”

2020년대의 젊은 층은 D&D라는 테이블 게임이 생소할 수 있겠지만 1999년도만 해도 잡지에서 심심하면 연재하는 내용이 D&D 관련 내용이었고, D&D룰을 사용하는 ‘발더스의 문’이 국내에서 히트하면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다.

“D&D를 온라인으로 하는게 ORPG에요.”

“그걸 온라인으로? 어떻게요?”

“원래는 집에서 각자 룰북 들고 채팅이나 음성으로 진행하죠. 간단하게 주사위 숫자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채팅툴 같은걸 써서요.”

“좀 매니악한  플레이네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 게임에 포함된 던전 에디터를 통해서 만들어진 던전을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깰 수 있게 할 생각이에요. ‘우주 크래프트’같이, 마스터가 방을 만들면 거기 들어온 인원들이 던전을 깨는 거죠.”

D&D자체는 태민도 알고 있었다.

PC RPG의 그래픽이 성능의 한계에 막혀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이란 그래픽 엔진을 사용해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D&D는 당시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 있는 게임이었으니까.

게다가 ‘발더스의 문’의 히트 이후로 D&D를 PC게임화한 장르 역시 시장성을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었기에, 태민은 상혁의 말에 조금 더 흥미를 보였다.

“D&D는 라이센스 정책이 빡세기로 유명한데, 그 부분은 어쩌실 건가요?”

라이센스 이야기를 하면서, 태민은 당연히 상혁이 D&D와 비슷한 유사 룰의 게임을 만들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D&D자체가 라이센스 비용이 비싼 게임으로 유명했으니까.

그러나 상혁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태민의 질문에 대답하여 태민을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었다.

“당연히 비용이 얼마가 되던 공식으로 라이센스 받아서 해야죠. 유저들은 D&D를 하고 싶어 하지 비슷한 유사장르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유저만 즐거워할 수 있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태민은 그제야 왜 회사에서 진만이나 준표가 상혁이란 고등학생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저를 위해서 쓸 돈은 당연히 써야한다’ 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하는 개발자는, 태민이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개발자였기 때문에.

덕분에 이제는 게임보다 상혁이란 인물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된 태민은 자신이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을 더 던지며 상혁과 대화를 시작했다.

이미 자신이 반쯤은 이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그럼 거기서 얻은 보상은? 던전 하나 깨면 날아갑니까?”

태민의 지적은 적절했다.

‘우주 크래프트’같이 아예 아이템이나 레벨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면 몰라도, RPG 같은 경우는 장비 파밍이나 레벨링이 필수적인데, ‘우주 크래프트’ 형태의 멀티를 채택하면 그 부분에서 크게 재미가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상혁은 이미 그 부분에 대한 설계도 해 놓은 상태였기에, 어렵지 않게 태민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아뇨, 아이템이나 레벨은 던전 마스터한테 귀속되는 개념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각 유저는 자신만의 월드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집할 수 있어요. 이걸 ‘세션’이라고 하죠. 여기에 사람을 모아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세션이 종료되면 서버에 그 플레이에 서 얻은 아이템이나 경험치가 기록되요. 그리고 다음에 그 맴버를 다시 모아서 플레이하면, 이전 캐릭터를 불러올 수 있게 되는 거죠.”

“아, 미리 약속된 고정 멤버를 만들어두고 그 사람들의 데이터만 저장되는 형태구나?”

사실 설명이 복잡해서 그렇지 상혁이 구상한 멀티 방식은 ‘지뢰 크래프트’의 멀티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A방에서 플레이해서 모은 아이템을 B방에서 쓸 수 없지만, A방에 다시 접속하면 아이템이 보존 되는 방식.

실제로 일부 스트리머들은 그런 멀티 형태를 이용하여 고정된 멤버들만 접속할 수 있는 월드를 만들고 거기서 게임을 플레이하곤 했다.

“방장이 초대장을 보내면 해당 유저는 그 방장이 만든 던전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플레이하게 되지 않습니까? 친구 없는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상혁은 이 게임을 ‘친구들과 함께 했을 때 가장 재미있는 게임’으로 설계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친구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기에 태민의 지적은 일견 예리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것에 대한 해결법도 구상해놓은 상혁은, 태민의 질문을 받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은 지적이네요. 확실히 지인을 모아서 플레이해야한다는 부분은 단점이 될 수 있어요.”

“그럼 그걸 어떻게 해결하실 건지?”

태민이 묻자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모험가의 주점’ 시스템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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