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반응이 터지다
코믹 월드의 참가자 중 상당수가 일종이 커뮤니티에 속해있을 것이라는 상혁의 추측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잡지나 티비를 통해서 동인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힘든 시기에, 그런 행사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어느정도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행사 참가 후기를 올리기 시작했고, 그 중 상당수의 후기가 ‘1회 서울 코믹에서 우연히 구한 정체 불명의 갓겜’ 이라는 내용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의 의도대로 빠르게 커뮤니티에 퍼져 나갔다.
-솔직히 기대 하나도 안하고 구매했는데 벌써 이틀째 밤새서 플레이 중 입니다.-
-저도 샀는데 겁나 재밌음-
-게임을 하고 있으면 제가 진짜 귀족 영애가 되어서 궁전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에요.-
-저도 하고 싶은데, 그거 어디서 구해요? 동네 게임샵 다 돌아봐도 없던데?-
-용산에도 없어요?-
-없음. 가봤는데 게임 내용 설명하니까 ‘루나시아 스토리’라는 게임 주던데 내용이 완전 다르더라고요. 사기 당한 듯-
-그건 별로에요?-
-재미없지는 않은데 그냥 평범해요. 갓겜까지는 아닌 듯-
-이런. 제 껀 갓겜인데ㅋㅋㅋ-
-아씨, 지금 약 올려요?-
-마리의 눈물 중고 프리미엄 붙여서 삽니다-
커뮤니티에 그런 글이 쏟아지는 사이, 행사를 맡은 S.E TECHNO 에도 문의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용은 주로 한 가지.
‘마리의 눈물’이란 게임을 출품한 서클이 다음 행사에도 나오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패키지에 적어놓은 이메일 주소를 통해서 상혁일행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메일함 터지겠다.”
민준은 100통이 넘는 안읽은 메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 중 일부는 다음 코믹 참가 여부를, 그리고 대부분은 구매 가능한 경로를 묻는 이메일이었다.
200통이 넘는 메일을 일일이 확인해서 따로 주문 메일만 정리한 민준은 뒤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상혁과 성연, 현주와 서연이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열심히 박스를 줍는 모습이 있었다.
심지어 상혁은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게 박스를 접고 있었다.
민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더니 상혁을 보며 물었다.
“야, 즐겁냐?”
“그럼 안 즐겁겠냐? 박스하나 접어서 내용물 넣고 봉인하는데 1분. 근데 판매가는 3만 9천원. 이야~ 순이익만 따져도 시급 180만 원짜리 일인데 콧노래가 절로 나오지~.”
“그건 새로 만든 것도 다 팔린다는 전제하에 맞는 이야기 아니냐?”
민준의 질문에 상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답했다.
“넌 매사 너무 부정적이야.”
“넌 매사 너무 낙관적이고.”
“그래서 너랑 나랑 잘 맞는가 보다.”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찡긋 하고 윙크를 보내자, 민준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쇼파쪽에 놓여있는 쿠션을 상혁의 면상에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너 이새끼 행사가서 여장하고 나서 자꾸 윙크 보내는데 진짜 뒤진다?”
“어머, 민준오빠 화났어?”
“으아아아!!”
민준이 상혁에게 달려들자 상혁은 ‘오빠 왜그래? 너무 적극적인 남자는 인기 없어?’ 같은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부실 안을 뛰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두사람을 보던 서연이 참던 웃음을 터트리며 말리는 것이 요즘 게임부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상혁은 진지하게 앞으로의 판매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발 진행 방식에 대한 고민 까지도.
그렇기에 상혁을 쫒아다니던 민준이 숨을 헉헉거리며 추격을 포기하자 상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팀원들을 소집했다.
앞으로의 일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팀 운영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
“우선 회의 전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습니다. 다들 수고 하셨어요. 덕분에 코믹월드에서 2천 카피를 완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서연은 눈을 꿈뻑거리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할 때 보면 정말로 고등학생이라기보다는 무슨 회사원 같은 말투를 쓰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저희는 오프라인 행사에서 박스패키지 500개, 쥬얼 씨디 1500개를 팔 수 있었어요. 그걸로 인한 수익은 총···.”
상혁은 화이트 보드로 다가가 숫자를 적었다.
“3450만원입니다.”
“헐···.”
“엄청난데?”
뒤통수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상혁은 기뻐하기보다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목표하던 금액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2020년 기준이면 원화가 연봉도 못주는 금액이다.
거기다 제작 원가까지 있으니 원가를 제외하면 순수익은 훨씬 적다고 볼수 있었다.
개발자들의 인건비는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상혁은 그 부분에 대해서 팀원들과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다.
“엄청난게 아니라 엄청나게 적은거에요. 저희 인건비는 생각 안합니까?”
“인건비? 저희 그런 거 없잖아요?”
“동인팀이니까 인건비를 딱히 지급을 안한거지 엄밀히 말하면 수익 나면 다 나눌 생각이었어.”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서연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게임을 만들면서도 딱히 돈 이야기를 하지 않던 상혁이었기에 돈관련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그런 서연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지금 다들 취미나 경험 삼아 게임 개발 중이란건 나도 자 알지만 난 그렇다고 이미 나온 수익에 대해서도 설렁 설렁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어. 공평하게. 다들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아갔으면 좋겠어.”
“지금 나온 수익을 N등분 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다들 노력한‘만큼’ 댓가를 받아갔으면 좋겠다.”
상혁이 ‘만큼’이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어 말하자 서연은 상혁이 무슨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오빠가 생각하는 적정 수익은 얼만데요?”
“10만카피분 매출 해서 대충 39억.”
“헐···.”
“제 정신이야? 우리나라에서 10만 카피를 패키지로 팔겠다고?”
“‘우주 크래프트’는 한글지원도 안해서 한우주 같은 프로그램 써야하는데 지금까지 30만 카피는 팔렸을 걸? 우리나라에서만.”
98년 출시한 '우주 크래프트'는 99년 기준 118만장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우리나라의 판매비중은 40%정도였기에 상혁은 그것을 기준으로 우주크래프트의 대략적인 국내 판매량을 대충 산정하여 30만 카피 정도로 추정하였다.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팔렸던 덜팔렸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내 시장의 포텐셜 자체가 그정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게다가 그 양을 올해 다 팔겠다는 것도 아니고.
“물론 나도 그걸 올해 다 팔겠다는 게 아냐. 올해는 2만 카피 정도만 팔려도 잘 판거라고 생각해.”
2만 카피만 해도 7억8천만 원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란건 출시 직후에 가장 많이 팔리고 이후에 점점 매출이 떨어지는게 정상이지만 상혁은 발매 이후 2~3년후를 판매 피크로 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초반에 밀어 붙여서 잘 팔리는 게임들은 전국적인 유통 채널과 티비 광고같은 것으로 팔리는 게임들이고, 자신들은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유명해져야할 동인 게임이니까.
“어찌됐건 퍼블리셔가 없으니 당분간은 오프라인 판매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 마침 코믹월드 측에서도 다음 회차에 참가해달라고 요청이 왔고 부스도 이번엔 크게 잡아준다니 다음 코믹에서 크게 팔아봐야지.”
“얼마나?”
“일단 정품 패키지로 2천개. 그리고 쥬얼로 3천개 준비해가자.”
“쥬얼 또 팔게?”
“참가자들 동인지 살돈은 남겨줘야지. 그리고 이윤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하게 하는게 목적이니까.”
“흠···. 다음 코믹이···?”
“7월 말.”
“마침 방학때네. 그래도 두달 가까이 남았는데 그 동안은? 박스만 접을거야?”
“일단은 메일 주문 받고 홈페이지 에 판매 페이지 개설해서 팔자.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은 상혁의 견적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단 하나만 제외하면.
“아마도 조만간에 저쪽에서 뭔가 대응을 해 오겠지.”
상혁의 말대로, 엘란테 소프트의 사무실에서는 현재 상혁일행의 코믹 월드 참가에 대한 대응책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엘란테 소프트의 사장실.
긴장된 표정으로 진만은 마우스를 딸깍이며 ‘마리의 눈물’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진즉 구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판매자를 찾을 수가 없어서 커뮤니티에 무려 5배 가격을 부르고 구매한 중고 제품이었다.
힘들게 구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진만의 표정은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클릭을 하면 할수록, 진만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더욱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옆에서 준표가 긴장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진만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준표를 향해 말했다.
“어떠냐?”
“엄청나네요. 우리가 전에 구한 테스트 버전은 이거와는 천지 차이인데요?”
“준표야, 생각보다 얘네가 게임을 너무 잘 뽑았다.”
그 말엔 준표도 동의했다.
“솔직히 말하면 출시 전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저희는 만들던 가닥도 있으니까. 최소한 우리가 플레이했던 테스트 버전수준의 재미는 갖췄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도 그랬지. 적어도 비등비등한 수준의 재미는 될 줄 알고 밀어 붙인 건데.”
“게임 퀄리티가 아예 미쳤네요. 이러면 우리 게임은 그냥 베끼다 실패한 망작으로 밖에 안보이겠는데요?”
“안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미칠거같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진만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직원들은 모르는데 내가 손을 좀 썼거든?”
“손이요?”
“퍼블리셔한테 부탁해서 우리 게임을 베낀 동인게임이 있으니까 그거 매장에서 못받게 손좀 써달라고 했지.”
진만의 말에 준표가 입을 떡 벌리고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미쳤어요? 양심도 없습니까?”
“그냥 큰매장에 우리게임이랑 같이 걸리는게 좀 걸려서 그랬어.”
“퍼블리셔에서는 그걸 믿었고요?”
“그럼 우리같은 중견 개발사가 고등학생들이 만든 게임을 베껴서 중간에 만들던걸 뜯어고쳤다고 생각 했겠냐?”
“어쩐지 매장이 아니라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해서 게임을 판매한 이유가 있었군요.”
“근데 문제는···. 퍼블리셔가 지금 상황을 눈치챈 것 같다는거야.”
“어떻게요?”
“매장에 가서 ‘마리의 눈물’을 구매하러 온 유저들이 점원의 추천으로 우리 게임을 사갔다가 자기가 찾던 게임과 다르다고 항의하면서 환불하는 사건이 몇 건 있었대.”
“시발···. 엿됐네요?”
“엿됐지.”
“그러길래 왜 그런 미친짓을 합니까?”
“다 회사를 위해서 그런거라고! 그리고 지금 판매량도 우리가 지금까지 발매한 게임중에 제일 높잖아!”
“그럼 뭐합니까!? 소송걸려서 다 털리게 생겼는데!”
준표의 말을 들은 진만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소송은 이제 걱정안해도 될 것 같다.”
“왜요?”
“누가 우리 게임이 이게임을 베꼈다고 이야기해봤자 믿기나 하겠냐?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
“아···.”
중간에 개발 방향을 급선회하느라 퀄리티를 올리는데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표절 시비를 막아주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준표는 현재 상황을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진만을 보았다.
아무리 양심 털리는 짓을 했어도 진만이 한 행동은 결국 회사와 직원을 위한 짓이다.
비록 그것으로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는 행동을 했더라도, 적어도 자신은 진만의 편에 서 있어야했다.
준표는 각오를 다지며 진만에게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사장님.”
“어.”
“사장님 목적은 지금 ‘루나시아 스토리’를 마지막으로 패키지 게임 개발을 접고 온라인 게임 개발에 도전 하시는거죠?”
“맞아. 우리 IP 활용해서 제대로 된 MMO게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자금을 확보해두고 싶은 거고. 1,2년 가지고 안될 수도 있으니까.”
“후···. 어쩌겠어요. 그럼 이번 한번은 양심이 털려도 최대한 팔 수 있게 노력해봐야죠.”
“방법이 있나?”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마리의 눈물’을 사러 온 유저들이 우리 게임을 대신사고 있다고요. 실제로 지금 출고 수량 보면 코믹월드 이후에 거의 두 배 가까이 주문이 오고 있거든요?”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거의 저쪽에서 우리 게임을 대신 홍보하는 꼴이라고 봐야죠.”
“참 꼴이 우습게 됐네.”
“아뇨, 이건 기회에요.”
“무슨 소리야?”
준표는 솔직히 진만이 수를 쓰지 않아서 상혁들이 매장 판매에 의존했더라면 지금같이 커다란 이슈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들의 악수가 상대에게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수를 자신들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준표는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상대측은 다음 코믹월드에도 나갈겁니다. 일단 전에 미처 구매 못한 수요가 거기 몰릴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럼 저희도 나갑시다. 코믹월드.”
“뭐!?”
“매장에서 지금 하고 있는거랑 똑같은 전략으로 나가자고요. 마리의 눈물 사러온 유저들한테 우리 게임 파는거요”
단번에 부정하려던 진만은 잠시 고민하더니 생각을 바꿧다.
분명 황당한 생각이지만, 먹힐 수 있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네. 어차피 저쪽에서 물량 준비해봐야 고등학생들이 많이 준비도 못할테고, 우리가 밀려서 그쪽 게임이 매진되더라도 미처 못산 수요를 우리가 흡수할수도 있겠어.”
“퍼블리셔 통해서 행사 열고 굿즈 판매 명목으로 참가하죠.”
어차피 상대는 고등학생이다. 프로의 스케일로 밀어 붙이면 자신들이 밀릴리 없다고 판단한 진만은 이번 행사에서 승부를 내기로 결정했다
“기왕 하는거 확실하게 밀어붙이자고. 부스도 최대한 큰걸로 잡고 코스플레이어도 섭외해. 모니터도 대형으로 여러 개 설치하고.”
의욕을 보이는 진만을 보며 준표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2회 코믹에서 맞불 작전을 준비하는 두 사람은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상대하려는 아마추어 팀의 팀장이 전 행사에서 이슈 위해 여장까지 감수한 돌아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