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5화 (26/485)

025. 제1회 코믹월드

좋은 마켓의 기준은 뭘까?

기본적으로 상품을 팔기 위해 플랫폼을 선정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품이 잘 팔리는 마켓이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항상성’ 있는 마켓과 ‘한정성’ 있는 마켓.

게임 마켓을 기준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 스팀은 항상성을 메인으로 삼은 마켓이고 코믹월드는 한정성을 메인으로 삼은 마켓이라고 볼 수 있다.

둘의 차이는 일목요연하다.

기본적으로 아무 때나 가서 언제든 물건을 살 수 있는 마켓은 항상성이 있다고 보고, 특정 기간에만 물건을 구할 수 있을 때에는 한정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각 마켓이 항상 한 가지 성향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스팀은 할인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기간에만 혜택을 부여하여 한정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코믹 월드 같은 경우도 오프라인 판매 이후에도 DL 사이트 같은 온라인 마켓에서 게임을 판매하여 항상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팀이든 DL 사이트든 기본적으로 1999년의 게임 시장은 항상성 보다는 한정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인터넷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천 평의 대지위에 수만 대의 서버가 굴러가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같은 것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 였으니까.

그 말은 결국 ‘마리의 눈물’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팔아야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엘란테 소프트측 퍼블리셔의 농간으로 게임 유통이 어렵게 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게임 판매상을 다 매수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혁도 잘 알고 있었지만 상혁은 굳이 발품을 팔아서 게임을 받아줄 상점을 찾을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전국에 동네마다 있는 게임샵을 어찌 다 돌아다니겠으며, 점포당 3~4카피 넘기는 게 전부일텐데 언제 100군데를 넘게 돌아서 500카피를 팔겠는가.

그렇기에 상혁은 1회 코믹월드라는 행사를 통해서 만들어둔 500카피의 마리의 눈물을 판매할 생각이었다.

‘다 팔 수 있으려나?’

확신은 없다. 단지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가진 정보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뿐.

그렇게 상혁은 부산하게 움직이며 부스를 준비하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팀원들은 앉아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상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방금 전까지 부스 설치의 80%를 상혁이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서클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큰 부스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크기의 부스에 철망으로 배경을 세우고 일러스트와 타이틀이 새겨진 작은 현수막을 걸었다.

거기에 스티로폼을 잘라 만든 캐릭터 등신대 사양의 입간판도 세워두니 어찌어찌 보기에 그럴싸한 작은 부스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회귀 이후 부쩍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만 게임을 만드는 것은 참 즐겁다.

이런 행사에서 게임을 팔려고 부스를 설치하는 것도, 이전에 G스타에 참가하기 위해서 회사 부스를 준비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도 남이 시켜서 만든 게임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게임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그런건가?’

상혁은 생수의 뚜껑을 따서 물을 한모금 마시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그때 자신도 쉴 생각인지 민준이 다가와 상혁에게 말을 건넸다.

상혁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바닥에서 새 생수를 꺼내 민준에게 내밀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지 얼마 안된 생수는 더운 날씨에도 아직 그 냉기를 잃지 않고 있었고 민준은 넘겨받은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남은 생수를 머리에 부어버렸다.

“덥냐?”

“오랜만에 힘써서 그런가보다.”

“뭐 얼마나 힘썼다고 운동선수 흉내야?”

“몸이 곯았나봐.”

“컴퓨터 많이 해서 그래.”

“아니 니가 무슨 판교 병원 의사냐?”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피식 웃었다.

판교나 구로같이 IT업체가 밀집한 곳에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증상을 듣자마자 컴퓨터 탓을 하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병원에서 손목이 아파서 찾아가면 최근에 격한 운동을 했는지 묻지만, 이상하게 판교 의사들은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 컴퓨터 탓을 한다.

그리고 99%정도 그 이유가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잘 팔리겠지?”

“잘 만들었으니까.”

민준의 말에 타성적으로 대답하면서도, 상혁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런 상혁을 보며 민준은 지난번 용산의 게임 매장을 찾아간 이후로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 상혁아.”

“어.”

“앞으로도 이렇게 할 거야?”

민준의 ‘앞으로도’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500카피를 판 이후에 나머지 판매도 이런 식으로 행사를 찾아다니면서 할 것인지, 그리고 이후의 게임 개발도 오프라인 판매를 위주로 한 패키지 개발을 진행할 것인지···.

그 부분은 상혁도 내심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상혁은 민준에게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팀장이 모르면 어쩌려고.”

“내가 하고 싶어서 팀장했냐? 떠맡겨지듯이 맡은 거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잖아. 일단 팀장이니까 니가 계획을 세워야지. 그리고 팀장에 니가 제일 잘 어울리기도 하고. 나 같으면 매점에서 거절당했을 때 멘탈 뽀개져서 아무것도 못했을 걸?”

“뭐 지금 하는 것도 결국은 그냥 궁여지책이지만 말야.”

“그래도 그거라도 생각하고 추진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그렇게 말한 민준은 생수를 마시려다 방금 자신이 머리에 다 부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본 상혁은 웃으며 새 생수병을 하나 건네주고는 입을 열었다.

“모르겠다. 일단 지금 스팀같은 플랫폼은 없으니까, 패키지를 계속 만들지, 아니면 올해 말부터 내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MMORPG를 만들지.”

“우리 인원으로 만들 수 있냐?”

“힘들지.”

“그럼 사람 더 모으게?”

“그게 문제야. 지금처럼 동인팀 형태로 굴리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지금은 몰라도 나중엔 어느 정도 게임의 규모가 게임의 평가를 결정하는 시대가 올 테니까.”

적어도 2008년에 앱스토어가 런칭되기 전 까지는 PC게임은 규모의 경제가 마켓을 지배하고 있었다.

상혁은 그 과도기인 지금은 충분히 동인 스케일에서 상업게임과 승부가 가능한 퀄리티를 뽑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시기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회귀 전의 타임라인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그렇게 되기 전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것이 상혁의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자신들이 만든 최초의 판매용 게임인 ‘마리의 눈물’이 어느 정도 이상의 매출을 내 줄 필요가 있었다.

“우선 그건 잘 되고 나서 고민이고 일단은 부스에서 게임을 파는데 집중해보자고.”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부스의 준비가 마무리 되었고 상혁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민준을 데리고 부스 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게임을 팔아야할 시간이었다.

***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코믹월드는 너무 잦은 행사 횟수 때문에 서클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 경향이 있었다.

1년에 서울에서만 6~7번을 열어버리니 제작자도 언제 출품을 해야 할지 알기가 어렵고 구매자도 언제 자신이 좋아하는 서클이 판매를 하는지 정보 파악이 힘든 지경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코믹마켓의 경우 1년에 단 두 번만 열리기 때문에 전국에서 모인 동인 서클이 엄청나게 모여 도쿄 게임쇼를 능가하는 참가인원을 자랑하지만 코믹월드는 앞서 말한 이유로 ‘대 행사’ 같은 느낌은 주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혁이 팀원들을 데리고 온 행사는 1회 행사였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행사였기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온갖 코스프레를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부터 부스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동인지를 사러 찾아다니는 사람들까지.

행사는 수많은 오덕들이 모여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상혁의 부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고 있었지만 판매는 시원찮은 편이었다.

“의외로 안 팔리네?”

“그렇네? 왜지?”

상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동인 게임은커녕 한글 정발 게임이 가뭄에 콩나듯 나는 시기인데 구매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여긴 뭐 파는 부스에요?’만 물어보고 떠나는 상황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임이 아예 안 팔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혁은 팔기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되는 풍경을 예상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상혁의 옆으로 다가온 민준이 상혁을 보며 물었다.

“얼마나 팔릴 거 같아?”

상혁은 고민을 잠시 뒤를 돌아보며 쌓여있는 패키지를 한번 보고는 민준을 향해 답했다.

“이 페이스로 팔리면 100카피정도?”

“그래도 다행이네.”

“다행? 뭐가 다행인데? 400카피나 더 팔아야하는 구만.”

“5천원짜리 동인지 사러 온 사람들한테 3만 9천원짜리 100개 팔면 엄청 잘 판 거 아니냐?”

“난 완판될줄 알았어.”

“난 지금 이정도로도 괜찮은 것 같은데. 뭣보다 니가 예전처럼 또라이짓도 안했기도 하고.”

“잉? 그게 무슨 소리야?”

“회귀 전 고등학생때 니 행보를 생각해보렴. 아무것도 모르니까 있는 대로 갖다 질러서 내가 그거 수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업계 가고 나서 나이 먹으면서 많이 얌전해져서 그렇지, 난 아직도 니가 회귀 전 우리 어릴 때 했던 짓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야.”

“너무 과장이 심한데?”

“너 G스타 참가했을 때 남의 게임 부스 찾아가서 사람들한테 왜 이딴 똥겜에 관심보이냐고 소리 지르던 건 기억 안 나냐?”

“아···.”

“우리 부스 찾아온 사람한테 그렇게 딴 게임이랑 비교하고 싶으면 그냥 그 게임 하러 꺼지세요 라고 했던 건?”

“아오. 지금 여기서 흑역사 배틀 한번 해보자고?”

“해보던가.”

상혁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얌전한 성격의 민준의 과거를 돌아보면 흑역사 배틀을 떠봤자 자신이 100% 필패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상혁은 정말로 자신이 회귀 전에 망나니처럼 굴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무식하게 용감했던 과거를 떠올리고는 잠시 부들부들 떨며 팔에 돋는 닭살을 쓰다듬었다.

상혁이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동작을 멈춘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치 자신의 커다란 실수를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아, 진짜 그렇네. 내가 왜 그랬지?”

“이제 생각이 좀 나냐?”

“아니 예전에 왜 그랬지 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왜 이렇게 얼빵하게 굴고 있었지 라는 의미야.”

“무슨 말인데?”

“옛날엔 용감한데 무식해서 문제였던거고, 지금은 무식하지 않으니까 용감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순간 상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민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잠깐 자리 좀 보고 있어.”

“어디가게?”

상혁은 민준의 말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나오더니 어디론가 뛰어가며 말했다.

“미친 짓 하러!”

그리고 잠시 후, 민준은 사람들의 사이를 헤집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혁을 바라보며 경악을 하고 말았다.

“너 시발 그게 뭔 꼴이야?!”

“홍보용 의상!”

상혁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이상한 고스로리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서는, 다리에 니삭스까지 착용한 채로 한쪽에 모니터와 연장 케이블을 들고 부스로 뛰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장내에 시선이 닿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복장이었다.

0